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여행을 떠났다 - 낯선 길 위에서 다른 나를 만나다
여병구 지음 / 노란잠수함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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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에서 '하필'이란 단어가 어쩐지 마음에 콕 박혔다.
우리는 때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왜 하필 나야?"
부당한 속상함을 '하필'이라는 단어에 담아 하소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부정적인 부사라고만 생각했던 하필이 여행이라는 단어와 만났을 때
앞으로 '하필 떠나게 될 여행'은 작가의 말처럼 생각지도 못한 감동과 깊이를 전해줄 것 같았다.

 

 

p.68 "해질녁의 쉐산도 파고다는 바간의 천 년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 곳을 보지 않고 지나친다면 바간을 보지 못한 것이나 진배없다."
p.85 "삶의 무게에 눌려 가슴 속 깊이 꾹꾹 담아놓고 사는 사람들이 소유와 존재의
슬픈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면 과한 표현일까?
모두 내려놓고 진짜 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 바로 나짱이다."
p.223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며 휴식의 참맛을
느끼게 되니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이겠다." 라고 말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노르웨이의 알타에서 만난 한국인소녀, 헬싱키의 소박한 <카모메 식당>
밤이 더 아름다운 호이안의 밤,...

사진으로 꽉 채우지 않아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여행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여행후기,
자연풍광과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난 따스한 감동을 생생하게 자신만의 어휘로
표현한 시는 여행 당시의 기쁨과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오로라 전문투어프로그램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오로라를 시르케네스의 호텔에서
마주치는 우연, 강풍과 사나운 날씨탓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마터호른의 산봉우리처럼
10년 여행작가에게도 여행은 항상 예기치않은 우연과 행운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 이민 온 한국분을 만났는데 10년이 지났지만 고산병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하니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것이 최고의 대처법이다."마추픽추 고산병대처법의 실용정보는 물론
책을 읽은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콜레라를 먹고나니 힘이 났다"^^스위스 산장의 기막힌 이름의 메뉴,
작가가 기어이 다시 찾아가 두 잔을 더 마셨다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칵테일 '다이키리'
'사모아의 마타비누 산에 올라간 첫번째 한국인은 누구일까?'
책 속 여기저기 작가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자그만한 단서를 흩뿌려놓은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요즘 넘쳐나는 여행책은 거의 다 누군가의 앞선 여행기록이자 정보책이었다.
누군가의 리뷰를 실행하러 가는 거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이렇게 숙제로 가득찬
누군가의 여행후기를 따라가는 관광이 아닌 나를 찾아 오롯이 떠나는 여행으로
채워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마음이 깃들 때 만난 남다른 여행책이라 더 마음을 뺏겼는지도 모르겠다.

 

하필, 이 책을 집어 든 나는 2년전 생각지도 못한 어렵고 힘든 시련을 겪었고
여전히 힘겹게 지나가고 있는 중이며 얼마전 시작한 새로운 직장생활에서
전공도 전혀 아닌 새로운 분야에 고군분투 적응하느라 내 시간을 가져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하지 못한 일거리를 가방에 꾸역꾸역 챙겨서 퇴근하는 길,
그렇게 숨막히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하필, 여행을 떠났다>책이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픈 내 마음을 대신해주는 것 같았다.
혼밥도 주저하는 내가 홀로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며
여병구 작가의 글과 사진에서 떠남을 위한 1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얻었다.

 

p.288 "변화무쌍, 복잡다변했던 여행의 순간에 담았던 느낌을 모아,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더 행복해지거나, 마음이 덜 다치게 해주고 싶었다."

여행은 누구의 여행도 아닌 자신만의 여정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렇게 오롯이 나만의 여행을 준비하는 동기가 되어주어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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