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나의 고장난 시간
마가리타 몬티모어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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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의 고장난 시간은 19살이 되던 생일 때부터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우나의 여정을 담고 있다. 생일이 되는 12시가 되면 우나는 미래로, 과거로 옮겨진다. 어떤 때에 떨어지는 지도 모른 채 변화를 맞이한다. 절대 원하는 시간대로 갈 수 없으며 일방향적이지도 않다. 이 장치로 소설은 특별해진다.

모든 우나는 타임워프에 대비해 편지를 써두기 시작한다. 편지에는 지금 네가 사랑하는 건 누구이고 어떤 곳에 있고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등의 정보가 쓰여있다. 미래와 과거를 대략적으로 알고, 그에 대한 힌트까지 있다면 우리는 인생을 마음대로 쌓아갈 수 있을까?

시간 자체가 재앙일 수도 있다는 시작의 말처럼 우나는 무너진다. 젊음을 잃고 무너지고, 사람을 잃고 무너지고, 무얼 잃었는지도 알지 못해 무너진다. 이전의 우나가 부탁한 일이 미래를 만들고, 그 미래를 막기 위해 이후의 우나에게 부탁하고, 이 굴레는 결국 지금을 만든다.

​ 우리가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본인의 인과를 알기 때문이다. 팔꿈치에 이 흉터는 몇 살 때 어떻게 생겼었지. 다음 주쯤 생리를 하겠지. 요즘엔 초록색이 좋더라 등등. 겉모습과 취향까지도 우리는 그 변화를 오롯하게 '나'로 겪었기에 인정한다.

우나는 반복되는 시간 여행에 자신의 경험 그라데이션을 잃고 혼란을 겪는다. 지금 내 애인이 왜 내 애인인지, 그래서 사랑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나 자신을 잃은 기분으로 나 자신이 된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지만 차라리 나라서 더 복잡하다.

​ 혼란이 커질수록 우나와 우나는 (우나에겐 수많은 우나가 있으니) 더 대비한다. 적어두는 편지는 자세해지고 꼭 대비해야 하는, 이것만은 피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생긴다. 나비효과라는 말도 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이 행동이 어디까지 퍼질지 모른 채 산다.

허나 미래를 안다고 해서 모든 것에 대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십 살의 나는 오십 살까지의 밖에 모르며 그걸 열아홉의 나에게 알려준다고 해서 사랑받는 정보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파도 속에서 수많은 평범한 이별과 사랑을 겪는다. 타임워프를 한다고 해서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간, 1년이 1년인 시간. 이 시간에 완벽히 적응한 사람은 없다. 너무 빠른 시간이 있고, 너무 느린 시간이 있다. 어떤 이별은 그간의 시간을 압축해서 태어나고 어떤 이별은 그간의 시간을 아깝게 만든다. 시간 여행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우리에게 시간은 늘 도전적이다. 늘 불가피한 파도다.

시간의 홍수 속에서 우나가 알게 되는 단 하나의 진리는 지금이다. 과거로 미래로 더 미래로 또다시 과거로 시간을 전전하는 삶일지라도 지금이 있다. 인간에겐 지금이 있기에 삶이 소중하며 지금이 있기에 기쁨과 슬픔이 있다. 미래와 과거를 다 알고 있는 양 굴어도 감정은 숨길 수 없다. 타인의 변화는 컨트롤할 수 없다.

다 알고 있어도 다 알지 못한다. 평생 나와 당신을 사랑할 우리는 결국 언제나 혼란스럽다. 대비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이 소중하며 우리에겐 지금뿐이다. 돌고 돌아 결국 지금을 살게 된 우나를 축하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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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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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생전 나무를 좋아했다고 한다. 꽃이 피는 나무, 늘 푸른 나무, 가지가 부러진 나무, 열매 맺은 나무 등등 계절에 따라 다른 나무들의 모습을 보며 사색을 즐겼다.

책에는 짧은 에세이와 시들이 들어있다. 헤세는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두고 소설가로 이름나있지만 쓰기의 원천은 시다. 시인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결심 이후 삶의 소용돌이는 수레바퀴 아래에서나 데미안에 녹아져 있다.

헤세는 그림 그리기도 즐겼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그림이 자연을 담고있다. 인간의 소망과 절망, 과정 중에 겪는 방황을 꾸준히 관찰했던 그가 생각을 씻고 평화에 잠기기 위해 늘 자연을 찾은 것이다.

나무에도 종류가 있고 이름이 있듯, 나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다르다. 자작나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등나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며 헤세는 인생의 철학을 털어놓는다.

그가 나무를 애정한 최후의 이유이자 관찰한 최초의 이유. 나무의 우직함이다. 어떤 계절이더라도 나무는 기다린다. 어떤 생물이 다가와도 나무는 기다린다. 날씨가 바뀌어도 나무는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 지도 정해두지 않은 상태로 언제나 기다린다.

인생의 여러 페이지를 쓸 때마다 우리는 나무를 마주한다. 나무의 인생에서 나온 종이를 만지며 삶을 돌아본다. 나무가 가진 지혜를 구한다. 내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외부의 환경을 견디는 모습을 배우며 인간은 끝내 방황을 몰아낸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가지 잘린 떡갈나무」다. 우리가 온몸으로 욕을 내뱉으면서도 살아가는 이유는 사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힘든 구석과 마음이 있지만 실은 말이다. 살아가는 사람들은 놓치 못하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 미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마음이 복잡할 때 한쪽씩 읽으면 좋을 거 같은 책이다. 디저트 같은 책이랄까. 가볍게 선물하기도 좋고 말이다. 개인적으론 딱딱한 느낌 때문에 변역된 시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나무에 대한 생각들이 다양하고 재밌었다. 한 사람에게 수많은 사연과 철학이 있듯이 나무도 그렇다. 그 사실을 알면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다.

나무는 침묵으로 지혜를 지킨다. 인간은 방황으로 자아를 지킨다. 우리는 안다. 나무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그곳에 있다. 움직이지 않는 중심을 깊은 곳에 숨기고, 계절을 반복하며 허리에 세월을 두른다. 우리의 경험들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흔들림이 그러하듯이.


#창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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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 내 삶과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즘
김현미 지음, 줌마네 기획 / 반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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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꽤나 오래 대놓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표출해온 나.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로 사는 게 무엇이냐고 묻거나,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다. 페미니스트로 사는 게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의 세계관으로 자리 잡게 된 사조에 대해 삶으로 얘기하는 법을 나는 오랫동안 몰랐다.
이 책에서는 라이프스타일로의 페미니즘을 정의한다. 그러기 위해 굉장히 여러 페이지에 걸쳐 노동에 대해 말한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노동적인 배경과 현실을 정리한다.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는 것을 달리 말하면 '돈을 벌고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개 소시민... 인 내가 사회에 가장 크게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이 소비임을 믿고 있던 나에게 이 이야기들은 매우 타당하게 다가왔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사회가 주는 여러 불안감과 자아를 분리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여성으로의 삶은 여러 불안을 압박받는다. 결혼 출산 육아는 이미 하나의 단어처럼 몰려다닌다. 앞에 있는 자매와 뒤에 올 자매를 위해 '성공한 여성'이 될 것 또한 새로운 부담이 된다. 많은 체크리스트를 지니고 사는 만큼 쉬운 실패와 좌절이 옆자리에 앉아있다. 책은 말한다. 불안과 자신을 분리하고, 오롯한 일에 집중하라고.
페미니즘이 크게 부흥하면서 페미코인이라는 말이 생겼다. 처음에는 수요가 있으니 수입이 발생하고, 이게 여성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 틈을 노려 이름만 페미니즘을 내세운 기업이 많았기 때문에) 허나 우리의 돈은 우리의 노동만큼 소중하다. 굿즈와 펀딩 후원으로만 사회운동이 전개되지 않는다. 그 이전에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지나친 소비 중심의 활동 전개는 또 다른 불안의 증거다. 여성들은 자신의 의견을 명백하게 내세우기 위해 서슴없이 돈을 쓴다. 나는 이 돈 끝에 직접적으로 내 삶에 필요한 물건과 직접적으로 당신을 돕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더이상 벳지나 스티커를 사고 파는 유행이 없었으면 좋겠다.
처음 부분에 말했듯 꽤나 오랜시간 대놓고 페미니즘에 대해 떠들어온 나에게 꽤나 많은 친구들이 물었다. 탈코를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아직 완전히 탈코를 못했어. 마음이 안 좋아.라고. (나는 탈코를 하지 않았다.) 꾸밈노동에서 벗어나고 강요받은 옷차림과 불편함을 내려놓는 건 환영받을 일이지만 소위 페미니즘판에서 탈코로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일은 소리 소문 없이 존재해왔다. 아직 이 고민에 아직도 서있을 누군가들을 위해 책의 한 구절을 남기고 서평을 마친다. 모든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또다른 두려움을 가진 철칙이 아니라 즐거움의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


한데 탈코 운동마저 때로는 여성의 몸이 다 다르고, 몸과 관련해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여성에게 탈코르셋의 방식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 재미없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기 통제, 금욕, 조절, 희생을 강요받아온 여성들이 즐거움, 쾌락, 행복, 개인화를 선택하겠다고 할 때, 그것의 표현 방식은 창의적이고 다양할 것입니다.(252~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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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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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다양한 본능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생존본능이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야 할 것을 분별하는 것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책은 인류의 정착과 함께 시작된 감염병의 역사를 조망하며 그에서부터 시작된 인간의 기피본능, 문화, 종교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은 더럽거나 감염의 위험이 높은 환경을 본능적으로 피하는 행동 먄연 체계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 판별 능력을 통해 병을 피할 확률을 높였을지도 모르나 오늘날에는 오히려 이 본능이 혐오를 낳고 있다. 현재 뜨거운 사회 문제 중 하나인 동양인 혐오 또헌 책에서는 지혜롭게 다룬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대상을 우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짧은 순간동안 결정하지만 그 표현은 오로지 의식의 수면 위에 있다. 건강과 조심을 핑계로 혐오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우리 문화 중 꽤나 많은 부분이 감염병을 피하기 위한 맥락에사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종교의식의 경우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손을 씻고 청결을 강조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 또한 종교활동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고 종교의 결속력을 높이려는데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굉장히 합리적이었다.

문화와 인간의 본능이 이토록 가깝다니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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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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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설지만 흡입력있다.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라틴문학을 잘 접해보지 않은지라 단어나 계속해서 언급되는 말들의 맥락을 따라잡을 수 없어 아쉬웠다. 허나 인물들이 나누는 무맥락의 대화가 굉장히 흡입력있고 정신없게 읽게하는 맛이 있다. 패닉에 빠져 무슨 말을 하는지 기억도 못했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때의 내가 어땠을지 경험할 수 있다. 통째로 읽으면 매력이 훨씬 좋을 거 같아서 정식 출판된 책을 사고싶기도 하다. 기억해야할 작가의 이름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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