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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얌전한 색으로 칠해진 표지에 고양이가 빼꼼히 얼굴을 반쯤 내밀고 있다. 그런데 표지를 열자마자 있는 화려한 색상의 그림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책을 읽다보면야 알로하의 셔츠에나 있을 법한 그림이군-하고 납득하게 될테지만, 조금더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생과사가 이런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얌전한 척 살았지만 그 안에는 얼마나 열정적이고 다채로운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가, 혹은 그런
선택들과의 갈등을 겪었는가. 만화같기도 하고 꿈같기도 한 소설책이다.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는 하나하나에 솔직하고 엉성함이 묻어나서 이거
소설인데 이렇게까지 쓰여있어도 되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책을 읽다가 초반에 느꼈던 희한한 점이 하나 있다. 번역과 각주에 대한 것인데, 이렇게 발랄하고 어찌보면
가벼운 분위기의 소설에서 굳이 순 우리말을 넣어야한걸까하는 의문이다. 순우리말을 쓰는거야 당연히 좋은일이지만 순우리말이면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들이 있을텐데 굳이 이야기 중간중간에 주석을 따라 시선을 돌려야할 정도의 설명이 필요한 단어를 써야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일본어가 한자로
쓰여진 언어이다보니 우리말로 고치기에 적당한 순우리말을 찾으려 더 애쓰다 그렇게 된걸까 궁금해진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상상해본다.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인간인 이상.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치사율
100퍼센트다.
그렇게 보면,
죽음=불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죽음이 행복이냐 불행이냐는 어떻게 살아왔느냐라는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다. (본문 중 193p)
책의 목차만 봐도 책의 줄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악마가 찾아왔고, 세상에서 전화와 영화와 시계와 고양이가 차례로 (아마도)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인 '나' 역시 사라질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시한부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실감하기도 전에 악마가 찾아온다. 사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악마란 존재는 주인공이 죽기 전에 여러가지 의미를 찾게끔 만들어주는 중개인 혹은 선각자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어쩌면
방해자역할을 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악마에 의해 하루하루 생을 연장해가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차례의 맨
마지막이니까말이다.
도처에 널려있고 일반적인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은 물건이라도 개인의 인생에서 영향을 미친 정도나 친숙도가 높은 물건이 사라지는건 그
개인에겐 엄청난 영향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모자를 만들고 연구하는데 일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물론 그는 모자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너의 생을 늘려줄테니 이 세상에서 모자를 없애겠다고 하면 그는 예스라고 답할수 있을까. 사람은 지금가지의 자신 즉 과거에
휘둘리는 존재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추억이된 여러 영화가 없어진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나라고 할수 있는걸까 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특히. 앞으로의 생이 길다면 자신의 의미를 미래에서 찾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고작 몇일의 생을 연장하면서 그를 위해 내 삶의
의미(그 일부라고 해도)를 없애버린다면 과연 그 몇일동안의 생의연장은 과연 의미가 있는걸까. 생에 대한 집착 및 욕구는 그렇게도 강한
본능인걸까. 악마 알로하가 하는 "그러면 무엇이라면 없앨건데요?" 라는 질문에 주인공이 고민하는 내용 중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은 물과
음식과 잠자리가 있으면 죽지는 않는다' 라는 말. 맞는 말이기에 무서운 말이다. 인간이기에 그 이상을 바라고 꿈꾸며 그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믿고 행한다. 삶의 질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을 듣고 난 후 악마의 혼잣말이 의미심장하다.
"또...... 하느님에게 지고말았군.
정말이지 인간이란 존재는......"
사실 이 이야기는 줄거리상 죽음과 삶에 대한 사색 및 고찰이 담겨있지만, 동시에 가족간 혹은 소중한 사람들
간의 소통과 화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실 그러한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 한 개인으로 태어나서 끊임없이 누군가와 소통하고 불화하고
화해하는것.
<전차남>, <늑대아이> 등 유명 영화제작자인 저자의 데뷔소설인 이 작품은 정통소설처럼 빽빽하지 않다.
중간중간 마음마저 느슨하게 만드는 일러스트가 등장하기도 한다. 처음 이 책을 골랐던 이유처럼, 무겁지 않고 순식간에 읽어내릴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분명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읽다보면 누구나 공감하고 가벼운 와중에도 눈물을 쏙 빼게 만들기도 한다. 내 앞에 악마가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동시에 마지막 역자의 질문이 떠오른다. 내 삶의 '고양이'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