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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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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글 그 자체로 서슴없이 표현한다는 것, 그것 참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드라마나 만화, 각종미디어 매체를 보다보면 화자가 타인에게 나의 마음을 아냐고 울분을 토해낼 때가 있어요. 무슨 상황을 겪었는지 듣고 이입해서 감정을 간접으로나마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진 몰라도, 상황을 떠나 지금 당사자의 마음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지요. 설명을 한다한들 대부분 추상적인 내용에서 그치게되거나 명확한 표현이랄까 기준이 확실한 느낌이 적고요.


 매체의 작품은 대부분 상상뿐이 아닌 개인의 경험에서도 영감을 얻게됩니다. 즉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 말은 비단 미디어 속 뿐이 아니라, 실제로도 사람은 살아갈 때 자기심정을 확실하게 타인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야기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사람은 그런 분야에는 약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동물 중에서 특히나 뛰어난 지성을 지녔음에도 말입니다. 그러나 또, 그만큼 약할지'도'에 포함되지 않는, 이런 내용을 한번쯤 심도깊게 연구 한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것. 우리는 세간에서 그런 사람을 '철학자'라 부르고 그 분야를 '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심리학과는 약간 다른느낌입니다. 연관은 되어있을지도 모르지만)


 주변사람들중에 몇 명이 많이 아프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었던 만큼 아픈 것은 내가 아니었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다가오지않을까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제가 모르는 곳으로 먼저 떠나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아니니까 무섭다는둥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사람이란게 참 간사하게도 이런 생각을 해버리고 말아요. 정말 소중한 사람일지라도 아무튼 내가아닌 타인이 죽음이 멀지 않았을때조차 이렇게 무서웠는데 실제로 내 자신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죽음이란 생물이라면 언제인가 분명히 절대로 하게되는 피할 수 없는 경험인데, 죽고 난 다음 사람은 행동불능에 빠져 무언가를 남길 수 없어 아직까지도 죽음 그 이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고있습니다. 호랑이는 죽고 가죽을남기고 인간은 죽고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입니다. 이만큼 미지의 경험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즐거움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무서운 공포이기도합니다. 


 이 공포를 앞에두고서도 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받아들일 수 없다며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든 잘못 된 것이아니며, 그럴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서부터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죽음이란 순간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라 사람들은 항상 염두해가며 살아가고있습니다만 정말로 죽음이 온다는 것을 깨닫고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눈으로 파악이 가능한 몸의 상태를 척도로 삼아 신체상태에 대해서는 자료가 남아있을지몰라도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당사자의 단순한 감정호소가 아닌 진정한 마음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자료로 남긴 것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쓰고싶더래도 여러가지가 받쳐줘야하니까요. (언어지식이나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거나, 멘탈의 상태 등)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이 책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남겨준, 미야노 아키코, 이소노 마호 작가님들과 옮겨주신 분(김영현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싶네요. 책은 지식의 원천이라고도하지만 사실 겪지 않은 경험을 한번 겪게해주는 새로운 기회라고도 합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삶의 기회를 한번 더 얻은 기분이 들었네요. 어쩌면.. 조금 잔인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작가님들 또한 이런 것을 바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인들에게 꼭 추천해주고싶은 책입니다.


 4월 초였나, 하여간 새벽 1시였는데 2시간정도 걸려 그자리에서 한권을 통째로 다 읽었어요. 책을 읽는 스킬이 아직 무딘 저는 보통 책한권에 2주정도 조금씩 나눠읽기 일쑤인데 신기했습니다.

작가님 두분 다 철학자셔서 그런지, 자신의 신념과 주관이 뚜렷하시고, 서로의 이야기에 태클도 걸고, ㅋㅋㅋ 재미있었어요. 흥미롭기도 했구요. 자신의 이야기만 맞다고 하느냐 라 하면 그건 또 아니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라면 그것을 수긍하고 배워나가는..곧바로 얘기에 적용시키는 당신들이 진정한 지식인...실은 얼마전 지식인 고수가 되었는데 내심뿌듯해했습니다만 이렇게 적고보니 제가 뭘 뿌듯해하고 앉았나 싶습니다. 사실 이건 별로 필요없는 사담입니다.

 

 생생하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마지막엔 정말 눈물 철철흘렀어요. 슬픈 문구가 있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굳이 있다면 응원하는 말?.. 이 책에서는 그냥 철학자 두명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단지 죽음에 굴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아닌, 애초에 죽음에 대하는 자세에 대한 자신의 마음, 죽음이 다가오고있는 것에 대한 뚜렷한 감정변화를 남기고자 목표를 확실히 하여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데, 이미 여기서부터 두사람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이게 프로의식일까요? 어쩌면 아까말했듯 감정호소가 아닌 철학자들이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을 논문처럼 파고드는듯한 이야기라 슬프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진짜 많이 울었네요.


 이 책은 그냥 죽음에 대해 논하기만 하는 책이 아닌 그 전까지 사람들이 살아오던 삶에 대하여, 다시한번 사람의 일생은 어떻게 돌아가고있는가를 철학적으로, 꽤나 구체적으로 예시를 제대로들어가며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기도 해요. 단순히 말로만 이야기 한 것이 아닌 이야기가 나오게된 이유나 상황, 어떻게 흘러가는가가 더 의미깊게 느껴집니다. 

 

제 서재에 오신 분들중 이미 다 읽어보셨을 것 같지만, 혹시 안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읽어보셨음 좋겠어요. 많이 굼떴던 저를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게 해준 책이기도 하니까요! 저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가실 수 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p.s 이거 읽을 때 몰입해서 읽느라 인상깊었던 부분 따로 줄 안쳤었는데 ^.^; 나중에 다시 2회차 읽으면서 치게되면 추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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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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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둔 게 몇 년 전이었는데, 내가 책을 안 읽고 살다가 요즘에나 조금씩 읽다보니

이제서야 다읽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제서야'가 아니라 최근 읽었다.ㅎㅎ;그 전에 읽었던 쪼큼씩을 읽고있었다고 말할 수...있나?ㅋㅋㅋㅋㅋ게다가 전에 읽었던 내용이 기억안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함ㅋㅋㅋㅋ 하이고 잘하는 짓이당! 초크맨 하면, 예전에 영어시간에 선생님이 영단어 맞추기로 행맨놀이를 칠판에 그려서 놀아주신 것이 생각난다. 글자를 틀릴때마다 행맨의 몸이 그려져가는데,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의 안돼 안돼 하는 비명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펴지던 것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행맨게임은 아이들이 하기에 너무 잔인하고 무서운 게임이 아니었나 싶다..;ㅋㅋㅋㅋ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초크맨의 줄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주인공 에드에겐 어릴 적 동네에서 생겼던 살인사건에 대해 잊지못할 기억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나서 오랜만에 찾아온 동네친구 미키와 한 대화를 계기로 회상을 한번 더 더듬게 되고, 마치 그 때로 돌아가기라도 한듯 또 다시 현재의 에드 앞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에드는 진상을 파헤치고자 주변인물들의 상황을 알아보고 추리하며 범인을 찾아내가기 시작한다. 


초중반엔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마지막이 뭔가 내 기준 김빠져서 살짝 아쉬웠다. 초크맨이란 소재가 상당히 중요한 작용을 했는데도 왜 자꾸 맥거핀같이 느껴졌지?!ㅋㅋㅋㅋ난 이 이유가 범인보다는 헬로런과 병원의 할머니가 더 인상깊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제일 무서웠던 건 범인의 정체도 아니고, 초크맨의 악몽도 아닌, 병원의 할머니가 에드보고 도둑놈이라 했던 것과 몇 년 뒤에도 도둑놈이라고 기억하고있던 거였어ㅋㅋㅋㅋㅋ분명 알츠하이머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 할머니였는데ㅠㅠ내가 에드였다면 어른이 된 후 친구들이랑 무서운이야기 술안주로 맨날 꺼낸 이야기중 하나가 됐을거다.


보통 이런 추리물은 범인이 누구인가, 중간과정에 따라서 독자들도 함께 생각해보게되는 재미가 있다. 또, 옛날보다 클리셰와 스테레오타입을 많이 겪어봤기에 더욱더 큰 충격을 받을만한 반전을 요구하니까. 그러다보면 어쩐지 이사람이 범인이겠다 싶은 사람이 절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데, '하지만 이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범일일수도?'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도 아니고 후자도 아니라면, 밝혀지는 범인에 따라 사람마다 감상평이 달라진다. 초크맨의 경우 난 일단 평이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럴법하지만 충격적인 반전?! 이라는 코멘트를 중심에 놓고 보자면 좀 아쉬운. 그래도 소설이라 해도 등장인물들에겐 현실이겠지. 현실에 있을법한 일이라 생각하면 그만큼 무서운 내용도 없지 않을까.


아쉽다는 평과는 별개로 작가님이 글을 흡입력있게 잘 쓰셔서 책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묘사가 엄청 잘되어있어서 아니 묘사라해야하나 분명 내가 읽고 있는 것은 글인데, 연출이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읽다보면 머릿속에 영화관이 하나 차려진것같이 영상이 촤르륵 지나간다. 영화화하면 It계열의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스티븐킹작가님이 극찬하셨다고했는데 생각해보면 두 작가님의 스토리 스타일이 비슷한 것도 같다. (스티븐킹 작가님의 원작은 듀마키시리즈랑, 영화로는 미스트, IT 정도 밖에 못봤지만) 


주인공의 어릴 때와 지금을 왔다갔다하여 시간변화로 설명해주는 것도 꽤 매력적이었다. 당시 에드네 가족 환경이 현재의 그를 있게 했다 라는,(에드 뿐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뼈대를 어림짐작할 수 있게 해줘서 읽을 때의 묘미랄까.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히 잘 풀어서 그런가. 에드의 독백이 어린 친구스러운 생각이다 하고 현실성있다 느꼈다. 내가 말하는 어린 친구스러운 생각이란 건 정신연령이 어리다의 의미가 아니라, 그 나잇대에 할 수 있는 리얼함을 얘기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악을 어디까지 용서하고 어디까지 그럴 수도 있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을 가졌다...


급 뻘글...

사실 종이책이 읽는 희열감도 있고 책장넘기는 것도 좋은데, E-book 도 언젠가의 미래를 위해

읽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그냥 가볍게 흥미가 가는 소설은 E-book을 사서 보고있다.

책장도 많이 부족하다. 예전에는 읽기 힘들었는데 어찌저찌 일주일간 다 읽었네. 글도 읽다보면 읽는게 느나보다. 맨날 그 전내용이 바로 기억이 안나서 다시 전장 뒤적이고 그랬었는데(실시간복습ㅠ) 요즘은 좀 나아졌다. 글이 글로 보인다. 옛날엔 글이 그냥 검정색 얼룩무늬로 보였는데ㅠㅠㅠ허허 독서에 재미가 조금씩 붙고있다. 열심히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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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위그와 마녀 다이애나 윈 존스의 마법 책장 1
다이애나 윈 존스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윤영 옮김 / 가람어린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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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위그와 마녀」는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원작을 쓴 다이애나 윈 존스 작가님의 마지막 유작이라고 한다. 이 작품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이어, 얼마전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아야와 마녀(ア-ヤト魔女)」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방영됐다.



트레일러 PV


트레일러 PV를 봤는데 깜찍하네 ㅋㅋㅋㅋ싶어 원작이 궁금해져서 한번 읽어봤음!

간략히 내용을 설명하자면 성 모어발트 고아원에서 친구인 커스터드와 행복하게 지내던 이어위그가 벨라라는 성격나쁜 마녀와 악마를 부리는 맨드레이크에게 입양되고, 벨라는 이어위그를 자식으로 잘 대해주긴 커녕 허드렛일꾼으로 부리니, 이어위그가 자신의 즐거운 삶을 다시 찾기위해 고양이 친구 토마스와 함께 노력하는 좌충우돌 모험이야기이다.


구입했을때 붙어있던 띠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다섯 번이나 꼼꼼히 읽었답니다."

내가 알기로 미야자키 감독님께서는 서정적인 인간묘사를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고있었으니ㅎㅎ 

책을 피기전에 기대감을 높여주시는군~ 했다.


책 속 이어위그의 성취를 위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당돌함이 마음에 든다. 

귀여운 집게머리 'ω' '이어위그'라는 이름도 집게벌레라는 의미가 있다지.

본문에서 나오는 셰퍼드 파이(고기파이)가 무슨 맛일지 상상해본다...

중간중간 음식에 대한 표현도 맛깔 스럽고, 마법재료를 생생히 묘사한 부분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 

뭣보다 삽화가 엄청 사랑스럽다.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o^



마지막에 맨드레이크의 변화가 의외였는데 그 부분도 좋았다.

오랜만에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당. 가볍게 읽기 괜찮은 책이었음. 

애초에 어린이 도서지만ㅋㅋㅋ 가끔은 이런걸 읽어도 나쁘지 않다.


갑자기 삐삐 드라마 옛날에 티비에서 방영해주던게 생각나네.... 

보고싶다. 사탕가게에서 사탕을 잔뜩사는 편 재미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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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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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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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이따금씩 깊은 사색에 잠기곤 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내면에서 흐르는 이야기들을 글로 적으세요 하고 듣는다면, 그게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같은 한국어를 쓰더래도 내 안의 표현으로 남을 이해시키도록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정세랑 작가님의 작품이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공감이 가도록, 또 명료하게 문장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명료하게 표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딱한 글도 아니며, 오히려 읽는 입장에서는 감성에 젖어드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정세랑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창 작가님원작의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 주변에서 화제가 되었던 시기였다. 장난감 물총이나 검으로 세균퇴치를 하는 보건선생님이란 이 특이한 소재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작품이지? 하고 건드려볼만한 느낌이다. 홍보영상을 보고 궁금해져서 1화를 봤다가 생각보다 심오한 내용에 잠시 끝까지 보는 것을 미뤄뒀다. ㅋㅋㅋ


어느 날, 읽을 책을 고르다보면 정세랑 작가님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보건교사 안은영 보다 말았는데, 원작을 먼저 읽어볼까?'하던 찰나, 작가님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더 마음이 강하게 이끌렸다. 어쩌면 평소에 내가 자신의 무언가를 잃어버려가면서라도 하고싶은 일에 용기를 내는 인어공주 이야기를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코랄의 고운 표지가 눈에 들어와서 였을지도 모르고.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단순히 이야기를 설명해준다기보다는 독자들이 읽으면서 그 문구를 한번더 곱씹어보도록 유도할만한 묘사나 내용들이 많다. (작가님의 글 스타일이 원래 그런거려나?아직 다른 책을 안읽어봐서 모르겠다.) 작가님이 평소에 얼마나 생각을 깊게 하시는지, 또 얼마나 그 내용을 글로 잘 표현하시는지가 이 단편집에 매우 잘 드러난다. 로맨스도 조금씩 섞여있어서 그런가 읽고있으면 마음이 막 간질간질하당ㅎㅎ


장르가 SF면 보통 미래 기술(또는 데우스엑스마키나), 주변인물의 희생, 주인공의 각성이 주가 되어 '짠~문제가 해결되었어요. 주인공은 어떻게되었고…, 주변인들은 어떻게 되었으며….' 등등 표면적 결과, 인물간의 관계나 감정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역시 중심은 그 세계관의 배경이 어떻게 변했는가에 무게가 더 실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내용은 다른 책들과 조금 차이점을 두게 된다. 문제를 대면하거나 타파하는 것 자체의 연대기가 무대가 아닌, 그것을 타파해가는 사람들의 마음속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흘러간다. 문제가 어떻게 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여러 문제가 일어나는 그 곳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마음으로 상황을 임하며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있어 읽다보면 이입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미래배경에 대한 설정이 설득력도 있고.


깔끔한 느낌이라 읽기 좋았다. 이런 장르의 글은 내 기준 대개 등장인물들간 언어의 캐치볼에서 날카로움이 느껴지거나 악한 감정이 보이거나 해서 불쾌감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는데,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그런 불쾌감이 없었다. 읽기 편안한 책이었다. 독서를 하며 이런 담백함은 처음 느껴본다 ㄷㄷ 신기했어...! 뒤에 해설과 작가님 후기가 따로 있는데 읽어보니 왜 이리 편하게 읽었는지 납득이 갔다. 작가님이 일부러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글에 장치를 해둔거구나. 끝까지 위트있고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본 소설들도 재미있었지만 해설과 후기를 읽는 것도 이 책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 감상으로「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문장력이 굉장한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몰입도도 높아서 금방 읽었다. 그리고 몰랐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8년이란 시간차가 있다던데 지금 읽어도 불편한 부분없이 내용이 너무 좋다..! 다 좋았지만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11분의 1] [목소리를 드릴게요].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구매해서 볼 예정~ 재밌었당!


손가락은 언제나 가장 곤란한 곳에 있었지. 독재자가 즐겨 쓰는 모자 벨트에 끼어 있었고, 길고 긴 사막 길을 가는 상인의 수통 속에 들어 있기도 했고, 과학자의 완두콩 밭에 묻혀있었고,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사람의 속옷 겹겹 사이에, 첨탑의 종 속에, 기와의 이끼 안에, 보석상의 펠트를 댄 서랍에… - P11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 각지고 나약한 몸을 제가 사랑하긴 했어도, 사실 오빠와 대화만 할 수 있다면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P33

"너는 오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널 한번 더 본 것만으로 그 추운 곳에 가서 죽을 수 있어." - P38

과거의 풍요로움이란 굉장히 기분 나쁜 풍요로움이었던 것 같다. 이어 작은 동물원의 흔적을 찾았을 때는 여러 사람이 토했다. 윤리는 본능적인 비위에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변화하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 P82

며칠 전에는 아바의 <I have a dream>을 틀어주었는데, "나는 천사를 믿어요.(I believe in angel)" 라는 가사에 인면어들은 괴성을 지르고 천사만 깔깔 웃었다. - P122

학설을 뒤집고 또 뒤집은 젊은 학자들은 원래도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 P145

수용소는 연선을 위해 지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끊임없이 바라봐야하는 얼굴의 여왕이 다스리는 태평성대였고 백성들은 그저 찬탄했다. - P188

하필이면 사랑이 일목 대상인 일목인처럼.
물거품이 될 각오가 선 인어처럼. - P215

날다람쥐가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날다람쥐를 위해 죽을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느꼈다. 나방이나 노린재같은, 날다람쥐보다 보잘 것 없고 아름답지 않은 종을 위해서라도. - P227

영광은 분명 존재한다. 영광의 좁고 동그랗고 하얗게 빛나는 영역 안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에게 영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다. 정윤은 영광을 원한다. 기억하는 한 언제나 그래왔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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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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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는데 제목 읽자마자 신경쓰여서 펀딩했던 책입니다. 표지 디자인 실물도 마음에 들어요! 첫부분만 조금 훑어봤는데 벌써 뒷내용이 궁금해지구요. 아직 읽을 책이 몇권 남아있어 제대로 읽게되는 것은 조금 나중이 되겠지만 얼른 그 순간이 오면 좋겠네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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