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산물을 의식으로 끌어내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그 작업을 시도할 때에는 뚜렷한 거부감repulsion이 생기는 것을 깨닫게 되고, 환자에게 시도하도록 할 때에는 의심할 나위 없이 명백하게 ‘저항resistance‘의 신호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인 생각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동시에 살아 움직이는 힘iving forces에 의해 의식에서 배제된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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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놓친에 빠지고 마는 경우 중 하나는 우리 스스로 범주들을 만들어놓고는 그 안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 범주들이 우리와는 관계없이 그 자체로 당연하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일과 생활의 균형’에 관한 논의에서 늘 등장하는 일 대 생활이라는 범주를 생각해보자. 나에겐 일과 생활의 통합이 일과 생활의 균형보다 더 나은 목표로 보인다. 균형이라는 말에는 우리 삶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은가. 마음챙김에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삶에 구획을 덜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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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빛이 눈부신 나지막한 제방들 사이로 수로처럼 좁고긴 항구에서 행인들은 마치 전날 도착했지만 언제든 떠날 채비가 되어 있는 의젓한 외지인같이 그곳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들은 호기심에가득한 현지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말도 섞지 않고,
하룻밤 묵는 싸구려 여관에서 자신들의 충동을 조용히 억누른다. 견고한 뱃머리에 새겨진 역경의 흔적들은 그동안 견뎌 냈던 고생과 앞으로 나서야 할 긴 항로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바닷길들은 세상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매번 항해할 때마다 새롭기만 하다.
강건한 듯 달려드는 인간들은 대양을 지배하노라 자존심을 세우지만, 종종 바다에서 길을 잃기도 하는 애처로운 존재다. 선원들이 신기하고 숙련된 솜씨로 복잡하게 동여맨 밧줄들이 물속에 어리는 모습은, 마치 명석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지성인이 조만간 자신을 부숴버릴 운명에 빠져드는 것을 보는 듯하다. 내일이면 다시 잠기게 될 무섭고도 아름다운 인생으로부터 잠시 꺼내져있지만, 돛들은 그것들을 부풀렸던 바람에도 여전히 축처져 있었다. 어제처럼 돛대는 수면 위로 비스듬히 기울어져있다. 선두에서 선미에 이르는 선체의 곡선은 그들 항적의 신비롭고 유연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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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결코 만족할 수 없음을 예감하기에, 당면한고통을 외면한 채 삶에 대한 신비에 이끌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언제나 매혹적인 존재다. 피로도 느끼기 전에 휴식을 필요로 하는 이런 이들을 바다가 위로하고, 때로는 흥분시키기조차 한다. 대지와는 달리 바다는 인간들의 노동과 삶의 흔적들을 지니지 않는다. 어떤 것도 머물지않으며 스치듯 지나가기에, 바다를 건너는 배들의 항적은 그얼마나 빨리 자취를 감추던가! 이로 인해 지상의 사물들은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바다의 엄청난 순수성이 생겨난다.
곡괭이를 필요로 하는 딱딱한 대지보다 바다라는 순결한 물은 훨씬 더 섬세하다.
물 위를 밟는 어린아이의 발은 또렷한 소리를 내며 깊은 고랑을 파고, 물의 통일된 뉘앙스를 한순간 깨뜨리지만,
곧이어 모든 파장은 지워지고, 바다는 태초의 날처럼 다시금 고요해진다. 지상의 행로에 지치거나 앞으로의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예견하는 사람은 이런 막연한 바닷길에 매료될 것이다. 바다의 길은 위험할수록 더욱 달콤하며,
어렴풋하고 황량하다.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신비스럽기만하다. 촌락이며 나무 수풀이며 하늘에 삼라만상을 만들어놓는 구름 때문에 바다 위에 펼쳐지는 거대한 그림자들도 그러하다. 이들은 거칠 것 없는 바다의 들판 위로 평화롭게 떠다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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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이 곧 취미마저 잃고 만 것이었다.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 활동도 의미가 없어졌다. 기계는 작곡도 잘했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분당이천 곡쯤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소설도 시도 그림도 다 그랬다. 창작은 이제 무의미했다. 세상에는 좋은 게 차고 넘쳤다.
누가 엉성한 작품 하나를 더 보탰다는 소식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았다.
창작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면 점점 하찮은분야를 파고들어야 했다. ‘라테 아트‘를 연상시키는, 오므라이스 위 ‘케첩 아트 처럼, 하지만 그거라고 기계가 더 못 할리 없었다. 학술 활동도 다 그랬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골판지학이라는 학문이 유행했지만, 그 분야 최고 논문을 인공 지능이 썼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오일 만에 골판지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논문 구백 편이 제출되었다. 보통 사람은 그걸다 읽는 데만도 오십 일은 걸렸을 테니, 누가 쓴 논문인지는따져 보나 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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