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통틀어 창틀이 바람 소리를 내는 시기가 두어 번 있다. 한 번은 한겨울 시베리아고기압이 확장하며 북풍이 몰아칠때다. 어느 때보다 대기압이 높은 데다 풍속도 초속 10미터에 근접해 소리를 낸다. 겨울철에는 눈이 그치고 한파가 닥칠 때마다이런 소리를 몇 차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폭풍우가 다가오면 기압이 서서히 낮아진다. 그런데 이 미세한 공기의 떨림은 소리로 감지되지 않는다. 설령 미약한 음파가 전해온다고 하더라도 여의도 몇 배만 한 대형 스피커에서나 나올 법한 초저음이라서 듣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든 아니든 간에 우리 주변에서는 공기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기압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중에는 소리로 들을 수 있는것도 있고, 전혀 들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다 위에 출렁이는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기압 파동은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음파와 달리, 파의 진행 방향과 수직으로 공기가 진동하므로 고막을 자극하지 못한다.
공기의 떨림을 소리로만 듣는 것은 아니다. 스피커에 손을대보면 묵직한 저음이 흘러나올 때마다 뭔가가 손을 자극한다. 피부가 음악을 느끼는 순간이다. 쉴 새 없이 스피커의 떨림판이진동하여 공기를 흔들어대고 그 압력이 다양한 리듬으로 피부를두드리는 것이다. 헬렌 켈러도 설리번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입술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껴보지 않았던가.
이렇듯 기압의 파동을 체감하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들리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고 마음으로 그려볼 때, 우리는 대자연이 펼쳐놓은 리듬과 멜로디와 음색의 향연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의도적인 태풍 조절 실험은 멈추었지만, 우리는 매일 온실기체를 배출하며 태풍의 강도와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실험 아닌실험에는 여전히 참여하는 중이다.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기후변화로 대서양의 해류가 난조를 보이고 북극 한파가 남하하며 한기와 난기가 만나는 곳에서 초강력 태풍이 발달한다. 태풍이 몰고 온 거대한 파도가 뉴욕을 비롯한 해안 도시를 집어삼키는 장면은 가공의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자연의 파괴력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계속되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바다에서 증발이 더 활발해진다. 그렇게 증가한 대기 중의 수증기는 태풍의 연료가 되어 더욱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5월에서 6월 초순까지는 건조하고 맑은 날이 많은 편이다. 비가 오더라도 그치고 나면 금방 쾌청한 날씨로 되돌아온다. 햇볕이 점차 따가워져서 아파트 뒷길을 걸을 때도 요리조리 그늘을 찾아다니게 된다. 울타리마다 고개를 내민 빨간 덩굴장미가여왕의 계절임을 말해준다. 꽃봉오리가 막 피어날 때는 진한 빨간색이었다가 활짝 꽃잎이 열리면 점차 꽃의 크기가 커지면서 색도 옅어진다. 햇살이 강해 꽃잎이 말라가고 색깔도 연한 핑크빛에 가까워진다. 이때가 되면 한때 맑기만 했던 하늘은 어느새 우윳빛으로 혼탁해지고 구름이 많아지며 날은 흐리기 일쑤다. 필경장마철이 가까워진 것이다. 덩굴장미는 자연의 시계를 미리 알고있는 듯 이렇게 아름다움을 뽐낼 시기와 물러갈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이다
장맛비는 대양의 수증기가 계절풍을 타고 아시아 대륙의 열기를 찾아가는 대규모 지구촌 행사다. 여름이 되면 태양의 남중고도가 높아지고 열의 적도는 북반구로 옮겨온다. 육지가 많이몰려 있는 북반구는 바다가 많은 남반구보다 빠르게 달아오른다. 특히 아시아 대륙은 광활한 만큼 다른 지역보다 더욱 빠르게 달아오른다. 더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주변에서 바람이 모여든다. 아시아 대륙의 남동쪽에 위치한우리나라는 여름에 바다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남동풍 또는 남서풍이 분다.
식물이 영양분을 축적했다가 꽃을 피울 때 일거에 몰아 쓰듯이 대기도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우기에 몰아 쓴다. 적도에서 조금 비껴 있는 아열대 해역은 햇빛을 듬뿍 받아 수온이 높고 열에너지가 풍부하다. 하지만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바다의 사막이라 불린다. 심해의 자양분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해 물고기도 찾지 않고 고기잡이배도 없는 황량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장맛비를 가져다주는 소중한 수자원의 원천이다. 바다가 햇빛으로부터 받은 많은 에너지는 바닷물이 증발할 때 수증기로 옮겨 탄다. 여름철에는 아열대 해역에서 고원을향해 수증기가 대거 이동하므로, 계절풍의 길목에 놓인 우리나라에는 이 수증기의 다발이 먹구름이 되어 장맛비를 내린다. 그러다가 계절이 바뀌면 계절풍이 점차 북서풍으로 변하면서 장마철도 끝난다.
지구온난화는 장맛비의 또 다른 변수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증발량이 늘어난다.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 중의 수증기도늘어난다. 계절풍의 세기가 같더라도 수증기가 증가하면 계절풍의 길목에서 더 많은 먹구름이 생겨나고 더불어 장맛비도 거세진다. 반면 계절풍을 비껴가는 곳에서는 비가 오지 않고 고온에 땅의 수분이 증발되어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진다.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 추세가 이어진다면 홍수와 가뭄의 대조가 지역별로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항생제를 투여할수록 바이러스의 내성이강해지듯이 자연에 대한 관리 영역을 넓히려 할수록 자연은 더욱미묘하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심술을 부리는 것 같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비나 눈이 오는 것은 태양이 지구를 비추고 있어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대기도 햇빛의 힘으로 움직인다. 대기는 식물처럼 햇빛을 직접 소화할 능력이 거의 없다. 대신 동물처럼 다른 것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먹고 산다. 땅이나 바다가 햇빛을 받아 만들어낸 에너지를 받아 쓰는 것이다. 한마디로 땅과 바다가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대기를 먹여 살린다.
기작은 소나기구름이 발달했다가 소멸하는 데는 반 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잠깐 비를 피해 기다리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금세 날이 개는 것이다.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단조로운 일상에 따분해진 도로시가 〈무지개 너머 어딘가(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노래한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하늘은 푸르고 당신의 꿈이이루어지는 곳."
비온 후 무지개가 뜨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매일 보던 낯익은 건물이며 들판이며 도로이건만, 하늘에 드리운 형형색색의구름다리 아래에서는 새로 단장한 풍경화가 되어버린다. 공장에서 새어 나오는 검은 연기나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차량의 행렬이나 아무렇게나 우후죽순 솟아난 스카이라인도 밝은 빛의 조화에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의 복잡한 고민이나 일터에서 가져은 상념도 잠시 사라지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옛 추억과 아름다운 꿈이 떠오른다.
어둠 속에서 파란빛이 먼저 다가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높은 곳에 떠 있는 기체가 일찍 해를 보고 소식을 전한 것이다. 스카이라인에는 두터운 대기층을 지나며 살아남은 붉은빛과 주변의 파란빛이 섞인 오묘한 보랏빛이 감돈다. 여명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떠오르는 태양을 감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의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빛나는 파랑이다. 햇빛의 빠른 박자에 맞추어 기체 안의 전자가 진동하며 경쾌하게 춤을 춘다. 게다가 바람이 부는 대로 대기가 흔들리면 푸른빛이 반짝거린다. 사파이어가 우주의 별처럼 하늘에 넓게 퍼져 있는 것같다. 기체들은 층층이 쌓여 중력이 끝나는 곳까지 빛을 산란하므로 파란색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보면 볼수록 심원한 대기의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다.
가을은 사계 중 가장 쾌적한 시기다. 장마철에 수증기를 몰고 왔던 남풍은 북서풍으로 바뀌며 습도가 낮아진다. 피부에 뭔가 닿아도 끈끈해지는 불편함도 없고, 그렇다고 피부가 마를까봐 크림을 발라주지 않아도 된다. 실내든 실외든 겉옷만 맞춰 입으면 쉽게 체온을 조절할 수 있다. 체온을 내리기 위해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고 몸을 덥히기 위해 근육을 긴장시키지 않아도 된다. 들판에는 여름 내내 햇빛을 듬뿍 받아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이 수확을 기다린다. 집 앞마당 감나무 가지에는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저 멀리에는 벼이삭이 여문 황금벌판이펼쳐진다. 여기저기 붉거나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 사이로 드러난 하늘은 색의 대비로 파란색이 더욱 선명하다.
특히 새털구름은 깃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함을 더해준다. 아무렇게나 우후죽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어떤 질서와 미적 균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음 입자는 구름 속에병존하는 과냉각 수적이나 주변 수증기를 끌어들여 덩치가 커진다. 그러다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하강하는 동안 증발이일어나 입자는 점차 쪼그라들다 결국 사라진다. 결국 구름의 흔적이 끊기게 되어, 지상에서 보면 가느다란 구름 띠처럼 보인다. 대류권에서 바람은 고도가 높을수록 강하므로, 구름 상부가 하부보다 바람에 많이 밀려 올라가 활 모양으로 휘어진 구름 모양이나온다. 쉼표 모양의 꼬리는 왈츠처럼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리듬으로 차분한 파랑 위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생활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푸른색은 대개 화학적 공법으로 만들어낸 인공 색이다. 휴양지로 유명한 그리스 산토리니섬은하얀 벽돌 위에 돔 모양의 파란 지붕을 얻은 건물들로 관광객의눈길을 끈다. 섬마을 사람들은 석회암에 탤크 가루를 섞은 안료를 썼다. 배를 손질하고 남은 페인트로 지붕뿐 아니라 집 안의 다른 곳을 칠할 만큼 파란색도 흔한 색이 된 것이다. 쓸 수 있는 파란색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지만, 하늘이 보여주는 색의 다양성과 깊이와 광택과는 비교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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