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와 폐허의 땅
조너선 메이버리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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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마다 여름이면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무서운 영화나 앞다퉈 개봉한다. 최근에 나온 영화 '랑종'이나, 지난달 개봉한 영화 '여고괴담6'이 대표적이다. 나이를 먹더니 조금은 강심장이 돼가는 모양인지, 이 두 편의 공포영화로 나의 쫄보게이지가 한층 낮아진 느낌이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본 좀비소설 '시체와 폐허의 땅'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청소년 도서상인 시빌스상 수상을 비롯해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최고의 영어덜트 소설 및 가장 인기있는 도서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 중에 있는 '시체와 폐허의 땅'

우리가 기존에 알던 좀비에 대한 개념을 바꿔줄 소설 '시체와 폐허의 땅'을 통해 책의 재미를 느껴보도록 하자.

 

시체와 폐허의 땅에는 한때는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죽어버린 시체인 좀비가 산다. 열다섯의 베니가 거주하는 마운틴사이드시에는 철조망 너머는 좀비들이 있는 시체들의 땅이 코앞이다.

 

베니는 첫번째 밤에 좀비로 인해 아빠를 잃고, 또 좀비가 되어버린 아빠에게서 엄마를 잃었다. 너무나 오래전 일, 베니가 어린아이였을 때의 일이나 모든 기억이 정확하진 않을 테지만 베니는 똑똑히 기억한다. 좀비가 되어버린 아빠가 엄마를 공격할 때, 형 톰은 어린 자신을 안고 집에서 벗어나 도망을 쳤다는 것을.

 

형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베니에게 형은 겁쟁이일 따름이다.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피와 아픔으로 가득한 쓰라린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마을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은 첫째 날 밤 이후 언제라고 좀비들이 공격할지 모른다는 위험을 안고 산다. 그렇기에 좀비의 공격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겨났다.

 

좀비들이 철조망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둔 담장을 따라 걸으며 철조망을 흔들어보아 뚫리거나 녹슬어 약해진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는 담장 점검이라든지, 수레에 실려 온 좀비 시체를 내려 채석장 아래의 불구덩이에 던지는 일을 하는 시투꾼, 산 자의 얼굴로 유추해서 좀비가 된 후의 모습을 그리는 좀비 초상화가, 그리고 베니네의 가족사업이라 할 수 있는 좀비 사냥꾼이 대표적이다. 가족이라 해봤자 이젠 이복형제 톰뿐이만.

 

마을 사람들은 형 톰이 이 마을 최고의 좀비 사냥꾼이란다. 그러나 베니는 믿기 어려웠다. 자신에겐 단 한차례도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베니는 과연 톰이 좀비들을 죽일 수 있을지 의심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닭장에 살던 닭이 여우를 공격하는 것 같은 모양새일 것 같았다. (p. 48)

 

형에 대한 오해로 형과 사이가 좋지 않던 베니는 형을 따라 사냥꾼이 되기 위한 도제견습을 받게 된다. 그들이 사는 마을 마운틴사사이드시는 열다섯 살이 되면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일을 해야만 하는 룰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직업을 돌고 돌아 형에게 와서 형처럼 좀비 사냥꾼이 되겠다고 했고, 함께 다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간에 자신이 형에 관해 알고 있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베니의 톰은 단순히 좀비를 죽이는 사냥꾼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톰은 좀비가 되어버린 가족을 둔 이들의 의뢰를 받고 일을 수행했다. 좀비로 변해버린 그들 또한 과거에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한 가족의 한 구성이었음을 잊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름의 영결식을 해주며 떠도는 삶을 종료시켜주는 것이다. 의뢰자들이 건네준 좀비로 변해버린 모습을 유추해서 그린 좀비 초상화와 그들이 예전에 살던 집의 위치와 관련된 정보를 받아 그들을 찾아내 숨을 거둘 수 있도록 조력해 주는 것이다. 한때는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좀비들에게도 마지막까지 예를 다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와 달리 베니가 존경한다고 마지않던 찰리와 해머같은 좀비 사냥꾼들은 좀비가 사람이었던 것을 무시하고 보이는 족족 총을 쏘고 이미 죽어버린 좀비의 시신을 칼로 자르며 희열을 느낀다. 자신이 행한 일을 영웅담처럼 늘어놓으며 세상 아래 자신들보다 더 강한 자는 없다고 여긴다. 그런 그들에겐 더없이 추악한 모습이 감춰져 있었으니, 바로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좀비와의 도박 결투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랜드라는 곳에서는 잔혹한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소설은 베니와 톰 형제가 감춰둔 진실을 파헤치고 종전에는 어린이를 구해내는 일련의 사건을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극의 흥미를 높여준다.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소설의 저자 조너선 메이버리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집필하고 브램스토커 상을 5번이나 수상한 작가답게 좀비소설이라는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와 함께 가족소설, 성장소설의 느낌 또한 강하게 어필해 준다. 십대간의 사랑 이야기 또한 책의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과연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사악한 수를 쓰는 인간들을 좀비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사고능력 없이 다만 좀비니까 좀비로 존재한 그들이 그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베니는 이제는 안다. 형은 겁쟁이가 아니라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시체와 폐허의 땅'은 어린 꼬마가 커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 한다.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웜 바디스'는 인간과 좀비와의 사랑을 그려냈다면, '시체와 폐허의 땅'은 가족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영화가 개봉되는 그날, 기꺼이 영화관을 찾아가 소설과는 또 다른 영화의 매력을 맘껏 느껴볼 예정이다.

 

연일 찌는듯한 무더위가 지속되는 요즘 같은 날씨에 딱 어울리는 좀비 소설 '시체와 폐허의 땅'으로 시원한 여름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는지.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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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 - 풀꽃 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편지 아우름 50
나태주 지음 / 샘터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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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이 스물 네자의 글자가, 읽는 이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게 한다.

미사여구로 치장한 글이 아니라 담백해서 더욱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고 흔한 것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시인의 감각을 사랑한다.



'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는 풀꽃 시인 나태주님이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은 금싸라기 같은 내용이 가득한 책이다. 그가 학교로 문학강연에서 만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해주었던 말이고, 앞으로 하게 될 말이다. 그리고 나태주님의 말씀을 빌려 나의 두 아이에게 전하고픈 이야기이다.


'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 책에는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은 1945년생인 일흔일곱의 시인이,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에게 해주고픈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자기 자신을 키운 것은 마이너였다고 말하는 나태주 시인, 그는 자신을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원동력으로 결핍과 부족함을 꼽고 있다.


그 누가 마이너(minor)가 되기를 소원할까 싶다. 누구든 메이저(major) 되기를 꿈꾸는 것이 인간이라면 으레 갖게 되는 바람이 아닐까? 야구선수라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을 꿈꾸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도 메이저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있다. 나는 그들 중 금수저로 태어나 획득한 금수저 운명이 아닌, 마이너를 거쳐 메이저가 된 자를 높이 평가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한 단계씩 단계를 딛고 일어나 마침내 메이저가 되는 것이 요즘 아이들 말로 까리해 보인다. 멋져 보인다.

책 속에서 나태주님이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섯 가지 추려 전해보고자 한다.


1. 꿈을 그리다 보면 마침내 그 꿈과 닮게 된다

성공적인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린 시절에 나는 특별한 꿈이 없는 아이였다. 꿈이 있었다고 해도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나약한 심성의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성공적인 삶을 살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라고 말한다.


시인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은 이렇다.

"성공이란 청소년 시절에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어 그 일을 평생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늙은 사람이 되었을 때 자기가 꿈꾸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시인의 말씀처럼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시인이 주변의 후배들에게 '재능이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열정을 없음을 슬퍼해라'라고 충언하는 말씀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 양 묵직한 한방을 준다.



2. 결핍을 견뎌낸 그 자리엔 예쁜 꽃이 피어날 것이다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마이너였고 결핍이라 말한다. 결핍은 본래는 있었는데 나중에 없어져서 가난하고 부족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핍이란 녀석에게 잠식당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결핍은 역기능만이 아닌 순기능 또한 지니고 있다. 결핍을 극복하며 더 단단한 뿌리가 자라난다는 것.


시인은 시련이나 결핍 없이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진정으로 성공하고 싶으면 시련이나 결핍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시기를 거치게 되면 풀이나 나무들이 겨울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예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눈부신 날이 온다는 것이다.



3. 지금 여기 당신 옆에 있는 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라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 있다. 주는 것만큼 받는다는 이 말은 요즘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손뼉도 마주쳐야 한다던데 일방적인 베풂과 호의는 어딘가 모양새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지금 나하고 사귀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을 빌려 다시금 당부하는 말이다.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첫째는 지금 여기, 둘째는 옆에 있는 사람, 셋째는 그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4. 행복을 위해 만족하는 삶을 살자

부러움은 남의 것이고, 행복은 나의 것이다. 한국인이 잘 사는 데도 불구하고 행복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그는 만족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만족이 있어야 행복은 뒤따라오는 것인데 우리들이 바라는 이상향은 너무나 높고 멀고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만족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라고 조언한다. 작은 일에 감사하고,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에 감사하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좋은 쪽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행복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



5. 근면 성실과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자

중학교 시절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시기로 중요하다. 중학교 시절에 그 사람의 성인으로서의 전체적 윤곽이 잡힌다고 하니 아무쪼록 그 시절을 잘 보내야 할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젊은 세대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당부했다 한다.

차를 마시는 백성은 흥한다(차를 즐겨 마셔라),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부지런해라), 기록하기를 즐겨 해라(메모하는 습관을 가져라)


총 4장의 테마로 구성된 '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는 1장은 나태주 시인이 유년시절부터 교직생활을 하고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과거와 현재가, 그리고 미래가 담겨있다. 2장과 3장은 나태주 시인이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고, 마지막 4장에서는 그가 그간 써온 시 중 17편의 시와 그에 대한 시인의 해석이 담겨있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 한다.

더이상 우리는 수많은 행복들 중 오로지 행운만을 찾고자 공력을 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확천금의 헛된 바람이 아닌, 일상 속 작은 것에서 행복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찾게 되는 오늘의 일상 속 작은 행복 하나_

나는 오늘 유치원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테니

이따 킥보드를 가지고 데리러 오라고 당부하는

아이의 함박웃음 안에서 작은 행복을 느껴본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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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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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가진 자들도 쉽게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죽음의 영역일 것이다.

'생'이 있으면 '사'는 반드시 뒤따르는 것인데, 그 끝을 예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생의 끝을 알 수 있다면 준비 없는 죽음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여기, 단명될 운명에 처한 한 소녀가 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많을 열아홉 소녀.

소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 투쟁하는 이야기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하자.

 

반신(아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소문이 자자한 '북두'라는 자는 수정이 단명의 운을 타고났다고 한다. 입시 전문 점쟁이를 업으로 하는 자인데 대학에 관한 말은 일절 없고 수정이 스무살에 죽는다니. 앞으로 살 날이 1년이 채 남지 않았단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거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을까?

'단명소녀 투쟁기'는 단명의 운을 타고난 열아홉 살의 구수정이란 이름의 아이가, 자신 앞에 바투 다가온 죽음에게서 멀어지기 위한 사투를 비현실에 가까운 몽환적이고, 독특한 서사구조로 그려낸다.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이라는 설화는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한다. '단명소년이 수명을 관장하는 노인들에게 찾아가 자기 명을 늘려 달라'라고 하는 것이, 열아홉에 죽는 것은 뭔가 불합리하다고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자 하는 수정에 투사되어 있다. 사람의 명을 늘리는 연명설화를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인데, 내가 알고 있는 설화 중에는 자신을 매정하게 버린 부모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저승의 생명수를 얻고자 떠난 바리데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수정의 죽음을 예언한 북두라는 자가 말하길, 죽음과는 다른 반대 방향으로 가야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무살은 죽을 나이가 아니야'라며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던 수정은 살고자 하행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려 한다. 그렇지만 바리데기처럼 수정의 여정 또한 순탄치만은 않는다.

 

아마 수정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어줄 역에서부터 였을까? 그때부터 수정에게 펼쳐주는 일들은 놀라울만한 일들, 아니 기이한 일들의 연속이다. 누군가 '지금이야'라고 말하며 지나가던 개의 등을 떠민 것처럼, 느닷없이 주인 없는 우락부락 사자의 형태를 한 개가 수정의 목덜미를 몰고 도착한 미지의 세계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그 낯설고 이질적인 장소에서 죽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는 '이안'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만나가 된 것도, 공동 운명체가 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주인 없는 집 한 채도, 그 집 문을 두드리며 배고프고 아우성치는 일곱 명의 아이들과 일 공명의 노인들까지. 어느 하나 현실적인 것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억지스럽고 모호한 상황이 벌어진다.

 

 

가진 것 없는 중에도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그들 앞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습을 또 한 번 드러낸 북두는 '저승으로 가서 저승의 신을 붙잡으라'고 조언한다. 그때부터는 고난의 연속, 살고자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위험천만한 순간이 펼쳐진다. 모든 것은 질서를 맞춰야만 한다는 듯 새로 태어난 자가 있으면 새로 죽어나가는 자가 있는 것이다. 인간과는 다른 모습으로 수정과 이안을 공격하고, 마침내 수정은 저승의 신을 무너뜨리게 된다. 단명할 운명에 처한 수정이 죽지 않으니 해피엔딩이라 봐야할까?

 

길지 않은 호흡의 이 소설이 책을 읽는 내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다가고, 독특하면서 기이함에 그 뜻을 헤아리고자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호기롭게 등장한 신예 작가 현호정, 그녀의 이러한 흉내 내기 어려운 독특함이 무장된 소설이기에 '제1회 박지리 문학상'의 영예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호함 속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보려 한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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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식당으로 오세요 (2종 중 랜덤)
구상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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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로 7월 16일부터 만나볼 수 있는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드라마로 접하기에 앞서서 책으로 먼저 만나보았다. 배역을 맡은 배우들을 알고 봐서인지 책을 보는 내내 그 배우의 음성과 행동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녀가 소원을 들어주고 대가를 받는다는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고 식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어떠한 소재와 스토리로 구미를 당기게 해줄지 궁금했다. 더불어 마녀라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과 누구에게나 친숙한 음식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믹스매치할 것인지도.

당신은 정해진 운명을 바꿀 기회가 오면 선뜻 바꿀 용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수라고 한다면?

 

좋지 않은 일은 왜 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걸까?

여기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는 것도 모자라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는 갑작스럽게 깡촌으로 인사발령이 내려진 비운의 여주인공 '진'이 있다. 평소 같으면 식당을 차리자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넘겼을 그녀지만 앞길이 첩첩산중인 그녀가 취할 선택지는 딱히 없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것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고 식당을 인수받게 되었지만 왜인 걸 사기꾼에 속아 대차게 말아먹고 만다.

'급처분, 임대문의'라는 문구를 적어 유리문에 붙여놓고 눈물을 훔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진앞에 그녀의 구세주가 되어줄 마녀가 나타난다. 마법을 부리려면 장소가 필요하니 장소 제공을 해달란다. 흡사 이것은 동업하자고 하는 건데,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말이지... 과연 진은 자신을 마녀라고 칭하는 이 여자를 믿어야 할까?

믿어야 한다!! 지금 진은 찬밥 더운밥 가릴 군번이 못된다. 사거리에 볕도 잘 들지 않은 영끌한 식당을 자신의 분신인 양 안고 가야 한다.

여기는 마녀식당. 손님들에게 소원을 이루어주는 요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 소원이 사랑을 이루는 것이든, 부자가 되는 것이든, 복수를 하는 것이든, 손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요리로 만들어 대령한다. 효과는 백 퍼센트. 하늘에 맹세코 장담하는 바다. (p. 23)

진의 엄마는 평생을 한량처럼 살고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남편의 병수발을 위해 시골로 떠났고, 이제 식당에 남은 사람은 진 하나. 아니 정정하자면 이제는 마녀 포함 둘이다.

그렇지만 진은 바지 사장이었던 것일까? 온갖 허드렛일은 진의 몫. 마녀는 진을 조수 부리듯 한다. 마녀의 가르침과 더불어 마법의 책에 나온 레시피를 통해 소원을 원하는 자들을 위한 세상에 둘도 없을 맛 좋고 환상적인 음식으로 탄생한다.

젊은 날 다 바쳐 물심양면으로 학업 뒷바라지를 해줬더니 바람이 나서 자신을 떠나버린 연인을 잡고 싶다던 여자를 위한 맵고 달콤한 맛이 공존한 '핫, 핫 초콜릿'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과 방관하는 자들만 있고 내 편 하나 없는 학교라는 공간에 진절머리가 난 남학생을 위한 '네 영혼을 위한 토마토 스프'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대학을 나왔건만, 막상 사회에 나와도 별 볼일 없는 자로 전락한 비운의 사나이를 위한 '힘을 내요, 영계백숙'

살아생전 아들이 장가가는 것이 소원인 여든의 노인을 위한 '연분말이 잔치국수'

막다른 벽에 도착한 이들 앞에 운명처럼 등장한 '마녀식당'

이 식당에서 자신의 소원을 말하면 그 소원에 맞는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진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음식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음식에 대한 대가는 필수이다. 그것은 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이들이 음식을 먹고 치렀던 대가로 내놓은 것을 살펴보면, 목소리와 손가락 일부 그리고 기억력까지. 상상을 초월할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소원이 이뤄지는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이 드라마틱한 전개는 삶의 우연이 빚어낸 결과였을까? 아니면 정말 마녀식당의 요리에 깃든 마법의 힘 덕분이었을까? 어쩌면 삶 자체가 마법인지도 몰랐다. (P. 200)

 

마녀가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진을 선택한 이유, 마녀가 많고 많은 식당 중에 쫄딱 망한 회생 불가한 식당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면 당신 또한 책의 즐거움에 퐁당 빠져보시길.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는 것처럼 마녀와 진의 관계를 주목해보는 것 또한 책의 재미를 배가시켜줄 것이다.

당신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겠지만 진 역시 마녀가 된다. 마녀는 유전되는 것이라는데...... 이로써 마녀와 진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녀가 진의 식당을 찾아왔던 건 일종의 마녀 수업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노력 없는 결과는 없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의 녹록지 못한 삶은 한 번씩 우리를 판타지한 세계를 염원하게 만든다.

당신과 내가, 지금 이 순간 마녀식당을 찾는 그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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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칼의 아주 특별한 질문 비룡소의 그림동화 292
데보라 프리드만 지음,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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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삶은 편의성과 화려함을 주지만, 자연의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여유로움을 주지는 못한다.

요 근래에 여섯 살 우리 집 꼬마 아이는 자연의 멋과 맛을 즐기는 듯하다.

교외를 벗어나 찾게된 물이 깨끗하고 시원한 계곡에서 만난 올챙이에게 푹 빠져들거나,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제법 풀이 무성한 곳에서 만난 달팽이의 움직임에 절로 배시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올챙이가 뒷다리가 나와 개구리로 변해가는 과정을 초롱초롱한 눈에 담고, 달팽이가 상추를 먹고 초록색 똥을 누는 모습에 신기해한다.

이런 게 자연이 주는 삶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번에 만난 그림책 '지렁이 칼의 아주 특별한 질문'에 나오는 칼이라는 이름의 지렁이 친구도,

아이에게 작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 말을 걸어온다.

"만나서 반가워 :D"

지렁이는 작은 미물이다. 눈을 크게 뜨고 봐야 찾을 수 있고, 만나도 썩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한낱 작은 미물일 따름이다. 그런 지렁이를 그림책 '지렁이 칼의 아주 특별한 질문'에선 조금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칼이라는 이름을 지닌 지렁이 친구를 만나고자 한다.

 

땅속에서 살면서,

부지런히 꼬물꼬물 움직이며,

땅을 파고,

굴을 뚫고,

떨어진 나뭇잎을 먹어치우고,

뭐든지 삼키고 뱉어내면서,

온갖 지저분한 걸 보슬보슬한 흙으로 갈아엎으며

날마다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 주어진 역할이 있듯이 지렁이 칼 또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낸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지렁이의 습성과 사는 환경과 같은 사실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

그림책이지만 자연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재미와 감동을 더해 알게 되는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들쥐가 건넨 질문에 지렁이 머릿속에 작은 종이 울리는 듯하다.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야?"

지렁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방황 아닌 방황을 하기 시작한다.

"금방 알아 올게."

그렇게 칼의 모험이 시작된다. 자신이 왜 지렁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단순하지만 심오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모험 중에 만나는 다른 동물 친구들은 그들이 하는 일의 나름의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그럴수록 초조한 지렁이 칼.

칼이 해답을 찾기 위해 떠난 사이 시간은 흐르고 흘러, 흙은 딱딱해지고 땅이 바짝 말라 쩍쩍 갈라져만 간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동물들에게 뻗어나간다.

칼은 방황하는 동물들을 보며, 자신이 왜 지렁이 일을 하는지, 누구를 위해 지렁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부지런히 오물오물 먹어치우고 뱉어내고, 굴을 뚫으면서, 딱딱해진 땅을 전처럼 보들보들하게 만들어간다.

모든 동물들은 이제 안다. 지렁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해왔기에 자신들의 삶이 더 풍요로울 수 있음을.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에 대한 대답과 함께, 우리 스스로 지구에 도움이 되는 일을 수행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따뜻한 그림책이라 할 수 있다.

장난감도 좋지만, 한 번쯤 야외로 나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렁이 칼의 아주 특별한 질문'을 통해 자연을 더욱더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한 뼘 더 성장한 듯해 기분이 좋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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