탐식수필
정상원 지음 / 아침의정원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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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 "원칙과 신념을 지켜서 만들고,
겸허하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 그 결과를 확인한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나눈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몰랐던 정상원 셰프,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프렌치 파인다이닝<르꼬숑>의 문화총괄셰프라는 생소한
명함의 그가 펼쳐낸 맛의 여정이 읽는내내 마음을 풍성하게 하네요.

 "이 책은 미감의 탐험을 위한 안내서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세계 각국의
음식에 담긴 인문학과 예술, 역사를 품은 생생한 이야기와 음식에 진심인
셰프의 내면의 심성까지 오롯이 담겨있어 책에 담긴 음식 뿐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음식들에 대한 즐거운 상상까지 작가의 말대로 단순히 먹는 일에서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묘한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p.12 시인 백석의 문장이다.
"맛은 육식과 정서에 사무친다. 먹을 때는 생활이고 먹고 싶을 때는 그리움이다.
맛은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고 먹는다는 것은 삶과의 맞대면이다. 맛은 삶에 대한 직접성이다."

 

 

 

음식은 어쩌면 인류공통어가 아닐지....
남편이 예전 유럽여행 갔을 때 스페인 음식이 가장 입맛에 맞다고 했는데
항아리에서 발효시키는 한국의 동치미같은 알마그로 가지김치를 보니 남편의 말이
충분히 이해됐어요. 근현대사가 담겨있는 폴란드의 오래된 식당, 붉은 돼지 식당의 독특한 메뉴이름,
프롤레타리아 메뉴와 부르주아 메뉴라니! 역사의 아픔을 위트있게 담아낸 메뉴에 감탄!
그 맛이 무척이나 궁금한 이스탄불의 대표적 거리 음식인 고등어빵,
한 번도 웃지 않던 잔느 드 라발 여왕을 미소짓게 만들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멜론을 말려 만든 과자 '칼리송',
고통스러울 정도로 맛있다고 표현한 오베르뉴의 블루 도베르뉴 치즈,
우리나라 북어와 다르지 않은 대서양의 해풍에 말린 대구, 바칼라우(포르투칼의 대표음식이라고) 등등
정상원 셰프가 풀어놓는 세계의 맛의 향연과 음식에 담긴 철학과 문학, 역사 이야기를 듣다보면
바로 그 나라로 달려가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열망이 넘쳐흐릅니다.

책을 읽으며 여행의 추억을 떠올렸네요^^

암스테르담의 아담한 아보카도 전문식당<더 아보카도 쇼>에서 먹었던 더 살보카도

여행추억-취리히 공과대학 근처의 노천시장에서

 
지금은 잠시 멈췄지만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음식에 대한 추억을 소환해내곤 합니다.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들어갔던 독일의 식당에서 먹었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 홍합탕,
아보카도는 느끼하다는 기존의 내 입맛을 완전히 흔들어버린 암스테르담의 작은 식당에서 먹었던
아보카도 요리,....생애 첫 유럽여행에서의 기억도 음식에서 시작해서 음식으로 끝나는 걸 보면
우리의 미감이 여행의 출발이자 맺음이 아닐지....

 

레드 와인의 다양함과 맛을 친구에 비유한 셰프의 은유법은 멋스러워 와인에 대한 호감을 한껏 불러일으킵니다.

p.328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새로움은 가장 황당한 모험과 대상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것을 향한 부단한 탐구에서 나온다."

 

 

 

단지 작품 속 시각적 이미지 뿐 아니라 연못 앞에서 모네가 느꼈을 심정까지 담아내려 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모티프로 한 수프 <차롬한 초록>,  어린왕자와 장미의 우정을 담아낸 <기다림>,
로맹 가리의 자전소설 '새벽의 약속'에서의 어린 주인공의 삶을 두 가지 색채로 담아낸 <글자들의 수프>,
어릴 적 유년의 기억 한모퉁이를 차지하는 흙냄새의 추억을 담아낸 디저트 <화분> 등
먹기에도 아까운, 셰프가 고심끝에 우리에게 선보이는 메뉴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요리를 이렇게 예술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재능과 섬세한 표현력에 놀라게 됩니다.

 

"이 책의 모든 글자는 아내의 밥에서 나왔다."
최고의 음식을 내놓는 셰프지만 고단한 하루의 끝자락에 아내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에 대한
감사함을 오롯이 표현하는 작가의 심성이 빚어내는 글과 음식의 결이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그의 철학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는 도전의 열기까지 그의 손에서 빚어내는
맛의 향연에 대한 기대감에 탁재형님의 추천글처럼 <르꼬쑝>을 검색해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p.136 "식사란 온몸으로 직접 맞이하는 익숙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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