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 율리와 타쿠의 89일 그림일기
배율.진유탁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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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느긋한 여유로움,
회사 동료들 중에 농인이 있어 배우기 시작한 수화표현에서
'천천히'는 왼손등 위를 오른손을 세워서 아주 천천히
가로지르는 동작으로 표현되지요. 그렇듯 빡빡한 일정 속에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여행기록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음미하는 즐거움을 가지게 하는 책이었어요.

 

호기심 천국 율리와 깐깐한데다 "여행이란 건 대체 왜 가는 거야?
집 나서서 돈 쓰고 고생만 하는 거잖아."라고 여행의 무용론을 말하던
타쿠의 묘한 콜라보가 태국살이를 더욱 재미나게 읽게 합니다.
맛난 음식 지향파인 율리의 감성돋는 표현도 즐겁고 깐깐하다가도
때론 약간의 허당기질이 엿보이는 타쿠, 두 사람의 89일 태국살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들의 로망이 치앙마이에서 잘 이루어지는 걸
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여행책, 실제 외국살이의 실용팁이라면
"마이 싸이 팍치."(고수는 빼달라는 뜻), 집구하기의 요령 등이 간단하게
담겨있던 정도, 이 책은 여행가이드 책이 아닌 치앙마이 살이를 엿본
기발하고 재미있는 그림일기였어요.

 

 

여행과 머무름 사이
다 보고 다 먹어봐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 그래서 순간적 감탄이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아닌 일상의 소소함이 담겨있는 치앙마이 살이의 묘한 매력이
오히려 맛집정보와 관광정보로 똘똘 뭉친 여행가이드보다 더 치앙마이의 매력이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더불어 떠남에 대한 용기도...
누군가 여행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발견이 아니라 재발견이라고 했던가요.
왜 치앙마이였냐고 묻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타쿠가 걸려버린
오라오라병의 원인을 왠지 공감하고 말았네요.
여행은 어떤 목적이든 어떤 계기든 일단 떠나고 볼 일 인 것 같습니다.

 

p.15 이렇게 답이 명쾌하지 않을 때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 어떤 마음으로 지금을 돌아보게 될 것 같아?" 하고 상상해보는 것.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기회가 생겼을 때 갔어야지!"미래의 내가 지금 나를
본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았다.

 

p283 "용기내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 떠나오기를 잘 했다."

 

율리의 비장의카드는 물론 타쿠의 진심어린 말에서 생애 첫 해외여행을 앞둔,
그것도 낯선 이들과의 동행을 앞두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나에게도
두 사람의 여행기가 좀 더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 같습니다.

p.249 "태국에는 사바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좋음','평안'이라는 뜻으로, 태국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표현이에요."

 

p.207 "무엇보다 '언제든 피하려면 피랗 수 있다'는 선택지를 가지는 것만으로
신기하게도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몇 달이 아니더라도, 몇 일,
어쩌면 단 몇 분만이라도, 가끔은 싫어하는 걸 피해가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
따뜻한 여름 나라에서 나는, '언제나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채로
흐리고 추울 다음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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