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 이렇게 저 조각상 속엔 형상과 질료가 다 들어가 있죠. 만약세상이 이렇게 생겼다면, 그림을 그릴 때 형상을 찾아 굳이 저 하늘나라로 올라갈 필요가 없겠죠? 신의 섭리는 이미 사물 속에 들어 있으니까요.
아리스: 그림을 기하학적 도형부터 시작할 필요도 없겠죠. 자, 샤르트르 대성당의 정문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들을 보시죠. 아름답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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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커다란 덩어리가 있었다. 이걸
‘의지‘라 부르자. 물론 무지무지하게 큰의지, 거대한 세계의지다. 어느 날 이 근원적인 일자가 조각조각 잘려, 그 조각들이 내가 되고 네가 되고 그가 된다.
이걸 ‘개체화‘라 하자. 이 개체화한 의지들은 이제 말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된다. 행동하는 이 조그만 욕망 덩어리들이 모여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우리가사는 세계를 이룬다. 하지만 이 세계는근원적인 세계의지 위에 세워진, 언제사라질지 모르는 불안한 세계다. 이 덧없는 세계를, 불교에서는 마야의 세계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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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이렇게 주술이 ‘가상‘으로 여겨지는 순간에 탄생한다. 하지만가상으로 탄생하는 순간부터 예술은 자신을 변명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가상을 만듦으로써 현실의 소망을 이룰 수 없다면, 이 가상이도대체 어디에 필요하단 말인가? 가상은 글자 그대로 ‘가짜‘가 아닌가. 그러니 인류 최초의 미학플라톤이 예술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거짓이며, 얄팍한 눈속임이며,
진리의 왜곡이며 등등.
하지만 아무리 악담을 퍼부어도 ‘예술‘은 플라톤의 ‘인생‘보다 더길었다. 그 때문에 후세 철학자들은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기원전 348과는다른 길을 가려 했다. 혹시 이 가상이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예술과 진리를 연결하는 것, 이게 바로 고대에서 현대까지 수많은 미학적 변주곡의 중심 테마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은대개 이것으로 아름다운 가상을 변호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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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어둠 속에 오래 가만히 있으면 생기는 눈과 같다. 어둠과의 깊은 포옹으로 만들어진 이 눈은 빛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의 교감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그 눈으로 세상을 마주할 만해지면 아주 천천히 밖으로 나올수 있다. 조심스럽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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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속으로 들어와 제도화된 종교와 그런 종교에 익숙해진종교인은 신을 자루 속에 넣는 데 성공한다. 고정적 존재로,
파악 가능한, 쉬운 존재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제도 속에 정착하고 의례 속에 고정된 신은 가시적이고 고정되고 익숙한존재, 무엇인가의 대체물이 된다. 자루 안에 들어온 신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두렵지 않고, 파악되었으므로 신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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