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관 - 상 - 왕을 기록하는 여인
박준수 지음, 홍성덕 사진 / 청년정신 / 2015년 11월
평점 :
조선의 기록, 즉 왕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관이 존재하고, 사관이 접근할 수 없는 중궁전에서의 기록을 맡기기 위해 여사를 두고자하였으나 글에 능한 여자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로 왕은 그 청을 물리쳤다. 실록에 기록된 이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거절명분을 제거하고 다시 청을 올리기 위해 사관들이 속해있는 예문관에 남장을 한 여인이 들어온다. 비밀리에 사관이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본래의 성(姓)을 제외하고도 온통 비밀스러워 상권이 끝날 때까지도 서은후라는 이름을 쓰는것, 매우 총명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녀에 대해 밝혀진 부분이 너무나도 적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등장인물들 중 뚜렷한 악인이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상권에서는 수양대군의 말년이 배경이 된다. 우리가 아는 수양대군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조카를 없애는 단호하고 잔인하며 야망에 찬 인물이다. 하지만 책 속에 그려진 수양의 모습을 보면 그런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없다. 12년 간의 재위기간을 거쳤고 부스럼병으로 피부가 녹고 체력도 약해져있는데다 지난 자신의 과거를 창피하게 여기고 공신과 사관의 눈치를 살피기까지 한다. 한때 권력의 점정을 쥐고 있던(실제로는 유지되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역사에 남겨질 것과 그에 따른 후대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격변기를 겪고 왕위에 오른 야심만만한 젊은시절의 수양대군이 아니라 말년의 노쇠하여 세자와 후대에 남겨질 기억을 걱정하는 수양대군의 모습은 조금 낯설기까지하다. 격변기에 동참했던 공신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약해진 자신들의 임금을 안쓰러이 여기고, 단종에 대해 죄스러움을 느낀다. 정권내에서의 권력다툼이나 시기는 존재하지만 두드러지게 이기적이거나 공격적인 모습 또한 보이지 않는다.
상하로 나뉘어진 책 중에 상은 수양과 정난공신들의 불안, 사라졌던 정난일기를 드러내며 그들을 위협하는 의문의 무리와 수작들이 등장한다. 또 같은 곳에 발을 담그고 있으나 큰 연관성(크게 드러나는 연결고리)은 갖지 못하고, 그저 여사가 되기위해 준비하며 사부로 맺어진 세주와 묘한 인연을 맺고있는 은후의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와 같은 시기에 교묘하게 엇갈리며 진행된다. 커다란 사건이 전개되는 것은 수양의 이야기지만 은후와 세주의 이야기를 그 한가운데로 어떻게 끌어들일지 기대된다. 두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드디어 직접적인 접촉점이 생겨나자 上권이 끝났다. 왕가의 이야기와 사관의 이야기는 下권에서도 그대로 이어질것이라 예상이되는데 임금이 된 세자가 어떤 모습의 왕으로 그려질지, 수양이 계속해서 경계하라했던 사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남장, 로맨스, 재미를 담당(상권에서는 비교적 이런 요소들이 갖출 법한 흔한 에피소드들이 소소하게 채워져 있었다.)하고 있는 사관들의 이야기는 또 어떻게 풀려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