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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의 계절 ㅣ 고정순 그림책방 3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4년 10월
평점 :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책상에 기대고 있는 이 친구는 누구일까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꼬마 '고구마'랍니다. <가드를 올리고>, <무무 씨의 달그네>, <옥춘당>의 고정순 작가님의 신작, <난독의 계절>의 주인공이에요. <난독의 계절>은 글을 읽지 못하는 난독증으로 좌절하던 꼬마 고구마가 다양한 세상을 만나며 울고 웃는 좌충우돌 성장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어린 시절 작가님은 난독증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글을 읽지 못하셨다고 해요.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 작가님이 난독증이었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이 책이 작가님의 실제 경험을 담은 그림책이라고 하니 더욱 읽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정말 애정하는 고정순 작가님 책은 참을 수 없지요! 꼬마 '고구마'의 눈물 찔끔, 웃음 가득한 탄생과 성장 이야기! <난독의 계절> 만나보겠습니다!

고정순 그림책방 03
난독의 계절
글.그림 고정순
길벗어린이 / 2024.10.31.


나는 뭐든지 잘하는 아이였다.
동물 흉내 내면서 방귀 뀌기,
한밤중에 멜로디언 연주하기,
벌레랑 숨바꼭질하기.
희한한 일을 척척 해내는
나도 못하는 게 있었다.
나는… 글자를 읽지 못했다.


내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냥 공부 못하는 아이였고
받아쓰기 시험 때마다 배가 아픈 아이였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상한 괴물들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괴물들은 내가 글자를 읽고 싶을 때마다 나타나
글자 위를 콩콩 뛰면서 나를 방해했다.
"글을 쓸 줄 모르면
생각도 마음도 전할 수 없는
답답한 어른이 되는 걸까?
… 나는 무서웠다."


추운 계절이 지나고 달빛 자장가가 내리는 어느 봄밤, 바깥세상이 궁금한 아이는 태어나고 말았어요. 쓰레기 매립지 근처 쪽방촌에서요. 도로 눈을 감고 싶었던 아이는 씩씩하게 자라기 시작했죠. 아이는 뭐든지 잘했어요. 동물 흉내를 내면서 방귀를 뀌고, 한밤중에 멜로디언도 연주하고, 벌레랑 숨바꼭질도 했지요. 희한한 것을 척척해내는 고구마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면 꾀병을 부리고, 어버이날 편지는 짝꿍의 것을 보고 따라 썼어요. 동생이 알려 준 준비물 '기타 등등'이란 말에 장난감 기타를 메고 학교에 가기도 했어요. 아이는 글을 몰라 순간순간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어요.


그런 고구마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은 언니와 친구 상숙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언니를 질투하고,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도 않던 고구마는 비밀을 들켜 버리고 말아요. 다정하고 친절한 언니는 고구마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소용없었어요. 언니는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고무줄놀이도 가르쳐 주었지요. 언니가 싫다던 아이는 온 동네 아이들에게 언니가 있다고 자랑을 했어요.
아이는 오락실 집 아이라고 놀리지 않는 상숙이와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상숙이는 아이의 비밀을 아는 두 번째 사람이었지요. 상숙이에게 글을 읽고 쓰는 방법을 배웠지만 소용없었어요. 상숙이는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고 아이는 기죽지 않고 친구를 웃겨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받아쓰기를 빵점을 맞고, 밥 먹듯 나머지 공부를 해도 슬프지 않았어요. 전교에서 가장 빨리 달리고, 친구 대신 벌레를 잡아주는 웃기는 아이, 재미있는 아이였기 때문이었죠.


아직 첫눈이 오지 않았던
초겨울 어느 날.
"…행…복…!"
첫눈이 내리고
나는 글자들과 눈을 맞췄다.
글을 몰라 친구들에게 놀림을 속상했던 작가님의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소원을 빌고 싶지만 실망할까 봐 말하지 못하는 그 마음을요.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 작가님의 마음은 급하게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꽉 막힌 느낌이었을 거예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작가님 곁에는 조용히,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었어요. 작가님은 그 덕분에 밝게 자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마주하게 된 '행복'이라는 두 글자는 고구마의 달달함처럼 새하얀 눈과 함께 다가왔어요. 얼마나 기뻤을까요.
https://www.instagram.com/reel/DBqmGiux-nf/?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3D%3D


꼬마 '고구마'는 고정순 작가님 그 자체라고 해요. 머리 위 불쑥 솟아있는 잎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 커지고, 화가 나면 파닥파닥, 기분 좋을 땐 흔들흔들 하지요. 리코더 불 때 가장 커지는 콧구멍, 화가 나거나 부끄러우면 불이 들어오는 볼, 치명적인 엉덩이를 가진 매력적인 꼬마 '고구마'의 애칭은 '달달고'에요. '달달고'='달달 고구마' 저는 작가님 인스타 라방을 통해서 '달달고'라는 애칭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전에 저희 첫째가 책을 읽으면서 말했어요. "엄마, 여기 칠판에 적힌 청소당번에 이상숙, 달달고 라고 써있어. 상숙이는 친구 이름이고, 고구마 이름이 달달고 인가?" 라고요. 저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아이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보고 있었더라구요. 어쨌든 매력 만점인 '달달고'를 꼭 소장하고 싶어요. 만나면 꼬옥 안아주고 싶거든요.


"자라면서 나는 무수한 '나'를
만날 것이다.
먼 훗날 나는 이 시절을
'난독의 계절'이라고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고구마, 꼬마 고구마의 난독의 계절을 통해 저마다 자기만의 계절을 회상해보고 앞으로 다가올 계절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경험하지 않으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예쁜 마음을 배우고 싶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