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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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가진 자들도 쉽게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죽음의 영역일 것이다.

'생'이 있으면 '사'는 반드시 뒤따르는 것인데, 그 끝을 예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생의 끝을 알 수 있다면 준비 없는 죽음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여기, 단명될 운명에 처한 한 소녀가 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많을 열아홉 소녀.

소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 투쟁하는 이야기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하자.

 

반신(아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소문이 자자한 '북두'라는 자는 수정이 단명의 운을 타고났다고 한다. 입시 전문 점쟁이를 업으로 하는 자인데 대학에 관한 말은 일절 없고 수정이 스무살에 죽는다니. 앞으로 살 날이 1년이 채 남지 않았단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거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을까?

'단명소녀 투쟁기'는 단명의 운을 타고난 열아홉 살의 구수정이란 이름의 아이가, 자신 앞에 바투 다가온 죽음에게서 멀어지기 위한 사투를 비현실에 가까운 몽환적이고, 독특한 서사구조로 그려낸다.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이라는 설화는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한다. '단명소년이 수명을 관장하는 노인들에게 찾아가 자기 명을 늘려 달라'라고 하는 것이, 열아홉에 죽는 것은 뭔가 불합리하다고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자 하는 수정에 투사되어 있다. 사람의 명을 늘리는 연명설화를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인데, 내가 알고 있는 설화 중에는 자신을 매정하게 버린 부모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저승의 생명수를 얻고자 떠난 바리데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수정의 죽음을 예언한 북두라는 자가 말하길, 죽음과는 다른 반대 방향으로 가야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무살은 죽을 나이가 아니야'라며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던 수정은 살고자 하행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려 한다. 그렇지만 바리데기처럼 수정의 여정 또한 순탄치만은 않는다.

 

아마 수정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어줄 역에서부터 였을까? 그때부터 수정에게 펼쳐주는 일들은 놀라울만한 일들, 아니 기이한 일들의 연속이다. 누군가 '지금이야'라고 말하며 지나가던 개의 등을 떠민 것처럼, 느닷없이 주인 없는 우락부락 사자의 형태를 한 개가 수정의 목덜미를 몰고 도착한 미지의 세계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그 낯설고 이질적인 장소에서 죽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는 '이안'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만나가 된 것도, 공동 운명체가 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주인 없는 집 한 채도, 그 집 문을 두드리며 배고프고 아우성치는 일곱 명의 아이들과 일 공명의 노인들까지. 어느 하나 현실적인 것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억지스럽고 모호한 상황이 벌어진다.

 

 

가진 것 없는 중에도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그들 앞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습을 또 한 번 드러낸 북두는 '저승으로 가서 저승의 신을 붙잡으라'고 조언한다. 그때부터는 고난의 연속, 살고자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위험천만한 순간이 펼쳐진다. 모든 것은 질서를 맞춰야만 한다는 듯 새로 태어난 자가 있으면 새로 죽어나가는 자가 있는 것이다. 인간과는 다른 모습으로 수정과 이안을 공격하고, 마침내 수정은 저승의 신을 무너뜨리게 된다. 단명할 운명에 처한 수정이 죽지 않으니 해피엔딩이라 봐야할까?

 

길지 않은 호흡의 이 소설이 책을 읽는 내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다가고, 독특하면서 기이함에 그 뜻을 헤아리고자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호기롭게 등장한 신예 작가 현호정, 그녀의 이러한 흉내 내기 어려운 독특함이 무장된 소설이기에 '제1회 박지리 문학상'의 영예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호함 속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보려 한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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