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치고는 때 이르게 한파주의보가 내렸던 날이 기억난다.
북쪽에서부터 찬 공기가 빠르게 내려와, 구름을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렸다. 추분을 지나며 태양의 남중고도가 한결 낮아진 만큼,
높은 구름에 비친 저녁 햇살은 더 큰 각도로 구름 하부에서 반사되며 멋진 저녁놀을 선사했다. 아직 푸른빛이 남아 비취색으로은은하게 빛나는 하늘과 핑크색으로 단장한 높은 구름은 그렇게깊어가는 가을밤을 화려하게 열고 있었다. 다음 날 찬 공기가 불러온 대륙고기압이 세력을 뻗치면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었고 먼지마저 사라졌다. 대기는 빨강과 노랑으로 조금씩물들어가는 벚나무 이파리 사이로 더욱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시인의 탄성이 들려왔다. "오매 단풍들것네."

한 그루의 나무 안에서도 가지마다 나뭇잎이 물드는 속도가달라서 여기저기 다른 색의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어떤 벚나무는 한쪽은 붉은색이고 다른 쪽은 아직 초록색이 많은 콤비로아입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한쪽은 잎이 떨어진 앙상한가지만 남기고, 다른 쪽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다. 생을 다할 때까지 정열을 남김없이 불태우는 모습이 마치 타다 남은 촛불이한데 모여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다.

가을에 더욱 건조해진 공기 안에는 미량의 향기들이 들어 있다. 이 향기들은 각자의 존재를 알리면서 예민해진 후각을 자극한다. 낙엽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다크 초콜릿의 달콤한 향기에다 장작불을 지필 때 맡았던 갖가지 향이 섞여 나온다. 풍파를 만나야 덕이 드러나듯이 낙엽도 으스러질 때마다 지나온 세월의 향기를 내어놓는다. 메타세쿼이아나 소나무 길로 들어서면 갑자기눈이 내린 듯 고요해진다. 가느다란 이파리들이 마치 눈이 내리듯 쌓이면서 소음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면서 곱게 깔린 양탄자 위를 지나가는 것처럼 푹신한 느낌이 든다.

바람도 모나지 않았다면 이파리가 줄기에 단단히 붙어 안정된 환경에서 지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가을이 되어 맑은 날이 계속되면 낮에는 햇빛을 많이 받아 설탕이 많이 생산되고, 밤에는 적외선이 쑥쑥 하늘로 방출되어 기온이 뚝뚝 떨어진다. 떨켜층이 두텁게 자라는 동안 이파리에 남은 영양분은 안토시아닌으로 변해 빨간 단풍잎이 제대로 모양을내게 된다. 이렇게 축복받은 날씨의 혜택을 입은 이파리라면 축적한 영양분이 풍부해서 가을에 감사의 축제라도 벌이듯 곱게 물들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게다가 가을이 되어도 구름이 많이 끼면 낮에는 광합성이 잘되지 않아, 설탕이 덜 만들어지고 색소의 생산도 더뎌진다. 야간에는 구름이 대지를 감싼 비닐하우스 역할을 하게 되어 기온이덜 떨어지고 나무의 생체 시계도 느려진다. 날씨가 끄물끄물하고비가 구질구질하게 자주 오면서 단풍이 활짝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색이 선명하지 않은 단풍이 느리게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사람들은 단풍 색이 왜 이리 탁하냐면서 괜스레 대기오염을 탓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무도 사람처럼 공해와 먼지로 인해 생육에지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날씨가 주는 스트레스가단풍의 빛깔에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화난 사람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듯이 말이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은 점차 짧아지는 추세다. 단풍이 드는 시기도 점차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밤이 길어지는 신호는 일정하지만 기온이 낮아지는 신호는 온난화로 계속 늦추어진다. 두 신호가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나무의생체 시계는 교란되고 단풍의 색도 둔탁해진다. 온난화는 특히낮보다는 밤 기온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 여름철에는 열대야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가을에는 야간의 기온이 덜 떨어지면서단풍도 곱게 물들기 어려워진다. 온난화는 식생의 분포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무들은 더위를 피해 점점 북쪽으로 옮겨간다.
지에서도 점점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단풍은 식생의 분포에 따라 색의 배치가 달라진다.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자연은지금과는 사뭇 다른 가을 풍경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즐기는 단풍의 향연도 후대 사람들에게는 먼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빛이 밝음의 힘이라면 인력은 어둠의 힘이다. 태양이 빛나는 광선으로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안 우리는 이 어둠의 힘을 잊고 산다. 하지만 생명을 다한 별이 남겨두었다는 블랙홀을보라.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심지어는 빛마저도 끌어들인다지 않는가. 달은 햇빛을 반사하여 밤에빛난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하지만 인력만큼은 자기 몫을 낸다.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힘은 태양의 두 배나 된다. 무게는 태양보다 훨씬 덜 나가지만 지구 가까이 있다 보니 물을 끄는 힘은 더 세기 때문이다.

반면 어두운 면을 보면 보름달의 인력에 이끌린 무언가가 무덤에서 일어난다느니 하는 기이한 서양 미신이 떠오른다. 아르헨티나의 어느 시골에는 일곱 번째로 태어난 아이가 사랑에 빠지면보름달이 뜰 때 늑대로 변한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영화 <나자리노>에서 늑대 인간은 금발 소녀 크리셀다와 사랑에 빠지고 두 연인은 결국 마을 사람들의 총에 맞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다.
주제가 〈아이가 태어나면(When a Child Is Born)〉은 나자리노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다. "아이가 자라게 되면 눈물이 웃음으로, 증오가 사랑으로, 전쟁이 평화로 바뀌어 모두가 이웃이 되고,
비애와 고통은 영원히 잊히게 될 겁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꿈이고 환상이지만."

가을밤이 깊어가면서 여기저기 안개가 피어오른다. 구름방울이 첩첩이 쌓인 침침한 수분의 장막을 헤쳐가다 보면 시야가좁아지고 고립된 느낌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어디선가 빛이 비치면 사정이 달라진다. 가로등이나 주변 건물에서 새어나온불빛이 구름방울에 산란하여 광원 주변으로 은은하게 퍼진다. 구름방울이 저마다 작은 광원이 되어 텅 빈 공간을 빛의 선으로 연결하면 나와 주변 세계의 관계망이 복원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나리자〉를 그릴 무렵에도 종종 대륙고기압이 유럽을 감싸면서 기류가 정체하여 꼬물거리는 날씨가 이어졌을 것이다. 대기가 안정한 가운데 먼지가 달라붙은 수증기가 차곡차곡 내려앉아 시야는 흐려지고, 대기 중에서 산란한 햇빛이 전경에 끼어들어 산야에는 어스름한 푸른빛이 감돌았을 것이다. 거장은 인물뒤쪽의 계곡과 폭포와 들판을 연무가 낀 듯 희미하게 처리했다.
배경이 더욱 멀리 있는 것처럼 그려냄으로써 중앙의 인물이 더욱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미래학자 폴 사포(Paul Saffo)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벗어나려하기보다는 껴안으라고 조언한다. 예측대로 굴러가는 시장은 투자할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임을상기하면서도 나에게만큼은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는 건 풀리지않는 딜레마다.

우리는 날씨의 혜택을 많이 받는 나라에 살고 있다. 연중 비나 눈이 적당히 내려주고, 그 사이사이마다 무난한 날씨가 고루섞여 있다. 장마철만 잘 보내면 비나 눈이 기껏 하루 정도 내리다가 날이 회복된다. 궂은 날씨를 잠시 견디고 나면 한동안 평온한날씨가 이어지는 자연의 리듬을 즐길 수 있다. 하늘의 표정이 덤덤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지나가는 날씨는 당연히주어진 것, 으레 있는 평범한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제철에 맞는 옷을 입고 있다면 여름이나 겨울에도 좋은 날씨가 제법 있다. 겨울에는 찬 공기가 자주 내려와 대기가 안정하므로 먼지 농도가 관건이다. 하지만 온대저기압이 막 통과한 후에는 북서풍이 강하게 밀고 내려와 일시적으로 먼지를 내보낸다.
이때 추위만 견딜 수 있다면 습도, 먼지 농도, 하늘 상태 모두 양호한 쾌적한 날씨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북동풍이 불어오는 날이면 동해의 깨끗한 공기가 한동안 들어와 더없이 맑은 하늘을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모든 것이 평탄하게 흘러가서 일기예보도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평탄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얘기를 들어보면 곡절이 있고 남모를 애환이 있듯이 평탄한날씨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을 위한 예보는 여전히 도전적이고 어렵다. 이동성고기압이 한반도에 자리 잡으면서 대체로 무난한 날씨가 예상될 때에도 어떤 이들은 안개나산불이나 불볕더위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사실 무난한 날씨라는표현은 일상적으로 무난한 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나 해당하는것일 뿐이다.

수증기건 먼지건 간에 통상 맑은 날에 몰려와서 문제다. 흐린 날에는 비나 눈이 내려서 기분을 가라앉게 하고, 맑은 날에는수시로 먼지가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늦가을이나 겨울철에 고압권이 세력을 뻗치며 무난한 날씨가 보장되는 때에는 하늘이 뿌옇고 탁하다. 주변에서 배출된 미세먼지가 위로 확산하지 못하고계속 쌓이면서 먼지 농도가 높아진 탓이다. 그게 아니라면 북서풍을 타고 이웃나라에서 오염 먼지가 유입된다. 지자체마다 주변산업 시설의 먼지 배출량을 통제하고 주민에게는 가급적 외출을자제하라는 문자메시지를 계속 날리느라 바쁘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좋거나 나쁜 날씨가 없고, 특별히 무난하거나 평이한 날씨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상황에 따라 날씨의 표정이 달라지고 날씨로 인한 나의 기분도 달라지기때문이다. 내가 평이한 날씨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누군가는 바로 그 날씨로 힘든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날씨는 자연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구름에 따라 하루의 표정이 달라진다. 맑은 날 하면 파란 하늘을 떠올리지만 막상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면 얼마나 단조로울까, 흐린 날에는 으레 구름이 꽉 들어찬 잿빛 하늘을 쳐다보고싶지도 않지만 조금 벌어진 구름 틈새로 햇살이 내려올 때는 또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던가. 우리도 모르는 새 하늘은 순간순간모습이 달라진다. 파란 하늘도 태양의 궤적에 따라 색의 농염이달라진다. 뭐니 뭐니 해도 하늘의 인상을 좌우하는 건 파란 배경사이로 흐르는 구름이다.

5D
구름 중에서 가을 하늘 높이 뜬 새털구름은 반달 모양의 원호를 그리며 파란 하늘에서 하얗게 반짝인다. 마치 새들이 경쾌하게 가지에서 가지로 뛰어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학이 가볍게이리저리 날갯짓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 콩나물처럼 매달린 가는 구름 띠에는 얼음 결정이 들어 있다. 이것이 햇살에 반짝이며 더욱 정결한 느낌을 준다.

대기의 상태와 움직임에 따라 구름의 형태와 모양이 달라지듯이 거꾸로 구름만 잘 관찰해도 일기를 대강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예보관들은 일기도에서 맨 먼저 구름 기호부터 읽는다. 일기도에는 다양한 구름 기호가 쓰여 있다. 이것들은 마치 이집트상형문자같이 생겼다. 뒤집힌 U자는 구름이 솟아나는 모양으로,
뭉게구름을 나타낸다. 옆으로 긴 줄은 구름이 옆으로 퍼지는 모양으로, 비단구름같이 평평한 구름을 나타낸다. 한자를 쓰듯이 펜으로 그린 두세 획이면 27종의 구름을 구분해낼 수 있다.

구름을 분류하는 방식은 학자마다 다를 수 있었지만, 당시유럽 사회는 그림을 통한 과학의 소통 방식에 큰 호응을 보인 것같다. 목동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멀리 지평선까지 드리운 양떼구름에는 한가로움이 담겨 있다. 아이를 안고 웅크린 여인의 뒤로번개의 섬광과 함께 높이 솟은 먹구름에는 격정과 근심이 가득하다. 순간 포착에 뛰어난 사진기가 발명된 후에도 구름 책자에 풍경화와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는 관행은 19세기 내내 이어졌다.
괴테가 구름 에세이를 칭송하는 시를 쓰면서 하워드는 유명세를탔고 그가 제안했던 구름 분류 뼈대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 년을 통틀어 창틀이 바람 소리를 내는 시기가 두어 번 있다. 한 번은 한겨울 시베리아고기압이 확장하며 북풍이 몰아칠때다. 어느 때보다 대기압이 높은 데다 풍속도 초속 10미터에 근접해 소리를 낸다. 겨울철에는 눈이 그치고 한파가 닥칠 때마다이런 소리를 몇 차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폭풍우가 다가오면 기압이 서서히 낮아진다. 그런데 이 미세한 공기의 떨림은 소리로 감지되지 않는다. 설령 미약한 음파가 전해온다고 하더라도 여의도 몇 배만 한 대형 스피커에서나 나올 법한 초저음이라서 듣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든 아니든 간에 우리 주변에서는 공기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기압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중에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것도 있고, 전혀 들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다 위에 출렁이는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기압 파동은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음파와 달리, 파의 진행 방향과 수직으로 공기가 진동하므로 고막을 자극하지 못한다.

공기의 떨림을 소리로만 듣는 것은 아니다. 스피커에 손을대보면 묵직한 저음이 흘러나올 때마다 뭔가가 손을 자극한다.
피부가 음악을 느끼는 순간이다. 쉴 새 없이 스피커의 떨림판이진동하여 공기를 흔들어대고 그 압력이 다양한 리듬으로 피부를두드리는 것이다. 헬렌 켈러도 설리번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입술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껴보지 않았던가.

이렇듯 기압의 파동을 체감하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들리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고 마음으로 그려볼 때, 우리는 대자연이 펼쳐놓은 리듬과 멜로디와 음색의 향연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의도적인 태풍 조절 실험은 멈추었지만, 우리는 매일 온실기체를 배출하며 태풍의 강도와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실험 아닌실험에는 여전히 참여하는 중이다.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기후변화로 대서양의 해류가 난조를 보이고 북극 한파가 남하하며 한기와 난기가 만나는 곳에서 초강력 태풍이 발달한다. 태풍이 몰고 온 거대한 파도가 뉴욕을 비롯한 해안 도시를 집어삼키는 장면은 가공의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자연의 파괴력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계속되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바다에서 증발이 더 활발해진다.
그렇게 증가한 대기 중의 수증기는 태풍의 연료가 되어 더욱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5월에서 6월 초순까지는 건조하고 맑은 날이 많은 편이다.
비가 오더라도 그치고 나면 금방 쾌청한 날씨로 되돌아온다. 햇볕이 점차 따가워져서 아파트 뒷길을 걸을 때도 요리조리 그늘을 찾아다니게 된다. 울타리마다 고개를 내민 빨간 덩굴장미가여왕의 계절임을 말해준다. 꽃봉오리가 막 피어날 때는 진한 빨간색이었다가 활짝 꽃잎이 열리면 점차 꽃의 크기가 커지면서 색도 옅어진다. 햇살이 강해 꽃잎이 말라가고 색깔도 연한 핑크빛에 가까워진다. 이때가 되면 한때 맑기만 했던 하늘은 어느새 우윳빛으로 혼탁해지고 구름이 많아지며 날은 흐리기 일쑤다. 필경장마철이 가까워진 것이다. 덩굴장미는 자연의 시계를 미리 알고있는 듯 이렇게 아름다움을 뽐낼 시기와 물러갈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이다

장맛비는 대양의 수증기가 계절풍을 타고 아시아 대륙의 열기를 찾아가는 대규모 지구촌 행사다. 여름이 되면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지고 열의 적도는 북반구로 옮겨온다. 육지가 많이몰려 있는 북반구는 바다가 많은 남반구보다 빠르게 달아오른다.
특히 아시아 대륙은 광활한 만큼 다른 지역보다 더욱 빠르게 달아오른다. 더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주변에서 바람이 모여든다. 아시아 대륙의 남동쪽에 위치한우리나라는 여름에 바다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남동풍 또는 남서풍이 분다.

식물이 영양분을 축적했다가 꽃을 피울 때 일거에 몰아 쓰듯이 대기도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우기에 몰아 쓴다. 적도에서 조금 비껴 있는 아열대 해역은 햇빛을 듬뿍 받아 수온이 높고 열에너지가 풍부하다. 하지만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바다의 사막이라 불린다. 심해의 자양분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해 물고기도 찾지 않고 고기잡이배도 없는 황량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장맛비를 가져다주는 소중한 수자원의 원천이다. 바다가 햇빛으로부터 받은 많은 에너지는 바닷물이 증발할 때 수증기로 옮겨 탄다. 여름철에는 아열대 해역에서 고원을향해 수증기가 대거 이동하므로, 계절풍의 길목에 놓인 우리나라에는 이 수증기의 다발이 먹구름이 되어 장맛비를 내린다. 그러다가 계절이 바뀌면 계절풍이 점차 북서풍으로 변하면서 장마철도 끝난다.

지구온난화는 장맛비의 또 다른 변수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증발량이 늘어난다.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 중의 수증기도늘어난다. 계절풍의 세기가 같더라도 수증기가 증가하면 계절풍의 길목에서 더 많은 먹구름이 생겨나고 더불어 장맛비도 거세진다. 반면 계절풍을 비껴가는 곳에서는 비가 오지 않고 고온에 땅의 수분이 증발되어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진다.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 추세가 이어진다면 홍수와 가뭄의 대조가 지역별로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항생제를 투여할수록 바이러스의 내성이강해지듯이 자연에 대한 관리 영역을 넓히려 할수록 자연은 더욱미묘하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심술을 부리는 것 같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비나 눈이 오는 것은 태양이 지구를 비추고 있어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대기도 햇빛의 힘으로 움직인다. 대기는 식물처럼 햇빛을 직접 소화할 능력이 거의 없다. 대신 동물처럼 다른 것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먹고 산다. 땅이나 바다가 햇빛을 받아 만들어낸 에너지를 받아 쓰는 것이다. 한마디로 땅과 바다가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대기를 먹여 살린다.

기작은 소나기구름이 발달했다가 소멸하는 데는 반 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잠깐 비를 피해 기다리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금세 날이 개는 것이다.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단조로운 일상에 따분해진 도로시가 〈무지개 너머 어딘가(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노래한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하늘은 푸르고 당신의 꿈이이루어지는 곳."

비온 후 무지개가 뜨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매일 보던 낯익은 건물이며 들판이며 도로이건만, 하늘에 드리운 형형색색의구름다리 아래에서는 새로 단장한 풍경화가 되어버린다. 공장에서 새어 나오는 검은 연기나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차량의 행렬이나 아무렇게나 우후죽순 솟아난 스카이라인도 밝은 빛의 조화에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의 복잡한 고민이나 일터에서 가져은 상념도 잠시 사라지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옛 추억과 아름다운 꿈이 떠오른다.

어둠 속에서 파란빛이 먼저 다가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높은 곳에 떠 있는 기체가 일찍 해를 보고 소식을 전한 것이다. 스카이라인에는 두터운 대기층을 지나며 살아남은 붉은빛과 주변의 파란빛이 섞인 오묘한 보랏빛이 감돈다. 여명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떠오르는 태양을 감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의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빛나는 파랑이다. 햇빛의 빠른 박자에 맞추어 기체 안의 전자가 진동하며 경쾌하게 춤을 춘다. 게다가 바람이 부는 대로 대기가 흔들리면 푸른빛이 반짝거린다. 사파이어가 우주의 별처럼 하늘에 넓게 퍼져 있는 것같다. 기체들은 층층이 쌓여 중력이 끝나는 곳까지 빛을 산란하므로 파란색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보면 볼수록 심원한 대기의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다.

가을은 사계 중 가장 쾌적한 시기다. 장마철에 수증기를 몰고 왔던 남풍은 북서풍으로 바뀌며 습도가 낮아진다. 피부에 뭔가 닿아도 끈끈해지는 불편함도 없고, 그렇다고 피부가 마를까봐 크림을 발라주지 않아도 된다. 실내든 실외든 겉옷만 맞춰 입으면 쉽게 체온을 조절할 수 있다. 체온을 내리기 위해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고 몸을 덥히기 위해 근육을 긴장시키지 않아도 된다. 들판에는 여름 내내 햇빛을 듬뿍 받아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이 수확을 기다린다. 집 앞마당 감나무 가지에는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저 멀리에는 벼이삭이 여문 황금벌판이펼쳐진다. 여기저기 붉거나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 사이로 드러난 하늘은 색의 대비로 파란색이 더욱 선명하다.

특히 새털구름은 깃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함을 더해준다. 아무렇게나 우후죽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어떤 질서와 미적 균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음 입자는 구름 속에병존하는 과냉각 수적이나 주변 수증기를 끌어들여 덩치가 커진다. 그러다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하강하는 동안 증발이일어나 입자는 점차 쪼그라들다 결국 사라진다. 결국 구름의 흔적이 끊기게 되어, 지상에서 보면 가느다란 구름 띠처럼 보인다.
대류권에서 바람은 고도가 높을수록 강하므로, 구름 상부가 하부보다 바람에 많이 밀려 올라가 활 모양으로 휘어진 구름 모양이나온다. 쉼표 모양의 꼬리는 왈츠처럼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리듬으로 차분한 파랑 위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생활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푸른색은 대개 화학적 공법으로 만들어낸 인공 색이다. 휴양지로 유명한 그리스 산토리니섬은하얀 벽돌 위에 돔 모양의 파란 지붕을 얻은 건물들로 관광객의눈길을 끈다. 섬마을 사람들은 석회암에 탤크 가루를 섞은 안료를 썼다. 배를 손질하고 남은 페인트로 지붕뿐 아니라 집 안의 다른 곳을 칠할 만큼 파란색도 흔한 색이 된 것이다. 쓸 수 있는 파란색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지만, 하늘이 보여주는 색의 다양성과 깊이와 광택과는 비교가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에게도 친숙한 비발디의 <사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음악가가 느꼈음직한 계절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베네치아는 우리나라보다 위도는 높지만 지중해에 닿아 있어, 대체로기후가 온화했다. 여름철에는 동쪽의 대륙 열기와 아드리아해의수증기가 함께 유입되어, 우리나라만큼은 무덥지 않더라도 고온에 습도가 높고 강한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사계> 중 ‘여름‘ 1악장은 느린 템포로 더위에 지친 모습을 그려내며 시작된다. 2악장에서는 모기와 파리까지 거들먹거리며 귓가에 윙윙댄다. 그러다가 3악장에서는 마침내 폭풍우가 몰려오고 천둥 번개와 우박이숨 가쁘게 프레스토 템포로 쏟아지며 여름의 대미를 장식한다.
덥더라도 이렇게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면 여름햇살 속에서도 남국의 정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밤에는 산들바람이 불어와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것이다. 우리나라도 입추를 지나 낮이 짧아지기 시작하면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열돔이 오래 지속되면 대기와 땅은 서로 합세하여 가뭄과 사막화를 부채질한다. 비는 오지 않고 햇볕이 계속 내리쬐면 증발이 계속 일어나, 급기야 남아 있던 토양의 수분마저 고갈된다. 대기가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쉽게 발화하고 마른 나무는 불쏘시개가 되어, 산불을 더욱 부채질한다. 땅은 더 쉽게 햇빛에 반응해 온도가 높아지고 더욱 강한 열기가 대기로 진입하여, 열돔을 더욱견고하게 한다. 폭염이 사막화를 유발하고 사막화가 폭염을 더욱부채질하는 최악의 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도심에서는 사방이 건물이나 아파트로 둘러싸여 좀처럼 개방된 시야를 갖기 어렵다. 운이 좋으면 건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을 잠시나마 받을 수 있다. 교외로 나가면 상황은 좀 나아지지만, 산에 가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확 트인 들판으로 나가면 멀리 지평선까지 볼 수 있다. 눈이 좋다는 몽골 유목민이라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그곳에서 양 떼 무리를 분간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먼 지평선 끝이라도 고작해야 몇 킬로미터가안 된다. 지구는 둥글고 빛은 직진하기에 지평선 너머로는 빛이굽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독수리의 눈보다 월등하게뛰어난 눈이 등장했다. 카메라가 달린 위성이 수만 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 높이라면 지평선은 한없이 멀어져서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게다가 고성능 카메라는 지상 위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두 물체를분간할 정도로 시력이 좋다.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로 옆의 사람을 사진으로 찍듯이 위성이 저 높은 곳에서 대기 중에 떠다니는구름의 모습을 시시각각 찍어내는 것이다. 이 사진들은 무선통신으로 지상국에 빛의 속도로 전송된다. 충북 진천에 있는 국가기상위성센터에 가면 마치 영화 <이티(ET)>에나 나올 법한 접시 모양의 안테나가 여러 개 있다. 성인 20명이 두 팔을 벌리고 손을잡아야 에워쌀 수 있을 정도로 대형 안테나다. 이 안테나가 위성에서 보내온 통신 신호를 받는다.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치면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구름 영상이 재생된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하와이에 태풍 분석과 예보를 전담하는 기상센터가 설립되었다. 1970년대 기상위성의 구름 사진이 본격적으로 기상 분석에 쓰이면서 태풍 분석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해상에는 관측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오랜 시간 바다 위로 이동하면서 발달하는 태풍을 직접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높은 파도와 강풍 때문에 중심부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론 요즘은 항공기를 태풍 위로 높이 띄워서 비행 경로상의 바람 등 기상 요소를 관측하기도 하고, 풍선에 관측 기기를 매달아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태풍 중심부에 발달한 구름대에는 난류가 심해서 베테랑 조종사도 비행을 꺼린다.

위성에 장착된 카메라는 비단 천연색 사진이나 열감지 사진만 찍는 게 아니다. 빛의 파장대별로 수천가지 빛을 구분하여 사진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이크로파 빛에 민감한 카메라는 구름 아래로 떨어진 비나 눈을 탐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마이크로파는 파장이 매우 길어, 큰 방해없이 미세한 구름방울 사이를 지나갈 수 있다. 강수 입자가 뿜어내는 마이크로파 빛이 구름을 통과해 위성 카메라에 잡히는 것이다. 그래서 강수지역이나 강수량을 추정하는 데 유용하다.

문제는 일단 만들어진 파도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폭풍우치는 지역을 벗어나 먼 곳까지 간다는 점이다. 먼바다를 지나가는 저기압 주변에 먹구름이 가득하더라도 여기서 멀리 떨어진 해안의 날씨는 맑을 수 있다. 그래서 높아진 파도는 날씨와 상관없이 해안까지 밀려올 수 있다. 맑은 날씨만 믿고 물놀이에 나섰거나 방파제 넘어 물가에 머물다가 변을 당하는 것이다.

기상위성이 태풍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감시하기 전에는태풍의 묘한 전조에 속아 넘어가 태풍과 해일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지금은 태풍이 어디에 있고 언제 우리나라에 올지 며ㅣ 전부터 예고가 되기에, 다행히도 태풍의 전조가 주는 착시 현상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폭풍의 한가운데에 들었던 인삼 밭에 우박 알갱이가 흩뿌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방금 지나간 소나기구름이 벌인 사건이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또는 주변 과수나무의 이파리가 구멍 나거나 심하게 훼손되었다면 이 역시 날씨의 장난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금세 날씨가 좋아지면서한때 긴박했던 시간의 흔적이 지워진 경우가 태반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나온 강변도로는 차량이 전복된 사고 현장임에도 한낮의태양 아래에서 한가롭기만 하다. 설령 인적 드문 새벽녘에 안개가 자욱했거나 영하의 날씨에 도로가 얼어 있었더라도 이제는 햇빛이 안개를 소산시키고 얼음 알갱이를 녹여서 현장은 평온하기만 하다. 사고 현장이 훼손되어, 운전자가 깜박 졸았던 것인지, 아니면 날씨가 악영향을 미쳤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소나기구름이 발달하면 기상이 돌변하여 순식간에 비바람을쓸어내고는 재빨리 달음질친다. 대개는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 큰 피해로 이어진다. 비닐이 갈가리 찢기고 철골 지지대가 엿가락처럼 휘어진 비닐하우스,
이미 바람이 잔잔하고 평온하게 잦아들어서 간밤에 날씨가 일으킨 변덕임을 확신할 길이 없다. 예리한 칼날로 잘라내듯 폭이 1킬로미터도 안 되는 좁은 구역에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은 현장에파편만을 남겼을 뿐이다. 워낙 국지적이라서 기상 레이더 영상이나 주변 관측 자료를 뒤져도 순식간에 피해를 입히고 사라진 날씨의 변덕을 입증하기 어렵다.

사고 현장을 찾은 기상학자 테드 후지타가 감식에 나섰다.
인근에 널브러진 동체 잔해는 원점에서 방사형으로 밀려난 흔적을 보였다. 일찍이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도폭탄이 떨어진 곳을 기점으로 건물과 나무 잔해들이 방사형으로밀려난 것이 관찰되었다. 후지타는 여기에 착안하여 실마리를 찾았다. 발달한 소나기구름에서는 폭탄이 터지듯이 찬 공기 뭉치가한꺼번에 쏟아지고 이것이 활주로 부근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발생한 돌풍이 착륙하던 비행기를 덮쳤음을 추리해낸 것이다. 토네이도보다 작은 규모지만 국지적으로 강하게 터졌다는 의미에서 이 돌풍에는 ‘마이크로버스트(microburst)‘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기상청은 토네이도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면 기상 포렌식 분석팀을 현장에 파견한다. 토네이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회오리바람을 동반한다. 그 안에서는 자동차건 콘크리트 구조물이건 견뎌내질 못하므로 풍속을 직접 관측할 수 없다. 대신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현장에 어지럽게 흩어진 파편들에서 풍속의 단서를 찾는다. 재해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F1에서 F7까지나누고, 등급이 높을수록 풍속이 강한 것이다. 토네이도가 지나간길목을 따라가면서 나무가 쓰러진 방향이나 나뭇가지가 찢겨나간 방향을 보고 당시 사건의 주범을 추정해낸다. 나무들이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바깥 방향으로 쓰러져 있으면 마이크로버스트가 지나간 것이다. 그게 아니라 나선형으로 쓸려나가 있으면 토네이도가 터치다운하여 회오리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상감정사들이 유사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재판, 보험금 심사, 각종 교통사고에서 불가항력적인 날씨의 책임을 가리는 것 외에도 범죄 현장에서 기상 조건에 따른 물증의해석 등 역할도 다양하다. 기상감정사들은 날씨 현장의 조사관이되어 조각조각 드러난 날씨의 파편을 분석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종합하여 대기가 남몰래 한 일을 밝혀낸다.

시냇물을 거슬러 가면 물이 종아리에 닿을 만큼 얕은 곳에이르게 된다. 좀 더 상류로 다가가면 이제 물은 겨우 발목 아래에서 찰랑댄다. 머리 위에는 한여름 햇볕이 따갑지만, 조약돌 위로미끄러지듯 시원한 물살을 맞으며 맨발로 걷는 동안 기운이 솟고마냥 즐거운 기분이 든다. 크고 작은 조약돌 사이로 물이 빠르게지나가며 잔잔한 수면이 심하게 일렁인다. 여기저기 돌멩이에 물살이 부서지며 복잡한 난류가 일어난다. 난류가 심한 곳은 하얀거품이 일기도 한다. 포말이 햇살에 반사되면서 이제 시내는 물과 조약돌과 난류가 섞여 은빛으로 빛난다. 땅에 강물이 흐르듯이 대기에는 수증기의 물길이 흐른다. 시냇물을 거슬러 가면 언젠가 시원에 이르듯이 대기의 물줄기도 거슬러 가면 수증기가 태어난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북태평양고기압은 장마철 비구름의 탄약 구실을 하는 수증기의 원천이다. 열대에서 상승한 공기는 북태평양고기압에서 하강하며 마른 공기를 뿜어댄다. 한반도에 먹구름이 끼고 장맛비가내리는 시간에도 이곳은 맑은 하늘 아래 햇빛을 받아 쉬지 않고해수가 증발한다. 매년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량의 60배에 이르는수증기가 북태평양에서 만들어진다. 또 다른 대기의 물길은 인도양의 아열대 고압대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저 멀리 아라비아반도에서 인도를 거치고 남중국해와 이어진 바닷길을 따라 올라와한반도에 머무는 비구름에 연료를 제공한다.

아열대 해상에서 증발하는 수증기를 물로 따지면 하루 동안몇 밀리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거에 100밀리미터 이상의 많은 비가 한반도에 내린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가 조금만 내려도 하천에 물이 넘치는 것은 주변에서 빗물이 모여 수로에 한꺼번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람을 타고 대기 중의 작은 물길이 한데 모여 한반도에 결집하고 빠른 급류를 만들어내야 좁은 지역에 많은 수증기가 모여들고 구름이 발달하며 큰비가 내린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 쪽으로 확장해 올 때면 남서 해상을 따라 강한 수증기의 급류가 형성된다. 게다가 지형과 지세에 따라 강이나 협곡을 만나면 물길의 통로가좁아진 만큼 급류는 더욱 거세진다. 우리나라 산맥이 주로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만큼, 남서풍이 들어올 때면 한강·금강·영산강 수계를 따라 수증기가 대거 들어와 주변 지역에 많은비를 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구온난화도 변수다. 기온이 상승하면 해상에서 더 많은 수증기가 증발할 것이고, 수증기가 모이는 지역의 강수량이 증가할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평가보고서도아시아 지역 전체의 장마철 강수량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강수량이 많이 증가할 곳을 콕 집어내지 못하는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지고기압(blocking high)과 온대저기압(extratropical cyclone)은 계절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유목민의 기질을 닮았다. 먼저 저지고기압은 흐르는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막는 바윗덩어리 같은것이다. 물이 내려가다 바위를 만나면 양쪽으로 갈라져 흐른다.
바위가 견고하게 버티는 한 주변의 물 흐름도 같은 모양을 계속유지한다. 바위 바로 뒤편에서는 물살이 바위에 막히고 물의 흐름이 정체된다. 이곳에서는 힘들이지 않고도 가만히 서 있을 수있다. 주변에서는 물살이 빠르게 흘러가 몸을 가누기 힘든 것과는 대조된다.

온대저기압은 저지고기압보다 짧은 주기로 날씨의 변동을가져온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고사 성어처럼 일주일 사이에 한란(寒暖)의 기복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대저기압은편서풍 기류에 실려 흘러간다. 저지고기압이 편서풍대를 남북으로 흔들어대면 그 길을 따라 흐르는 온대저기압도 덩달아 남북으로 춤을 춘다. 시냇물을 따라 흘러내려 가는 보트가 바위를 만나면 물살을 따라 주변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옷차림도 변수다. 옷이 피부를 감싸고 있을 때는 옷의 보온성이나 통풍성에 따라 체감온도가 달라진다. 날씨에 예민한 이들은 매일 일기예보를 보면서 옷차림을 달리하겠지만,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계절 감각을 따를 것이다. 이들은 때가 되면 얇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계절 감각을 삐끗하게 하는 건 고온 현상이 지속된 직후에 찾아오는 꽃샘추위다. 이미 세탁해서 장롱깊숙이 처박아놓은 겨울옷을 꺼내 입자니 번거롭고, 그냥 버티자니 춥다. 봄옷으로 버티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따지고보면 꽃샘추위는 햇빛이 대지를 깨우는 계절의 흐름과 때 맞춰발달한 온대저기압의 주기가 맞아떨어지며 나타난다. 온대저기압이 접근할 때는 남풍이 불어와 봄을 재촉하지만, 저기압이 지나갈 때면 차가운 북풍이 내리꽂히며 다시 겨울을 부른다. 몸과마음은 이미 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을 때 역주행하는 날씨가빚어낸 해프닝이다.

전에는 악장마다 연주 시간이 비슷했지만 최근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그 길이도 달라지는 추세다. 봄을 노래하는 1악장은짧아지고, 대신 2악장의 여름은 점점 길어진다. 악장을 다시 육등분한 절기는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기후와는 맞아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조금씩 엇박자를 내고 있다. 기후가변화한 탓이다. 거기에 날씨까지 춤을 추면서 우리가 체감하는계절의 시작과 끝도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일 년 전체를 통틀어보면 자연이 긴장과 이완,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한 편의 완전한교향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걸 알 수 있다.

계절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 지구 곳곳에서 돌림노래가 들려온다. 북반구와 남반구가 마주 보고 서로 다른 성부를 번갈아맡아 합창한다. 북반구가 봄을 노래하면, 반년의 박자를 쉬고 나서 남반구에서 다시 봄이 시작된다. 북반구가 여름으로 가는 동안 남반구는 겨울을 부르며 화음을 맞춘다. 포크댄스를 출 때 짝이 서로 팔짱을 끼고 돌듯이 양 반구의 돌림노래는 지구와 태양이 함께 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름답게 어울리는 것에 황금 비율이 관여한다면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운항 규칙과 도미솔의 화음 사이에도 통하는 게있을 것이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할 때 태양과의 거리와 공전 주기 사이에는 일정한 수적 비례 관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비파 현의 길이를 3분의 2 비율만큼 줄이면 도에서 솔로 음계가 높아진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과학으로 인도했던 우주의 질서는악기를 통해 음악으로 재현되고 음악은 세상의 섭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하여 삶을 지탱하는 힘을 주었을 것이다.

람처럼 차어릴 때 자주 불렀던 <반짝반짝 작은 별>은 선율이 단순해서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누군가가 이 곡을 반복해서 들려준다면금방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내놓은 변주곡을 들으면 연주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재잘대는 종달새 소리를 듣는 것처럼 유쾌해진다. 음악의 대가는 주제 선율을 유지하면서도 화성이나 리듬을 조금씩 다르게 12번이나 변형하여 곡의 분위기를 시종 새롭게 이어준다. 한편으로는 민요 가락에 담긴 태아적 모성에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려한기교와 장식으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안정과 갈등의 타협을 모색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 조화와 평화를 느끼게 한다.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맑게 갠 봄날이면 양지바른 풀밭에 땅해주는 것이다.
을 베개 삼아 누워 하늘을 보고 싶다. 구름은 쉴새없이 지나가고여기서 생겼다 저기서 사라진다. 햇살에 하얗게 반짝이는 뭉게구름만 하더라도 어찌나 빠르게 모양이 달라지는지 현기증을 느낄정도다. 하지만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대지의 따스함이 느껴지면 변화무쌍한 구름이 연출해내는 드라마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날씨의 변주가 아름다운 건 오랜 세월 견고하게 삶의 터전을 지탱해주었던 땅의 숨결이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육안으로 보면 금성은 아이보리에 황색이섞여 우아한 느낌을 주는 반면, 화성은 붉은빛이 감돌아 격렬한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고대부터 금성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비너스 여신으로 섬겨졌다. 저녁이나 새벽에 환하게 반짝이는 샛별(금성)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했다. 반면 화성은 그 붉은빛이피를 연상시킨 탓인지 전쟁의 신으로 숭상받았다.

대기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땅은 우주의 먼지가 굳어진 것이고,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흙과 바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언젠가 태양과 이 땅의 수명이 다하면 바닷물이 끓어올라 금성처럼 뜨겁고 무거운 대기가 될지도 모르고, 이산화탄소가 얼어붙어화성처럼 차갑고 가벼운 대기가 될지도 모른다.

당먼지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것들은 숨 쉴 때 몸에 빨려 들어와 폐에 오래 머무르게 되므로, 미세하고 오염된 먼지일수록 각종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거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오염된 미세먼지가 뇌의 활동을 둔화시킨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가능하면 실내에 머무르며먼지를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문제는 겨울이다. 겨울에는 북쪽에서 남하한 찬 공기가 대기하층부에 깔리기 때문에 대기 안정도가 높아진다. 게다가 밤이길고 남중고도는 낮아서 낮 동안 지면이 받는 일사만으로는 대지가 그렇게 달구어지지 않는다. 겨울에 주변에서 배출한 먼지는위로 확산되기 어려워서 지상 부근에 쌓이고 주변의 먼지 농도가올라간다. 게다가 겨울철에는 우리나라 북서쪽에 있는 만주와 북한에서 땔감을 때면서 배출한 외국산 먼지들이 북서풍을 타고 들어와 국내에서 배출한 먼지와 함께 쌓이므로 미세먼지 농도가 극도로 높아진다. 특히 산업 활동으로 만들어낸 일산화질소, 이산화황 같은 기체들은 햇빛과 작용하여 오존 등의 2차 유해 물질을 잔뜩 만들어낸다. 이런 물질은 두통을 일으키거나 신경계에 장애를유발하기도 한다.

온대저기압이 접근해 오면 먼저 남풍이 따뜻한 공기를 몰고와 포근한 날씨가 한동안 이어진다. 그러다가 높은 구름이 끼기시작하고 점차 낮은 구름이 채워지며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면 이내 비나 눈이 온다. 시들어 있던 이파리가 비를 맞아 푸릇푸릇 탄력을 되찾고, 새들도 저기압이 몰고 온 바람과 돌풍에 대기를 떠도는 곤충을 잡느라 분주하게 떠들어댄다. 막바지에 천둥 번개를동반한 격렬한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고 나면 날이 개기 시작한다. 북풍이 찬 공기를 끌어내리며 하루 이틀은 청명한 날씨가 이어진다. 온대저기압이 지나갈 때마다 날씨의 장단에 맞추어 동식물이 반응하듯이 중위도권에 사는 사람들도 다채로운 춤곡을 즐기는 것 같다.

남반구도 북반구와 마찬가지로 중위도권에는 온대저기압이지나간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위도가 서울보다 3도 낮아, 우리 남해안에 해당하는 34도다. 이 지역의 유명한 춤곡인 탱고는 4박자의 중후한 리듬에 애잔한 선율이 넘나든다. 스페인 남부 춤곡과 마찬가지로 탱고의 느린 선율 속에도 마음 저 깊은 곳에 침전해 있는 감정을 되살려주는 마력이 있는 것같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는 제주 서귀포보다 위도가 3도나 낮아, 여름이면 우리 장마철처럼 습하고 더운 기운이 올라오는 곳이다. 게다가 오래전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의 애달픈 삶의흔적이 녹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색소폰과 함께 흘러나오는재즈도 비록 박자와 리듬은 다르지만 선율에서는 고향을 향한 향수를 달래주듯, 아니면 하루의 노고와 피로를 씻어내듯 달콤한안식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류가 진화해 오는 동안 날씨의 리듬은 우리 몸속에 체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리듬이 몸의 율동으로 드러날 때에도 지역 특유의 기후라는 프리즘을 거치면서 지역마다 다른 양식으로다듬어졌을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고장 특유의 음악과 춤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안에 투영된 자연의 다채로운 풍미를 느껴보게된다.

흙에는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그 주변에 많은 미생물이 공생한다. 이것들도 숨을 쉬며 대기와 소통한다. 나뭇잎이 광합성을하여 햇빛을 화학에너지로 변환하는 동안에도 뿌리를 통해 흙 속의 수분을 빨아올려 대기 중으로 내보낸다. 그게 아니더라도 더운날에는 사람이 땀을 배출해 열을 식히듯이 식물도 체온을 조절하느라 잎을 통해 수분을 대기 중으로 날려보낸다. 흙과 주변 식물이 대기로부터 받은 물은 다시 수증기가 되어 대기로 되돌아간다.
공기는 하늘에만 떠 있고 물은 땅 위로만 흐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땅속으로 이어져서 쉬지 않고 순환한다. 그런 점에서 땅은 하늘의 연장선이고 하늘은 땅의 기운이 퍼져가는 곳이다.

지하 수로나 강을 거쳐 바다로 흘러간 물은 수증기로 증발하여 대기로 옮겨간다. 이 수증기는 어딘가로 이동해 구름이 된다.
구름에서 비나 눈이 땅 위에 내리면 물의 순환 고리가 완성된다.
흙이 없으면 물을 저장하기 어렵고 강줄기도 메마른다. 물을 먹고 사는 땅속 생물의 다양성도 사라질 것이다. 흙이 있기에 물은흙과 대기를 오가며 순환할 수 있고, 이 땅도 생명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장마철에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남서풍을 타고수증기의 물길이 한반도로 밀려오면 여기저기 집중호우가 쏟아진다. 평소 같으면 비가 와도 한나절이면 날이 개고 하늘이 벗겨지지만 이때는 완전히 다르다. 하늘은 종일 흐리다. 간혹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다가도 이내 구름으로 뒤덮이기 일쑤다. 그 와중에도 하늘색은 쉬지 않고 변화한다. 구름이 진해졌다가 옅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런가 하면 잿빛 구름 아래에 검은 구름 조각들이여기저기 떠 있다가 바람을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 먹구름이 지나는 곳마다 강한 비가 쏟아지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수입한 다른 지역의 산물이나 문화를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있다고 해도 원산지에 직접 가보는 것만은 못하다. 아무리 영화를 통해 경치 좋은 곳에 가보고 대리 만족을 해본다 해도 현지에서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다. 여행의 묘미란 날씨 박람회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그곳의 기후에 적응한 현지인이 먹고 입고 자는 대로 체험해보는 데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날씨는 화음이 되어 오감의 체험을 더욱 기억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한편 장마철이 되면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 쪽으로 확장해 오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대양의 뜨거운 수증기 물길이 한반도까지 이어진다. 그러면 길목을 따라 비구름대가 계속 만들어지면서 많은 비가 내린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북태평양고기압이 물러가고 수증기의 물길도 후퇴하여, 우리나라는 다시 청명한하늘 아래 햇살을 듬뿍 받게 된다.

강물은 쉼 없이 흘러간다. 골짜기의 작은 도랑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여러 물줄기가 서로 합쳐져 거대한 강이 되어 흘러가는 소리는 한 편의 교향악이다. 물길이 내려가는 동안 큰 바위에부딪혀 돌아가기도 하고, 협곡을 만나 급물살을 타기도 하고, 낭떠러지에서 폭포가 되어 큰 폭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대해에 도달하고야 마는 것이다. 스메타나는 <나의 조국>이라는 교향시에서 온갖 시련을 넘어 아름다운 강산과 조국을 지켜낸 체코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몰다우강의 흐름에 빗대어 그려냈다.

음악은 시간 속에서 흐른다. 흐름 속에서만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 아름다움을 붙잡기 위해 흐름을 멈추면 음악도 끝난다. 하나의 강은 대기의 물길을 통해서 또 다른 강과 이어져 흐른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더 이상 강이 아니듯이, 바람이 불지 않으면 대기의 강물을 따라 흐르는 음악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강이 흘러왔듯이, 대기의 물길도 오랜 세월 강과 강을 건너고 바다와 바다를 건너 지금까지 흘러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높이 솟은 암벽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좁은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비가 오든 햇볕이 쨍쨍 내리쬐든 나에게는 매일반이었다. 물통과 지팡이 그리고 건포도와 자른 쇠고기 조각만을 가지고 협곡 바닥의 단단한 젖은 모래를 밟으며 나는 위쪽으로 올라갔다. 사슴 여러 마리, 코요테 한마리, 발가락이 3개인 커다란 새 한 마리, 물떼새 혹은 도요새 여러 마리의 발자국과 도마뱀 여러 마리와 뱀 한 마리가 지나간 자국이 있었지만 소나 말, 사람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물속을 걸어야 할 때가 많았다. 개울의 수로가 이쪽 암벽에서 저쪽 암벽으로 꾸불꾸불 나 있었기 때문에 1.5km도 올라가기 전에 나는 12번이나 물속을 걸어야 했다. 부츠를 신고 물속을 걷기란 쉽지않았다. 그러나 이 구불구불한 개울의 가장자리를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개울이 예각을 이루며 구부러져서 절벽을 깎고는 다시 반대편으로 휙 구부러지면서 다시 절벽을 파고들기 때문이었다. 테니스화를 가지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관심의 대상은 콜럼버스 이전의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하는것이었다. 우리는 사실 그들의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알고있다. 그들은 옥수수와 콩, 멜론을 재배했고 토끼와 사슴을 사냥했으며 도기와 광주리 그리고 산호와 뼈로 장신구를 만들었고 요새와같은 집을 지었다. 내 관심사는 왜 그런 집을 지었느냐다. 혹시 아나사지족도 20세기의 미국인들처럼 두려움의 구름 아래서 살았던 게아닐까?

두려움, 그것이 그들 삶의 진짜 중요한 요소였을까? 그들에게 어떤 끈질기고 고약한 적이 있었기에 가장 가까운 목초지나 숲, 산으로부터 160km나 떨어진 이 사막의 미궁 한복판에서조차 그들은 저높은 암벽 위에 제비집 같은 집을 지었을까?

오래전에 이 절벽 주거지는 버려졌다. 그 주민들은 그들이 늘 두려워했던 적들에 의해 몰살당한 것일까? 아니면 나쁜 위생 상태와그들이 사용하는 물과 공기의 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서서히 수가줄어들어 결국 사라지고 만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들의 삶을 회복불능 상태로 만들고 그들을 이곳까지 도주케 한 공포가 그들이사라지게 된 원인이었을까?

끝이 없다는 느낌도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앞에 불이보였다. 벌건 등걸 숯불이었다. 고무보트의 윤곽도 보였다. 나를 안심시키는 광경이었다. 잠이 들었던 랠프가 내가 오는 소리에 얼른일어나서 나를 위해 남겨 놓은 메기 고기를 보여 주었다. 젖은 나뭇잎에 싼 메기 고기는 시원했고 아직도 신선했다.

남은 오후 시간 내내 우리는 그늘쪽에 붙어서 이 멋진 강을 따라흘러갔다. 우리는 환상의 세계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 사암 암벽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았다. 강물에서의 높이가 300, 아니 600m는되는 것 같았다. 돔의 반쪽 또는 돔 모양을 한 그 꼭대기에 햇빛이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늘 쪽은 벌겋게 짙은 적색을 띠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의 중심에 강이 있다. 양쪽 강변에 가는 녹색의 띠를두르고 유유히 흐르는 강이 이 풍경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곳의 경치는 강이 없었다면 멋지기는 하지만 활기가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살아 있는 강이 이 협곡에 조화와 의미를 주고 있다. "나는 흐르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고 아일랜드의 시인이 말했다던가.
우리는 저녁쯤에 유서 깊은 ‘바위 구멍(Hole in the Rock)‘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 강가에 상륙해서 밤을 지낼 캠프를 차렸다.

나는 강을 바로 발 밑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으로 걸어갔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보였고 협곡의 어귀에 녹색 식물들이 부채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그러나 버드나무 그늘 깊숙이 있는뉴컴과 보트는 보이지 않았다. 이 위에서는 그동안 내 귀를 떠나지않던 강물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사막의 정적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사막의 소리라고나 할까? 발자크는 어느 책에선가 이렇게 썼다. "사막에는 모든 것이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없다.
신은 있지만 인간은 없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지만 충분히 더디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우리여행의 끝이 가까워져 올수록 협곡의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더 아름다워졌다. 우리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은 스트론튬(금속원소의 일종)처럼 우리 골수에 스며들어 있었다. 글렌캐니언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우리 심장을 먹고, 우리 창자를 씹고, 무력한 분노 속에 우리 자신을소진해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들어가면서 우리는 네군도단풍과 미루나무로 이루어진 작은 숲을 보게 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위가 깎여 만들어진 넓은 방이 보인다. 위쪽 끝에 맑은 물이 고인 깊은 못이 있고 못 주위는 푸른 초목으로 둘리어 있다. 그 못 옆에 서면 입구의 작은 숲이보인다. 방은 높이가 60m가 넘고 길이가 150m, 너비가 60m이다. 천정과 300m 위의 바위 틈에서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틈은 이 건조한 지역에 가끔 소나기가 내릴 때만 흐르는 작은 시내에 의해 생긴것이다."

우리가 기대한 폭우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짐을 캔버스천으로덮어 놓고 하얀 모래언덕에 파인 우묵한 구덩이에 슬리핑 백을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을 청했다. 잠이 들면서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사이로 한 움큼의 별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소용돌이치는 강물에 다시 보트를 띄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잔잔한 물로 빠져나왔다. 우리의 작은 보트는 잘 견뎌 주고 있었다. 바위에 그렇게 여러 번 부딪치고 모래나 부러져 나간 나무 그루터기 위로 그렇게 여러 번 끌고 왔는데도, 펑크난 곳 하나 없고 공기가 새는곳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우리는 우리가있는 곳에서 글렌캐니언 댐 공사장까지 모터보트로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 자연의 다리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오솔길을 걸어 협곡을 10km쯤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알고 있었다. 그 거리는 자동차에 익숙해진 보통의 관광객들에게는달나라에 가는 것만큼이나 멀게 느껴질 것이다. 즉, 이 야영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관광객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오솔길 옆에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에메랄드빛 못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 어떤 것은 들어가 헤엄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물이 너무나 맑아서 바닥의 모래 알갱이 위를 지나는 작은 물고기 떼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협곡의 암벽에서 물이 새어나오거나 솟아 흘러 시냇물을 이루었다. 물이 나오는 곳마다 이끼, 고사리, 야생화들이 자라서 독특하게 공중에 매달린 정원을 만들었다. 암벽 너머에는돔과 아치 등이 나바호산의 사암비탈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골짜기에도 역시 시내가 흐르고 있었고 아까보다 훨씬 더 작았지만 군데군데 우묵하게 패인 샘이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작은 샘들을 지나자 시내는 작아져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대신 물이 고인 웅덩이들이 햇볕을 받고 있었다.

*모든 탁월한 것은 귀한 만큼 어렵다"고 한 현인은 말했다. 어려움과 귀함이 제거될 때 탁월함은 어떻게 될까? 말, 말… 말의 유희에시달리다보니 목이 말랐다. 협곡 건너편에 또 하나의 샘이 있었다.
다리의 서편 받침 아래 있는 선반 바위 밑에서 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나는 비탈을 내려갔다가 다른 쪽 비탈을 다시 올라간 후 누군가가 남겨 놓고 간 깡통들 가운데 하나를 주워서 그것으로 이끼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