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 이차선 도로 한 가닥이 가파른 산자락을 이리저리 피해서 산맥을 넘어가는데, 그 끝이 동해에 닿았다. 조선시대에 짐말을 끌고 산맥을 넘어가는 행상이나 거간꾼들이 묵어가는 마을이라고 해서 이름이 마장면인데, 대낮에도 인기척이 없었고 낮닭 울음소리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어졌다. 하천이 짧고 빨라서 논은 없었다. 비탈밭에 고추, 양파를 심었고 자투리땅에는 옥수수나 콩을 심었다. 집집마다 개 돼지 염소를 두어 마리씩 길렀다. 행정용어로는 이 같은 삶의 방식을 산촌복합영농이라고 했다. 산골에서 이것저것 다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면사무소 총무계에 배치되었는데 일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다 했다. 가축전염병 예방주사를 신청하는 공문을 작성해서 축협으로 보냈고, 오십 시시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돌면서 공가 상태를 점검했고, 출향해서 도회지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거주지를 분기별로 확인해서 여당 지구당 사무실에 보고했고, 산불조심 팻말을 밭두렁에 박았고, 마을 경로잔치 때 면장의 축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