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위해 저것을 포기하는 일이 삶임을 부할 수는 없다. 다만 포기에도 여러 방식이 있을 것이다. 열매라는 과욕 때문에 이파리를 부숴뜨리는 일은 없도록, 파괴, 파쇄, 폐기보다는 감내, 수용, 인정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포기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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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의 있음을 기약하며 이름을 붙이는 행위, 그것이야말로 시의 임무가 아닐까. 미래의 내가 어떤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복숭아나 마 아닌 무엇이 언제 또 나의 손을 부풀게 할지 알 길 없지만, 그 시간을 통과해왔기 때문에 마를 만질 땐 꼭 장갑을 끼는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나는 오늘 쓸수 있는 문장을 쓰면서 이곳의 나를 찾아올 밀코메다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 와야 할 시간은기필코 오게 되어 있다. 그럴 때 나의 인사는 "왜 왔어?" 가 아니라 왜 이제야 왔어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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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장면은 내게 한 편의 우화로 다가왔다.
낚싯대를 드리운 인간의 자리에 신을, 물고기의 자리에 인간을 놓아본다면? 물속에 있는 동안이 삶이고, 미끼를 물어 물 밖으로 끌려 나오는 순간 죽음을 맞는 것이라면? 그보다 먼저 신이 낚시를 하는이유는 무엇일까? 신에게도 휴일이 있어 무료함을달래고자 저수지를 찾은 것일까? 저수지 인간계의개체수 조절을 위해 주기적으로 아르바이트 신들을파견해 우매한 인간을 솎아내거라 명령을 내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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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에게는 코알라의 잔이 있고, 나무늘보에게는 나무늘보의 잔이 있고,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운명의 한계로 오인되지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잔의 외형이나 크기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규모를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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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순간은 진실로 열려 있으며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존재하기를 멈출 때 당신은 현재에 거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현재(present)‘ 라는 단어가 ‘현존(presence)‘ 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완전한 평화이며,
완전히 만족하는 현존으로 당신의 현재 순간을 채울 때 당신은 현재에거하는 것이다.
현존은 경험이 아니다. 언제라도 앎이 활짝 열려 있을 때마다 현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까운 장래에 어떤 일이 반드시 일어나기나 안 일어난다는 것은 없다. 역설적으로, 강한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그 고통의 와중에서 도저히 육체의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되자 갑자기그 통증을 놓아버리자고 결심한다. 이것은 특히 심리적 고통에서는 진실이다. 전쟁 공포증에 사로잡힌 군인들은 무아의 해방감이 밀려와 강한 스트레스를 떨치는 해방감의 순간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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