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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책 읽기
앨런 제이콥스 지음, 고기탁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책장에 책읽기에 관한 책이 몇 권 있지만 그 중 제일 몰입도가 있었던 책인 것 같다. 어떤 특정한 책을 권하거나 어떤 분야의 독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아니 독서법에 관한 책이지만 독서 자체를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책이다. 분명 전문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많은 독서가와 작가, 비평가의 글을 인용하지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서 책을 읽는 속도가 아주 느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도 아주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책을 꼭 읽어야 한다, 라거나 책 편식에 대한 호통이 아닌 각자에 맞는 책을 고르는 법, 책을 읽는 법, 읽히지 않는 책을 붙잡고 있는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법, 더 나가 책과 천천히 가까워질 수 있는 법 등을 가볍게 설명해준다. 책 표지에 적힌 것처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글귀처럼 책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느낌이다.
나도 집중력은 떨어지지만 책 욕심은 심한 편이라 포기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읽어내며 괴로워했던 책들도 많고, 아직 책장 한구석에 꽂아두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책들도 많은데 다 알면서도 책에서 전문가가 직접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주자 겁먹고 있던 어린아이가 용서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책의 내용처럼 독서와 교육은 다른 것이다.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길 때 가장 크게 책이 주는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글을 잘 쓰고 싶고, 책을 많이 읽고 싶다는 욕심이 이 책으로 인해 꺾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는 여유를 얻은 것 같다. 누구나 다 읽은 것 같은 베스트셀러에 관심이 가지 않아도 마치 읽지 않으면 혼자만 무지한 느낌이 들어 숙제처럼 머릿속에 박혀있는 수많은 책들을 지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리스트를 만들고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책을 먹어나가지 않아도 좋은 책이라면 언젠가 마음이 동해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책이란 것도 다른 문화적인 것처럼 취향을 타는 것이라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책이 나에게는 수면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읽고 싶은 책을 즐겁게 읽고 도저히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은 마음 편히 내려놓고 다음을 기약하는 쿨한 습관도 들여야겠다. 그리고 책에서 말한 읽었던 문장을 뒤늦게야 이해를 잘못한 것 같아 다시 되돌아가 되새김질하는 반추 독서법은 이미 습관 중 하나지만, 앞으로도 다른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얕은 욕심에 휘둘리지 말고 한 권을 읽더라도 즐겁고 똑똑하게 읽어 재미와 의미를 두루 얻을 수 있는 독서를 해야겠다.
밑줄
p.50 재미없다면 언제든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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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이미 할 말은 다 했다. '마음 가는 대로 읽어라.'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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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경우든 우리는 채을 끝까지 읽을지 중단할지 결정해야 하고, 나 역시 이 결정을 보류한 채 오랫동안 끌어왔다. 실제로 내가 책을 처음으로 중간에 포기한 것이 스무 살 때다. (....) 비록 당시에는 비참하지만, 극적으로 내게 자유를 준 독서 중단 사건을 겪기 전까지 그토록 많은 책 사이를 누비면서 억지로 행군하도록 강요한 의무감을 극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오늘 어떤 책을 한쪽으로 치워둔다고 해서 그 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고, 필연적인 결과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때도 있다.
p.99 너무 빠른 속도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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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다른 지성과 만나는 과정이지 내가 얼마나 빨리 읽었는지 알고서 격려받는 과정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훨씬 더 끔찍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의 책>을 생각해보자. 마음 가는 대로 읽을 권리에 대한 침해는 일단 한쪽으로 제쳐놓고, 이 책이 독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명백한 사실에만 집중하자.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의 책>은 독서 자체는 싫지만 책 읽은 티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지침서다.
p.132 반추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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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작고 사소한 것에 마음을 점령당하면서 이를 토대로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독서가로서 막 발을 디뎠다면, 명작이 아닌 작품을 읽는다고, 또는 한 번에 겨우 몇 쪽을 읽을 정도밖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은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를 먼저 읽고, 차츰 더 긴 집중력이 필요한 장편으로 옮겨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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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토대 위에서 휴는 책 읽는 법을 배우는 학생이 겸손의 미덕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가는 겸손을 통해 특히 중요한 세 가지 교훈을 배운다.
첫째는, 어떤 지식이나 글에 대해세도 경멸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상대가 누구든 배움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셋째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다른 사람을 얕잡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겸손으로 무장하면 독서가는 독서를 통해서 안전하게 지혜를 추구할 수 있다. 즉 진정한 학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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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구절을 읽었는데 나중이 되어서야 그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햇을 수도 잇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당 구절을 다시 찾아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반추 독서가다. 하지만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강력한 문화적 정신적인 유혹이 우리가 가졋을지도 모를 반추 본능을 억누른다. 우리가 쉽게 산만해지거나 성급해진다면, 또는 단지 독서 목록에서 다 읽은 책 제목을 지우고 그 밑에 있는 책으로 넘어가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앞서 읽은 내용을 잊어버리더라도 되새김질을 통해 더 깊이 생각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p.188 편협하게 시작해서 보편적으로 넓혀가는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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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든은 책에 대한 독자의 평가를 다섯 가지로 나눴다.
- '이 책은 훌륭한 책이고, 이 책을 좋아한다.
- 이 책이 훌륭한 책인 것은 알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 이 책이 훌륭한 책으로, 지금 당장 좋아하지 않지만 인내심을 발휘해서 읽다 보면 좋아하게 될 것이다.
- 이 책이 쓰레기임에도, 좋아한다.
- 이 책은 쓰레기이며,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오든이 객관적인 평가 행위를 개인적 선호도에 의한 평과와 구분하고 있음을 주목하자. 아울러 여기에서 오든은 특히 '이 책이 쓰레기임에도 좋아한다'는 식의 평가를 비난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오든은 우리가 '쓰레기 같은 책'을 경멸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작품을 더 많이 즐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