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습니다 I LOVE 그림책
제프 뉴먼 지음, 래리 데이 그림 / 보물창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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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 오는 날 집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던 아이가 비를 맞고 거리를 헤매는 강아지를 발견하곤 집으로 데리고 온다.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점은 주인공 역시 키우던 개를 잃어버려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기견 하면 보통 버려진 개들을 떠올렸는데, 생각해보니 부주의 혹은 우연한 사고로 주인과 떨어져 길을 헤매고 있는 개들 역시 유기견이었다. 비 오는 날 쫄딱 젖은 개를 보고 어쩌면 자신이 키우던 개 '도담이' 역시 어디선가 비를 맞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아이는 작은 강아지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글 없는 그림책이 좋다. 전 세계의 아이들이 그림이라는 공통된 언어로 별다른 번역을 거치지 않은 똑같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고(물론 제목과 배경에 등장하는 글자들이 번역되긴 하지만), 그림만으로 스토리를 끌어가고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점도, 등장인물의 말이나 생각을 상상하는데 글이 있는 그림책보다 한층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림책인 만큼 사이즈도 큼직해서 그림의 세세한 부분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사실 그림책만큼 책 속의 삽화에 집중하게 되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책의 경우 강아지를 찾는 전단지 속 글과 아이가 아직 가지고 있던 강아지 용품(밥그릇 등)에 새겨진 '도담이'라는 강아지의 이름, 그리고 애완동물 용품점과 유기견 센터 등의 건물 간판 등이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가게나 센터의 간판은 그렇다 치고 도담이나 초롱이 등의 강아지 이름이 원작에선 어떤 이름일지 괜히 궁금했다. 아이의 머리색이 검은색이고 배경이 생략된 그림도 제법 있기에 생활환경 자체가 아주 외국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니라 위화감은 없었지만, 강아지 이름에 외국 이름을 붙이는 것도 흔한 일이라 아주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면 원작 그대로의 이름을 살리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구성에서 몇 가지 특이점이 있는데 하드커버를 열면 바로 보이는 속지부터 본문이 시작되고 마찬가지로 뒤표지의 속지로 이야기가 끝난다는 점과, 보통의 책에는 시작이나 마지막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판권기(그 책의 서지사항을 기록해둔 페이지)가 본문이 시작된 후 몇 페이지 뒤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본문의 시작과 끝점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느낌을 주지만 본격적인 본문이 시작되어도 글이 없는 건 마찬가지기에 이어지는 느낌이 자연스러웠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장은 주인공 소녀의 또 다른 만남과 시작을 시사해 주기에 희망적인 인상을 남겨주었다. 판권기가 들어간 페이지 역시 자연스레 주어진 그림의 빈 공간을 이용한 느낌이었는데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본문의 구성을 독특하지만 자연스럽게 잘 이용한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이 책의 특징은 강아지와 주인공 소녀만을 주목하고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어린아이가 혼자 살고 있을 리 없고,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함께 전단지를 만들고 아이를 도닥여주었으며 유기견 초롱이를 집으로 데려온 날도 조용히 타이르거나 안쓰러운 시선으로 함께 밥을 챙겨주었을 가족들이 있었으리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집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소녀와 강아지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아이와 강아지의 만남, 시간이 흐르며 쌓이는 애정, 헤어짐을 겪는 주인공에게 온전히 집중하게 되고 쉽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자신이 데려온 강아지 초롱이를 찾는 전단지를 발견한 소녀의 놀라움, 주인에게 강아지를 데려다주는 날 문을 두드리기 전 망설임, 본래 주인을 보고 신난 강아지를 보며 느끼는 섭섭함을 그리 복잡하지 않은 그림만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부분적으로 채색된 그림은 아주 세밀하지도 너무 단순화되지도 않았지만 섬세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읽는다면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 어떤 존재를 만나고 헤어지는 이유와 그 감정들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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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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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조 모예스의 소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알게 해준 책. 68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에 이걸 언제 다 읽나 살짝 걱정은 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히려 그 긴 이야기 내내 얼마나 많은 감정을 소모할지를 걱정하는 게 옳았다. 너태샤와 맥이 여러 가지 일로 부딪히거나, 할아버지가 쓰러진 후 사라의 처지가 나빠질 때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넘어서면 그보다 더한 위기가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인물들 간의 갈등이 조율되고 희망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장면 역시 '이대로만 행복해지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그다음에는 더한 기쁨과 더 커다란 희망이 등장하곤 하니 행복과 위기 사이의 한도가 어디까지 일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강도가 점점 커지는 위기와 행복이 번갈아 오거나 동시에 진행되곤 해서 그 낙차에 휘둘리는 게 정말 즐겁기도 했지만 다 읽고 난 후의 피로감이 의의로 상당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껏 휘둘릴 작정으로 단번에 읽어버리길 추천하겠다.    

소녀와 말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 책은 부모와 아이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매컬리 부부의 사이가 소원해진 이유 중 너태샤의 반복된 유산이 언급되고, 너태샤의 새로운 연인 코너와의 관계에서도 코너의 두 아이가 등장하며 "너태샤, 당신은 아직 자식이라는 존재를 잘 몰라" 라는 코너의 대사가 나오고,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변호하는 너태샤의 업무, 아이들에게 휘둘리는 너태샤의 언니 이야기, 사라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너태샤와 맥의 다양한 시도,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찾아온 선물 같은 아이 등등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이야기되는 경우는 몇 번 없지만, 이야기 전반에 걸쳐 성장 도중의 아이들의 미숙함과 그 미숙함을 감당하고 보살펴줘야 할 어른들의 의무, 그 피로감과 특별함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말과 아이들이 겹쳐 보일 때가 꽤 있었다. 기본적으로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그랬고, 말에 대한 여러 가지 묘사와 말을 돌보거나 훈련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들(예를 들어 앙리 할아버지가 사라에게 가르쳐주는 표현이나, 각 장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 작은 글씨로 쓰인 크세노폰의 『기마술』의 내용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필요하고 주의해야 할 점들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동물에 비해 말들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천성적으로 커피나 걱정이 많고 성질도 까다로운 단점이 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따라 정직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또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본문 중 55p)

최대한 많은 장면과 소음에 노출시켜 친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말이 그런 광경과 소리에 겁먹을 때마다 화를 내거나 자극하지 말고 잘 달래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크세노폰 <기마술> 

(본문 중 259p)

"루시 같은 아이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말을 해줄 정도로 우리를 신뢰하지 않아요. 선생님이나 부모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하면 화를 낼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컬리 변호사님, 아이들은 대개 아무도 자기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얘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 중 471p)


부모와 아이의 관계, 사람과 말의 관계, 혹은 그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신뢰관계를 쌓는 과정은 비슷하다. 서로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며 온전히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믿고 자신의 문제나 비밀을 전부 털어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에선 아이들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리란 착각에 빠지거나, 타인에게 말했을 때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거란 불신감에 의지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아이들만이 가진 모습일까. 많은 어른들 역시 자신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 들고 타인에게 쉽사리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다만 조금 더 살아온 만큼의 경험과 지식과 경제력이 쌓여서 아이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정한 어른들은 그 약간의 차이로 아이들을 도우려 한다. 책을 읽고 나서 문득 나는 자라면서 가족 혹은 누군가에게 나의 문제를 온전히 털어놓고  믿고 기댄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제법 나이를 먹은 지금 내게 모든 문제를 말해주며 온전히 자신을 기대어온 사람이 있었는가도.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이 "있었다"라면 있었다면 그 누군가는 아마도 가족이었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사라가 너태샤와 맥에게 쉽사리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무모한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 안타까웠고, 할아버지의 병실을 사라와 부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준 맥의 상냥함이 좋았으며, 말투가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모습도 나다움이란 걸 깨닫고 사라에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도움을 받으라 말을 건네는 너태샤의 당당함이 멋졌고,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들을 겪은 후에야 너태샤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는 사라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이 책은 말과 기수가 한 몸이 되어 완벽하고 멋진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말을 훈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족이나 사람 간 관계에 있어서 서로에게 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

"크로노폰은 더 나은 것을 추구할 뿐이야. 그가 요구하는 것은 최고의 보살핌과 존중, 일관성, 공정함, 다정함 같은 것들이지. 사랑해 주기만 하면 말들이 더 행복할까? 그렇진 않아."

(본문 중 547p)

"저도 늘 더 나은 동작을 하기 위해 애쓰는 거예요. 말과 나의 완벽한 소통이나 교감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요. 고삐를 잡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압력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말의 기분이나 제 몸의 상태, 땅바닥의 조건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기술적인 문제가 전부가 아니거든요. 말과 나, 두 마음과 두 심장이...... 균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해요."

(본문 중 2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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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툰 위로가 너에게 닿기를
선미화 지음 / 시그마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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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한결같은 말투를 유지하며 친근하게 짤막한 이야기를 건네고, 포근한 그림으로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책.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개 그렇듯 그냥 편안하게 읽기에 무난하고 힘들 때 읽으면 마음에 와닿는 글 한둘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책이었다. 사실 힐링 에세이류의 책을 그리 많이 보지 않는데 이 책은 표지의 그림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하나의 글에 하나의 그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수의 그림들이 들어있는데 동화책 속 삽화처럼 약간은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들, 수채화 느낌이 물씬 나는 풍경 그림들, 어딘가 문구류나 장식품 등에 그려있을법한 일러스트들처럼 각각의 그림들이 비슷한 듯 다양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그림에 대한 인상은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꽤 깊게 남았다. 꽃과 동물들도 주요 소재로 그려져 있는데 동식물 특유의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는 빽빽하지 않은 글의 배치와도 제법 잘 어울렸다.

반면 글이 주는 인상은 그리 진하지 않다는 게 사실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여행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빼면 구체적인 경험이나 특별한 서사를 담은 이야기는 없기에 소설이나 하나의 주제를 쫓는 기타 장르의 글처럼 흠뻑 빠져서 읽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저 힘을 빼고 하나 둘 읽다 보면 하나같이 틀린 말은 없어서 '그렇지, 나도 이런 생각한 적 있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본문은 내내 반말로 진행되는데 담담하게 조금은 딱딱하게 생각을 풀어놓기보다는, 보다 친숙하게 또래의 사람에게 말을 거는 느낌으로 적어보고자 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사실 나에게는 조금 낯설었고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삶이나 사랑의 의미를 일상의 한 부분에서 연결 지어 쓴 글들은 누구나가 하는 생각과 비슷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생각들을 말로 내뱉거나 글로 써보는 일은 드물기에 문어체로 쓰인 이 글이 더 낯설고 어색한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본문의 글에서 한두 줄을 떼어와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페이지가 좋았다. 막상 글 전체를 읽어보면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한 줄과 같을 때도 다를 때도 있었지만, 그 페이지만 똑 떼어다 엽서처럼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수채화 느낌의 그림들이 특히 취향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비중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다. 도서관에 간다면 저자의 책들을 들춰보고 그림들을 훑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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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드로잉 드로잉 퇴근 후 시리즈 4
백영욱 지음 / 리얼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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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보다는 연필이나 볼펜, 수채화보다는 찍찍 그려버린 낙서가 더 친숙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나에게 친숙한 낙서를 수채화 느낌의 그림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비법을 알려줄 것 같아 많이 혹했던 책이다. 바로 앞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사실을 말하자면 이 책은 그런 신묘한 비법서라기보단, 친숙한 볼펜들 중에서도 '플러스펜'으로 제법 세세한 밑그림을 그리고 워터 브러시(쉽게 설명하자면 잉크 대신 물이 나오는 붓 펜)로 그 잉크를 번지고 퍼트리는 방법으로 채색해 수채화 느낌을 더해주는 일종의 일러스트 방법을 알려주고, 따라 하기 쉽도록 다양한 레벨의 견본을 보여주는 책이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평소 수채화에 많이 끌렸지만 붓과 팔레트 등등 장비 구입과 그림 작업을 할 넉넉한 장소가 없어 막막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많이 반가울 것 같다.

책의 내용 순서는 보통의 그림 배우기 취미 책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 그리기 방법의 특징과 도구 설명부터 시작해 그림의 기본이 되는 다양한 선 긋기, 채색하기 등으로 이어진다. 물감을 더해 채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려진 잉크의 색을 이용해 채색을 하기에 그 부분이 독특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기초 설명부터 실습 예제까지 그림들이 많이 있는데 왠지 한 번쯤 도전하고픈 그림들이랄까 아주 어렵게 다가오지 않아서 초심자의 용맹함으로 그라데이션과 단색으로 그릴 수 있는 그림들을 시도해봤다. 솔직히 집에 다양한 색의 플러스펜 세트가 있거나 워터 브러시가 있진 않았지만, 몇 가지 있는 색으로 선을 긋고 그림을 그려서 붓에 물을 묻혀 나름대로 채색을 흉내 내봤다. 무작정 시도한 보라색 고양이는 물의 양 조절을 실패해 그라데이션이나 털 표현은 1도 없는 단색 고양이가 되었지만ㅋㅋ 그럼에도 플러스펜으로 수채화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점은 확연하게 느껴서 하는 내내 정말 재미있었다. 세세하게 선으로 그은 밑그림은 조금 실수해도 채색 과정에서 덮을 수 있고, 채색을 하고 나면 펜으로 그은 선의 일부분이 흔적처럼 남거나 그라데이션 표현이 되는 점도 신기했다. 책에서 소개한 도구들이 없어도 집에 한두 개는 있을 몇 가지 색 수성 펜과 붓, 그리고 약간의 물만 있으면 취미 삼아 놀이 삼아 얼마든지 따라 해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다. 무작정 따라 해보고 시도해볼 수 있기에 좋았다.





예시로 실린 그림들은 식물, 사물, 풍경, 동물, 인물 등등 다양하고 그 안에서도 난이도에 따라 실려있는 편이라(예를 들어 동물 그리기 안에서는 고양이의 정면 얼굴, 측면 얼굴, 전신 그리기 순으로 실려있다.) 책 한 권을 순차적으로 한 장 한 장 따라 그려보면 취미용 그림 수업을 듣는 것만큼의 효과를 내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맨 뒤쪽 순서인 <실습 예제 따라 하기> 부분을 제외하면 그 앞에 실린 그림들은 전부 그리고 채색하는 과정 컷이 함께 실려있어 펜으로 그린 밑그림의 모습을 제법 세세하게 볼 수 있다. 본문이 끝나면 그 뒤엔 아무것도 그려있지 않고 꽤 도톰한 고급 미술 용지가 덧붙어있어서 그 페이지를 잘라 자신의 미니 실습장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 참고로 리뷰에 첨부한 그림을 그린 종이는 책에 들어있는 용지가 아니다. 책을 받은 날 바로 책을 자르기 아쉬워 캘리용으로 사둔 작은 사이즈의 용지를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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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되자! 내 생각 만드는 사회 그림책
요헨 틸 지음, 라이문트 프라이 그림, 이상희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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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고정관념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다른지를, 짤막한 한 줄의 글과 극적이고 쾌활한 느낌의 그림들로 비교하며 보여주는 책이었다. 페이지 당 한 줄의 짧은 글과 한 장면의 그림이 있다. 글의 내용은 '여자는 이렇고 저렇다'하는 편견들을 담고 있고 그림은 정반대의 모습을 묘사한다. 예를 들어 '여자는 긴 머리를 좋아해요' 라는 글 위에는 짧게 머리를 자르며 만족스레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있고 '얌전하게 행동하죠' 라는 글 위엔 크게 입을 벌리고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뀌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한눈에 글로 쓰인 내용을 그림으로 반박해주는 게 보여서 가볍게 읽기엔 그저 유쾌할 수도 있는 책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할까를 생각해보면, 그저 그림에 웃고 글에 비뚤어진 시선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아쉽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

여자는 00을 좋아한다. 라는 글에 그런 여자도 있지만 아닌 여자도 있는 게 현실이라는 걸 누구나가 알고 있다. 00을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지만 그 사람이 여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00을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린아이들일수록 주변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영향을 받는다. '여자라면 요리/정리정돈/분홍색/긴 머리 등등을 좋아해야지' 하고 주변 어른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진짜로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알 수 있게 깊이 생각해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성향이나 특징이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생긴 것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자답게' 또는 '남자답게' 라는 말에 괜히 주눅 들고 죄책감 느끼고 자신을 가두지 않길 바란다. 시리즈로 '남자가 되자'라는 책이 또 나와야 두 권의 책이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를 해낼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은 '내 생각 만드는 사회 그림책'이라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책 자체에는 사용 연령을 4세 이상으로 표기해두었고, 인터넷서점 사이트들을 보니 주로 초등 저학년 혹은 초등 전 학년을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사회 그림책이라는 시리즈명 때문인지 실제로 독자의 연령대가 아주 낮지는 않겠다는 추측을 해보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보여주기는 조금 망설여진다. 글밥의 양이나 젠더 혹은 성에 대한 편견을 다루는 내용 자체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접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림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글과 반대되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조금 과하거나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그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마음에 걸리는 건 '여자는 겁쟁이예요. 용기가 없죠.' 라는 본문 위에 그려진 그림이다. 책 소개나 다른 분들의 서평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올라오는 이 그림이 나는 자꾸 마음에 걸렸다. 가볍게 보고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아이들이 이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용기가 있고 없고를 조금 더 건전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행동을 아이들이 용기 있다고 해석하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도 되고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 서평을 쓰기 전에 아이가 있는 친구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몇몇 그림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친구는 자신이 다소 보수적일 수도 있다고 덧붙이며 그림에 대한 선정성이나 적절성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딸을 둔 학부모로서 저학년 코너에 이 책이 있으면 학교에 건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최종 평을 내리자면, 주제와 책의 구성이 좋고 어린아이들이 접하기에도 충분한 책이지만 나이에 따라서는 더 깊은 내용을 끌어내거나 적절한 조언 및 해설을 해줄 어른이 꼭 함께 읽었으면 좋겠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어른들이 먼저 읽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변해야 아이들이 더 쉽게 변화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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