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잘못한 거 없어요.‘후사에는 마음속으로 운전사의 말을 되풀이했다. 뒤에는 남편이 입원한 병원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그대로 병원에 들어가봐야 심기 불편한 남편의 시중만 들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뿐이고, 기자들과 협박전화에 떠는 불안한 밤이 찾아올 뿐이다."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아빠 죄송해요."추위에 몸을 떠는 요시오의 귀에 딸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요시노......"라고 다시 한 번 딸의 이름을 불렀다. 젖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딸의 이름이 물웅덩이에 파문을 일으켰다."용서 못해! 절대 용서 못해!"요시오는 주먹으로 젖은 아스팔트를 수없이 내리쳤다. 주먹이 찢어지고 차가운 빗물에 피가 스며들었다. 요시오는 빗속에서 일어섰다.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누군가가 딸에게 올린 시든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그때 요시노와 약속한 남자가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면 마스오는 자기 차에 요시노를 태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그럼, 나 먼저 가볼게"라며 그 자리에 요시노를 두고 떠나는 건마스오에게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시노의어깨 너머에는 꼼짝도 하지 않는 차가 있었다. 실내등 조명에 희미하게 떠오른 운전석의 남자 얼굴이 보였다. 화가 난 것 같기도하도, 슬픈 것 같기도 했다.
미쓰요는 여기까지만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 앞으로 나갈용기는 도저히 없을 것 같았다.일단 역 안으로 들어갔던 남자가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걸어나왔다. 그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미쓰요는 엉겁결에 등을 돌리고 다시 가드레일에 앉았다.서른을 셀 동안 그가 곁으로 오지 않으면 돌아가리라 다짐했다. 그는 지금 분명히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 후의 결정은 그에게 맡기고 싶었다. 만나러 나갔다가 혹시라도 상대가 실망하게 될까 두려웠다. 이제 와서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 후회하기도 싫었다.
잘 아는 정비공장까지 가서 차를 맡기고 유이치와는 곧바로헤어졌다. 유이치의 차를 배웅하는 여자친구에게 "남자 괜찮지?"라고 은근슬쩍 속마음을 떠보자 ‘차 안에서 한마디도 안하던데. 고맙다고 인사를 해도 ‘아, 네‘ 라고 무뚝뚝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왠지 숨 막혀"라며 웃었다. 실제로 그런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