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놈에게 하듯이 주근주근 말을 걸곤 했었다. 속을 알 수없는 짙푸른 웅덩이 속에 꽃잎을 따 밀어넣으면 물그림자를일으키는 것이 꼭 철이 놈이 화답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라고 스스로 다짐을 두어도 철이 놈이 떠나가고 없는 빈 자리를메울 길이 없었다. 가슴에 뚫린 구멍 때문인지 한이는 부쩍웅덩이를 찾는 일이 잦았다. 이슥한 밤에도 무서운 줄도 모르고 웅덩이를 향해 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은 꿈에조차 품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해 봄 그를보자 그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그의 아이를 갖고야 말겠다.
는 터무니없는 욕망에 불같이 사로잡혔다. 그날도 한이는 홍선생에게 다녀오던 길이었다. 바람을 일으키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한이로 인해 들에 까뭇까뭇 앉아 낱알을 쪼던 철새들이 화들짝 놀라 떼를 지어 날아올랐다. 한이는 자기도 모르게 자전거 브레이크를 잡고 멈춰 서서 시커멓게 날아오르는 새떼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떼를 이룬 것은 새만이아니었다. 머리며 얼굴, 옷차림까지 온통 철새 분장을 하고풀섶에 엎드려 있던 한떼의 사람들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한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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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 버스가 달려와서는 바람처럼 남자를 실어간다. 버스가 지나가고, 길은 이내 흐름 없이 고요하다. 창문가에 서 있던 여자는 생각 끝에 방에 불을 켜고 잘 말린 낙엽하나를 어둠 저편으로 날려보낸다. 사흘 동안 여자의 방에 놓여 있던 낙엽은 금방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검은 허공의 길들을 여기저기 들러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내린다. 그것은 팔 초 정도 지속된다. 여자는 거기까지 세다가 자기도 모르게 셈을 멈춘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같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여자는 환한 방, 창가에 서서 오른손을 들어 저어본다. 마치 누군가와 이별하듯이, 아니 초원의 여자처럼 누군가를 맞이하듯이. 버스는 다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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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침묵하는 하느님의 대리석같이 차가운 얼굴을 향해 터질 이 외침으로 인해, 이 말을 내뱉은 자는 가까운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우리의 친구가 된다. 잘려버린 핏줄에서 피가 쏟아져 나가듯 믿음이 우리를 떠날 때, 우리를 죽이는 것들에게 계속해서 애정 어린 말을 건네는 우리 자신이 된다.
어둠이 짙어져야만 별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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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의사가 실수로 결석에 의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잘못된 주사를 놓았다. 잠시 뒤 내 얼굴과 가즘은 토마토처럼 빨간 반점으로 덮이고 혈압은 급격히 떨어졌다. 의사는 알레르기 반응을 멈추기 위해 앰풀을 깨뜨렸고,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눈을 감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만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손길이 나를 온전히 보호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작아져 있었고, 몸과 영혼을 그 손에 맡겼다.
다소 묵직하고 주름진 그 손은 나의 피난처, 확신, 모든믿음이 되어주었다. 메뉴인과 오이스트라흐의 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손은 삶이라는 신성한 붉은 손이 검게 변하다가 이내 차갑게 굳지 않도록 붙잡아 준다. 아름다움에는 부활의 힘이 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충분하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천국에 들어서지 못하는 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오직 그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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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그것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이름을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부여한다. 술라주의 그림 앞에서 나는 세탁실 빨랫줄에 널린 검은 침대 시트 앞에 서 있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림들은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무감각해진 채로 살아 엎드려 있는 거대한 짐승 같다. 하얗게 빛나는 빛이 짐승들의 옆구리를 비춘다. 그들의숨결은 무겁고 더디며 고요함에 젖어 있다. 불멸의 검은 풀을 되새김질하는 짐승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홍수보다 훨씬 더 위압적인, 술라주의 그림들이 내뿜는 질은 정적에 휩싸여 몽펠리에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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