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고로야, 고마워
오타니 준코 지음, 오타니 에이지 사진, 구혜영 옮김 / 오늘의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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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들이 관광지 유치를 위해 야생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장애를 가진 원숭이들의 출생이 많아졌다. 동일한 시기에 벌어진 두 현상 사이에 어느 쪽이 원인이고 어느 쪽이 결과라 확언할만 증명은 되지 않았지만, 어떠한 영향관계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해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기형 원숭이들이 많아지게 된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적용되었겠지만 그중 태반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 책의 저자인 오타니 에이지는 그 시기(1980년대)에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태어난 원숭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사회적 성향의 사진작가였던 그는 원숭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사지결손형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새끼원숭이 한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다이고로는 늘 마루를 딛고 의자에 올라서서, 테이블 위에 올라 텔레비전을 켰다. 처음에 테이블 위에 올라갔을 때 다이고로의 얼굴은 홍자가 되어 새빨개져 있었다. 나는 이러한 다이고로를 보며 감동했다. 가사 상태로 우리 집에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발한 동작이었다. /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다이고로가 우리에게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줬다는 생각을 한다.(가즈요)  - 본문 중 52p

 

 

저자와 저자의 가족은 다이고로에게 노력하는 것의 중요함과 대단함을 배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이고로의 이야기를 보며 느낀건 다이고로의 부지런한 움직임과 삶에 대한 노력이 아니라, 그 삶 자체에 대한 고마움과 감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남은 생이 며칠이 안될 것으로 예상된 가여운 원숭이를 에이지는 아이들과 함께 돌보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튼튼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다이고로라는 이름을 받은 그 원숭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름대로 강하게 더 긴 생을 살아냈다. 팔다리 없이 그저 먹을 것을 먹고 살아가는 것 자체로 가족들에게 감동을 준 다이고로는 세자매의 막내동생이 되었다. 개구쟁이 막내아들 노릇을 독특히 하는 다이고로의 천진난만함과 욕심쟁이 기질과 도전적인 시도들이 사랑스럽고 감탄스럽다.

 

새삼 '다름'과 '같음'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된다. 다이고로는 사람들 틈에 자라면서 자신을 원숭이가 아닌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저자가 쓴 부분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종족의 차이(몸의 크기, 털, 얼굴 등의 생김새)를 넘어 팔, 다리가 없는 신체적 기형까지 다이고로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참 많다. 어쩌면 그리 분류하고 구분해놓은 지식적인 면을 이미 알고 있어 습관적으로 다르다-고 인식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이고로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어떨까? 다이고로는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작았던 아이들이 점차 커지고 못하던 일들을 하나 둘 해내기 시작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이고로는 자신도 언젠가 그들만큼 커지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해낼수 있을 날을 꿈꾸지 않았을까? 자신은 아직 자라는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 자신은 작고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도 괜찮다고,살다보면 언젠가는 더 자라날 거라고 더 잘 할수 있을 거라고, 늠름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이고로는 짧은 생이지만 실제로 여러가지 도전과 성공을 해냈다. 2-3일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던 원숭이는 튼튼하게 숨을 쉬었고, 밥을 먹었고, 옆으로 구르고, 중심을 잡아 똑바로 서기도 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보낸 가족들에게는 특히나 다이고로의 그런 행적들이 얼마나 기쁘고 기적 같았을까. 아이들은 그런 다이고로를 보며 기형을 갖거나 아픈 존재들에 대한 여러가지를 배우게 된다. 양보하고 다정하게 돌봐주는 마음,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태도, 하나의 성공에 기쁨을 공유하는 방법, 다른 모습을 다르게 보지 않는 시선. 다이고로와 함께 지내고, 외출하고, 여행하며 살아간 아이들은 가족 외부에서 다이고로를 바라보는 낯선 시선들 또한 알게된다.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 때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 해변에서 다이고로와 노는데 우리 곁을 지나가던 한 여자가 자기 딸에게 "더러우니까 가까이 가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 나는 너무나도 슬펐다. 세상에는 왜 이런 사람이 있는 걸까,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놀고 있는 다이고로가 가여워서 나도 모르게 껴안아주었다.(가즈요) - 본문 중 31p

 

 

책의 글은 오타니 가족들이 번갈아 짧막하게 이어간다. 부부 말고도 당시엔 어린 아이들이었던 세 딸들의 글도 있어 아이들의 솔직한 시선을 알수 있다. 위에 발췌한 글은 둘째딸 가즈요의 글이다. 장황한 설명이나 깊이있는 고찰이 아니어도 너무나도 명확한 상황과 진심어린 감정표현이 와닿는다. 다이고로는 단순히 애완용 원숭이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가족이었고 막내아들, 막내동생이었다. 다이고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위의 글을 읽어보라. 장애를 가진 동생과 재미나게 놀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내 동생을 더럽다고 한다면? 나라면 억울함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 같다. 그런 시선을 받고 살아갈 내 동생이 너무나도 가여울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말과 잘못된 배움을 알려주는 여자가 밉고 그 여자의 아이도 가여울 것 같다. 기형,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이겨내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사람들은 거기에 편견과 차가운 시선을 얹는다.

 

 

다이고로는 그 존재 자체로 그 생 자체로 여러 사람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고마운 존재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서평을 찾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태에 놓여있든간에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이고로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기적같은 순간을 맞이할지 모른다. 다이고로처럼 고마운 존재를 직접 눈 앞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나 자체가 그런 고마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이 얇은 책은 몇번이고 반복해 읽을 수 있고, 읽을 때마다 내게 다른 것을 가르쳐준다. 매번 생각을 깊게 만들어준다. 제목처럼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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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속 추억을 쓰다 - 어릴 적 나와 다시 만나는 고전 명작 필사 책 인디고 메모리 라이팅 북 1
김재연 지음,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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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혁의 일러스트를 워낙 좋아해서 글을 덧대어 쓰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책일까봐 걱정아닌 걱정을 했다. 역시나 그림은 책 속에서 보았던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예상대로 아름다웠고, 책과는 달리 몇마디의 말이나 몇줄의 문장들만이 그림과 어우러져 상당한 배경을 남겨놓았다. 필사책이지만 약간 캘리그라피 느낌도 나는 것이 선명하게 자리한 하나의 문장을 여러번 옅은 색으로 반복해 놓은 페이지들이 보였고 필사 노트라 부를만한 고지식한 스타일의 구성을 갖지 않았다. 또 이 책의 엮은이인 김재연은 스스로 손글씨쓰는 라디오작가라고 칭할만큼 예쁜 손글씨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앤과 주디, 그리고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가 하거나 들었던 좋은 말과 문장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각 작품의 캐릭터들이 개성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이라 그 몇마디 문장들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다. 나처럼 이미 그 작품들을 읽어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 익숙함에 한번 더 반가움을 느끼고, 책의 제목처럼 지난 추억을 다시금 손으로 써보는 특별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단순히 일러스트가 삽입된 책이라기 보다, 필사할 내용과 필사할 수 있는 공간 전체가 일러스트로 꾸며져 있다고 보면 된다. 편지지나 원고지, 악보 등의 특정형식을 가져온 경우도 있고 전체공간이 하나의 일러스트로 자연스레 비워진 경우도 있다. 비워진 어떤 부분에도 글씨를 채워넣을 수 있다. 물론 원한다면 일러스트 위에 겹쳐지게 글씨를 쓰는 것도 자기 마음이다. 이전에 사용해본 어떤 필사책보다도 필사공간에서의 다양성이 가장 높았던 책이었다.  

 

 

 

 

필사를 할 때 특별히 글씨가 예쁜 편도 아니고 글씨체를 신경쓰는 편도 아니라서, 글씨 주변을 꾸민다거나 아름다운 필사노트나 필사책을 떠올려본 적은 별로 없는것 같다. 하지만 요즘 필사 책이 하나둘 출간되며 인기를 끌자 더 많은 독자를 끌기위해-더 많은 판매를 위해- 단순한 필사공간과 멋진 문장 외에 추가적인 요소를 하나 둘 끌어들이고 있다.(예를 들어 최근 가장 흔하게는 캘리그라피, 컬러링 등)

 

인디고출판사의 경우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추가했다.(이 일러스트는 이미 인디고의 고전시리즈를 통해 많은 인기를 받아온 바 있고, 고전시리즈에 속해있는 몇가지 작품을 모아 만든 것이니 추가적인 요소라고 보기 조금 애매하기도 하지만) 또한 인디고는 아름다운 고전에 이어서 이 책 역시 핸드북사이즈의 양장으로 만들어냈다. 이런 사이즈는 사실 다른 책들에 비해 조금 불리할 수도 있는 차별화전략인데 인디고의 경우 고전시리즈 등의 연속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그 시리즈의 콜렉터들을 주 타겟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내용 뿐아니라 디자인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굉장히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이렇게 필사책이 인기를 얻어 다양한 책이 나오는 것은 좋지만 근본적인 필사 이외의 요소가 점차 추가되는 것에 있어서 과연 좋기만 할지는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필사의 기본적인 역할이나 의미에 있어서는 저마다의 정의가 있을테지만, 책의 내용 복기나 기록, 그리고 기록하면서 즐길 수 있는 손글씨와 그 과정에의 시간 등이 나에게는 필사의 우선적인 이유였다. 필사책은 나의 손글씨가 들어간 나만의 책을 만든다는 의미는 있지만, 사실 기록할 문장에 있어서의 선택권을 잃어버린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다.(어느 정도 테마는 고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고전시리즈의 콜렉터이자 팬으로써, 명작 속 추억을 쓰다라는 이 필사책은 아주 반갑고 욕심나는 책이었다. 필사라는 것의 성격이 사실은 아주 개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이 책의 엮은이가 중간중간 실어넣은 필사에 대한 의견이나 사연, 책 속에 모아놓은 문장에 대한 소개 등에는 그리 시선이 가지 않았다(분량이 적은 탓도 있을테지만). 다만 그녀가 모아놓은 문장을 읽어보고 써보고 내것으로 다시 받아들이는데에 더 집중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필사보다는 필사책이라는 것에 낯선 독자들은 그 소개글을 읽어보며 공감하거나 필사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해보기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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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 - 하 - 왕을 기록하는 여인
박준수 지음, 홍성덕 사진 / 청년정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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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의 리뷰에서 이 책은 크게 왕가의 이야기와 사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고 쓴 바 있다. 하지만 사관의 역할이 곧 왕가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니 만큼 둘의 이야기는 뗄레야 뗄수 없는 사이의 이야기이다. 수양대군이 사관들에 의해 남겨질 자신의 기록을 두려워했다면 그의 아들은 아비의 불안에 더해 더 적극적인 방어를 펼친다. 사관들의 일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양대군의 실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그 내용을 몹시 궁금해하고 사초를 빼와 몰래 보려는 시도까지 서슴치 않는다. 직필을 위해 외부의 압박을 받지 않도록 이름을 쓰지 않은 채 제출하도록 되어있던 가장사초에 기록한이의 이름을 적으라는 명을 내린다. 말직이라해도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고고하게 사관으로서의 직필을 남기던 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크게 흔들리고 세력이 약해지게된다. 상권에 비해 이야기의 진행이 빠르고 숨겨졌던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어차피 역사란,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들이 쓰는 것이네. 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후인들이네. 걱정하지 말게. 후인들은 그리 어리석지 않을 것이네. 그들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할지라도, 후인들은 반드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어 엄중한 평가를 내릴 것이네. (...) 비록 왜곡된 기록일지라도 그것조차 없으면 훗날 무엇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비난할 것인가!  (본문 중 303-4p)

 

진실이 역사에 남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남는 것이 진실이 되는 것이니...(본문 중 312p)


 

 

 

책 띠지의 문구처럼 '역사를 고치려는자, 역사를 지키려는 자'는 늘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런와중에 남겨진 기록들을 우리는 역사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그저 그 기록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뿐 아니라 감계를 받고, 그에 대한 증명과 고증을 거쳐 평가를 내리는 것 역시 후인들의 역할이다. 상하권을 합쳐 이야기하고자 했던 한가지 중심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그 외의 소설적 구성이나 감동, 완성도에 있어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사건의 진행에 있어 뒷이야기가 쉽게 예상되는거야 그렇다치고, 의문의 무리를 추적하는 공신들의 이야기나 짧게나마 나오는 전투신과 무려 주인공인 은후의 이야기(숨겨진 본래 신분이나, 여사가 되기 위해 왕궁에 드나든 이유, 세주와의 로맨스 등)가 너무나도 허술하게 그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권을 그럭저럭 재미나게 봤던터라 기대가 앞섰는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마무리된 로맨스의 결말이 참 아쉬웠던것을 빼면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의 이야기 자체가 흔치 않은 소재이고, 낯선 명칭이나 관사, 곽직 등이야 역사소설에선 매번 마주치는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우리에 익숙한 인물들-수양과 계유정난의 공신들(신숙주, 한명회 등)-의 낯선 면모를 볼수 있었던 것은 새롭다. 강한 악역이 없어서 진행이 평탄했다는 점은 있으나 언제나 인기있는 남장과 로맨스라는 포인트를 섞어 약점을 보완하려 시도한 점이 있지 않나 싶다. 역사소설, 그리고 로맨스 소설을 오랜만에 보아서인지 각 장르가 지닌 묵직함과 간질간질한 재미가 은근히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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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 - 상 - 왕을 기록하는 여인
박준수 지음, 홍성덕 사진 / 청년정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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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록, 즉 왕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관이 존재하고, 사관이 접근할 수 없는 중궁전에서의 기록을 맡기기 위해 여사를 두고자하였으나 글에 능한 여자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로 왕은 그 청을 물리쳤다. 실록에 기록된 이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거절명분을 제거하고 다시 청을 올리기 위해 사관들이 속해있는 예문관에 남장을 한 여인이 들어온다. 비밀리에 사관이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본래의 성(姓)을 제외하고도 온통 비밀스러워 상권이 끝날 때까지도 서은후라는 이름을 쓰는것, 매우 총명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녀에 대해 밝혀진 부분이 너무나도 적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등장인물들 중 뚜렷한 악인이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상권에서는 수양대군의 말년이 배경이 된다. 우리가 아는 수양대군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조카를 없애는 단호하고 잔인하며 야망에 찬 인물이다. 하지만 책 속에 그려진 수양의 모습을 보면 그런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없다. 12년 간의 재위기간을 거쳤고 부스럼병으로 피부가 녹고 체력도 약해져있는데다 지난 자신의 과거를 창피하게 여기고 공신과 사관의 눈치를 살피기까지 한다. 한때 권력의 점정을 쥐고 있던(실제로는 유지되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역사에 남겨질 것과 그에 따른 후대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격변기를 겪고 왕위에 오른 야심만만한 젊은시절의 수양대군이 아니라 말년의 노쇠하여 세자와 후대에 남겨질 기억을 걱정하는 수양대군의 모습은 조금 낯설기까지하다. 격변기에 동참했던 공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약해진 자신들의 임금을 안쓰러이 여기고, 단종에 대해 죄스러움을 느낀다. 정권내에서의 권력다툼이나 시기는 존재하지만 두드러지게 이기적이거나 공격적인 모습 또한 보이지 않는다.

 

 

 

상하로 나뉘어진 책 중에 상은 수양과 정난공신들의 불안, 사라졌던 정난일기를 드러내며 그들을 위협하는 의문의 무리와 수작들이 등장한다. 또 같은 곳에 발을 담그고 있으나 큰 연관성(크게 드러나는 연결고리)은 갖지 못하고, 그저 여사가 되기위해 준비하며 사부로 맺어진 세주와 묘한 인연을 맺고있는 은후의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와 같은 시기에 교묘하게 엇갈리며 진행된다. 커다란 사건이 전개되는 것은 수양의 이야기지만 은후와 세주의 이야기를 그 한가운데로 어떻게 끌어들일지 기대된다. 두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드디어 직접적인 접촉점이 생겨나자 上권이 끝났다. 왕가의 이야기와 사관의 이야기는 下권에서도 그대로 이어질것이라 예상이되는데 임금이 된 세자가 어떤 모습의 왕으로 그려질지, 수양이 계속해서 경계하라했던 사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남장, 로맨스, 재미를 담당(상권에서는 비교적 이런 요소들이 갖출 법한 흔한 에피소드들이 소소하게 채워져 있었다.)하고 있는 사관들의 이야기는 또 어떻게 풀려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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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코트 철학하는 아이 5
짐 아일스워스 글, 바바라 매클린톡 그림, 고양이수염 옮김 / 이마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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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에는 추억과 애정과 의미가 담기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오래된 것은 할아버지의 코트로 만들어진 옷감에서 시작된다. 재봉사인 할아버지가 만든 멋진 코트는 결혼식 이후로 매일같이 사용되었다. 근사한 코드가 마음에 들었던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입고 입어 너덜너덜해진 지경에 이르자 봄가을에 즐겨입을 수 있는 재킷으로 만들었다. 새로 만들어진 재킷 역시 할아버지의 애용을 받으면서 같은 절차를 밟아 재킷이 조끼로, 넥타이로 변한다. 모양을 바뀌었지만 할아버지는 일상에서 뿐 아니라 본인이나 가족의 특별한 날 늘 그 파란 옷감으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이의 결혼식, 손녀가 태어난 날, 손녀의 결혼식 등등 그런 특별한 추억이 쌓여 할아버지의 코트는 단순히 코트, 재킷, 조끼, 넥타이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매번 쓸만한 옷감을 다시금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낸 이유는 그저 단순한 필요나 절약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졌어. 하지만 할아버지의 멋진 코트가 생쥐들의 보금자리가 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남았단다. (본문 중)

 

 

이 책의 화자는 할아버지의 손녀이다. 손녀의 결혼식날 할아버지가 매고 있던 넥타이는 손녀의 아이가 태어날 무렵 또 다시 너덜너덜해졌다. 할아버지는 증손자를 위해 그 낡은 넥타이로 생쥐인형을 만든다. 고양이와 증손자의 애용을 듬뿍 받은 생쥐인형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해지고 찢어지면서 아주 적은 양의 천조각이 되어버린다. 아이와 할아버지가 그 천조각을 포기하고 방으로 향했을 때, 어미생쥐가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 천을 물어간다. 그 파란 옷감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누군가에게 알뜰하게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손녀의 입을 통해 증손자에게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는 할아버지가 낯선 미국땅에 도착할 아주 젊은 시절의 모습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기나긴 기간을 거쳐 배가 나오고 머리가 하얗게 샌 말그대로 할아버지의 모습까지를 전부 보여준다. 인물이 중심인 이야기가 아니라 다이나믹한 상황이나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인물의 표정이나 감정이 강조되어 크게 그려진 장면 역시 없다. 평온하고 일상적이고 대부분은 밝은 모습을 비춰주는 이 책의 그림들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제 몫을 하면서 이야기 전체에 걸쳐 따스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심어준다.

 

 

아주 오래시간 보존 되어온 값비싼 유물이나 물건보다는 주변에서 조금은 낡았지만 내 기억속에 등장하는 손때 묻은 물건에 더 애정이 간다. 전자는 그 나름의 보존이유와 가치가 있겠지만 사람은 역시 자기 중심이라 나와 관련된 물건에 더 애착과 친숙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의 옷감은 자신의 쓸모가 최대한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교훈을 준다. 그저 보관하고 방치하는 것만이 아끼는 방법이 아니라, 그 물건을 필요한 때에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그 물건을 애정하고 아끼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옛날에, 그리 오래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부모님이나 부모님의 부모님 세대처럼 형제가 많았던 시절엔 첫째가 새옷을 입으면 그 옷을 둘째가 물려받고, 그 다음에 셋째가 물려받고 이런 식이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한다. 한 세대 안에서도 그런 되물림이 이어지는데 세대간에는 어떠한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무언가가 있는지, 혹은 부모님이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은 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10년이상 스스로 오래도록 지니고 쓰이고 앞으로도 간직하고픈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자. 그리고 그 물건의 쓰임과 의미와 그에 담긴 나의 추억에 대해 한번쯤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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