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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패션잡지를 보면 '이 옷 사고싶다'하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 책을 보다보면 '아 이렇게 입고싶다' 하고 감탄하게 되곤 한다. 표지부터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또렷히 마주치는 눈빛, 짙게 칠해진 입술, 꼿꼿하게 세운 옷깃과 정갈하게 넘긴 머리카락까지. 하지만 책을 넘기니 표지만큼이나 자신만만한 얼굴들과 사진이 찍힌든 말든 자신이 표현해낸 스스로의 자존감과 개인적인 미적감각 등이 참으로 눈부셨다. 각 개인의 인생이 어찌되었건 그가 찍은 사진속엔 다양한 인물과 스타일이 등장한다. 교복을 입은 어린 아이부터 대도시의 멋쟁이들, 전통복장이나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나 슈트를 차려입은 노신사들, 과감한 노출을 한 사람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정해놓은 범위나 특정 대상이 없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인 스타일을 장착한채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찍혀있다. 그들 중 진지한 표정이나 뽐내는 얼굴은 있더라도 인상을 쓰고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사진속 인물이 꼬질꼬질한 작업 복을 입고 힘들게 일하던 중이라하더라도 스콧슈만은 그 순간의 그의 모습(외모,스타일,배경,당시의 상황까지 모두 통틀어서)에서 영감을 받고 관심과 호감과 조금의 경배를 포함한 사로잡힌 마음으로 그 사진을 찍었을 테니말이다.

 

 

 

 

 

패션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 안에는 옷뿐 아니라 헤어스타일, 악세서리, 분위기, 눈빛, 그리고 인생 이야기가 담겨있다. 가장 인상적인 사진을 뽑자면 등을 시원하게 보여주고 주황색 치마를 펄럭이며 자전거를 타는 여인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과 '유에'라는 사람의 정면 사진이다. 이 책에는 글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내가 고른 두가지 사진은 그나마 저자의 부연설명이 들어있는 사진들 중 하나이다. 패션사진을 보면 전체의 분위기를 보고, 마음을 끄는 포인트를 발견하고, 다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훝어보며, 그 후에 세세한 부분을 관찰한다. 하지만 보통 앞의 두 과정만을 거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의 사진들은 앞서 설명한 4가지의 과정을 전부 사용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스콧 슈만이 그들의 스타일과 패션을 찍어 상상의 인생을 그려본다고 한 것처럼, 사진마다 그들의 인생을 알려주는 힌트가 곳곳에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도 꽤 많다. 늘씬한 뒷태와 원색의 치마에 눈길을 빼앗기기 쉽지만 잘 살펴보면 그녀의 다리가 의족인것을 알수 있다. 이 사진을 찍기위해 뒤에서 열심히 쫓았다던 슈만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세세하게 사진을 보지 않고 지나갔다면 어쩌면 이 사실을 끝내 알지못하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유에의 사진은 사진만으로도 굉장히 묘하지만 그 옆에 쓰인 글이 그 사진을, 사진 속 인물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이 사진들에 등장하는 옷들은 사진 속 상황과 그 인물의 성격을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진들을 정리할 때 나는 끊임없이 '이 사람의 인생은 어떨까?' 하며 궁금해했다.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은 즐겁고 어떤 것은 슬프지만 그게 인생 아닌가. 심지어 상상한 인생이라도 말이다. - 본문 중 4p

 

 

 

 

 

 

비가 오는(혹은 왔던) 날씨, 까맣고 조금은 각이 진 비닐을 뒤집어쓰고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은 내게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진속 비닐이 바람에 휘날린 우비일지 정말 말그대로 비닐 봉투일지, 어쩌면 비닐같아 보이는 멋진 겉옷일지 알길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비닐봉투 같아보이는 우비를 뒤집어쓰고 로마시내를 돌아다닌 적이있기 때문이다. 트레비분수 앞에서 찍은 사진속에 난 상반신을 파란 봉투안에 담아놓은 채로 당당하고 즐거운 자세와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다. 당시엔 비가 아니라 눈이 왔었다. 그 사진은 지금보아도 웃음이 난다. 이 사진 속 여자는 어쩌다 그 비닐을 뒤집어 쓰고 걷게 되었을까. 나만큼이나 그 옷과 날씨와 상황을 즐기고 있었을까.

 

그가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가 없을 땐 아이폰을 사용한다거나,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을 은밀하게 혹은 대놓고 따라 간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꾸준한 영감을 주는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 사진을 찍는 등 자유롭고 순간적인 작업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재미있었다. 스콧슈만과 우연히 마주치는 상상을 해본다. 그가 한국에 여행을 왔고 나에게 잘 어울리게 차려입은 옷에서 그의 관심이 동할만한 포인트가 있다면 나도모르는 새 사진이 찍히겠지. 그것도 아주 근사한. 만약 내가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면 그가 원하는 사진을 손에 넣을 때까지 조금 더 나를 따라 다니겠지- 즐거운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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