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플라워 - ‘젤러바흐 상’을 수상한 티파니 터너의 특별한 선물
티파니 터너 지음, 정민정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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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꽃향기가 날것 같은 책 속의 아름다운 꽃들이 모두 페이퍼 플라워다. 조금 더 익숙한 말로 종이꽃. 자신은 식물학자가 아니며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전문가가 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마냥 부럽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애정이 듬뿍 담긴 (공예가로서의)일이자 취미생활의 기록이자 자랑이며, 페이퍼 플라워를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교본이기도 하다.

<챕터 1 주름지, 꽃철사, 접착제>에서는 페이퍼 플라워를 만들기 앞서 기본 준비물부터 자신이 애용하는 기타 도구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한다. 그 후 <챕터 2. 꽃들>에서 자르기, 누르고 늘려주기, 부수기, 꼬아주기 등등 이름만 들어도 왠지 알 것 같은 기본적인 작업들부터 점점 전문적이고 난이도가 올라가는 작업들까지 순차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한다. 여러 가지 꽃들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이 가장 처음 시작했던 꽃이자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꽃부터 시작한다. 그녀의 첫 꽃은 '부겐빌레아'다. 부겐빌레아를 시작으로 다양한 꽃을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단계별로 사진을 포함해 큰 책이 꽉 차도록 알찬 설명들이 쓰여 있어 읽는데 그리 어렵진 않았지만, 실제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씨로만 읽고 있으려니 왠지 손이 근질거렸다. 각 챕터 뒤엔 본문에 실린 꽃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안들도 실려있다.

 

다소 생소했던 부겐빌레아를 지나 두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꽃은 카네이션이었는데 반가운 마음이 컸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처음으로 만든 종이꽃 하면 대부분 카네이션이지 않을까. 유치원 때 처음 배운 이후로 어버이날이면 꽃잎 끝이 뾰족한 카네이션을 제멋대로 만들어 부모님께 드렸던 기억이 났다. 올해는 그때보단 훨씬 나아진 실력으로 종이꽃 카네이션을 만들어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양한 꽃들을 뒤로하고 <챕터 3. 잎, 줄기, 꽃봉오리>는 꽃 외의 식물의 섬세한 부분들을 만드는 법도 알려준다. 저자는 잎 만들기에 앞서 '나는 여러분이 자연 속에서 식물의 구성을 관찰하며 페이퍼 플라워에 대한 공부를 하길 바란다. 이것이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라고 쓰고 있다.(본문 중 195p)

사실 내게는 꽃보다 더 익숙한 부분들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나는 다양한 취미를 늘려갔는데, 그중 하나가 꽃이나 잎 등 식물의 부분을 말려 압화 책갈피를 만드는 것이었다. 꽃은 화사하고 색상이 아름다운 맛이 있지만 꽃의 구조상 두꺼워 눌려 말리기가 어려웠고, 색상이 변하는 것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 대신 내가 눈을 돌린 것이 꽃잎 하나, 꽃받침, 어린잎, 작은 꽃의 꽃봉오리 등이었다. 참고로 벚꽃의 꽃받침을 말리면 정말 앙증맞고 예쁘다. 단풍잎 등 잎사귀는 책갈피로 만들 땐 단골손님이었고 제비꽃 같은 작은 식물의 줄기와 잎 역시 통째로 눌러 말리면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 꽤 멋진 소재가 되었다. 종이꽃을 만들 때 실제 꽃을 많이 관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에 공감하며 살짝 칭찬받은 기분이 되어 우수한 학생이 되고 싶어졌다.

<챕터 4. 페이퍼 플라워 액세서리>는 말 그대로 종이꽃을 이용한 다양한 액세서리를 소개하고 만드는 법 역시 알려준다. 솜씨가 좋다면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액세서리들이 참 많았다. 마지막 <챕터 5. 대형 페이퍼 플라워>는 말 그대로 커다란 종이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영어를 그대로 읽으면 자이언트 페이퍼 플라워, 뭔가 커다란 건 알겠는데 명칭이 귀엽다. 내겐 그저 장식성이 좋은 커다란 꽃이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작가에겐 많은 생각과 추억과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글을 아래에 붙인다.

꽃은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리고 그 감흥을 전파하게 만든다. (... 중략...) 특히 대형 페이퍼 플라워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끌어낸다. 나는 페이퍼 플라워 공예가로 활동하는 내내 이런 일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실제보다 큰 꽃들을 보며 사람들은 자신만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꽃과 대화를 나눈다. 이것은 진정 아름다운 경험이 될 것이다.

(본문 중 243p)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마주할 때 우리는 '그림 같다'라는 표현을 한다. 실제 사람의 손으로 탄생한 예술은 자연의 어떤 경지를 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인데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아서, 혹은 인간으로서 자신이 아는 최고의 경지를 비유하듯 무심코 그런 표현을 하고 마는 것이다. 또는 그 순간을 예술작품같이 그대로 박제하고픈 갈망을 담아 그리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꽃을 볼 때마다 그와 비슷한 감상을 하곤 한다. 생화가 가진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이 좋지만, 그 모습이 유지되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웠다. 그래서 프리저브드 플라워나 드라이플라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문적인 수준은 못되지만 실제로 그 작업을 어설프게 따라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남은 꽃의 잔해를 소유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으로 페이퍼 플라워라는 걸 알아버렸다. 실물은 아니지만 실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가지고 그 지속성마저 길다. 그리고 저자의 말대로라면 재료 또한 간단하고 실력은 제각각이겠지만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재료도 식물에 한없이 가까운 종이다. 생각할수록 페이퍼 플라워를 좋아할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아 헛웃음이 났다. 나에게 너무나 흥미로운 새로운 취미를 찾아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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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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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닷가에 카페를 차리고 사라진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이 책의 줄거리에서 이러한 내용의 한 줄을 읽고 그저 파란만장한 혹은 절절한 로맨스를 담은 이야기인가 싶었다. 다 읽고 나니,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남자 주인공과 홀연히 사라져버린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그저 한 남자의 독백이고, 마치 시 같은 일기였다. 반성문 같기도 했고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했다.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들어요. 영혼을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대해 얘기할 때 그 속에서 영혼을 발견한다면 멈추라고 말해줘요. 아니면 다 듣고 나서 결론을 내려도 좋고, 내 잠꼬대라 여겨도 괜찮아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있으면 돼요. 설사 내 영혼이 정말 눈에 보인다고 해도 어차피 비루한 영혼일 테니까.   (본문 중 89p) ​

 

 

주인공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우연히 들어서게 된 뤄이밍, 무언가 과거가 있었던 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재회가 이 소설의 첫 부분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많이 숨겨둔 채 두 사람은 다시 만났고 그 이후 뤄이밍은 앓아누웠다가 어째선지 자신의 집 발코니를 넘어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 사고 이후 뤄이밍은 죽지 않았지만, 그의 딸 뤄 바이슈가 매일같이 카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나의 영혼을 불러낼 방법을 찾겠다는 기이한 말을 한다. 나와 나의 아내인 추쯔는 과거에 사진을 배우기 위해 뤄이밍의 집을 드나들었고, 그때 소녀였던 뤄바이슈는 그들의 만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네 사람의 과거나 관계를 명확히 알려주지 않은 채 진행되는 현재의 이야기는 어렴풋한 짐작만으로 이해하기엔 조금 어리둥절하고 아리송하다. 그리고 2장부터 나의 독백과 자기고백, 즉 추쯔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모든 이야기엔 추쯔가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추쯔의 시점이 없기에 일방적인 단면 만을 보고 있는 느낌도 든다. 나는 지난 과거를 떠올리면 슬픔으로 이어지는 기억들이 많았고, 그로 인한 우울감을 갖고 있는 남자였다. 추쯔에게 느끼는 사랑은 깊고 달달한데 그녀에게 자신의 우울을 전하지 않기 위해, 나는 그녀가 웃을 수 있는 이야기만을 하고 슬픔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이야기를 조각내어 말한다. 추쯔가 가슴 아래 상처를 숨기려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자신의 슬픔과 우울, 불안과 좌절을 그녀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다 보니 반대로 나 역시 추쯔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 

 

 

말하지 않는 것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너무 큰 슬픔을 그녀에게 안겨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나중에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였어요. 그때 내가 모든 걸 다 털어놓았더라면, 슬픔이 가져다주는 신비한 힘을 그녀가 적당히 감당할 수 있게 했더라면, 어쩌면 좌절이 찾아왔을 때 그녀가 그렇게 급히 떠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본문 중 80p)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지진이 일어났던 그 공포의 순간에 침착하게 판단했더라면 추쯔에게 이불을 씌워 침대 밑에 숨었을 것이다. 그녀를 끌고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가다가 그녀의 영혼을 땅에 떨어뜨린 채 어리어리한 육신만 끌고 공원으로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   (본문 중 148p)

총 4장으로 나누어진 이야기는 각 장의 제목부터 시선을 빼앗는다. 우리나라의 시인 김경주의 글이 떠올랐다. 그의 시극이나 소설에서 자주 보았던 존댓말로 쓰인 독백체, 일상적인 단어를 쓰고 큰 격정 없이 이야기가 서술되지만 곳곳에 심어둔 감성적인 표현들이 많이 닮았다. 하지만 김경주의 글이 감성에 시와 극과 환상적인 요소들을 버무렸다면 왕딩궈는 현실의 이야기를 섞었다. 해설을 참고하자면 대만 소설의 약점이었던 리얼리즘을 극복했다는 평을 받은 그의 소설은, 이 글의 배경인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사회를 강타한 온갖 재난들(대지진, 사스 등)과 그로 인한 경제 여파들을 겪어나가는 모습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사랑'과 '돈'의 문제가 이 소설의 굵은 줄기를 맡고 있다는 점 또한 그렇다.

​​30세의 나이에 절필을 선언한 작가. 그러니까 1955년 태어난 작가는 1980년대 중반 글 쓰는 것을 멈추고, 2004년 소설집<사희>로 다시 문단에 복귀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권의 소설집을 더 내고 이후 장편소설인 <적의 벚꽃>이 올해 출간되었다. 특이한 점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그가 절필했던 시기와 겹친다는 것. 사실 '[프롤로그]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를 읽은 직후부터 쭉 헷갈렸다. 이게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지, 그저 소설일 뿐인 건지. '작년 겨울 <적의 벚꽃>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 속 주인공인 '나'의 프롤로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자신의 경험이나 트라우마, 혹은 몰두했던 무언가를 소설 속에 녹여내는 작가는 많이 있다. 본문 뒤에 4개나 있는 해설을 겸한 추천사를 읽었을 때 그의 전작에서도 비슷한 성향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작가 역시 그런 타입의 작가인지도 모른다. 한 길을 파는 작가는 싫지 않다. 그리고 쓰기 힘들다는 장편에서도 이 정도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필력이라면, 그의 단편소설들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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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一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클로드 모네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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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시화집 제목과 어울리는 하얀 표지의 책이 왔다. 표제는 윤동주의 <눈>이라는 시의 첫 구절로, 1월 27일의 시로 책 속에 실려있다. 윤동주는 살며 계속 시를 썼지만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기에 누군가는 그의 시가 완성되었다기 보다 마치 습작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미숙하지만 어딘가 빛나고,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고뇌와 노력 뒤편으로 젊은이만이 지닐 수 있는 천진난만한 매력도 있다. 이번 달에 수록된 윤동주의 시 중에는 마치 동시 같은 천진한 시들이 눈에 띈다. <눈>도 그런 매력의 시 중 하나이다. 참고로 1월 10일의 시도 윤동주의 <눈>이라는 시다. 동일 저자의 같은 제목이지만 다른 시다. 어쩌면 10일의 시의 제목은 눈(雪)이 아닌 눈(目)일지도.

 (1월 10일의 시)

 

(1월 27일의 시)

 

이번 달의 화가는 클로드 모네다.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라는 것과 몇몇 유명한 작품들은 알고 있지만, 사실 잘 모르고 다만 이름은 참 많이 들어본 화가-라는 게 솔직한 내 인식이었다. 그림들은 참 아름다웠지만 낯설었다. 이번 책에는 특히 눈 쌓인 겨울 풍경을 그림 그림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는데, 처음으로 이 책의 삽화 사이즈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조금 더 큰 그림으로 감상하고 싶었다.

​​

31편의 시 중에 윤동주의 시가 10편, 백석의 시가 6편이다. 백석의 시는 윤동주의 시와는 상반된 느낌의 겨울을 보여준다. 윤동주의 시가 자신의 내면을 서술하거나 아이처럼 겨울과 눈을 즐기는 내용을 담는다면, 백석의 시는 고단하지만 옹기종기 모여 겨울을 지내는 마을의 생활 모습을 그리거나 겨울 날씨만큼이나 춥고 쓸쓸한 감성을 주로 담는다. 시의 길이만 보아도 백석의 시가 더 길고 서술적인 경우가 많다(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만을 보았을 때). 서로 다른 느낌의 두 시인의 시를 즐기기에 좋았다. 정지용의 <호수>, <유리창 1>같은 교과서에서 보았던 익숙한 시들도 반가웠다. 개인적으로는 첫인상이 교과서라 그런지 그리움과 슬픔을 담은 시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좀 딱딱한 인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림과 함께 시를 보니 그런 첫인상이 좀 풀어지는 것 같았다.

책 뒤표지에 쓰여있는 '그림은 말 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라는 카피가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시와 그림을 각각 감상하기에도 함께 보기에도 좋고, 그날그날의 시와 그림을 곱씹는 것도, 자신의 탄생 시와 탄생 명화를 찾아 읽는 재미도 있다. 작은 사이즈에 두께도 두껍지 않아 가까운 책장에 두었더니 생각보다 손이 쉽게 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읽어도 시간이 그리 걸리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시와 그림이 주는 감성을 채워주는 그런 책이다. 다음 달이면 열두 달 시화집 시리즈의 마지막, 2월의 책이 나온다. 하지만 난 작년 10월부터 이 시리즈를 접했기에, 매달 초에 내가 아직 읽지 못한 다른 달의 시화집을 신간 접하듯 하나하나 모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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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와 바오밥나무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57
디미트리 로여 지음, 사빈 클레먼트 그림, 최진영 옮김 / 지양어린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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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들의 이름은 낯설지만, 이야기의 장면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은 책.

커다란 크기만큼 많은 걸 담고 있는 책. ​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라는 것,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 특징만을 알고 이 책을 골랐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골치 아프지만 외면하기 힘든 문제를 아이들이 읽을 이 책에서는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까 정말 궁금했다. 책이 도착했을 땐 내가 가지고 있는 몇몇 그림책들보다도 큰 책의 사이즈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니 단순한 난민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당하지만 공공연한, 그래서 조금은 불편한 상황들을 이야기 안에 참 많이 녹여내고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글밥이 많아서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아이들에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지금까지 들판에는 이 나무만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딘가에 또 다른 나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본문 중 이밀리 이밀라의 말)

 

 

떡갈나무에는 풍성한 꼬리를 가진 다람쥐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들판에선 오직 그 떡갈나무뿐 다람쥐가 살만한 다른 나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둘기가 떡갈나무의 잎과는 다른 나뭇잎을 물고 가는 것을 본 나이 많은 회색 다람쥐 이밀리 이밀라의 발언으로 떡갈나무의 다람쥐들은 술렁거리게 된다. 젊은 다람쥐들은 이끄는 커다란 다람쥐 라투핀은 그 의견에 콧바람을 뀌고 말지만, 수슬릭은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겠다고 자청한다. 아직 어린 다람쥐 타미아는 엄마의 걱정에도 수슬릭을 따라 마치 모험 같은 여행을 떠난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칩.

진짜 영웅은 뱀과 맞서 싸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잘못된 생각과도 싸워야 한다구!" (본문 중 타미아의 말)

 

 

글밥이 많다는 걸 앞서 이야기했는데, 스토리가 제법 긴 만큼 6개의 소제목을 달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의 핵심은 아무래도 맨 마지막 파트 '6. 서로 다른 생각들'이겠지만, 이야기의 중간쯤부터 나오는 칩과 타미아의 우정 이야기도 정말 좋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 단어를 가르쳐주며 금세 서로를 더 이해해가는 모습이 귀엽다. 떡갈나무에 도착한 줄무늬 다람쥐들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논의할 때 떡갈나무의 다람쥐들을 설득하는 타미아의 말은 친구에 대한 걱정과 응원, 그리고 순수하게 자신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점을 솔직하게 말하기에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안주하고 있는 사회에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을 때 우리의 반응, 새로운 일을 진행할 때 어느샌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온갖 꿍꿍이들, 개인과 개인의 순수한 교류, 갑자기 닥친 커다란 힘에 의한 부당한 폭력과 그에 대한 반발, 그리고 복수에 대한 복수, 살 곳을 잃은 피해자들의 선택권 없는 이주, 그리고 그들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토의. 하나하나 쪼개 그 속에 담긴 현실의 모습들을 꺼내다 보면 참할 이야기가 많은 책이다. 어른들이 독서토론을 하기에도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내가 느꼈던 이 많은 이야기들을 제하더라도 이 책은 말미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다람쥐들을 위해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어떤 답변을 내려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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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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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지만 살면서 한 번씩은 해보게 되는 질문, 사랑이란 무엇일까. 철학, 문학, 예술 그리고 개인에 있어서도 참 많이도 다루었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잠적해 오직 글로만 독자를 만나고 있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곰곰이 생각하듯 여러 번 질문을 되뇌고, 플라톤, 스탕달, 괴테, 바그너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불러와 그들의 저서에서 다룬 사랑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비교해본다. 그저 쥐스킨트의 책이라 고르게 된 이 책은 소설이나 에세이보단 '사랑'에 대한 철학적 보고서나 짧은 소논문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이 책은 헬무트 디틀과 공동작업한 시나리오이자 영화<사랑의 추구와 발견>에 대한 해설서를 겸하는 에세이라고 한다.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영화는 전쟁이다>라는 긴 제목의 첫 번째 시나리오 이후 쥐스킨트가 쓴 두 번째 시나리오 작품이 <사랑의 추구와 발견>이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바탕으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시나리오의 내용에 대해서는 책의 맨 뒤 옮긴이의 글에서 알게 되었다. 해설서인 이 책에도 물론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하는 한 여인 에우리디케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길 바랐던 오르페우스와, '죽음'이라는 인간이 가진 약점을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 인류를 구원하려 했던 예수라는 인물을 비교하는 내용이 특히 흥미로웠다. 신적인 존재와 인간적인 존재를 비교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사랑의 면모를 부각하는 저자의 글 솜씨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국내에는 2006년 시나리오와 함께 발간된 <사랑을 생각하다>는 (간간이 새롭게 재판되어 나오는 <향수>등의 책들을 제외하면) 저자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너무나 좋아했고 대학교 때부터 그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터라 내게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는 여전히 현역의 젊은 작가라는 인상이 강했다. 사람들을 피해 은둔자 같은 생활을 했다는 작가의 특성상 그의 프로필 사진이 더 이상 늙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삼 확인해보니 그는 올해로 만 69세(우리나라 나이로는 칠순!)의 나이가 되며 그의 대표작인 <향수>는 무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책이었다. 아직도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팬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작품을 썼던 작가 움베르토 에코처럼 그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으며, 아직 발표하지 않은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리란 기대와 상상을 해본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사람을 가장 모순투성이로 만드는 일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옛 지성들은 물론 기록에 남지 않은 무수한 무명의 인류는 모두 살아가며 저마다 사랑의 정의를 갖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파멸과 비극에 치닫는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도 있겠지만, 우리는 보통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했을 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라는 느낌을 받는다. 새해의 첫 책으로 썩 괜찮은 책이었다. 서평을 쓰며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커져버렸다. 그의 저서 중에 아직 읽지 못한 두 권의 시나리오 책을 올해 안에 꼭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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