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상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어 보고감상한다고 생각한다. 조각상을 볼 때 우리는 이 조각상의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 조각상은 머리가 없고, 팔다리가 없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유구한 역사가 있다. 남아 있는 몸으로 미루어 보아 이 조각상은 분명히 기술이 정교한 숙련공의 손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생각하고 비평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상에 만약 머리와 사지가 전부 남아 있었다면 분명히 더욱 아름다웠을 거라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불가사의한 속도로 얼굴을 바꾼다. 계속해서 얼굴을 바꾸면서 계속해서 망가뜨린다. 처음에 그들은 자기에게 얼굴이 잔뜩 있어 무한히 공급할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흔 살도 채 되기 전에 마지막 얼굴을 써 버렸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다, 여기엔 약간의슬픔이 어려 있고, 비극성을 띤다.
오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내심 오영이 항변해주길 바랐다. 무슨 말이라도 당당히 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오영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볼 뿐이었다. 총대 옆에 앉은 학생도, 프리랜서 둘도 마찬가지였다. 스크린 속에서 상을 받은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불편한 고요가 흐르는 와중에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걸까. 왜 모두가 제일 아닌 양 좌시하는 걸까. 사랑하면.... 사랑하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저는 지난 삼 년 동안 세 번의 유산을 겪었습니다.앞선 두 문장의 장점을 합친 대사를 중얼거리며 그것의 효과를가늠하고 있을 때, 복도 저편에서 17번 지원자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그 기세에 놀란 배우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불안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자리에 앉은 은화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어쩌면 준비해온 것보다 더 강렬한 사연이 필요할지몰랐다.
그들은 나를 철두철미하게 밑바닥까지 조사했다. 내가 살던 모든 장소, 고향 집은 물론 학교, 만수 형이 다니는 회사, 옥희의 고등학교 시절까지 샅샅이 다 뒤지고 흔들어보고 털어봤다. 일제 때 할아버지가 불온사상 때문에 재판을 받은 것까지 다 나왔을 정도였다.그들의 조사는 역설적으로 나의 결백을 증명해주었다. 내가 별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자 그들은 오히려 대단히 실망스러운 눈치를 보였다. 내가 그들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