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바닷가에 카페를 차리고 사라진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이 책의 줄거리에서 이러한 내용의 한 줄을 읽고 그저 파란만장한 혹은 절절한 로맨스를 담은 이야기인가 싶었다. 다 읽고 나니,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남자 주인공과 홀연히 사라져버린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그저 한 남자의 독백이고, 마치 시 같은 일기였다. 반성문 같기도 했고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했다.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들어요. 영혼을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대해 얘기할 때 그 속에서 영혼을 발견한다면 멈추라고 말해줘요. 아니면 다 듣고 나서 결론을 내려도 좋고, 내 잠꼬대라 여겨도 괜찮아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있으면 돼요. 설사 내 영혼이 정말 눈에 보인다고 해도 어차피 비루한 영혼일 테니까.   (본문 중 89p) ​

 

 

주인공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우연히 들어서게 된 뤄이밍, 무언가 과거가 있었던 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재회가 이 소설의 첫 부분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많이 숨겨둔 채 두 사람은 다시 만났고 그 이후 뤄이밍은 앓아누웠다가 어째선지 자신의 집 발코니를 넘어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 사고 이후 뤄이밍은 죽지 않았지만, 그의 딸 뤄 바이슈가 매일같이 카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나의 영혼을 불러낼 방법을 찾겠다는 기이한 말을 한다. 나와 나의 아내인 추쯔는 과거에 사진을 배우기 위해 뤄이밍의 집을 드나들었고, 그때 소녀였던 뤄바이슈는 그들의 만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네 사람의 과거나 관계를 명확히 알려주지 않은 채 진행되는 현재의 이야기는 어렴풋한 짐작만으로 이해하기엔 조금 어리둥절하고 아리송하다. 그리고 2장부터 나의 독백과 자기고백, 즉 추쯔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모든 이야기엔 추쯔가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추쯔의 시점이 없기에 일방적인 단면 만을 보고 있는 느낌도 든다. 나는 지난 과거를 떠올리면 슬픔으로 이어지는 기억들이 많았고, 그로 인한 우울감을 갖고 있는 남자였다. 추쯔에게 느끼는 사랑은 깊고 달달한데 그녀에게 자신의 우울을 전하지 않기 위해, 나는 그녀가 웃을 수 있는 이야기만을 하고 슬픔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이야기를 조각내어 말한다. 추쯔가 가슴 아래 상처를 숨기려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자신의 슬픔과 우울, 불안과 좌절을 그녀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다 보니 반대로 나 역시 추쯔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 

 

 

말하지 않는 것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너무 큰 슬픔을 그녀에게 안겨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나중에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였어요. 그때 내가 모든 걸 다 털어놓았더라면, 슬픔이 가져다주는 신비한 힘을 그녀가 적당히 감당할 수 있게 했더라면, 어쩌면 좌절이 찾아왔을 때 그녀가 그렇게 급히 떠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본문 중 80p)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지진이 일어났던 그 공포의 순간에 침착하게 판단했더라면 추쯔에게 이불을 씌워 침대 밑에 숨었을 것이다. 그녀를 끌고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가다가 그녀의 영혼을 땅에 떨어뜨린 채 어리어리한 육신만 끌고 공원으로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   (본문 중 148p)

총 4장으로 나누어진 이야기는 각 장의 제목부터 시선을 빼앗는다. 우리나라의 시인 김경주의 글이 떠올랐다. 그의 시극이나 소설에서 자주 보았던 존댓말로 쓰인 독백체, 일상적인 단어를 쓰고 큰 격정 없이 이야기가 서술되지만 곳곳에 심어둔 감성적인 표현들이 많이 닮았다. 하지만 김경주의 글이 감성에 시와 극과 환상적인 요소들을 버무렸다면 왕딩궈는 현실의 이야기를 섞었다. 해설을 참고하자면 대만 소설의 약점이었던 리얼리즘을 극복했다는 평을 받은 그의 소설은, 이 글의 배경인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사회를 강타한 온갖 재난들(대지진, 사스 등)과 그로 인한 경제 여파들을 겪어나가는 모습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사랑'과 '돈'의 문제가 이 소설의 굵은 줄기를 맡고 있다는 점 또한 그렇다.

​​30세의 나이에 절필을 선언한 작가. 그러니까 1955년 태어난 작가는 1980년대 중반 글 쓰는 것을 멈추고, 2004년 소설집<사희>로 다시 문단에 복귀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권의 소설집을 더 내고 이후 장편소설인 <적의 벚꽃>이 올해 출간되었다. 특이한 점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그가 절필했던 시기와 겹친다는 것. 사실 '[프롤로그]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를 읽은 직후부터 쭉 헷갈렸다. 이게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지, 그저 소설일 뿐인 건지. '작년 겨울 <적의 벚꽃>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 속 주인공인 '나'의 프롤로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자신의 경험이나 트라우마, 혹은 몰두했던 무언가를 소설 속에 녹여내는 작가는 많이 있다. 본문 뒤에 4개나 있는 해설을 겸한 추천사를 읽었을 때 그의 전작에서도 비슷한 성향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작가 역시 그런 타입의 작가인지도 모른다. 한 길을 파는 작가는 싫지 않다. 그리고 쓰기 힘들다는 장편에서도 이 정도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필력이라면, 그의 단편소설들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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