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 그림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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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이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복잡 미묘하고 떄로는 이해 불가한 마음의 작용에 가만히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그림책의 넉넉한 품이었다.  ( 중략 )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삶은 여러 순간 낯설고 거대하고 복잡한 얼굴을 드러낸다. 남아서 버틸 날을 초조하게 셈하는 근속연차 20년의 부장님도, 일상의 매순간을 살얼음판으로 만드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도, 밥을 안칠 때마다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솟는 주부도, 늘 남보다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달음박질하는 30대 직장인도, 꿈이라는 막막한 단어앞에서 자책하는 20대도, 하루 종일 오지선다 문제들에 갇혀지내는 고등학생도 어느 날 갑자기 불안과 질문으로 마음이 가득 찰 때가 있다. 그런 불안을 다독여주고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림책 안에 있다면 비단 아이들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 프롤로그 중 7,8p


 

프롤로그에서 밝힌 위와 같은 이유로, 다시 말해 상처 입고 고민 많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딱 맞는 그림책을 추천받아 그림책의 넉넉한 품에 기댈 수 있게끔(그 효과가 있으리란 맹목적인 믿음하에) 책의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림책 처방'이란 페이지를 연재했다. 에디터 C에게 보낸 사연에 답하여 저자는 성심성의껏 답장을 쓰며 함께 고민하고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저자의 답장과 그림책 소개 부분도 물론 흥미롭고 공감하며 읽었지만 본문 전에 등장하는 저자가 받은 사연들 또한 다채롭다. 사연을 보낸 사람 전부가 나이와 신분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드러난 힌트를 보자면 대학생, 임용고시생, 직장인, 프리랜서, 주부 등등 다양한 인간군이 나온다. 천진한 10대나, 60대 이상의 어르신들도 편지를 보내왔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는데 이런 궁금증은 조만간 책날개에 쓰인 저자의 블로그로 들어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아이가 있는 부모도 아니지만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그림책 중에서 보물 같은 책들이 많다는 걸 알고 어느샌가 집 앞 도서관의 아동문헌실로 발걸음을 옮기거나 헌책방에 가서 그림책 코너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이미 방의 책장 한 칸은 다양한 크기의 그림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런 보물 같은 그림책을 추천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 이 책은 충분한 보답을 해주었다. 본문에 소개된 그림책의 표지와 속지 몇 장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글 속에 소개된 그림책의 내용 설명도 상당히 상세한 편이고 사연과 결부 지어 저자가 전하고 싶은 말도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어 읽기 편한 글이었다. 사연들이 가볍지 않은 만큼 저자도 그만큼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표현하려 한 것이 느껴져서 나처럼 가볍게 책을 펼친 사람도 묵묵하게 진지하게 책을 읽어내리게 만들었다.

 

저자의 답장이 사연을 보낸 이의 마음에 꼭 맞는 책을 찾아내 주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고 갖고 싶은 그림책들이 참 많이 늘었다. 중간중간에 포함된 '그림책 작가 이야기'는 한 명의 작가를 집중 조명하면서 이런저런 사연이 없이 읽어도 매력적인 그림책을 다수 추천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독일 작가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용에서 작가에 대한 믿음을 설명한 마지막 부분을 발췌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출판된 아동도서의 90퍼센트는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해 동어 반복한 불필요한 잉여분이다."라고 일갈할 정도로 잘 만든 좋은 책의 기준이 높다. 이런 사유의 깊이와 작가정신을 가진 지닌 사람이 지은 그림책이라니, 열렬히 지지하고 신뢰할 수밖에.     - 본문 중 77p, 그림책 작가 이야기 01  


 
대학생 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학>청소년 문학>그림책으로도 관심의 가지를 뻗어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남들에게도 읽게 하고 싶은데 문장들로 가득한 책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책에 접근할 방법을 찾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내가 책을 읽고 난 후 받은 감동과 여러 가지 감정, 떠오른 생각, 치유 효과, 어느샌가 조금씩 넓혀지는 생각과 지식의 틀. 이런 것들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책의 덕분인데 그것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문치료, 독서치료, 독서지도 등등 관심 있는 분야에 조금씩 귀를 열어가고 있는 정도였는데 이 책의 저자는 전문가나 직업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림책은 읽기 쉽고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 외에도 정말 많은 매력이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의미에서 그림책=아동도서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꼭 맞는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림책이 그 좋은 책이 안될 이유가 없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빨리 그림책의 매력을 알아챈 사람이라 살짝 자부해보면서 이 책을 읽게 될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의 재발견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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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하지만 뾰족한 -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그림 같은 대화
박재규 지음, 수명 그림 / 지콜론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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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규의 '위로의 그림책'을 보고 힘을 얻은 적이 있다. 내 스스로 마음에 닿았던 글도 있지만 함께 그 책을 읽은 어머니가 내용을 되새기고 가족들에게 기운차게 그 이야기를 전달할 때,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하고 나도 함께 힘을 얻었다. 제목처럼 어머니에게 위로를 전해준 그 책이 고마웠다. 그래서 동일 저자의 '담담한 하지만 뾰족한'이란 책이 나왔을 때 이전의 책처럼 가족들과 함께 보며 마음에 드는 내용을 서로 골라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길 바랐다.


질문을 "......"으로 대체했지만 대화이기에 부드러운 존대어에 차분한 흑백 그림이 어우러진 책이다. 164번의 대화의 짤막한 토막들이지만 저마다의 주제를 가지고 진솔한 이야기를 전한다. 책의 제목처럼 담담하지만 가끔은 뾰족하고 단호하게 여러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스스로 되뇌고 마는 생각의 토막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대화의 부분이어서 그런지, 한번 읊고 사라지는 혼잣말이 아니라 작가로서 선배로서 멘티로서 혹은 누군가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전하는 진심 어린 조언 같아서 이 글이 참 따듯했다.

 

어차피 돌들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당신의 가슴속으로 던져지겠지요.
결국 산다는 건 그 돌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고요한 호숫가에 던져진 돌들처럼 그 돌을 받아들이며 살 것인지
아니면 꽝꽝 언 호수의 빙판 위로 던져진 돌들처럼 그 돌을 튕겨내며 살 것인지...

                                                         -본문 중 15p, #001 파장에 대해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난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이 있다면

저는 그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럼 당신의 배에 있는 그 배꼽은 뭔가요?

                                                        -본문 중 84p, #047 연결에 대해



이 많은 대화는 크게 4부로 나누어지는데 각부의 제목을 보면 긍정, 존재(연결), 역경(기회),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각 페이지의 상부 모서리엔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자칫 읽지 않고 지나가기 쉬운)제목들도 쓰여있다. 개인적으로는 본문을 먼저 읽고 각 제목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작가의 에필로그에 쓰인 대로 "......"으로 대체된 질문들이 무언인지 생각해보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각 부의 이름이나 대화에 달린 제목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읽었을 때도 이 책이 주로 하고 싶은 말은 위로나 조언, 자신이 살아가다 보니 알게 된 사소한 이치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읽을 때는 그리 떠올리지 못했는데 이 글이 대화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자, 글의 사근사근한 투와 그 내용들이 더 마음에 와닿고 기억에도 더 많이 남았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체험한 것들, 혹은 그 체험으로부터 얻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며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하고 서로에게 이해받기 마련이니까.

내 경우에는 특히 꿈에 대한 이야기(이상적이거나 현실적인 조언들)가 많이 기억에 남는데 그 분량이 실제적으로 많은지, 아니면 내 지금 상황이나 고민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특히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내용은 현재 자신에게 사색이나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 책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묵직한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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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왕자 1 - 조선의 마지막 왕자
차은라 지음 / 끌레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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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던 이우 왕자의 이야기는 그 시대에도 지금에도 통용될만큼 빼어난 미남자였다는 것, 그 시대의 많은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에 들어가 전쟁 중에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 정도였다. 책을 읽게되면서 더 알게된 건 그의 아버지 의친왕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의 망명을 시도했었다는 것과 이우왕자가 그 당시의 왕족 중 유일하게 조선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문득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면서 그녀를 절절한 독립투사로 둔갑시켰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의 실제 삶과 그 마음 속은 어떠했는지 지금와서 명명백백 밝히기는 불가능하지만 실제로 기록된 그녀의 삶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이나 저항적인 면모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이우 왕자의 흔적은 제법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내선일체를 들먹이며 남아있는 왕공족을 일본 황족 혹은 귀족들과 결혼시키던 그 시기에 조선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쯤은 알겠다. 이 단서 하나만으로도 그의 외모와 더불어 세기의 연애담을 만들어 내거나, 일본에 저항하여 왕족의 혈통과 자존감을 지켜내려 한 투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주인공 감인 이우 왕자의 이야기가 지금껏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였다. 

 

 

 

총 2권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이우왕자의 실제 사진을 표지로 하고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실제 인물과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만큼 초반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더해진 것인지 의심하며 읽어나갔다. 최근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는 참이라 여러 역사적 사건이나 단서들을 조합하며 읽는 게 제법 재미있었다. 하지만 고증을 위한 책읽기가 아닌만큼 나중에 가서는 그저 인물에 집중하여 이우왕자의 신념과 행보, 일제에 의한 시련에 굴복하거나 극복해가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빠져 읽어갈 수 있었다.(사실 문체나 몇몇 에피소드의 디테일은 조금 어색하다고 할까, 읽기 불편한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매끄럽고 내내 좋기만 한 빼어난 소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물이 가진 스토리와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자체가 꽤 풍부한 편이라 구성은 지루하지 않아 끝까지 읽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1권에서는 이우 왕자가 성년식을 하기 전후의 시기-주로 이전의 이야기, 그의 성년식이야기를 마지막으로 1권이 끝이난다-로, 그의 졸업 이후 일본에 의해 정해진 앞길-어느 부대의 장교로 임명되고, 일본 여성과의 결혼을 추진하는 등-에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기 위한 준비과정 등이 주요 이야기로 나온다. 의친왕의 망명을 도우려했던 독립운동가의 딸로서 이야기의 주요인물인 정희와의 만남과 이우 왕자에겐 고모인 덕혜옹주의 결혼이야기, 친일파 박영효 일가와 그의 손녀딸 박찬주의 이야기 등 그 시대의 인물들과 얽힌 이우왕자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진행된다. 젊은 청년시절의 이야기가 주를 이뤄 고집있고 담대한 성격의 그가 군사학교나 일제의 감시하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장면들이 은근히 통쾌하고 멋지게 그려져있다. 

 

2권에서는 성년이 된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우왕자를 비롯한 그의 동생 진원과 그 외 주변 인물들의 결혼이야기, 상해로 떠나 임시정부에무사히 합류한 정희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역사의 이야기는 이미 끝이 공개되어 있는지라 두 사람의 씁쓸한 결말은 어쩔 수 없었다. 해방 전후를 살아간 인물 중에 일본군의 장교로서 일본과 조선의 현 정황을 실제에 가깝게 파악하고 일본의 항복 직전 상황을 바라본 시점은 흔치 않은 것이라 신선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기대 이우 왕자의 기적적인 생환을 끈질기게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충격적인 밀담이 하나 더 더해진 결말은 믿기 싫지만 왠지 있을 법해서 제법 충격을 받았다.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이 되고, 일제강점기의 암흑같은 역사가 진행될 때 여전히 남아있는 왕족의 핏줄들이 있었다.  일본에게 끊임없이 견제받고 이용당하는 와중에 더이상 왕족으로의 존경과 권위를 누리지 못하고 민중들의 기대와 관심 또한 점차 옅어져갔지만 그들도 그 시대를 함께 겪어나가고 있었다. 고종과 순종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여러 왕족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오랜시간 지켜왔던 왕조의 마지막을 제대로 지켜보고,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역사를 그들 또한 그들만의 고초를 이겨내며 지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 시기를 겪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픈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비참하고 슬프기 짝이없다. 이미 책과 영화로 많은 인기를 얻은 덕혜옹주의 이야기처럼 '이우왕자'의 이야기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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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색연필 스케치 - 깊이와 감동이 있는 순수 컬러링의 재미 5분 스케치 시리즈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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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컬러링북이라고 하는 색칠놀이 책이 유행하기 이전부터 나는 낙서와 매우 친숙한 사람이었다. 정규 교과 과정 외에는 미술을 따로 배워본 적 없지만 책상과 노트, 교과서, 휴지 등등 여러가지 면에 선을 그리고 색칠해가며 노는 건 취미라 하기도 뭐한 그냥 생활이었다. 그래서 컬러링, 선긋기, 모자이크, 스크래치 등등 다양한 취미 분야에 등장한 책들에 시선이 가는건 당연했다. 근데 막상 책을 붙잡고 해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쉽게 따라하라고 밑그림을 그려주고 온갖 흥미를 끌만한 소재를 합쳐 다양한 책이 나왔지만 내 생각만큼 결과가 만족스럽지도 하는 과정이 쉽다고 느낀 적도 드물었다.


보통의 컬러링북은 자유롭게 색칠하도록 되어있지만 모자이크처럼 세세하게 쪼개진 조각들로 그려놓은 그림인 경우가 많다. 이에 컬러링을 처음 접하는 초심자들은 자연스레 여러가지 색을 사용하고자 하게 되고 어설프게 구성을 잡아 혼심의 힘을 다한 색칠을 끝내고 나면 뿌듯한 마음은 들지만 생각보다 하나의 그림을 끝내는데 많은 시간이 들어간 걸 알게 된다. 분명 취미책인데 많게는 몇시간씩 들여  몰입하고 있다보면 이게 취미생활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빠 죽겠는데 취미생활은 하고 싶고 근데 이게 붙잡고 하다보면 시간을 너무 많이 쓰게되고 하지만 색연필을 잡고 선긋는 소리를 들으며 색칠하는 건 또 재밌고... 이  미묘한 딜레마에 빠져 집에 있는 컬러링북을 쉽게 잡지 못하고 있던 차에 새로운 책이 나오니 또 나도 모르게 눈이갔다. <5분 색연필 스케치> 이 책은 그렇게 발견했다. 이 책도 잡고나면 시간이야 흐르겠지만 사이즈도 작고 책 자체가 5분이면 된다 주장하고 있으니 속는 셈치고 해보고 싶었다. 바빠도 취미 등의 딴짓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클 때, 이 책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혹한 마음이었달까. 

 

 

 

 (초보자는 늘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숙련자는 '어떻게' 그릴지 고민합니다.

  이 책은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알려주는 꿀팁워크북입니다.-본문 ) 

 

책의 사이즈는 여자 손 손바닥만하고 한번에 한페이지만 하고 끊는다면 충분히 5분내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하지만 이어서 자꾸만 하고 싶어진다는게 함정...) 초반엔 여느 컬러링북들과는 달리 색연필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친절히 설명한다. 손목을 고정하고 직선을 쓱쓱 반복하며 그려나가는 페더링부터 작은 그림 1~4개 정도의 예시와 연습용 그림을 제시하며 컬러링의 기초와 방법을 훈련시켜준다. 페더링, 윤곽선 그리기, 그라데이션, 스트로크 등등 조금은 낯선 용어들이 나오지만 막상 설명과 예시를 보며 따라해보면 그다지 어려운 건 없다. 뒤로 갈수록 디테일하고 다양한 그림이 주어져서 스케치와 컬러링 모두를 연습하게끔 만들어준다. 왼쪽 페이지 위에는 늘 날짜를 기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날을 정해놓고 꾸준히 한다면 간단한 수업을 듣는 기분도 낼수 있을 것 같다.

 

 

 

 

완성된 예시와 밑그림만 그려져 있어 그 위에 덧그리며 스케치를 연습하게끔 하는 두 페이지의 반복은 스케치실력의 향상은 장담못하지만 확실히 스케치 자체를 좀 더 편하게 느끼고 시도할수 있도록 돕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색연필 스케치를 돕게끔 구성된 책이지만 연필을 들고 슥슥 밑그림을 디테일하게 완성해가며 연습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중간중간 건너뛰고 맘에 드는것만 손을 대고 싶은 욕심도 들지만 차례차례 시간을 들여가며 이 책을 완성하는 게 더 보람있을 것 같아 난 시간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매번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 큰 시간이 아닌 작은 시간을 꾸준히 투자하는 방법으로. 컬러링 붐을 통해 이제 웬만한 집에 색연필 하나씩은 다 구비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왕 있는거 제대로 써먹는 방법을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간단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스케치& 컬러링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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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치하야 아카네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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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손자국, 반지, 화상, 비늘, 음악. 맨 처음 간결하게 제목만이 쓰여진 목차를 보다 이 책에는 표제작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편소설집에 수록되는 한편의 제목을 소설집의 이름으로 붙이는 것이 흔한편이어서 나도모르게 목록에서 흔적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보통 단편집에서 모든 단편이 마음에 들기란 힘들기에 표제작에 우선적으로 기대를 걸고 책을 읽어나가는 버릇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되었다. 아무튼 그런 내 평소의 기대를 공평하게 나눠버렸기에 각 작품들이 꽤 궁금했다. 연애문학상을 받았다고 할 정도이니 하나하나 진한 연애이야기가 실려있겠지, 연약하게 사랑하고 꿋꿋하게 상처받으면서 얼마나 휘둘리고 있으려나 책을 펴기 전부터 꽤나 두근두근 했다.

 

 

 

우선 각 단편의 인물들이 무관한듯 연결된 구조가 좋았다. 스쳐간 혹은 주인공의 주변인물에 불과하던 인물이 다른 단편에서 주인공으로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 색다르다. 각 작품들 사이에 긴밀하게 연결된 그 퍼즐을 머리속으로 끼워 맞춰 시간대나 장면들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려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런 연출은 에쿠니의 가오리의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해도>라는 책에서도 볼 수 있는 구성이다. 그외에도 가끔 동일작가의 단편소설에서 발견되지만 사실 소설보다는 단편만화집에서 더 흔하게 보여지는 구성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일본 만화작가 야마시타 토모코의 단편집을 보았는데 그 책도 마침 같은 형식이었다. 거기다 문체나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소설을 읽는데도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왠지 내 머리속에서 야마시타 토모코의 그림체는 치하야 아카네의 글에 마치 삽화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특히 마지막 단편 음악은 가장 싱크로율이 높았다.)

 

 

 

손자국과 반지, 화상과 비늘의 화자들이 한집에서 살고있는 두 인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손자국과 반지의 인물들이 가정을 꾸리고 첫아이를 낳은 젊은 부부라면, 화상과 비늘의 인물들은 오랜 인연을 이어왔지만 아직 연애를 시작하지도 않은 어린 대학생들이다. 한 커플의 남녀 시선을 비교하는 것도, 두 커플끼리의 소통방식이나 내면을 비교하여 보는 것도 가능해서 읽고 난 후에도 한 단편을 거기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단편들과 이어지게 생각하고 되새기게끔 만드는 면이 있었다. 각각의 단편을 평하기엔 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도가 좋았고, 등장인물들의 매력도도 높았던 것 같다. 각자가 평범하지 않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든 부딪히고 뱉어내고 풀어내려는 그 시도들이 사랑스럽다. 연애, 혹은 사랑에 대해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전하고자 하는 말은 뻔하지만 결국 이게 아닐까. 본문의 내용을 추록하여 마무리한다.

 


 

"있잖아, 지카게 씨. 아마도 이 세상은 불안정하고, 뭐든 간단히 망가져버려. 변하지 않는 것 따위 없고, 뭔가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게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음악」본문 중 213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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