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리얼리스트 X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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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패션잡지를 보면 '이 옷 사고싶다'하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 책을 보다보면 '아 이렇게 입고싶다' 하고 감탄하게 되곤 한다. 표지부터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또렷히 마주치는 눈빛, 짙게 칠해진 입술, 꼿꼿하게 세운 옷깃과 정갈하게 넘긴 머리카락까지. 하지만 책을 넘기니 표지만큼이나 자신만만한 얼굴들과 사진이 찍힌든 말든 자신이 표현해낸 스스로의 자존감과 개인적인 미적감각 등이 참으로 눈부셨다. 각 개인의 인생이 어찌되었건 그가 찍은 사진속엔 다양한 인물과 스타일이 등장한다. 교복을 입은 어린 아이부터 대도시의 멋쟁이들, 전통복장이나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나 슈트를 차려입은 노신사들, 과감한 노출을 한 사람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정해놓은 범위나 특정 대상이 없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인 스타일을 장착한채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찍혀있다. 그들 중 진지한 표정이나 뽐내는 얼굴은 있더라도 인상을 쓰고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사진속 인물이 꼬질꼬질한 작업 복을 입고 힘들게 일하던 중이라하더라도 스콧슈만은 그 순간의 그의 모습(외모,스타일,배경,당시의 상황까지 모두 통틀어서)에서 영감을 받고 관심과 호감과 조금의 경배를 포함한 사로잡힌 마음으로 그 사진을 찍었을 테니말이다.

 

 

 

 

 

패션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 안에는 옷뿐 아니라 헤어스타일, 악세서리, 분위기, 눈빛, 그리고 인생 이야기가 담겨있다. 가장 인상적인 사진을 뽑자면 등을 시원하게 보여주고 주황색 치마를 펄럭이며 자전거를 타는 여인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과 '유에'라는 사람의 정면 사진이다. 이 책에는 글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내가 고른 두가지 사진은 그나마 저자의 부연설명이 들어있는 사진들 중 하나이다. 패션사진을 보면 전체의 분위기를 보고, 마음을 끄는 포인트를 발견하고, 다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훝어보며, 그 후에 세세한 부분을 관찰한다. 하지만 보통 앞의 두 과정만을 거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의 사진들은 앞서 설명한 4가지의 과정을 전부 사용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스콧 슈만이 그들의 스타일과 패션을 찍어 상상의 인생을 그려본다고 한 것처럼, 사진마다 그들의 인생을 알려주는 힌트가 곳곳에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도 꽤 많다. 늘씬한 뒷태와 원색의 치마에 눈길을 빼앗기기 쉽지만 잘 살펴보면 그녀의 다리가 의족인것을 알수 있다. 이 사진을 찍기위해 뒤에서 열심히 쫓았다던 슈만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세세하게 사진을 보지 않고 지나갔다면 어쩌면 이 사실을 끝내 알지못하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유에의 사진은 사진만으로도 굉장히 묘하지만 그 옆에 쓰인 글이 그 사진을, 사진 속 인물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이 사진들에 등장하는 옷들은 사진 속 상황과 그 인물의 성격을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진들을 정리할 때 나는 끊임없이 '이 사람의 인생은 어떨까?' 하며 궁금해했다.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은 즐겁고 어떤 것은 슬프지만 그게 인생 아닌가. 심지어 상상한 인생이라도 말이다. - 본문 중 4p

 

 

 

 

 

 

비가 오는(혹은 왔던) 날씨, 까맣고 조금은 각이 진 비닐을 뒤집어쓰고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은 내게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진속 비닐이 바람에 휘날린 우비일지 정말 말그대로 비닐 봉투일지, 어쩌면 비닐같아 보이는 멋진 겉옷일지 알길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비닐봉투 같아보이는 우비를 뒤집어쓰고 로마시내를 돌아다닌 적이있기 때문이다. 트레비분수 앞에서 찍은 사진속에 난 상반신을 파란 봉투안에 담아놓은 채로 당당하고 즐거운 자세와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다. 당시엔 비가 아니라 눈이 왔었다. 그 사진은 지금보아도 웃음이 난다. 이 사진 속 여자는 어쩌다 그 비닐을 뒤집어 쓰고 걷게 되었을까. 나만큼이나 그 옷과 날씨와 상황을 즐기고 있었을까.

 

그가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가 없을 땐 아이폰을 사용한다거나,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을 은밀하게 혹은 대놓고 따라 간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꾸준한 영감을 주는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 사진을 찍는 등 자유롭고 순간적인 작업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재미있었다. 스콧슈만과 우연히 마주치는 상상을 해본다. 그가 한국에 여행을 왔고 나에게 잘 어울리게 차려입은 옷에서 그의 관심이 동할만한 포인트가 있다면 나도모르는 새 사진이 찍히겠지. 그것도 아주 근사한. 만약 내가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면 그가 원하는 사진을 손에 넣을 때까지 조금 더 나를 따라 다니겠지- 즐거운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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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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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살 리코쿠를 화자로 한 첫번째 글부터 30대의 리코쿠를 화자로 한 마지막 글 사이에 야나기시마 일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양한 화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 화자들이 이야기하는 시점 또한 다양하다. 196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을 아우르는 꽤나 긴 시간동안 서양식 대저택을 거점으로, 그 안에서 자라고 저항하고 독립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야나기시마 일가로 편입되거나 태어나거나 혹은 스쳐가게 되는 다양한 인연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그 집안의 이야기는 묘하다. 화목하고 평온해보이지만 평범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사연들이 꽤 많다. 책의 맨 처음에 리코쿠를 중심으로 야나기시마 일가의 가족관계를 아주 간결하게 써 놓은 페이지가 있다. 알아보기 쉬운 가족도가 아니라 굳이 글로 풀어놓은 것은 각각의 혈연관계 및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타고난 성향이나 독특한 환경으로부터의 영향으로 다양한 인격과 성격을 지니게 된다. 리코쿠의 형제들만 보더라도, 우등생스타일에 살가운 성격을 지닌 노조미, 고집센 무뚝뚝이 고이치, 총명한 외톨이 리코쿠와 정원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우즈키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과 영향을 주고 받았을지언정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한 일가를 내세워 가족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보이는 이 책은 실은 가족 구성원 각 개인의 스토리를 묶어놓은 것과 다름없다. 중심이 되는, 가족이 모이는 장소(대저택)는 중요한 영향력과 이야기를 모으는 역할을 하지만, 그에 영향을 받고 그 안밖을 누비며 자라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각각이다. '가족이라 해도 결국은 모두 혼자가 아닌가'라는 작가의 말은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가족안에서의 고독이나 고립이 아닌, 각자 개성과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사람으로서의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거기서 우리 가족만의 유행어랄까, 일종의 암호 같은 것도 생겨났다.

"가엾은 알렉세이에프"

"비참한 니진스키"

라는 것이 그중 하나이며,

"라이스에는 소금을"

도 그중 하나다. 전자는 우리가 어릴적에 누차 들었던 엄마의 선조들 일화에서 비롯된다. (...) 그날밤 우리는 두 남자를 위해 건배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들어온 교훈은 순수하게 슬픔을 표현하기 위한 암호가 되었다. (본문 중112-4p)

 

 

개성이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보니 그에 대한 애정이 가는 것도 막을수 없지만 야나기시마 일가 자체가 가진 환경적인 특징도 눈길을 끈다. 고지식한 할아버지(다케지로)와 러시아인 할머니(기누)의 삼남매(기쿠노,유리,기리노스케), 그리고 기쿠노와 도요히코의 아이들(리코쿠를 포함한 사남매)까지 3대에 걸쳐 모인 이 가족은 그들 나름의 규칙과 비밀, 그리고 버릇(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를 되물림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대학이전의 교육은 학교를 가지 않고 오로지 집에서 이루어진다거나, 야나기시마의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1년간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는 것이나, 서로의 슬픔을 표현하거나 위로하고자 할 때 하는 오로지 가족만이 알고있는 말버릇이라던가(가엾은 알렉세이에프/비참한 니잔스키- 의미는 다르지만 이 책의 표제이기도 한 '라이스에는 소금을'이라는 표현 역시 그들만의 암호이다).

 

 

"엄청 근사한 집이었어요, 그렇죠?"

다카오가 뭔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따뜻한 기분이 들고, 거기에 내 스스로 당황하고 있었다. 미혼인 채 아이를 낳는 데에는 적지 않은 각오가 필요했을 테고, 더구나 본부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환영받았을 리 없다. 하지만 한곳에 모여 손을 흔들고 있던 그들은 행복한 대가족처럼 보였다.

나는 차가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교통안전 부적 주머니를 바라본다. 아내가 보고 싶어졌다. (본문중 416p)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고 1부터 23까지 숫자와 시점으로만 제목이 붙은 이야기들은 한 편마다 화자가 달라져서 이번엔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할까 호기심이 동해 책을 끊어읽기가 참 힘들었다. 교차되는 시간과 시선들 사이에서 많은 인물들의 연결선을 찾아 다시 정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가출, 방황, 불륜, 이혼, 독립, 유학 등등 단어로 나열해놓고 보니 자극적(이라기보단 조금 불편한)이고 쉽지 않은 사건들이 이 이야기에는 정말 많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당사자나 그 가족의 반응은 격하지 않고 조금은 미지근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들도 당황하거나 화를 내기야 하지만 그 상황이나 감정을 풀어내는 그들의 어조는 차분한 감이 있다. 오히려 외부의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할때 그 화자들이 차분하고 당연스레 그 문제를 받아들이는 일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거나 격노한다. 독자는 방관자이면서도 어느새 그 가족에 동화되어 담담하게 그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항상 함께하고 소중히 여기지만 100퍼센트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 가족이 아닐까. 대저택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한 가족은 시간이 흐르면서 확대되고 분리되고 축소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각자가 분리된다 해도 그들이 한 가족이었던 것만은 확연한 사실이기에 그 가족은 자신안에서 하나의 역사로 남게된다. 사람은 떠나가도 그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은 장소는 이 이야기 내내 듬직하고 조금은 쓸쓸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점과 점을 세로로 연결하는 거란다."

노무라씨는 그렇게 말한다. (...) 일은 여기저기에서 한꺼번에 일어난다. 점과 점을 세로로 연결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의미인 듯하다. / 그리고 세로로 이어진 점과 점은 물론 가로로도 흘러간다. 엄청난 기세로, 절대적으로. 어느 누구도 멈추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도 역사의 일부란다." (본문 중 53-4p)

 

 

묘한 일이지만 이 방에 있다 보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가 있다. 정원을 뛰어오는, 운동화를 신은 어린 우즈키의 발소리며 진즉에 돌아가신 아라키 씨가 미는 손수레의 덜그럭거리는 소리, 중국 방에서 어른들이 마작 패를 휘젓는 소리, 누군가의 당구공을 때리는 소리. 여름 오후에 창문을 열어둘 때면 벌의 날갯짓 소리며 나무를 다듬는 가위질 소리에 섞여 들리는 할아버지의 해먹이 삐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테라스에서 일광욕 중인 외삼촌의 포터블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킹크스며 스몰 페이시스의 노래가 머리 위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처럼 내 귀에 띄엄띄엄 와 닿는다. 그것들은 내가 아니라 이 집의 기억이리라. 왜냐면 내가 알리 없는 소리-개들의 짖는 소리, 정원에서 열린 듯한 파티의 떠들썩함, 어린 노조미 언니와 치하루 언니가 나누는 비밀 이야기며 키득키득 웃는 소리-까지 가끔 방에 가득 차기 때문이다. (본문 중 579-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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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의 끝에서 - 제2회 나미콩쿠르 대상 수상작
마르셀로 피멘틀 지음 / 나미북스(여성신문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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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아도 무방하지만 알고보면 조금 더 재미있다. 브라질의 토착예술과 동물들에게 색을 입혀주는 숲의 요정 쿠루피라의 존재에서 착안한 이 이야기은 글이 없이 오직 그림으로만 이루어져있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다. 이야기는 책을 펼치기 전부터 시작된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이를 눈치채기 위해서는 책속의 그림들과 동물들을 속속들이 관찰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드커버의 겉을 싸고있는 종이표지 안쪽에는 아이들이게 이 책을 읽어줄 어른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있다. 몇가지 사전지식과 책을 읽어줄 때 혹은 읽도록 도와줄 때 필요한 조언과 응원이 담겨있다.


 

 

 

이 책은 글이 없어서 그림의 사소한 부분을 포착해낼 수 있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설렁설렁 보고 넘길 수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볼수록 이야기를 꾸며낼 요소들이 많아지고 스스로 덧붙이는 이야기가 풍성해질수록 이 책이 더 좋아진다. 이 책의 그림은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를 담지만 이야기를 확장할 거리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동물들에게 칠해주는 색이 빨강과 흰색인데 그 색의 의미가 무엇일지? 땅에도 무늬가 그려져있는데 비가오자 함께 색이 녹아버리는 것을 눈치챘는지? 만약 그렇다면 줄을 서지 못하는 땅은 언제쯤 다시 색이 책해질수 있는 걸까? 등등.

 

읽으면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동시에 동물이나 배경을 소소하게 묘사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이에게 말로 상황이나 그림을 묘사해보라고 한다면 표현력 향상에도 좋을 것 같다. 검은색과 흰색과 책의 바탕색 이렇게 단 세가지로 색의 종류가 한정되어 그림이 더 단순하고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점은 브라질의 토착 예술과 문화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페인 아이의 관점으로 잠시 상상해보자면, 우리나라의 토착예술엔 이런이런 이야기가 있는데~하고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이런 책 한권을 보며 자연스레 배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타국의 독자로서도 이런 정보는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가 가는 부분이었다.

 

색과 무늬를 얻기 위해 기나긴 줄을 기다리는 동물들, 그들에게 색을 주는 쿠루피라, 원하는 것을 얻은 후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동물들, 그들의 기쁨을 한순간에 빼앗아가버리는 비, 그리고 다시 줄의 맨 끝으로 가게 해주는 나무터널, 그리고 다시 반복. 이 단순명료한 줄거리에 각자가 상징하는 것들이 뭘까 깊이 생각하며 여러번 읽었던 것 같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도 그리고 생각하기 위해서도 여러모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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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의 한국사 여행 1 - 도전과 응전, 새 길을 열다, 선사 시대에서 고려까지 36시간의 한국사 여행 1
김정남 지음 / 노느매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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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을 받고 과외를 해주어도 자기 자식을 가르칠때만큼 열성을 다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아이를 위한 글을 쓴다해도 자신의 아이를 위해 쓴 글만큼 애정을 쏟을 수 있을까? '역사 교사의 노하우를 살려 딸아이를 가르쳐보는 것'(6p)이 원래의 목적이었다던 이 책의 서문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어렵기만한 암기과목이 아닌 개념풀이와 다양한 사료를 접하며 배우고, 논리적으로 이해할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담아 제목에도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붙었다. 총 3권으로 나뉘어진 시리즈는 각 1권당 12시간의 여행을 책임진다. 12시간은 각 시간당 하나의 주제를 다루어 총 12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읽은 책은 여행의 시작이자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를 다룬 제1권이다.

 

 


중고등학교때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이었지만 그럼에도 역사교과서는 쉬운 책이 아니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외울 것 천지인 책보다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덧붙여주는 이야기들과 따로 준비하신 시청각자료들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시간순으로 배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배워야 좋은 역사이야기는 초중고 12년 플러스 알파로 반복학습을 한 덕에 빠삭하지는 않아도 익숙하기는 하다. 이 책의 풀이순서도 같아서 역시 익숙하기는 했다. 구석기-신석시-철기로 이어지는 선사시대부터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와 신라-발해의 남북극시대를 지나 이 책의 마지막 시간을 장식하는 고려시대까지의 역사적 흐름은 낯설지 않았다.

 

 

이 책이 정식교과서로 만들어진 책은 아니지만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그 차이점은 사실 저자가 의도한 몇가지 포인트와도 맞아 떨어지는데, 먼저 사진과 지도 등의 다양한 시료를 많이 넣으려 한 시도가 눈에 보인다. 시기상으로 가장 먼 선사시대의 부분에는 특히 한 두 페이지에 걸쳐 사진과 지도 등이 계속적으로 등장할 만큼 많이 실려있어 낯선 용어와 도구 등의 이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다채롭다는 느낌을 받았다.(다만 양이 많아서인지 사이즈가 너무 작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삼국시대 이후의 자료에는 삼국사기 등 기록으로 남은 시료들도 많이 활용한 것 같다.

 

 

또 어렵지는 않지만 낯선 단어들을 한자어 해석을 곁들여 개념을 풀어 설명해 준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각주나 미주로 밑에 따로 설명을 다는 것이 아니라 괄호안에 바로 설명을 덧붙인 점이 좋았다. 흐름이 끊기지 않으면서 한번에 읽어내릴 수 있어서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스스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할 수 있도록 끌어내고자 했다고 서문에 쓰여있는데 그 때문인지 소제목 등에 의문형 제목이 쓰인 경우가 꽤 많았다. 읽는 이 스스로가 질문을 던지게 돕는 데는 그렇게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질문이 던져준 한가지 주제로 글 전체를 잡아주고 있어서 여러 개의 소제목을 지니고 길지 않게 나누어진 단락들이 책을 읽는데 지치지 않도록 돕는 경향은 있었다.

 

 

 

오랜만에 읽어본 역사교과서같은 책이다. 읽고나서 문득 생각해보니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역사이야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다. 쉬운 말로 쓰려 노력한 점도 있고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포함하되 글의 길이가 무한정 길어지는 고리타분한 구조를 지니지도 않는다.(하나의 주제 밑으로도 4개에서 9개의 소제목을 붙이고, 그 아래로도 다른 질문을 던져 단락을 나누고 있어 하나의 글이 지루하게 이어진다는 느낌은 안들었다.) 사실 학생때도 교과서를 정독으로 한번에 쭉 읽어나간 적은 없었지만 역사를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교과서를 한번 통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시도해봤는데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싶다면 먼저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하고 추천해주고 싶다. 역사에 대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다면 역사에 대해 조금 더 가볍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시도를 해보기에 적합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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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가지 마음의 색깔 -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요! 42가지 마음의 색깔 1
크리스티나 누녜스 페레이라 & 라파엘 R. 발카르셀 지음, 남진희 옮김 / 레드스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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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여러 감정의 지도를 보여주듯 그림과 선으로 이어진 이 책의 차례가 몹시 마음에 든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의 활용도도 매우 높을 것 같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약간의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42가지 감정을 42가지 색깔에 비유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왜 당연한 소릴하느냐고 타박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혹시나 나같은 어른이 있을까 말해둔다. 이 책에서는 하나의 감정에 하나의 색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다채로운 색깔처럼 다양한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 제목이 붙은 것 같다.(하지만 아쉬워말고 읽으면서 자신이 그 감정에 색을 붙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사실 앞선 착각에 대해 반성한 점이 있는데, 이 책의 포인트는 '마음(감정)'인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이 어느 '색깔'로 정의되어 있는가에 대해 기대 혹은 연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1=2처럼 명료하게 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이라 누군가가 정해놓은 그 감정과 색이 무얼까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성향을 가진 이들은 나뿐이 아닌지 한국어판 제목에서부터 이 마음의 색깔이 42가지라고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사전을 동원해 스페인 원제목을 살펴보았을때 강조되는 것은 감정이지 그 감정이 몇가지인지는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이야기가 좀 멀리 갔지만 아무튼 이 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른과 아이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을 책인 것은 확실하다.

 

 

 

 

차례를 넘기면 몇몇 아동책에서처럼 이 책을 읽는 어른들에게 주는 당부 혹은 주의사항 등이 적혀있다. 아이들의 나이별 활용방법 등이 친절하게 적혀있으니 아이와 함께 읽을 어른들은 미리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 여기에서 이 책은 독자의 범위로 3세부터 12세까지의 아이들을 포괄하고 있는데 말을 왕성히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춘기를 앞두고 학교와 사회를 거치며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소심해질 아이들까지 굉장히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중학생에서 성인들도 스스로 읽거나 독서치료 등에서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길지 않은 글은 덧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한 예시와 질문들을 포함하고(물론 읽는 목적에 따라 적절히 끌어주고 질문을 더해줄 지도사가 있으면 더욱 좋다), 다채로운 그림들은 상상할 여지를 잔뜩 준다. 무엇보다 하나의 감정을 스스로 되새기며 그 감정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다루고 표현하는지를 파악할수 있게 도와준다. 이는 어린이나 성인에게나 한번쯤 필요한 과정인것 같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글을 따라 순서대로 책을 읽는 것은 상당히 매끄럽다. 어린이들 입장에서 한번에 읽어내리기엔 상당한 양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목적이 단지 책 한권을 읽는게 아니라면 천천히 하루에 몇가지씩 나누어 읽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아이가 좋아한다면 한번에 읽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단 한번만 읽기에는 조금 아까운 책이다. 책을 읽으며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많고 아이가 혼자 읽더라도 생각하고 상상할 것이 너무 많아 글자수에 비해 읽는 속도가 느려져야 정상인 책이다.(만약 그렇게 쓱쓱 읽어내리는 아이가 있다면 일단은 마음대로 읽도록 두고 다시 한번 함께 읽어주는게 좋을 것 같다.) 하나 하나의 감정에 깊이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한번에 읽어내렸을 때의 장점도 있다. 앞서 이 책의 글들이 매끄럽게 읽힌다고했는데 그건 그만큼 하나의 감정에서 다른 감정으로의 연결이 매끄럽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일단 이 책을 한번이라도 읽은 아이들은 여러가지 감정들이 있고, 감정은 자연스레 변화하며, 가끔은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거나 하나의 감정이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열정은 어떤 소리를 낼까? 열정은 음악과 같은 멋진 소리를 낸단다. - 본문 중 )

 

감정을 가르치고 동시에 끌어내는 책이라고 느꼈다. 글로 그림으로 보여주고 그 이상으로 확장할 여지를 잔뜩 준다. 예를 들어 책에서는 '열정은 음악과 같은 멋진 소리를 낸단다'하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길 들은 아이의 머리속에는 어떤 음악이 펼쳐지고 있을까? 시각 청각을 넘어 오감으로 아이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초반에 저자가 권한 것처럼 그림속 상황을 묘사해보거나 상상해보도록 질문을 하며 읽는다면 더 좋겠다. 22명의 그림작가가 그려낸 책속의 그림들은 매 그림마다 명료하기도 추상적이기도 하고 그림체자체도 저마다 가진 개성이 드러난다. 선이나 색을 칠하는 방법도 제각각이어서 하나의 감정마다 정말 새로운 시선으로 그림을 접하게 된다.

 

 

 

 

읽으면서 감정에 대해 '새삼스레 배운'점들이 많았다. 한권의 동화책에서 쉬이 볼수 없는 정말 다채롭고 매력적인 그림들도 볼수 있다. 만약 혼자 읽는다면(아이건 어른이건) 글속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생각하고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부제를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할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은 물론 사회전체가 더 둔감해지고 무뎌져서 아주 격한 감정에나 겨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꾹꾹 눌러참다 한번에 펑 터뜨려버리는 사람들은 무섭기까지 하다.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고 곧 변화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당신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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