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아버지는 된장 없이 단 한 끼도먹지 않았고, 해서 우리 집 밥상에는 사시사철 끼니마다 각양각색의 된장국이나 찌개가 올랐다. 말갛게 끓여 각자 입맛대로 매운고춧가루 팍팍 넣어 먹는 동탯국이나 무조림, 무생채, 상추겉절이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였다. 어머니를 모시기 전까지 나는 그게 우리 집안의 식성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짐짓 딴청을 부렸다. 내가 귀향한 뒤로 어머니는 늘 그랬다. 나를 고향으로 내려보낸 장본인은큰오빠였다. 어머니 빼닮은 큰오빠는 어머니라면 껌뻑 죽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없는 집에서 허리도 안 좋은 어머니가 혼자 어찌사시겠냐며 날마다 전화를 걸어 걱정을 늘어놓는 바람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잔소리 많은 것까지 큰오빠는 어머니를 쏙빼닮았다. 오빠 등쌀에 나는 결국 생각지도 않았던 귀향을 하고만 것이었다.

그리 야멸차게 굴었으면서 어머니는 내가 남자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자식 키우고 사는 게 또 안타깝고 안쓰러워 눈물로 날을 지새웠다. 아버지 살아 있을 때는 두 노인네가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온갖 먹을 게 담긴 라면 박스를 두세 개씩 들고. 내려가고 난뒤에는 반드시 전화가 왔다.
싱크대 오른쪽 맨 아래칸 반찬통 뒤져 보그라.

느그들 한창 클 때 잘 멕이도 못흐고 잘 입히도 못한 것이 느그아부시나 나나 평생 한이라 근다. 해준 것도 없음시로 자식들 등쳐 묵고 살아 쓰겄냐.

어머니는 내 앞에서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아들에게 속을 털어놓으며 산 모양이었다. 고슴도치처럼 늘 가시를 세우고 있는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득 내가 아니라 오빠가 내려왔다면 어머니가 사랑채로 옮긴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채와 본채의 거리가 나와 어머니의거리였다. 내가 만든 거리였다.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에게 음식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두 시간을 걸어 읍내 장에갔다. 자식들에게 비린 것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동태 한 궤짝을머리에 이고 온 어머니는 펌프가 설치된 수돗가에서 차디찬 물로반나절에 걸쳐 동태를 손질했다. 동지섣달 칼바람이 휘몰아쳐도어머니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손질한 동태로 끓인 국은 콩나물국처럼 맑디맑았다. 어머니는 꼬막도 일일이 칫솔로 닦았다. 우리 식구 먹을 양을 하나하나 칫솔로 닦으려면 그 또한 한나절이었다. 어머니 손은 겨우내 발갛게 곱아 있었다.

나가 늘그막에 먼 복잉가 모리겠다. 니가 이리 잘해 먹여서 긍가 아픈 디가 한나도 없어야. 내 평상 첨이랑게.
내가 잘해 먹여서가 아니었다. 아버지 가고 내가 모신 뒤로 속병이 사라진 걸 보면 식성에 맞지 않은 음식이 문제였다. 남달리예민한 사람이 아버지 식성대로 맵고 짠 것만 먹고 살았으니 위장병을 달고 살 수밖에. 나는 어머니 모신 지 몇 달 만에 내 반찬을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입맛에 맞게 한 음식들이 도무지 당기지 않아서였다.

자식들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했다. 심지어 자식들에게조차 그 허물을 애써 덮는 사람이었다. 둘째 고모와 통화하고 나면 어머니는 번번이 소화제를 먹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알수 없지만 솔직한 둘째 고모가 분명 우리 남매 중 누군가의 흉을봐서일 터였다. 그래서 나는 둘째 고모의 전화가 반갑기도 했지만불안하기도 했다.

마을로 진입하는 길가에 며칠 전부터 벚꽃이 한창이었다. 햇빛화창한 날의 벚꽃도 일품이지만 가는 비에 젖은 벚꽃은 고적하니또 다른 맛이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비처럼 흩날리는벚꽃 아래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그때의 어머니는 어머니임을잠시 잊은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어머니가 어머니임을 잠시 잊었으면 싶었다.

어머니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웃음이 번졌다. 어머니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들이 떠오르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울 사는 셋째고모는 부부 싸움만 하면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눌어붙어 어머니 속을 끓이던 셋째 고모는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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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것이 꼭꼭 숨어 있을수록 그의 허기도 고조됐다. 마침내 허기혼자서 새빨갛게 밤눈을 밝히고 온 집안을 횡행했다. 아내는 자는척을 계속했다. 아내의 자는 척은 고문처럼 비참했다. 아내는 깨어난 욕망 때문에 깨어난 게 부끄러웠고,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깨어난 걸 감춰야 했다. 그러나 허기밖에 안 남은 그에겐 아내의 이런 불쌍한 자는 척조차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복수처럼 간교하게 비쳤다.

다음 날 아침이면 시험테이프는 영락없이 음산한 사신의 미소를보내왔다. 그의 몸뚱이는 그렇게 빤했다. 투명한 시험관처럼 속이들여다보였고 융통성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소량인 데다 변화없이 단조로운 식단에도마침내는 길들여져 거의 싫증을 못 느끼게 된 몸뚱이건만 주사 맞는 아픔에 길들여질 줄 몰랐다. 맞을 때마다 매번 새롭게 아팠다.
아픔뿐만이 아니었다. 남의 살이 아닌 자기 살에 손수 주사 바늘을꽂는 일이 매일 아침 되풀이되건만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공포였다. 매번 새롭게 진저리가 쳐졌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아내한테 시키지 않았다. 말이야 식이요법때문에 허구한 날 신경 쓰는 것도 미안한데 그것까지 해달랄 염치가 없다는 거였지만 실은 아내로 하여금 그의 살의 징그러운 감촉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일종의 자애였다.

그러니까 큰 뿌리라고 해도 통속적인 백하곤 인연이 먼 거였다.
양반에게 있어서 핏줄 같은 것처럼 남이 믿거나 말거나 자기 속에있다고 믿고 싶고,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서병식의 천박한 호기심은 더더욱 그에게 환멸과도 같은 비애를 안겨줬다.

서병식이 다시 그에게 등을 보였다. 회색빛 제비초리와 홈이 깊은 앙상한 목덜미와 빛 바랜 헐렁한 윗도리 속의 마르고 굽은 어깨와 가뜩이나 헐렁하고 꾸깃꾸깃한 핫바지를 더욱 희극적으로 만드는 심한 안짱다리 걸음을 바라보면서 그는 갑자기 술 생각이 났고 시장기를 느꼈다.

서병식도 싸구려 음식점이 즐비한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비로소늙은 친구의 뒷모습을 호젓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그에게 전혀 예기치 못한 느낌이 엄습했다. 그는 친구의 늙고 고달픈 뒷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슬퍼서 아름다운지 아름다워서 슬픈지 가슴이찐하면서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 끊긴 필름을 잇기 위해선 그 늙은 친구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같았다. 서병식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 친구의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 대신 작고 구부정한뒷모습과 꼬리가 왼쪽으로 꼬부라진 회색빛 제비초리만이 여실하게 떠올랐다. 그가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고삐를 놓친 건 어쩌면 서병식을 만나자마자인지도 몰랐다. 그 친구를 보면서 컬컬하고 헛헛해져서 술집으로 갈 때까지 당뇨병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으니까.

전생에 본 풍경도 이승에서 다시 만나면 짚이는 게 있다는데, 그녀석이 그의 속에 갇혔던 놈이라면 그의 눈을 빌어서 보았을 테니뭔가 짚이는 게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차창 밖의 풍경을 하나도 안놓치고 유심히 내다보았다.

그런 그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서울 변두리 풍경을 빨아들이듯이열심히 내다보면서 그 하나하나에 뭔가를 감시하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를 깜쪽같이 따돌리고 하룻밤의 자유를 즐기다가돌아와 시치미 딱 떼고 마치 없는 것처럼 구는 녀석에게 이것 보렴.
이것을 보고도 시치밀 뗄래? 하고 들이댈 물적 증거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철문은 웬만한 집 대문에 달린 출입문처럼 외짝인 데다가 낮아서쇠꼬챙이 사이로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플라스틱 판대기로 하늘을 막아버린 이부자리만 한 마당을 향해 방문이 ㄱ자로 세개나 나 있었다. 그 세 개의 방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 열리고 잠옷만 입은 여자, 잠옷 위에 스웨터를 걸친 여자, 내복만 입은 여자가 내다봤다. 대낮인데도 그 꼴을 하고 있고, 아직도 어젯밤의 짙은화장이 더러운 더께가 되어 남아 있는 뻔뻔스러운 얼굴로 봐서 그들이 모두 조미숙이 아니더라도 조미숙과 같은 직업을 가진 여자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큰 경대와 서랍장을 빼고는 방바닥을 온통 꽃무늬 있는 캐시밀론이불이 차지하고 있어 발 들여놓을 틈도 없었다. 먼저 들어간 여자가 이불을 들쓰다시피 하고 앉으니까 약간의 틈이 생겨 그 사이에그는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가죽방아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자마자 가슴이 울렁거리고눈앞이 몽롱해졌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여자가 거짓말을 시키고 있을 거야. 저런 여자의 말을 어떻게 믿는다. 그렇지만 혹시또 모르지. 녀석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그는 아직도 그의 끊겨달아난 시간을 지배했을 어떤 녀석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가 나타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 조미숙에게 고문과 같은 고통을 준다는 걸 충분히 알면서도 그는 그런 가학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유실은 엄청났고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성남시 쪽을 돌아다보았다. 해태의 글씨는 "안녕히 가십시오" 로 바뀌어 있었다.
안녕, 앞으로 다시는 성남시를 찾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녀석은 탐색하는 일로부터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작은 시험관 속의 현상처럼 빤하지 않다는 게 갑자기 무서워졌다.

집값이 뛸때라 어물어물하다가 동생네 집 날리는 꼴 보게 될까 봐 나 혼자 후끈 달아서 옆 동에 마땅한 집이 나와 나는 즉시 계약을 했다. 동생은잔신경 쓰는 일은 질색인 반면 되레 이사처럼 큰일은 힘 안들이고휘딱 잘도 해치웠다. 한 단지 내에 붙어 살게 되고 동생네가 편해진건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더 자주 불려가거나 아이를 떠맡게 되어, 내가 자초한 일에 비명을 올린 적도 부지기수였다.

한참 바쁜 등교 시간에 빨아서 챙겨놓은 중학생 딸의 덧신이 안 보일 때도 그 증상이 왔다. 마치이 세상이 끝장나버릴 것처럼 눈앞의 사물뿐 아니라 머릿속의 생각까지 가물가물 무화돼가는 느낌은 아주 고약했다. 이 세상 마지막느낌이 고작 공포와 절망이라니. 이렇게 내가 뭘 못 찾아 우두망찰을 하고 있는 걸 남편한테 들키면 사정은 더 나빠졌다. 그는 매우 부드럽고 침착하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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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란한 포성보다 서울을 사수할 것이라는 방송만 믿고 피난의기회를 놓친 자신의 고지식함과 국민을 그렇게 기만하고 저희끼리만 달아나버린 정부의 엄청난 무책임을 홀로 저주하고 분노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변신을 꾀할 만큼 비루하지도 못했다. 그는 그가기왕에 한 전향이, 잘못을 뒤늦게 깨닫고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한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향이란 말 자체엔 늘 도덕적인 불쾌감을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의 최초의 선택이 웬만큼만 잘못된 것이었더라도 그는 전향을 해서 잘못을 시정하느니 차라리 최초의 신념에일관함으로써 자신과의 신의를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변신이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의 인품이기에 더욱더 국민을 듣기 좋은 말로 달래 적 치하에 팽개치고 저희끼리 뺑소니친 꼴이 된 정부에 대한 원망도 컸다. 원망과 불신,
불안, 그리고 고독으로 그는 날로 정신이 망가져 갔다. 이런 그가이웃의 고발로 기습을 당해서 끌려가는 걸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 들려온 소식은 전혀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인민재판에 회부돼서 당장 목숨을 잃었거나 모진벌을 받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인민 총궐기대회에서 제일 먼저 의용군을 지원해서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감격해서 동조케 했다는 소식이었다. 남은 식구들은 그저 그렇다니 그렇게 알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농간이 그의 운명을 희롱하고 있는지 알아볼 도리는 없었다.

노도처럼 남으로 밀리는 피난행렬에 끼었으면서도 검문을 피하느라 도심을 몇 바퀴 배회한 데 지나지 않았고, 오빠는 검문이 있을만한 곳을 더듬이처럼 예민한 감촉으로 예감하고 재빠르게 피하는능력 빼고는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는 폐인처럼 돼 있었다. 나는이런 오빠가 짐스러운 나머지 혼자 도망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공포와 비굴이 처참하게 엇갈렸다.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강조할 것도 없이 오빠는 누가 보기에도 성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락부락 거친 그들과 비교되어 더욱 그랬다. 몸은 파리하고 여위고 눈은 공허하고 입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외마디소리가새어나올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신 자식이라는 걸 너무 강조하지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어머니는 한 줌의 먼지와 바람으로써 너무도 엄청난 것과의 싸움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은 결코 미약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이란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머니의 정열 없는 노여움은 마치 팽팽한 백지장이 바람에 파르르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이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조용한 어조였지만 미쳤냐?의 의미는 길고 도전적이어서 내 의식을 나사못처럼 조여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해서. 혹시 어머니는 지금 일생일대의 마지막 연기를 하고 있는 거나 아닐까, 당신 의식의 밑바닥에 찰싹 늘어붙은 걸 꼭꼭 감추기 위해 부스러기만 내보이는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생전의 어머니는 깔끔한 대신 차가운 분이어서 한 번도 그렇게 곰살궂게 군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생애만큼 먼 옛날의작명이 나에게 그런 위무를 해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함자는 몸 기자, 잘 숙자여서 어려서부터 끝 자가맑을 숙자가 아닌 걸 참 이상하게 여겼었다.

침이 엿처럼 끈끈하게 말라붙어 있어 물맛은 들척지근했다. 그런화급하고도 불쾌한 새벽의 물맛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단숨에 물주전자를 비우고 나서 갑자기 되살아난 새벽의 물맛 때문에 그는싸늘하게 긴장했다. 그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물 마른 도랑으로 내려섰다. 바지춤을 헤치려는데친구도 따라 내려오는 게 아닌가. 그는 그게 가슴이 내려앉도록 싫었다. 변두리 고지대의 수도물처럼 맥없이 질금대는 그의 오줌발을친구가 경멸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친구는 자신의 소나기처럼상쾌한 방뇨에 도취해서 부르르 진저리를 쳤을 뿐 남의 오줌발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친구는 그렇게 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오줌 자국에만 개미떼가 새카맣게 엉켜붙어 있는데도 아직도 사방에서 줄을 지어 그곳으로만 모여들고 있었다.
친구의 오줌 자국은 말짱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채불길한 예감이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그의 등허리를 지나갔다.

진찰 결과 그는 중증의 당뇨병이었고 합병증으로 폐결핵까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 체중은 해마다조금씩 불어나고 있었고, 동안은 피둥피둥 혈색이 좋았고, 아무리과음을 해도 잠 잘 자고 일어나면 새벽부터 거뜬했고, 밥맛은 6·25때처럼 달았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제아무리 많아도 치료제일뿐 안경은 아니니까. 그가 그 많은 약을 먹어야 하는 일을 너무 쉽게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한 전문의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 또 당뇨 조절 없이는 약효를 기대할 수 없다는 데 대해 다시 한 번 누누이 경고하기를 잊지 않았다.

이 큰 몸뚱이에 그까짓 밥 한 숟갈쯤 더 먹었다고 설마 무슨 일 나랴? 자신을 속여가며 그에게 하루치로 허용된 단위의 탄수화물에서 밥 한 숟갈만 더 먹어도 시험테이프 끝에 붙은 분홍 색조는 소변에 담갔다가 꺼내기 무섭게 어두운 자색으로 변했다. 시험테이프의암자색은 즉각 그에게 새까맣게 꼬여드는 개미떼를 연상시켰다. 개미떼는 조개처럼 불길했다. 아침에 그 불길한 색조를 대하면 온종일 되는 노릇이 없었다.

그가 비상한 극기로 1,800칼로리의 식사로 하루를 견뎠을 때 시험테이프의 분홍색은 습기를 머금어 색조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 말고는 그대로 있었다. 그는 그 촉촉한 분홍색을 사랑했다. 그런 빛깔의 루주, 그런 빛깔의 매니큐어를 바른 여자까지도 좋아했다. 그가본 첫 손자의 입술도 그런 빛깔이었다.

자신의 몸뚱이를 파악하고, 투명한 시험관 들여다보듯이 투시하고 마침내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있다는 쾌감은 당뇨병이란 희한한병을 앓아 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었다.

한밤중의 허기는 외롭고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정욕보다 훨씬 더파렴치하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는 살금살금 잠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아내가 단것을 얻다 감춰놓고 혼자만 몰래 즐기는지 찾아내야만 했다. 남편에게 단것이 독극물처럼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는아내는 결코 그것을 허술하게 간수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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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들 속으로 모래가 들어온 걸 벗어서 털면서 나는 문득 실소를터뜨렸다. 어머니가 낯설고 바늘 끝도 안 들어가게 척박한 땅에다가아둥바둥 말뚝을 박으시면서 나에게 제발 되어지이다,라고 그렇게도 간절히 바란 신여성보다 지금 나는 너무 멋쟁이가 돼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신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어머니가 생각한 것으로부터는 얼마나 얼토당토않게 못 미처 있는가. 엄마의 생각은 그당시에도 당돌했지만 현재에도 역시 당돌했다. 엄마의 억지는 그뿐이 아니었다.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근거를 심어줌으로써 도시에서만난 웬만한 걸 덮어놓고 무시하도록 부추기다가도 근거의 고향으로 돌아가선 서울내기 흉내를 내도록 조종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신여성‘ 이란 말을 마치 복원한성벽처럼 옛것도 아닌 것이, 새것도 못 되는 우스꽝스럽고도 무의미한 억지라고 느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것을 복구하지 않을것이다. 그건 지나간 세월 역시 부정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 섬뜩한 건 핏줄 사이에만 있는 신비한 끈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내 철저한 방심과 더 깊은 관계가 있음 직했다. 집안일에 대한 일시적인 방심은 나 자신만의 일이나 재미에 대한 몰두를 뜻하기도했고, 그런 모처럼의 이기에서 헤어났을 때, 한 집안의 안주인 노릇만을 숭상했던 평소의 의식이 느낄 수 있는 가책과 당황이 그런 섬뜩한 이물감으로 와닿았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지당하고도 속 편했다. 내적인 심리 상태와 외부의 현상 사이에 있다고 가정한 어떤 초월적인 힘의 작용에 대해 이런 온당하고 상식적인 해석을 붙이고나니 섬뜩한 느낌의 영험도 차츰 무디어지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불길한 것의 감지 능력이 거의 백발백중이었을 소싯적의 그 기분 나쁜 섬뜩한 느낌 또한 나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지금의 나의 안주인으로서의 당당한 권세, 일종의 터줏대감 의식도실은 그 시절 그 느낌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다.

봄에서 겨울, 앵두꽃에서 눈꽃 사이 이 아름다운 술을 빚을 수 있는 새빨간 열매를 서 말, 아니지 다섯 말씀을 그 작은 키에 다닥다닥매달고 서 있었을 앵두나무의 고달픈 시기를 생각하며 나는 찬탄을주체 못 하고 있었다.

친구의 남편이 돌아왔다. 폭설을 멎었지만 논, 밭, 길, 개울의 구별없이 망막한 눈밭에 새로운 길을 내면서 돌아온 그의 귀가는 휘황한헤드라이트를 앞세우고 엔진 소리도 요란하게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쓴 동물의 귀소처럼 야성적으로 보였다. 나는 크게 감동해서 예의 거나한 다변으로 찬사를 퍼부었다. 나의 주정의 또 하나의 미덕은 아무리 마셔도 거나한 것 이상은 취하지 않는 거였다.

짧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찬물을 끼얹듯이 제일 먼저 떠오른생각은 내 아이들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육친이듯이 어머니 역시가장 가까운 육친이라는 거였다. 소위 말하는 일촌 사이가 서로 동등하거늘 나는 내 아이들 대신 어머니가 당한 재난을 마치 타인에게 그것을 떠맡긴 양 다행스러워했던 것이다.

이때 간호원이 우리 가족을 불렀다. 우리는 우르르 담당 의사한테로 몰려갔다. 응급실 담당 레지던트는 너무 젊고 피곤해 보였다.
벽에 붙은 전자시계의 빨간 초침은 소리 없이 자정을 넘고 있었고,
엑스레이 감광판에서 어머니의 앙상한 엉치와 대퇴골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 보이면서 우리 모두를 감싸고도남을 듯이 너그럽고 훈훈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누가 보기에도어머니의 오른손 손목은 정상이 아니었다. 뼈가 불거져 나오고 한쪽으로 약간 삐뚤어져서 성한 손목보다 굵어 보이긴 했지만.

묻고 물어서 당도한 산골굴은 암벽에 빈지문이 달린 굴속이었다.
대낮인데도 촛불을 켜놓고 있었다. 한눈에 보통 토굴이나 암굴하곤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벽이고 천장이고 온통 반짝이는 쇠붙이로 뒤덮여 있었다. 오톨도톨 모자이크된 잗다란 쇠붙이들이 촛불이출렁이는 대로 물결처럼 흔들려 신비한 몽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산골 굴의 주인은 흰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젊은 남자였다. 만약 그가 나이 들고 흰 수염이라도 기르고 있었더라면 우리 남매는다짜고짜 그의 발밑에 몸을 던지고 어머니를 위한 영약을 주십시사간절히 빌었을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의 집도의와 환자 가족 사이가 사뭇 감동스럽다. 초조해하는 가족 앞에서 의사는 잠깐 권위의 갑주를 벗고 인간적인 온정과 성의를 내비친다. 실수할 확률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인간을 인간에게 맡겼다는 게 인간을 백발백중의 기계에게 맡긴 것보다훨씬 마음 놓이게 한다. 그런 마음이 의사에게 당치 않은 엉석도 부리게 하고 때로는 추태에 가까운 애걸이나 부탁, 다짐까지 하게 되고 의사는 가족들의 그런 인간적인 약점에 잠깐이나마 그 어느 때보다도 너그러워지는 아량을 보인다. 어쩌면 그건 아량이라기보다는 동정이나 감상인지도 모르지만

딴것도 아닌 사람들의 목숨을 맡고 맡기는 관계에 있어서 사전에잠시라도 그런 인사치레 내지는 교감이 없다는 게 나는 몹시 허전했다. 수술동의서에 도장 찍는 일보다는 그게 더 필요한 일일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수술장에 들어가기까지의 어머니의 밝고 천진한태도는 많은 위안이 되었다. 팔십 노구에 가해질 대수술에 대해서어쩌면 그렇게 불안 없이 마냥 편안할 수가 있는지 어머니는 산골요법과 수술을 동일시함으로써 그런 편안함에 도달할 것이다. 어머니에게 아직도 오빠는 종교였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아직 수술복인 채인 의사가 눈만 반짝거리는 커다란 마스크의 한쪽 끝을 천천히 귀에서 벗기면 입가엔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 사람 특유의 만족스런 피곤이 감돌고, 마침내 입을 열어 "안심하십시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하면 가족들이 혹은 우러러보기도 하고, 혹은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면서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광경은 출구 쪽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구는 환자를 받아들이고 출구는 환자를 토해내고 가족은 전송하고 마중할 뿐이었다.

장정 둘이서 미는 바퀴 달린 침대는 긴 복도를 신속하게 통과해서엘리베이터 앞에 멎었다. 그러니까 우린 경망스럽게도 이런 시험을바퀴 달린 침대를 겅정겅정 따라가면서 치른 것이다. 더 경망스러운 것은 그런 간단한 시험으로 우린 어머니의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엘리베이터 속에서 우린 벌써 어머니에 대해 무관심했다.

밤에 홍 박사가 수련의들을 거느리고 병실에 들렀다. 회진 시간이 아닌데 들른 걸 보면 그날 수술한 환자만을 특별히 한 번씩 돌아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회진 때와 마찬가지로 일진의 질풍처럼순식간에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몰려갔다. 회진은 늘 질풍이었고복도에서 마주치는 의사 개개인의 걸음걸이나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디에고 머물기를 꺼리는 바람처럼 신속하고 정 없이 스쳐갔다.

어머니는 기운이 없다는 핑계로 기침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가도 가래가 괴면 목에 경련을 일으키며 괴로워해서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가래를 삼키면 폐렴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아무리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무슨 말인지 웅얼거렸다. 기력이 쇠진해서 사람의 육성 같지가 않고 미풍이 가랑잎 흔드는 소리가 났다.

악과 악의 대결처럼 살벌하고 무자비한 모녀의 힘의 대결에서 어머니가 패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손가락 자국대로 선명하게 부풀어 오른 어머니의 뺨에 비로소 내 뺨을 비비며 소리 내어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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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때부터 대처로의 출분을 꿈꿨다. 마침 오빠의 소학교졸업을 기화로 그 꿈은 구체화됐다. 엄마는 아버지의 삼년상도 받들기 전에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맏며느리로서 시부모 공양하고 봉제사라는 신성한 의무를 포기하는 대신 엄마는 아무런 재산상의 권리도 주장하지 못했다. 숟가락 하나도 집안 것은 안 건드리고 오로지 당신의 단 하나의 재간인 바느질 솜씨만 믿고 어린 아들의 손목을 부여잡고 표표히 박적골을 떠났다. 그때는 내가 떠날때 같은 고부간의 사전 불화조차 없었다.

엄마는 표를 사러 가고 나는 할머니와 긴 의자에 앉았다. 농바위고개에서 볼기 맞고 나서 나하고 할머니 사이는 쭉 서먹했다. 할머니는 보따리 귀퉁이에 손을 넣으시더니 조찰떡을 꺼내서 먹으라고하셨다. 나는 헛헛해서 매점 유리창 속에 고운 종이에 싼 먹을 것을바라보며 군침을 삼켰지만 그것을 받아먹긴 싫었다. 나는 속에 팥을 넣고 큰 고구마처럼 아무렇게나 뭉친 조찰떡과 할머니의 갈퀴같이 모진 손이 함께 싫고 창피해서 세차게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에 전송객들도 따라 움직였지만할머니는 그냥 서 계셨기 때문에 곧 보이지 않게 됐다.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서 엉덩이를 들까불러서 의자의 신기한탄력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한 손으로 등받이를 만져보고 쓸어보기도 했다.

어둑해질 무렵 경성역에 내렸다. 경성역은 아닌 게 아니라 컸다.
컸기 때문에 도리어 전모를 파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보는 인파에 휩쓸리면서 엄마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하는 게 고작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여다 준 짐까지 합해서 세 개나 되는 보따리를 이고 들고 구름다리를 오르내리느라 내 손을 잡아줄 수 없었다.
치마꼬리에 매달리는 것도 싫어했다.

나는 험악하게 생긴 지게꾼의 얼굴에 경멸이 스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도시의 집단 속에서 엄마는 작고 초라해 보였다. 동백기름을발라 늘 곱게 빗어 쪽 찌던 머리가 힘겨운 짐을 이었다 내렸다 하는새에 헝클어지고 곤두선 것도 보기 싫었다. 나는 이유가 분명치 않은 슬픔이 복받치는 걸 느꼈지만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말끝마다 꼬박꼬박 상상꼭대기라네, 되지 못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엄마는 포개놓은 세 개의 짐에 머리끝까지 가려서 겅정겅정 뛰다시피 하는 두 다리만 뵈는 지게꾼을 향해 조그만 소리로 그렇게중얼거렸다. 그러나 흥정이 그렇게 끝난 건 나한테는 매우 다행한일이었다. 나는 마음놓고 엄마의 손을 잡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지게꾼을 따라 겅정겅정 뛰다시피 했지만 지게꾼은 줄창 저만큼 앞서가고 있었다.

엄마가 무서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길가에다 화덕을 놓고 동그란 빵을 구워내는 곳에다 동전을 한 푼 내밀었다. 시골집에 있는 다식판 구멍보다 훨씬 큰 구멍에다 묽은 밀가루 반죽을 붓고 팥속을넣어 익힌 따끈한 빵을 두 개 받아 들었다. 팥의 감미는 혀가 녹을것 같았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엿이나 꿀의 감미보다 희미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고혹적이었다. 나는 두 개의 국화빵에 현혹되어 전차 타고 싶은 걸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아껴가며 먹었지만 순식간에 먹었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시골의 감미하곤 이질적인 새로운 감미에 대한 감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상자갑을 쏟아놓은 것처럼 담 쌓인 집들 중의 하나나마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거였다. 현저동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있는 초가집의 문간방에 엄마는 세들어 살고 있었다. 집이 없는 사람이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생활방식에 대해서 그 전에나는 듣도 보지도 못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늘 같은 시부모님한테도 다소곳한 채로 또박또박 할 말을 다하던 엄마가 안집 식구라면 코흘리개까지도 두려워하고 굽신대는 것이었다.

나는 차츰 엄마 앞에서 안집 애한테 엄마가 기겁을 할 짓을 해서엄마로부터 동전을 얻어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 서울 온 날 전차를타는 대신 얻어 먹은 국화빵의 달콤한 팥소 맛을 나는 결코 잊지 못했다. 그것은 엿이나 꿀의 단맛처럼 끈기 같은 게 가미된 강렬한 단맛이 아니라 부드럽고 순수하면서도 혀를 녹일 듯한 감미 그 자체였고 단 한 번에 나를 사로잡은 대처의 추파요, 대처의 사탕발림이었다. 1전짜리 동전은 당장에 그 달콤한 것과 바뀌었다. 국화빵이아니더라도 알사탕이나 박하사탕, 캐러멜 등 구멍가게에서 살 수있는 모든 것에도 나를 못 견디게 현혹시킨 도시의 감미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악필과도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닌 속필로 제아무리 많은 글씨공부도 후딱 끝냈다. 글씨공부 중에서도 일본 가나공부는 단조롭고도 무의미했다. 오빠는 자기 공부가 바빠서인지 그부호의 음만을 가르쳐주었다. 그 부호를 연결해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말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재미를 붙일수가 없었다.

나는 석필보다는 단간방의 연금 상태에서 벗어난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살 것 같았다. 우리가 세든 초가집은 높은 축대 위에 있었다. 대문 밖도 평탄한 골목길이 아니고 인왕산으로 통하는 오르막길에서 가지를 뻗은 좁은 막다른 길이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길 밖은 곧 낭떠러지였다. 그러나 전망은 좋았다. 멀리 파란상자갑같이 생긴 전차가 왕래하는 한길이 보였고, 그 너머론 높고 붉은 담장을 둘러친 어마어마하게 큰 집이 보였다. 그 큰 집엔 임금님이라도 사시는지 파수꾼이 밤이나 낮이나 지켜 서 있었고 전차의 이마빡에 뻗친 더듬이가 공중에 걸린 줄과 맞닿으면서 간간이 일어나는푸른 섬광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 가장 아름다웠다. 나는 그것을볼 때마다 내 속에서도 뭔가와 부딪쳐 스파크를 일으키려는 아슬아슬한 힘 같기도 하고 열기 같기도 한 걸 느끼고 전율했다. 그건 골수에 사무치는 심심함이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비록 여섯 칸짜리 집이지만 없는 게 없었다. 안방, 마루, 건넌방,
부엌, 아랫방, 대문간 이렇게 여섯 개의 방이 공평하게 한 간씩이었다. 마당도 있었다. 마당이 네모나지 않고 삼각형인 게 흠이었다.
엄마는 이런 마당을 ‘우리 괴불마당‘ 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새집은셋집처럼 대문 밖이 낭떠러지가 아니고 보통 골목인 대신 직삼각형마당의 가장 변이 긴 쪽이 남의 집 뒤쪽으로 난 담인데 그 밑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축대였다.

엄마가 이웃을 상종해도 괜찮을 이웃과 상것, 바닥 상것의 세 가지로 나누는 기준은 들쑥날쑥해서 일정치 않았다. 성씨나 사는 형편, 말의 직업하고 관계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았다. 기분내키는 대로였고 또 매우 변덕스러웠다.

시골 우리 면에서도 면서기가 그걸 가지고 집집마다 돌면서 쌀을감춰뒀음 직한 데를 함부로 찌르다 어떤 볏짚더미 속에서 피와 살이 묻어나왔다는 참혹한 소문도 엄마는 가져왔다. 징용을 피해 다니던 남자가 그 속에 숨어 있다가 그런 변을 당했다는 거였다.
일본이 망해가면서 인심이 흉흉하고 내일을 모르게 불안할 무렵나는 중학생이 돼 있었다. 나는 이미 문둥이가 어린이 간을 내먹는다는 소문은 믿지 않았지만 순사의 창이 엄마의 배를 찌르는 악몽에 비하면 그게 도리어 낭만적이었다.

결국 엄마가 악착같이 최초의 말뚝을 박고 서울 살림의 기틀을 마련하던 곳을 뜨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건 엄마의 당초의 소망대로 문안의 좋은 집을 사서 가는 이사가 아니었다. 패색 짙은 일본의마지막 성화인 소개령에 못 이겨 솔선해서 시골로 피난을 떠났다.
피난살이 반년 만에 해방이 되었는데 먼저 상경한 오빠는 북새통에 돈을 좀 벌었는지 문안의 평지에다 집을 장만해서 엄마의 소원을 풀어드렸다. 그 후 살림은 순조롭게 늘어나 좀 더 나은 집으로 이사도 여러 번 다녔다.

어머니가 아무리 그때에다 대면 지금 큰 부자됐지? 하시지만 그때하고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시지 않는 한 우린 그 최초의 말뚝에매인 셈이었다. 놓여났다면 구태여 대볼리가 없었다. 어느 만큼 달라졌나 대본다는 건 한끝을 말뚝에 걸고 새끼줄을 풀다가 문득 그길이를 재보는 격이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친구들하고 영천에서 헤어져서 그 동네의 예전 길을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이 많이 변했지만 우리가 살 때 화산학교라고 부르던 붉은 벽돌집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눈대중 삼기에 편했다. 틀림없었다.
괴불마당 집이 있던 근처에 연립주택이 병풍처럼 들어서서 인왕산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가리고 있었다. 나는 가슴속을 소슬바람이부는 것 같은 감상에 젖으며 그 근처를 헛되이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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