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 이차선 도로 한 가닥이 가파른 산자락을 이리저리 피해서 산맥을 넘어가는데, 그 끝이 동해에 닿았다. 조선시대에 짐말을 끌고 산맥을 넘어가는 행상이나 거간꾼들이 묵어가는 마을이라고 해서 이름이 마장면인데, 대낮에도 인기척이 없었고 낮닭 울음소리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어졌다. 하천이 짧고 빨라서 논은 없었다. 비탈밭에 고추, 양파를 심었고 자투리땅에는 옥수수나 콩을 심었다. 집집마다 개 돼지 염소를 두어 마리씩 길렀다. 행정용어로는 이 같은 삶의 방식을 산촌복합영농이라고 했다. 산골에서 이것저것 다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면사무소 총무계에 배치되었는데 일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다 했다. 가축전염병 예방주사를 신청하는 공문을 작성해서 축협으로 보냈고, 오십 시시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돌면서 공가 상태를 점검했고, 출향해서 도회지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거주지를 분기별로 확인해서 여당 지구당 사무실에 보고했고, 산불조심 팻말을 밭두렁에 박았고, 마을 경로잔치 때 면장의 축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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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희의 편지를 읽고 나서 나의 생애 속에서 흩어진 시간들이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한동안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창밖에 내리는 눈이 바람에 몰려갔다. 기억들이 눈보라에 휩쓸리면서 물러가고 다가왔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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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이 재혼한 여자는 내 고등학교 삼 년 선배였다. 학교다닐 때 나와는 안면이 없었다. 결혼 전에 전남편과 어울려 다녔던 여자라는 것은 결혼 후에 알았다. 그 작은 도시에서는 애정이고 치정이고 불륜이고 간에 들통나지 않는 관계는 없었다. 그러나 전남편이 결혼 후에도 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아마 남들은 다 알았을 것이다. 나는 그 남녀관계에 개입하거나 간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정이 식은 증거라고 해도 할말은 없었다. 그 작은 도시에서 치정이 생활로 자리잡는 경우는 흔했다. 가르치던 여고생과 결혼해서 사는 남자 교사들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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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이춘개는 제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스무 살인가 싶기도 하고 쉰 살인가 싶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서른 살이었거나, 태어날 때부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왔던 것 같기도 했다. 바다에서 시간은 구획되지 않았고, 북서에서 남동으로 풍향이 바뀌어도 바람은 늘 물위를 달려가서 물은 제자리에서 출렁거렸다. 더위와 추위는 사람의 것이었고 계절은 더위나 추위와 상관없이 한데 붙어서 흘러갔다. 아버지의 죽음이나 자식들의 출생도 그렇게 구획되지 않은 채 이어져 있을 것이라고 이춘개는 생각했다. 생각은 안개처럼 뿌에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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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대사가 (소림굴에서) 면벽을 하는데, 이조(二祖)가눈에 서서 팔을 끊고 말했다.
"제자의 마음이 편치가 않으니 스님께서 안심(安心)을 시켜주소서."
달마가 말했다.
"마음을 가지고 오면, 너를 위해 편안하게 해 주리라."
이조가 말했다.
"마음을 찾아보아도 가히 얻지 못하겠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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