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을 생각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유치하지만 살면서 한 번씩은 해보게 되는 질문, 사랑이란 무엇일까. 철학, 문학, 예술 그리고 개인에 있어서도 참 많이도 다루었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잠적해 오직 글로만 독자를 만나고 있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곰곰이 생각하듯 여러 번 질문을 되뇌고, 플라톤, 스탕달, 괴테, 바그너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불러와 그들의 저서에서 다룬 사랑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비교해본다. 그저 쥐스킨트의 책이라 고르게 된 이 책은 소설이나 에세이보단 '사랑'에 대한 철학적 보고서나 짧은 소논문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이 책은 헬무트 디틀과 공동작업한 시나리오이자 영화<사랑의 추구와 발견>에 대한 해설서를 겸하는 에세이라고 한다.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영화는 전쟁이다>라는 긴 제목의 첫 번째 시나리오 이후 쥐스킨트가 쓴 두 번째 시나리오 작품이 <사랑의 추구와 발견>이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바탕으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시나리오의 내용에 대해서는 책의 맨 뒤 옮긴이의 글에서 알게 되었다. 해설서인 이 책에도 물론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하는 한 여인 에우리디케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길 바랐던 오르페우스와, '죽음'이라는 인간이 가진 약점을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 인류를 구원하려 했던 예수라는 인물을 비교하는 내용이 특히 흥미로웠다. 신적인 존재와 인간적인 존재를 비교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사랑의 면모를 부각하는 저자의 글 솜씨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국내에는 2006년 시나리오와 함께 발간된 <사랑을 생각하다>는 (간간이 새롭게 재판되어 나오는 <향수>등의 책들을 제외하면) 저자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너무나 좋아했고 대학교 때부터 그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터라 내게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는 여전히 현역의 젊은 작가라는 인상이 강했다. 사람들을 피해 은둔자 같은 생활을 했다는 작가의 특성상 그의 프로필 사진이 더 이상 늙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삼 확인해보니 그는 올해로 만 69세(우리나라 나이로는 칠순!)의 나이가 되며 그의 대표작인 <향수>는 무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책이었다. 아직도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팬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작품을 썼던 작가 움베르토 에코처럼 그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으며, 아직 발표하지 않은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리란 기대와 상상을 해본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사람을 가장 모순투성이로 만드는 일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옛 지성들은 물론 기록에 남지 않은 무수한 무명의 인류는 모두 살아가며 저마다 사랑의 정의를 갖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파멸과 비극에 치닫는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도 있겠지만, 우리는 보통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했을 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라는 느낌을 받는다. 새해의 첫 책으로 썩 괜찮은 책이었다. 서평을 쓰며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커져버렸다. 그의 저서 중에 아직 읽지 못한 두 권의 시나리오 책을 올해 안에 꼭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