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맛도 모르면서 - 맥주에 관한 두 남자의 수다
안호균 지음, 밥장 그림 / 지콜론북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맥주에 대한 조금은 덜 정리된 지식과 깊디깊은 애정을 담아 완성된 이 책은 책의 부제처럼 정말 "맥주에 관한 두 남자의 수다"노트였다. 맥주에 대한 여러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들이 이야기하는 맥주의 맛과 풍미를 떠올리기까지해가며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치며 읽어나갈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몇가지 맥주 이름을 배우고 그 맥주들에 대한 에피소드 몇가지만을 흡수하며 그럭저럭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저자들의 애정과 지식이 깊어서인지 사실 맥주 초보자들에게 그리 친절한 책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첫부분인 <맥주인문학 : 맥주에 관한 07가지 이야기>은 저자에게 있는 맥주에 관한 에피소드나 추억과 그에 연결된 깨달음(사실 그렇게까지 깊지는 않은 것 같고 주로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 사연쪽에 더 집중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을 풀어놓았다. 이 부분까지 읽었을 때는 사실 맥주라는 주제로 쓰인 가벼운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었다. 저자와 나이대가 비슷하거나 야구장에 가서 마시는 맥주를 사랑하는 분들이 독자가 되었을 때는 나와 다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책의 전체 중에서 가장 몰입도가 떨어졌던 부분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맥주에 대해 조금은 더 친절한 소개나 설명을 기대하고 있던 터라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세계맥주 탐방기 : 세계 맥주에 관한 07가지 이야기>는 조금 더 친절해진다. 하나의 글에서 하나의 나라를 다루고 있어서 더 집중력이 있었던 것 같다. 조금은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를 큼직한 삽화가 보조해준 것도 효과적이었다.

 

맨 마지막 파트이자 표제를 그대로 따온 <맥주에 관한 두 남자의 수다 : 맥주를 둘러싼 22가지 이야기>는 맨 앞에서 보았던 맥주인문학보다 더 사소하고 짧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수다라고 이름 붙인 것처럼 마치 문자나 카톡창같이 두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글쓴이와 저자가 나누는 대화는 정말 맥주 한잔 걸치며 혹은 맥주한잔을 간절히 바라며 나누는 대화같이 편안하고 솔직하고 조금은 쓸데없다.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길맥, 혼맥, 맥맥 등 조금은 낮설지만 들어보면 누구나 아! 하고 알게되는 사소한 맥주애호가들의 은어도 몇가지 알려준다.(차례대로 길에서 마시는 맥주, 혼자먹는 맥주, 맥주에 맥주)

 

 

 

맥주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은 결코 어려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맥주가 어디 글로 배울 수 있는 분야의 것이던가. 약간은 아쉬워도 가볍게 읽고, 맥주를 즐기는데 보탤수 있는 이야깃거리로 읽어보자. 맥주는 마시고 싶고, 같이 마셔줄 사람 없이 심심한 밤에 이 책을 친구삼아 마시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대, 우리는 이기적일까 -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너, 나, 우리의 16가지 고민
송가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 의문문이다. 이렇게 물음표가 많이 사용된 책은 처음본다. 그만큼 고민이 많다는 것이겠지만. 인문학은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저자가 20대의 고민들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놓으며 이미 전제로 깔아놓은 문장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속시원이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볼 필요는 있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수 없는 우리가 이미 겪었거나, 겪는 중이거나 앞으로 다가올 현실적인 문제들(연애, 결혼, 취업, 학력, 진로, 도전, 실패, 자아, 자기애 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답답하지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지금은 젊은 세대 전부가 함께 하고 있는 고민들을 이야기한다.

 

 

 

20대로서 이 책을 꼼꼼히 읽으려 노력했다. 다른 이들의 서평도 읽어보았지만 현재 20대들이 공감할 이야기-라는 리뷰 밖엔 보이지 않는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이 책은 아직 미완성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일 작가의 주변이야기가 사례로 꽤 많이 들어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왜 작가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책의 제목도 그렇고 20대 혹은 젊을 세대를 대변할 마음으로 책을 썼다면, 실제 나이를 안다면 독자로서는 그 세대의 작가가 겪었을 실제상황을 더 자세히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얇팍한 마음일지라도 한 편(team)으로서 더한 동질감과 공감, 응원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책 제목을 저자가 직접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우리'라는 표현을 썼으면서도 왠지 작가 본인은 분리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개인적으론 아쉽고 좀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함께 겪어나가고 있을 지금을 최대한 정리하고 도움이 될 이야기들만 추려 적어보고자 했을 테지만, 조언도 현황보고도 아닌 조금 애매한 관점의 책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인문학적인 책은 처음 적은 이야기처럼 답을 명확하게 이야기해주기 보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연결해주고 우리가 잘 몰랐던 부분이나 잘 생각하지 못하는 영역으로의 생각을 확대시켜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낯선 쪽으로의 생각을 끌어주기 위해서는 뚜렷한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고민거리들은 친숙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여기저기로 가지를 뻗거나 혹은 이미 복잡적인 이유나 상황을 배경으로 생겨나는 문제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16가지 고찰'로 나뉘어놓은 각 파트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그리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내용이 반복적이거나 얕은 부분만을 보고 있는 면이 없지 않았다. 문제의 범주문제도 있겠지만 작가의 첫 작품이라서인지 필력이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실제 우리 모습은 오히려 이타적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이익인 일, 타인이 좋아하는 일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선호보다 타인이 무엇을 선호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이 하고픈 공부보다 타인들이 주로 하는 공부를 하려 한다. 자신의 적성보다는 남들이 평가할 때 좋은 직업인 교사가 되려 하고, 자신의 바람보다는 남들이 좋은 직장이라 말하는 공기업과 대기업 입사하려 한다. 여기에 자신의 이익이나 관심이 있을 리 없다. 우리들의 이기심은 이미 오래전에 개에게 줘 버렸다. - 본문중 192p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문제중에 표제와도 관련있는 '우리의 이기심'에 대해 작가는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이기적, 이타적의 정의가 일반적인 의미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항상 '나'에 대해 집중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현재의 10대 20대들은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따위 없다.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채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한다. 처음 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마치 게임처럼 하나를 끝내면 '당연히' 해야 할 다음 단계가 나타난다. 다음 단계가 무엇일지, 어떤 것을 하게 될지 몰라도 다음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고 수월하게 다음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단계에서 하는 '공부'에 집중하라고 한다. '공부'로 축약되는 학창시절의 모든 노력과 시간들에는 '나'를 끼워넣을 틈이 너무나도 작다. 매번 있던 다음 단계가 사라지는 대학졸업 즘에야 우리는 고민을 시작한다. 남은 인생을 나로 살기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하지만 익숙치 않은 고민은 될수 있는 한 뒤로 미루고 싶다. 그래서 대부분이 하는 선택을 다음 단계로 삼는다. 그 단계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길었지만,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기적(利己的)이라고 하기에는 자신(己)에 대해 너무 모른다.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거냐 시간을 붙잡아놨냐 타박해도 어쩔수 없다. 우리 스스로도 굉장히 답답한 현실이다.

 

 

 

이 책은 20대를 타겟으로 나온 책일지 모르지만, 사실 더 넒은 나이대의 독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느꼈다. 답답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 현 상황의 우리들의 모습은 더 이상 공감하고만 있을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들은 그 모습을 알고 있다. 알고싶지 않아도, 굳이 이 책에서 세세하게 들고 있는 사례나 대화를 읽지 않아도 주변에서 늘 보아오고 본인이 겪고 있으니. 그러니 이 책은 이미 지나온 20대를 잊은 '어른'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겪고 있는 실제적인 상황과 고민들을 조금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함께 고민해주었으면 좋겠다. 사회적인 배경을 가지고 생겨난 문제들이 많으니 여러 세대가 함께 풀어나갈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20대라는 것은 신체적인 나이의 범주이다. 교육이 늘어나 사회로의 첫 발디딤이 늦어지는 만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초년생인 우리들은 개인적인 문제에 더해지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 못난 모습을 꼬집고 있기에 읽는데 불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제 몫을 해내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가장 바쁘게 이루어지는 시기가 청년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함께 토론해보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그 온 랄프 로렌 보그 온 시리즈
캐틀린 베어드 머레이 지음, 이상미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패션을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랄프로렌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랄프로렌? 패션계쪽에서 유명한 이름아닌가- 하는 정도. 그의 내력이나 디자인 철학은 고사하고 국적이나 어디에서 주로 활동하는지, 어느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디자이너인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보그온 시리즈에서 맛보기로 보여준 몇장의 사진만으로도 이번에 출시된 4명의 디자이너(랄프 로렌/위베르 드 지방시/코코 샤넬/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중 가장 끌리는 사람을 꼽으라면 랄프로렌의 책이 보고 싶었다. 취향도 있었지만 모르는 만큼 호기심이 크게 일었다. 그리고 랜덤으로 도착하는 배송에서 운좋게도 랄프로렌의 책이 내 손에 떨어졌다!

 

 

 

 

랄프로렌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들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남성복과 여성복은 물론 인테리어 생활용품, 테일러링 슈트, 서부스타일, 이브닝웨어, 스포츠웨어, 승마복, 레드카펫 드레스까지 손대는 것마다 많은 사랑을 받으며 승승장구 해온 그의 옷들은 모든 이를 위한 가장 미국스러운 옷'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충분해보인다. 그는 인간적으로도 옷에 있어서도 미국적인 관점을 잃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인의 '개척자'적인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서부스타일의 컬렉션을 만들어냈고, 테일러링 슈트를 비롯한 정장 및 드레스를 만드는데에 있어서도 당시 미국인이 보기에 귀족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했다고 한다. 러시아인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나고자란 미국이란 나라를 스스로도 사랑하기에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칼라거펠트가 말했듯이 그는 언제나 브랜드를 변화시키는 사람인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옷의 장르에 확고한 핵심만은 잃지 않으며 새로이 발을 뻗어 꾸준하지만 늘 변화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분야와 스타일에도 그가 놓지 않은 핵심적인 키워드는 클래식우아함이라고 한다. 남성복과 여성복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들은 정장스타일인데 당시 미국인들이 보길에 우아하고 귀족적인 영국 런던의 스타일에서 여러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귀족적인 우아함은 그의 다양한 컬렉션 어디에서든 잊지 않고 다루어진다. 또 한편으로 그가 추구한 것은 편안함 혹은 자연스러움이었던 것 같다. 멋과 편리를 한꺼번에 포함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테지만 그는 특히 여성복과 스포츠웨어에서 이러한 부분에 강점을 둔(멋과 편안함을 두루 갖춘) 옷들을 탄생시켰다. 본문에 나온 비리텔라의 의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비리텔라는 "로렌의 옷은 패션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여성을 위한 옷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여성은 자신이 옷을 입는 주체여서 옷이 자신을 입어 버리게 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감이 넘쳐서 부자연스럽거나 가식적인지도 않고 지나치게 멋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비록 남성복을 모티프로 했지만 브랜드의 시작과 동시에 특유의 철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 본문 중 44p

 

 

 

 

그가 폴로나 랄프로렌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낸 옷(혹은 콜렉션)들은 보그의 잡지촬영을 통해 그 멋스러운 사진들이 잔뜩 남아있다. 랄프로렌을 모르고 이 책의 글들을 읽지 않았다하더라도 책에 실린 몇장의 사진들을 주의깊게 보노라면 그 사진 혹은 사진속의 의상에 매혹당한 자신을 발견할 것 이다. 나 역시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아내 리키를 위해 만들었던 초기의 매니쉬한 스타일의 정장과 테일러링 스타일의 옷들이 특히나 멋져보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오래된 스타일임에도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이 맞는 듯 현대에도 통할 법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의 여성복은 키가 크고 가슴이 납작한, 주로 모델체형의 여성에게 주로 어울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8-90년대 미국의 웰빙붐이후 자신의 몸을 가꾸는 것까지도 패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했던 만큼 그의 옷은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자신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부각되어진다. 패션계에서 50년이상 활동하고 여전히 그 세계를 주름잡는 한 브랜드수장의 이야기와 콜렉션을 책 한권으로 모두 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부분일지라 하더라도 패션계에서 혹은 일반 소비자들에게서 그의 옷들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는 충분히 증명되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urvivors 살아남은 자들 1 - 텅 빈 도시 서바이벌스 Survivors 시리즈 1
에린 헌터 지음, 윤영 옮김 / 가람어린이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 으르렁거림이 휩쓸고간 텅빈 도시에서 고독한 개 럭키의 생존기가 시작된다. 으르렁거림, 시끄러운 우리, 긴 발, 차가운 상자. 이 낯선 단어들은 무엇일까? 순서대로 (아마도)지진, 자동차, 사람, 냉장고이다. 개의 시선에서 본 인간들의 세계는 이렇다. 개들은 강아지 시기를 지나 본능과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야생의 개가 되거나 긴발들의 생활에 길들여져 스스로 목줄을 메고 살아가는 개가 된다. 인간들의 시선으로 보면 전자는 들개, 후자는 애완견이다. 책의 주인공인 럭키는 전자에 속한다. 하지만 숲이나 자연에서 자란 완전한 야생의 개는 아니고 긴발들이 살고있는 도시에서 떠돌아다니며 살던 떠돌이 개였다. 야생의 개처럼 무리를 짓지 않고, 애완견들처럼 긴발에게 의지하지도 않는 그 둘의 중간정도에 위치한 고독한 개가 럭키였다.

 

 

 

무너진 건물, 버려진 자동차, 그리고 버려진 동물들만이 남은 텅 빈 도시에서 럭키는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며 여러 동물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에게 사냥을 가르쳐주던 '올드 헌터', 먹이를 빼앗으려 달려든 너구리 무리, 노란털(아마도 옷)을 입은 이상한 긴 발 등 그러다 아주 어릴적 헤어진 여동생 벨라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강아지 무리에 함께 있을 때 엄마에게 일종의 '개들의 신화(대결전)'를 듣고 자랐다. 그 이야기에는 하늘의 개, 땅의 개, 태양의 개, 숲의 개 등 자연에 빗댄 절대적인 존재들이 나오고 그들이 아끼는 개(예를 들어 '번개'라던가 '바람'이라는 이름의 개들)도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있는 창조신화 같은 것인데 마찬가지로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들의 존재를 충실히 믿는 개와 그저 이야기 속 개들일 뿐이라고 믿는 개들로 나뉜다. 럭키는 전자였고 벨라는 후자였다.

 

 

 

 

 

 

"여기서 보니 도시가 거의 한 눈에 들어오지? 그리고 얼마나 변했는지도 다 보일 거야.

이렇게 완전히 변한 세상에서는....."

벨라는 개를 한마리 한마리와 눈을 맞췄다.

"개들도 변해야 해."                                          - 본문 중 270p

 

 

 

다시 재회한 남매는 도시의 떠돌이 개와 애정을 듬뿍 받은 애완견이 되어 있었고, 긴 발들이 떠난 황폐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야생의 개'가 되기 위해 변화하려고 한다. 1권의 주된 내용은 럭키의 시선으로 텅빈 도시를 돌아다니며 변화된 세계를 보여주고, 벨라의 무리를 만나 그들과 잠시간의 동행을 결정하고 함께 겪는 모험을 이야기한다. 럭키와는 달리 긴발의 애정을 받고, 그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애완견 무리는 럭키의 지도 하에 점차 야생에 적응하고 숨겨진 마음 속 본능을 일깨운다. 여러번의 위기와 사고를 겪어가며 그들은 강해지고 그 '무리'의 결속력이 생겨난다.

 

사실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벨라의 무리와는 달리 럭키는 아주 조심스럽기만 하다. 벨라들보다야는 한수 위의 본성을 유지하고 사냥실력과 야생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지만 럭키도 완벽한 야생의 개는 아니었다. 큰 으르릉거림이 일어나고 난후 어릴적 들었던 개들의 대결전에 휘말리는 악몽을 끊임없이 꾸지만 자신은 다른 개들과는 다른 '고독한 개'라고 되내이며 무리짓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잠시간 동행한 스위트나 꽤 오랜 시간 함께 한 벨라의 무리들에게 어떠한 위로와 행복감을 순간순간 맛보면서도 자신은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한다며 변화하기를 거부한다. 완벽한 야생의 개라면 무리짓는 것이 당연한데도. 하지만 이러한 결심은 벨라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변화되어 보호해주고 보호받을 수 있는 개들 특유의 관계에 대한 럭키의 고민은 깊어져간다.

 

 

시리즈의 1권인 이책은 상당히 풍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들의 대결전에 대한 반복(후속 이야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복선으로 추측할수 있다)과 도시에서 시작해 도시를 벗어난 숲으로의 배경 이동도 이루어지고, 등장인물만 해도 다채롭다. 거기다 단발성 등장이 아니라 언젠가의 재회(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를 암시하는 복선도 제법 많다. 주인공 럭키의 시선으로 풀어내지만, 럭키와는 다른 유형(개의 종류나 성격, 성장배경 등에 있어서)의 다양한 개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이야기도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풀어내 시야를 넓게 만들어준다. 사고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던 무리로 지내던 시기를 지나 럭키는 결국 헤어짐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 직후 다시 벨라의 무리에 찾아온 위기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벨라들의 걱정에 긴박하게 다시 그들에게 달려간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시리즈물의 정석적인 마무리라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책의 디자인이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책의 표지에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외형이 그려져 있어 주인공들을 상상할 때 제법 도움이 되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도시의 지도(라고하기엔 엉성하지만 럭키가 살펴본 곳들이 표시되어 있다)가 있고, 책 페이지가 기입된 부분에도 개의 그림자가 그려져 있다. 앉아있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무언갈 살피는 모습 등 다 읽은 후에 알았지만 한 챕터당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개(럭키인 경우가 많지만 그 에피소드에서 활약한 개 등)의 그림자가 예고편 혹은 홍보포스터마냥 (챕터별로)왼쪽과 오른쪽에 번갈아 그려져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꼭 이 페이지 밑의 그림 때문은 아니겠지만, 왠지 이것 때문일거라고 의심하게 되는 것이 인쇄된 글씨들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파본이다-라고 할 만큼 글씨가 겹쳐져 있지는 않지만 마치 그림자가 진 마냥 살짝 번진 페이지(글자 한두줄이 아니라 페이지 전체가..)가 꽤 있어 읽는데 눈이 많이 아팠다. 내가 받은 책만의 단점이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혹시 모르니까 유의사항 정도로 생각해 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비안 마이어 : 셀프 포트레이트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사진, 존 말루프 외 글,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천재의 자화상, 원조셀피, 셀프 포토레이트라는 제목이나 광고의 문구들에서 알수 있다시피 이책은 비비안 마이어의 셀프 포토레이트 즉 요즘말로 셀카 혹은 셀피를 모아 묶어낸 책이다. 사진생활을 해온 기간동안(아주 어렸던 10대 이전을 제외한 생의 거의 전기간이라 해도 무방하다) 15만장 이상의 사진을 찍어온 그녀가 꾸준히 찍은 피사체가 있다면 그건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자기자신의 사진을 찍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젊어서 혹은 막 사진을 배우기시작한 무렵 사진을 찍는 몇몇 이들과 교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식 사진작가로서 활동하지 않고 보모로 평생을 살아가며 그저 묵묵히 사진을 찍어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는 커녕 인화하지도 않은 필름이 창고 5개를 가득 채웠다고 하니 그녀 특유의 고집과 방식을 짐작할만하다. 그녀는 새로운 집에 취직할때마다 필름이 가득찬 짐가방을 잔뜩 가져오곤 했다는데 생각보다 많은 짐에 고용주가 그녀에게 물으면 이 안에 자신의 인생이 담겨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사진은 자신의 삶이자 인생이었으며 사진을 찍는 행위는 창조적 예술행위보다는 자신의 시각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실존적 일상행위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담고자 한 것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하기에는 단지 그것뿐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

 

 

 

 

 

그녀의 셀피가 꾸준히 지속된만큼 연령에 따른 그녀의 모습을 남기는 역할도 했겠지만 그녀의 사진을 봤다면 그 사진안에 그녀의 온전한 모습 즉, 전신이나 얼굴의 눈코입이 전부 고스란히 담긴사진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사람이나 거리의 풍경을 포착해내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의 모습 또한 그 순간에 자연스레 녹아 들게끔하거나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독특한 프레임안에 자신의 일부를 넣어 사진을 찍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몇몇 사진은 자기자신을 찍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이나 인물을 찍었는데 마치 덤마냥 우연히 유리에 비치거나 그림자가 찍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사진집을 읽고난 후 느낀 부분이기도 한데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인물사진의 훌륭한 피사체로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인물사진이 생동감넘치는 이유는 그녀가 카메라를 들이밀었을 때 예쁘게 웃거나 인상을 찌푸리거나 혹은 사진을 찍는지도 모르고 방심한 얼굴을 보여주는 대상의 반응과 즉석적인,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그 신선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타인이 보여주는 그런 반응을 보일 턱이 없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사진안에서 예쁜척을 하거나 표정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카메라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다거나 그림자만을 찍기도하고 오히려 심각하거나 뚱한 어쩌면 무관심한척 별 표정없이 정면을 응시하며 찍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그녀가 웃는 사진은 단 2장 뿐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카메라를 향해 웃어보인다기보다는 찍을 당시에 기분이 좋았거나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 자연스레 지어진 웃음으로 보인다.

 

 

커다란 키와 커다란 눈동자,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건강한 체격. 개인적으론 젊었을 때의 그녀는 상당히 예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한가지만 고집하는 성격을 반영하듯 다부지게 다문 입술과 다소 뻣뻣한 몸은 사진을 찍을 때만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자신의 외양이 어쨋든간에 그녀에게 자기자신은 인물사진의 주역이 아니라 자신의 사진활동에서 자주 시야에 걸리는 단순한 피사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카메라의 시야에 자신이 걸린다면 그건 곧 그녀의 시선에도 자신이 걸렸다는 이야기니 본인은 별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른다.(셀프포토레이트와 기타 사진들을 의도적으로 구분해서 찍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온통 추측뿐인 이야기로 서평이 가득찼지만 그런 그녀와 그녀의 사진이기에 더욱 흥미롭고 마음이 간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그림자가 찍힌 사진들이 좋다. 눈코입은 없어도 꼿꼿하게 선 자세나 카메라를 들고있어 꺾여있는 팔꿈치, 가끔은 챙이 둥그런 모자를 쓰고 우뚝 서있는 그림자마저 사진찍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적으로 서있지만 그림자 안에 마치 표정이 있는 것처럼 몰입해 있다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밑에 첨부한 이 사진도 나는 참 좋다. 옮기고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찍은 이 사진에서 그녀는 웃고있다. 이 트럭안에 거울이 한 가득 있었는지 사진안에 찍힌 것이 전부였는지는 알수 없지만 남자가 거울을 번쩍 든 그 찰나에 자신을 온전히, 그것도 정확히 중앙에 맞추어 담아낸 것이 뿌듯하다는 듯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얼굴이 장난꾸러기 같다. 1955년이면 그녀의 나이 29일 때다. 마이어만의 고유의 스타일이 자리잡은 20대 중후반의 사진은 그녀의 젊은 시절 모습만큼 반짝인다.

 

 

 

 

 

이전에 읽은 책과 겹치는 사진이 있었지만 셀프 포토레이트만을 모아 사진과 동시에 그녀 자체에도 더 관심과 집중을 쏟아붓게 만드는 책이었다. 초반엔 그저 약간의 독특함에 끌리다가 후반엔 머리를 자르면서, 아이들을 돌보면서(그녀의 평생직업은 보모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에, 티비를 보다말고 자신이 걸리는 프라임을 찾아내 셔터를 누르고 마는 그녀가 보여 혀를 내둘렀다. 일상에서도 진정으로 사진찍는 것을 놓지 못하는 일종의 집착과 그에 따른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던 그녀라는 것을 느낄수 있어서 웃음이 났다.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처럼 언제어디서든 카메라를 들고다니며 원하는 순간순간을 담은 그녀의 사진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느껴진다.

 

 

올해 그녀에 이야기로 만든 영화가 개봉되었었고, 그녀의 사진 전시회가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참고 : 성곡미술관-비비안마이어x게리위노그랜드전) 관련 사진집이 계속해서 출간될 것 같다. 그녀에 대한 내 관심도 지속증가될 예정이므로 그녀와 그녀의 사진을 알리려는 이런 노력들이 참 반갑다. 생전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렸던 그녀의 본명, 비비안 마이어. 어쩌면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불리길 원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우리는 이제 그 이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