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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 학교
김자중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2월
평점 :
“나 서울의대 못가면 엄마가 책임 질거야?”-강예서, 스카이캐슬 중에서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주민들은 대학병원 의사들과 판,검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녀들을 거의 오스만 제국의 황자들만큼 가혹하고 비인간적으로 키운다. 교육을 통한 부의 세습, 그 중심에는 법대와 의대, 그것도 국립대학교인 ‘서울’이 자리잡는다.
지금은 많이 옅어졌지만 불과 스카이캐슬이 한참 방영되던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립 서울대를 중심으로 연세대 고려대 등 각종 사립대학의 순위를, 지방에서도 과학기술원과 ‘지거국’이라 불리는 거대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다시 그 밑으로 사립대학들이 자리잡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문과의 최정점은 없어지기 전의 법대, 이과의 최정점은 의대였다. 그 밑으로 학교들과 과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카스트를 방불케 했고 한때 공무원 열풍이 불었을 때도 sky출신 9급 공무원이 나오는 것이 특집기사로 실리기도 했었다.
이 책은 그러한 원인을 바로 일제의 교육제도에서 찾았다.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각 대학들의 조상이 되는 ‘전문학교’제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새로웠다. 대한제국 멸망 후 총독부의 구마모토 서기관은 대단히 잔인하면서도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다. 바로 조선의 고등교육을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초안을 본 데라우치 총독은 ‘의학과 법학은 매우 중요하므로 보통학교 졸업자에게 맡길 수 없다’는 이유로 법학 전문학교와 의학 전문학교를 살려두고, 20년대에 각종 사립 전문학교 및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지기 전까지 조선의 최고학부로 기능토록 했다.
제도의 시작부터가 이미 대단히 차별성을 놓고 시작된 것이다. 일제는 조선에서 소위 ‘경박재자’ 즉 화이트칼라의 반 사회적 지식인들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에 따라 ‘관립 전문학교’에 특혜를 주고 교육의 현장성을 강조했다. 특히 그 중심인 경성 법전과 의전은 총독부 관리나 법조인, 의사 등의 화이트칼라 엘리트가 되는 데에 다른 사립 전문학교들보다 큰 특혜를 부여하면서 민족주의나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사립학교를 견제하고 체제에 순응적인 엘리트들을 키워내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교묘한 일제의 통치를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이 다른 열강보다 기술이나 기타 제도들이 뒤쳐지게 된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제도로 인해 기술 엘리트들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조선인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는 있지만 그로 인해 조선 내의 일본인들도 본토에 비해 낮은 교육기회를 가짐으로써 오히려 전문학교 설립이나 장학회 설립, 민립대학 요구 운동등에서 조선인들과 합작하는 일들도 책에서 소개되어있다.
이 책을 통해서 총독부의 전문학교 제도들과 학생들의 상황 등을 크게 개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민족적 문제만 없다 뿐이지 식민지 조선의 전문학교들이 가졌던 숱한 고민들(교육의 방향성, 학생 모집 및 수험제도, 취업문제, 장학금 문제 등)이 오늘날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앞으로의 대학교육을 고찰해보기 위해서도 한번쯤 읽어볼 만 하다.(요새 취업을 중요한 지표로 여기는 대학들의 모습을 보면 다시 전문학교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나의 작은 욕심이라면, 위의 사진에서 나오듯 아마노 이쿠오가 지은 제국 대학은 실로 거시적 제도로서 일본의 제국대학을 살펴본 책이고 정종현 저의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제국대학의 조선인들에 대한 미시적 측면(여기서 제국대학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미시사를 볼 수 있었다.)을 보여줌으로서 그 시절 제국대학의 모습을 넓게 볼 수 있었다. 이렇듯 한국대학의 뿌리 전문학교가 전문학교의 모습에 대한 거시적 책이라면 전문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미시적 책도 나오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