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는 생전 나무를 좋아했다고 한다. 꽃이 피는 나무, 늘 푸른 나무, 가지가 부러진 나무, 열매 맺은 나무 등등 계절에 따라 다른 나무들의 모습을 보며 사색을 즐겼다. 책에는 짧은 에세이와 시들이 들어있다. 헤세는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두고 소설가로 이름나있지만 쓰기의 원천은 시다. 시인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결심 이후 삶의 소용돌이는 수레바퀴 아래에서나 데미안에 녹아져 있다. 헤세는 그림 그리기도 즐겼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그림이 자연을 담고있다. 인간의 소망과 절망, 과정 중에 겪는 방황을 꾸준히 관찰했던 그가 생각을 씻고 평화에 잠기기 위해 늘 자연을 찾은 것이다. 나무에도 종류가 있고 이름이 있듯, 나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다르다. 자작나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등나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며 헤세는 인생의 철학을 털어놓는다. 그가 나무를 애정한 최후의 이유이자 관찰한 최초의 이유. 나무의 우직함이다. 어떤 계절이더라도 나무는 기다린다. 어떤 생물이 다가와도 나무는 기다린다. 날씨가 바뀌어도 나무는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 지도 정해두지 않은 상태로 언제나 기다린다. 인생의 여러 페이지를 쓸 때마다 우리는 나무를 마주한다. 나무의 인생에서 나온 종이를 만지며 삶을 돌아본다. 나무가 가진 지혜를 구한다. 내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외부의 환경을 견디는 모습을 배우며 인간은 끝내 방황을 몰아낸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가지 잘린 떡갈나무」다. 우리가 온몸으로 욕을 내뱉으면서도 살아가는 이유는 사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힘든 구석과 마음이 있지만 실은 말이다. 살아가는 사람들은 놓치 못하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 미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마음이 복잡할 때 한쪽씩 읽으면 좋을 거 같은 책이다. 디저트 같은 책이랄까. 가볍게 선물하기도 좋고 말이다. 개인적으론 딱딱한 느낌 때문에 변역된 시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나무에 대한 생각들이 다양하고 재밌었다. 한 사람에게 수많은 사연과 철학이 있듯이 나무도 그렇다. 그 사실을 알면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다. 나무는 침묵으로 지혜를 지킨다. 인간은 방황으로 자아를 지킨다. 우리는 안다. 나무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그곳에 있다. 움직이지 않는 중심을 깊은 곳에 숨기고, 계절을 반복하며 허리에 세월을 두른다. 우리의 경험들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흔들림이 그러하듯이.#창비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