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모예스의 소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알게 해준 책. 68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에 이걸 언제 다 읽나 살짝 걱정은 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히려 그 긴 이야기 내내 얼마나 많은 감정을 소모할지를 걱정하는 게 옳았다. 너태샤와 맥이 여러 가지 일로 부딪히거나, 할아버지가 쓰러진 후 사라의 처지가 나빠질 때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넘어서면 그보다 더한 위기가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인물들 간의 갈등이 조율되고 희망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장면 역시 '이대로만 행복해지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그다음에는 더한 기쁨과 더 커다란 희망이 등장하곤 하니 행복과 위기 사이의 한도가 어디까지 일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강도가 점점 커지는 위기와 행복이 번갈아 오거나 동시에 진행되곤 해서 그 낙차에 휘둘리는 게 정말 즐겁기도 했지만 다 읽고 난 후의 피로감이 의의로 상당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껏 휘둘릴 작정으로 단번에 읽어버리길 추천하겠다.
소녀와 말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 책은 부모와 아이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매컬리 부부의 사이가 소원해진 이유 중 너태샤의 반복된 유산이 언급되고, 너태샤의 새로운 연인 코너와의 관계에서도 코너의 두 아이가 등장하며 "너태샤, 당신은 아직 자식이라는 존재를 잘 몰라" 라는 코너의 대사가 나오고,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변호하는 너태샤의 업무, 아이들에게 휘둘리는 너태샤의 언니 이야기, 사라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너태샤와 맥의 다양한 시도,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찾아온 선물 같은 아이 등등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이야기되는 경우는 몇 번 없지만, 이야기 전반에 걸쳐 성장 도중의 아이들의 미숙함과 그 미숙함을 감당하고 보살펴줘야 할 어른들의 의무, 그 피로감과 특별함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말과 아이들이 겹쳐 보일 때가 꽤 있었다. 기본적으로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그랬고, 말에 대한 여러 가지 묘사와 말을 돌보거나 훈련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들(예를 들어 앙리 할아버지가 사라에게 가르쳐주는 표현이나, 각 장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 작은 글씨로 쓰인 크세노폰의 『기마술』의 내용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필요하고 주의해야 할 점들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