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에 가장 위대한 수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손꼽히는 독일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 David Hilbert는 ‘결정 가능성 문제decision problem‘를 세상에 던졌다. 쉽게 말해, 임의의 어떠한 명제라도 그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는 방법이 무조건 존재하는지를 묻는 문제였는데, 수학자들은 인류가 아직 완벽하게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그런 방법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앨런 튜링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러한 판별 방법이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래서 난 시의 소리를 신경 쓰긴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어떤 형식의 시 낭송도 별로 참아 내지 못한다. 시 낭송은 어떤 형식이 됐든 멀리 퍼져야 하고 들릴락 말락 해야 할 노래를 우리 귓가에 큰 소리로쏟아 낸다. 우리는 한 글자 한 글자 똑똑히 들을 수 있지만 소리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은 파괴되고 만다.
나는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노랫소리를 좋아한다. 이건 내 편견이자 편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생각과 선택이다 분명해졌다. 확실히 시가 존재하고 이 세상에 시가 필요한 건 우리가 익숙한 세상에서만 사는 걸 달가워하지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형적 발전 때문에 우리의 인식이 주변에 대해 소원해지고 황폐해지기는 했다. 하지만우리는 그것 때문에 시를 벌할 수 없고 시와 시인이 모험을 떠나는 걸 막아서도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러나 이제 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시는 극히개인적이고 고독한 심리적 가치의 산물이다. 시인은 외롭고 허전하게 우주의 거대한 흐름에,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시간과 상하좌우의 모든 공간 그리고 바글대는 사람들 사이에 처해 있다. 그는 독특한 격정을 찾는동시에 그 격정을 표현할 독특한 형식을 찾지만 이 양자는 어떠한 전례도 보장도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리미가 있는 풍경」에나오는 ‘자유의 불‘과 다소 비슷할 것 같았다. 유목이 타는 불은 가스 난로의 불, 라이터의 불, 일반적인 모닥불과 다르다. 자유로운 장소에서 타오르는 자유로운 형상의 불이며 자유로운 까닭에 불을 지켜보는 사람의 심정을 반영해 나타낼 수 있다.
유목이 타는 불에서 유목의 자유를 구상해 냈다. 이렇게 해서 그 해변에서의 내 심정과 딱 맞아떨어지는 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탐색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시를 찾을 것이다. 물론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