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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7살 리코쿠를 화자로 한 첫번째 글부터 30대의 리코쿠를 화자로
한 마지막 글 사이에 야나기시마 일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양한 화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 화자들이 이야기하는 시점 또한 다양하다.
196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을 아우르는 꽤나 긴 시간동안 서양식 대저택을 거점으로, 그 안에서 자라고 저항하고 독립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야나기시마 일가로 편입되거나 태어나거나 혹은 스쳐가게 되는 다양한 인연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그 집안의
이야기는 묘하다. 화목하고 평온해보이지만 평범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사연들이 꽤 많다. 책의 맨 처음에 리코쿠를 중심으로 야나기시마 일가의
가족관계를 아주 간결하게 써 놓은 페이지가 있다. 알아보기 쉬운 가족도가 아니라 굳이 글로 풀어놓은 것은 각각의 혈연관계 및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타고난 성향이나 독특한
환경으로부터의 영향으로 다양한 인격과 성격을 지니게 된다. 리코쿠의 형제들만 보더라도, 우등생스타일에 살가운 성격을 지닌 노조미, 고집센
무뚝뚝이 고이치, 총명한 외톨이 리코쿠와 정원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우즈키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과 영향을 주고 받았을지언정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한 일가를 내세워 가족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보이는 이 책은 실은 가족 구성원 각 개인의 스토리를 묶어놓은 것과 다름없다. 중심이
되는, 가족이 모이는 장소(대저택)는 중요한 영향력과 이야기를 모으는 역할을 하지만, 그에 영향을 받고 그 안밖을 누비며 자라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각각이다. '가족이라 해도 결국은 모두 혼자가 아닌가'라는 작가의 말은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가족안에서의 고독이나 고립이 아닌, 각자 개성과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사람으로서의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거기서 우리 가족만의 유행어랄까, 일종의 암호 같은 것도 생겨났다.
"가엾은 알렉세이에프"
"비참한 니진스키"
라는 것이 그중 하나이며,
"라이스에는 소금을"
도 그중 하나다. 전자는 우리가 어릴적에 누차 들었던 엄마의 선조들 일화에서 비롯된다.
(...) 그날밤 우리는 두 남자를 위해 건배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들어온 교훈은
순수하게 슬픔을 표현하기 위한 암호가 되었다. (본문 중112-4p)
개성이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보니 그에 대한 애정이 가는 것도
막을수 없지만 야나기시마 일가 자체가 가진 환경적인 특징도 눈길을 끈다. 고지식한 할아버지(다케지로)와 러시아인 할머니(기누)의
삼남매(기쿠노,유리,기리노스케), 그리고 기쿠노와 도요히코의 아이들(리코쿠를 포함한 사남매)까지 3대에 걸쳐 모인 이 가족은 그들 나름의 규칙과
비밀, 그리고 버릇(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를 되물림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대학이전의 교육은 학교를 가지 않고 오로지 집에서
이루어진다거나, 야나기시마의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1년간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는 것이나, 서로의 슬픔을 표현하거나 위로하고자 할 때 하는 오로지
가족만이 알고있는 말버릇이라던가(가엾은 알렉세이에프/비참한 니잔스키- 의미는 다르지만 이 책의 표제이기도 한 '라이스에는 소금을'이라는 표현
역시 그들만의 암호이다).
"엄청 근사한 집이었어요, 그렇죠?"
다카오가 뭔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따뜻한 기분이 들고, 거기에 내 스스로 당황하고 있었다. 미혼인 채 아이를 낳는 데에는
적지 않은 각오가 필요했을 테고, 더구나 본부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환영받았을 리 없다. 하지만 한곳에 모여 손을 흔들고 있던 그들은 행복한
대가족처럼 보였다.
나는 차가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교통안전 부적 주머니를 바라본다. 아내가 보고 싶어졌다. (본문중 416p)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고 1부터 23까지 숫자와 시점으로만 제목이
붙은 이야기들은 한 편마다 화자가 달라져서 이번엔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할까 호기심이 동해 책을 끊어읽기가 참 힘들었다. 교차되는 시간과 시선들
사이에서 많은 인물들의 연결선을 찾아 다시 정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가출, 방황, 불륜, 이혼, 독립, 유학 등등 단어로 나열해놓고
보니 자극적(이라기보단 조금 불편한)이고 쉽지 않은 사건들이 이 이야기에는 정말 많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당사자나 그 가족의
반응은 격하지 않고 조금은 미지근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들도 당황하거나 화를 내기야 하지만 그 상황이나 감정을 풀어내는 그들의 어조는 차분한
감이 있다. 오히려 외부의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할때 그 화자들이 차분하고 당연스레 그 문제를 받아들이는 일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거나
격노한다. 독자는 방관자이면서도 어느새 그 가족에 동화되어 담담하게 그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항상 함께하고 소중히 여기지만 100퍼센트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 가족이 아닐까. 대저택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한 가족은 시간이 흐르면서 확대되고 분리되고 축소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각자가
분리된다 해도 그들이 한 가족이었던 것만은 확연한 사실이기에 그 가족은 자신안에서 하나의 역사로 남게된다. 사람은 떠나가도 그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은 장소는 이 이야기 내내 듬직하고 조금은 쓸쓸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점과 점을 세로로 연결하는 거란다."
노무라씨는 그렇게 말한다. (...) 일은 여기저기에서 한꺼번에 일어난다. 점과 점을
세로로 연결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의미인 듯하다. /
그리고 세로로 이어진 점과 점은 물론 가로로도 흘러간다. 엄청난 기세로, 절대적으로. 어느
누구도 멈추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도 역사의 일부란다." (본문 중
53-4p)
묘한 일이지만 이 방에 있다 보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가 있다. 정원을 뛰어오는, 운동화를 신은 어린 우즈키의 발소리며 진즉에 돌아가신 아라키 씨가 미는 손수레의
덜그럭거리는 소리, 중국 방에서 어른들이 마작 패를 휘젓는 소리, 누군가의 당구공을 때리는 소리. 여름 오후에 창문을 열어둘 때면 벌의 날갯짓
소리며 나무를 다듬는 가위질 소리에 섞여 들리는 할아버지의 해먹이 삐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테라스에서 일광욕 중인 외삼촌의 포터블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킹크스며 스몰 페이시스의 노래가 머리 위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처럼 내 귀에 띄엄띄엄 와 닿는다. 그것들은 내가
아니라 이 집의 기억이리라. 왜냐면 내가 알리 없는 소리-개들의 짖는 소리, 정원에서 열린 듯한 파티의 떠들썩함, 어린 노조미 언니와 치하루
언니가 나누는 비밀 이야기며 키득키득 웃는 소리-까지 가끔 방에 가득 차기 때문이다. (본문 중
579-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