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을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 해 가을날, 부부는 마을 뒷산 밤나무 숲으로 갔어요.
밤나무에서 떨어진 주인 없는 알밤을 주워 모았지요.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말없이 마당 한쪽을 파기 시작했어요.
거기다 다섯 말쯤 되는 나머지 알밤들을 묻었어요.
아내는 길고 긴 겨울을 보내면서 먹을게 모자랄 때마다
마당에 묻어 놓은 알밤을 생각했어요.
드디어 봄이 되었어요.
남편은 마당에 묻어 두었던 알밤을 꺼내
커다란 함지박 여러 개에 나누어 담았어요.
함지박에 물을 붓고 며칠을 가만히 두었어요.
알밤 껍질을 뚫고 연둣빛 새싹이 올라왔어요.


남편은 싹이 난 알밤을 들고 아내와 함께 마을 뒷산으로 갔어요.
밤나무 숲 건너에는 아무것도 없는 민둥산이 있었어요.
부부는 땅속 깊이 구덩이를 파더니 알밤을 정성껏 묻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벌거벗은 산에
며칠씩 오가며 알밤을 묻는 부부를 비웃었어요.
"쯧쯧쯧, 입에 넣을 것도 모자란데, 괜한 짓을 하고 있군."
"이렇게 흉년인데, 재작년에 내다 버린 알밤이 아깝지 않은가?"
"아깝지요. 그래서 먹지 않고 땅에 심은 거예요."
"여보게, 나 같으면 그냥 먹고 말았겠네."
"먹었다면 벌써 거름이 되고 말았겠지요."


" 읽고 난 후에
귀엽고 포근한 그림체가 눈길을 끄는 그림책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공감과 소통을 위해 기획된 <엄마와 함께 읽는 그림동화> 두 번째 이야기, <할아버지의 밤나무>는 '꿈'과 '의지'에 대한 내용이에요. 산골마을의 부부는 뒷산 밤나무숲에서 주운 밤을 모두 먹지 않고 건강하고 튼튼한 것을 골라 싹을 틔워 민둥산에 심었어요. 먹을 것이 귀하던 춘궁기였기에 마을 사람들은 부부를 비웃었지만 부부는 밤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에 정성을 다했지요. 당장의 배고픔모다는 10년, 20년, 30년 후를 생각하는 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의 눈 앞의 것을 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의지'를 생각해야겠습니다.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알밤을 다 먹어버렸다면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자연이 내어주는 밤을 주울 수 밖에 없었을 거예요. 책을 통해 자연이 내어주는 것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다시 되돌려주어 더 큰 것을 피워내는 '꿈'과 '의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얀 구미호의 꼬리처럼 기다란 밤꽃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읽어 보길 추천합니다.
" 작가 이야기
글. 이순원
1957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여러 작품을 쓰고 수상하였습니다.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많은 작품들이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림. 원정민
어린이책의 매력에 빠져 아이들을 위한 기발하고 엉뚱하며 유쾌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린 책으로는 <스마트폰과 절교한 날>, <루리의 우주>, <사춘기 아니라고!>, <아홉살 성교육 사전 여자아이> 등이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