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친숙한 비발디의 <사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음악가가 느꼈음직한 계절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베네치아는 우리나라보다 위도는 높지만 지중해에 닿아 있어, 대체로기후가 온화했다. 여름철에는 동쪽의 대륙 열기와 아드리아해의수증기가 함께 유입되어, 우리나라만큼은 무덥지 않더라도 고온에 습도가 높고 강한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사계> 중 ‘여름‘ 1악장은 느린 템포로 더위에 지친 모습을 그려내며 시작된다. 2악장에서는 모기와 파리까지 거들먹거리며 귓가에 윙윙댄다. 그러다가 3악장에서는 마침내 폭풍우가 몰려오고 천둥 번개와 우박이숨 가쁘게 프레스토 템포로 쏟아지며 여름의 대미를 장식한다. 덥더라도 이렇게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면 여름햇살 속에서도 남국의 정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밤에는 산들바람이 불어와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것이다. 우리나라도 입추를 지나 낮이 짧아지기 시작하면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열돔이 오래 지속되면 대기와 땅은 서로 합세하여 가뭄과 사막화를 부채질한다. 비는 오지 않고 햇볕이 계속 내리쬐면 증발이 계속 일어나, 급기야 남아 있던 토양의 수분마저 고갈된다. 대기가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쉽게 발화하고 마른 나무는 불쏘시개가 되어, 산불을 더욱 부채질한다. 땅은 더 쉽게 햇빛에 반응해 온도가 높아지고 더욱 강한 열기가 대기로 진입하여, 열돔을 더욱견고하게 한다. 폭염이 사막화를 유발하고 사막화가 폭염을 더욱부채질하는 최악의 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도심에서는 사방이 건물이나 아파트로 둘러싸여 좀처럼 개방된 시야를 갖기 어렵다. 운이 좋으면 건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을 잠시나마 받을 수 있다. 교외로 나가면 상황은 좀 나아지지만, 산에 가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확 트인 들판으로 나가면 멀리 지평선까지 볼 수 있다. 눈이 좋다는 몽골 유목민이라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그곳에서 양 떼 무리를 분간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먼 지평선 끝이라도 고작해야 몇 킬로미터가안 된다. 지구는 둥글고 빛은 직진하기에 지평선 너머로는 빛이굽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독수리의 눈보다 월등하게뛰어난 눈이 등장했다. 카메라가 달린 위성이 수만 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 높이라면 지평선은 한없이 멀어져서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게다가 고성능 카메라는 지상 위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두 물체를분간할 정도로 시력이 좋다.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로 옆의 사람을 사진으로 찍듯이 위성이 저 높은 곳에서 대기 중에 떠다니는구름의 모습을 시시각각 찍어내는 것이다. 이 사진들은 무선통신으로 지상국에 빛의 속도로 전송된다. 충북 진천에 있는 국가기상위성센터에 가면 마치 영화 <이티(ET)>에나 나올 법한 접시 모양의 안테나가 여러 개 있다. 성인 20명이 두 팔을 벌리고 손을잡아야 에워쌀 수 있을 정도로 대형 안테나다. 이 안테나가 위성에서 보내온 통신 신호를 받는다.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치면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구름 영상이 재생된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하와이에 태풍 분석과 예보를 전담하는 기상센터가 설립되었다. 1970년대 기상위성의 구름 사진이 본격적으로 기상 분석에 쓰이면서 태풍 분석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해상에는 관측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오랜 시간 바다 위로 이동하면서 발달하는 태풍을 직접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높은 파도와 강풍 때문에 중심부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론 요즘은 항공기를 태풍 위로 높이 띄워서 비행 경로상의 바람 등 기상 요소를 관측하기도 하고, 풍선에 관측 기기를 매달아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태풍 중심부에 발달한 구름대에는 난류가 심해서 베테랑 조종사도 비행을 꺼린다.
위성에 장착된 카메라는 비단 천연색 사진이나 열감지 사진만 찍는 게 아니다. 빛의 파장대별로 수천가지 빛을 구분하여 사진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이크로파 빛에 민감한 카메라는 구름 아래로 떨어진 비나 눈을 탐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마이크로파는 파장이 매우 길어, 큰 방해없이 미세한 구름방울 사이를 지나갈 수 있다. 강수 입자가 뿜어내는 마이크로파 빛이 구름을 통과해 위성 카메라에 잡히는 것이다. 그래서 강수지역이나 강수량을 추정하는 데 유용하다.
문제는 일단 만들어진 파도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폭풍우치는 지역을 벗어나 먼 곳까지 간다는 점이다. 먼바다를 지나가는 저기압 주변에 먹구름이 가득하더라도 여기서 멀리 떨어진 해안의 날씨는 맑을 수 있다. 그래서 높아진 파도는 날씨와 상관없이 해안까지 밀려올 수 있다. 맑은 날씨만 믿고 물놀이에 나섰거나 방파제 넘어 물가에 머물다가 변을 당하는 것이다.
기상위성이 태풍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감시하기 전에는태풍의 묘한 전조에 속아 넘어가 태풍과 해일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지금은 태풍이 어디에 있고 언제 우리나라에 올지 며ㅣ 전부터 예고가 되기에, 다행히도 태풍의 전조가 주는 착시 현상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폭풍의 한가운데에 들었던 인삼 밭에 우박 알갱이가 흩뿌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방금 지나간 소나기구름이 벌인 사건이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또는 주변 과수나무의 이파리가 구멍 나거나 심하게 훼손되었다면 이 역시 날씨의 장난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금세 날씨가 좋아지면서한때 긴박했던 시간의 흔적이 지워진 경우가 태반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나온 강변도로는 차량이 전복된 사고 현장임에도 한낮의태양 아래에서 한가롭기만 하다. 설령 인적 드문 새벽녘에 안개가 자욱했거나 영하의 날씨에 도로가 얼어 있었더라도 이제는 햇빛이 안개를 소산시키고 얼음 알갱이를 녹여서 현장은 평온하기만 하다. 사고 현장이 훼손되어, 운전자가 깜박 졸았던 것인지, 아니면 날씨가 악영향을 미쳤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소나기구름이 발달하면 기상이 돌변하여 순식간에 비바람을쓸어내고는 재빨리 달음질친다. 대개는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 큰 피해로 이어진다. 비닐이 갈가리 찢기고 철골 지지대가 엿가락처럼 휘어진 비닐하우스, 이미 바람이 잔잔하고 평온하게 잦아들어서 간밤에 날씨가 일으킨 변덕임을 확신할 길이 없다. 예리한 칼날로 잘라내듯 폭이 1킬로미터도 안 되는 좁은 구역에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은 현장에파편만을 남겼을 뿐이다. 워낙 국지적이라서 기상 레이더 영상이나 주변 관측 자료를 뒤져도 순식간에 피해를 입히고 사라진 날씨의 변덕을 입증하기 어렵다.
사고 현장을 찾은 기상학자 테드 후지타가 감식에 나섰다. 인근에 널브러진 동체 잔해는 원점에서 방사형으로 밀려난 흔적을 보였다. 일찍이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도폭탄이 떨어진 곳을 기점으로 건물과 나무 잔해들이 방사형으로밀려난 것이 관찰되었다. 후지타는 여기에 착안하여 실마리를 찾았다. 발달한 소나기구름에서는 폭탄이 터지듯이 찬 공기 뭉치가한꺼번에 쏟아지고 이것이 활주로 부근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발생한 돌풍이 착륙하던 비행기를 덮쳤음을 추리해낸 것이다. 토네이도보다 작은 규모지만 국지적으로 강하게 터졌다는 의미에서 이 돌풍에는 ‘마이크로버스트(microburst)‘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기상청은 토네이도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면 기상 포렌식 분석팀을 현장에 파견한다. 토네이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회오리바람을 동반한다. 그 안에서는 자동차건 콘크리트 구조물이건 견뎌내질 못하므로 풍속을 직접 관측할 수 없다. 대신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현장에 어지럽게 흩어진 파편들에서 풍속의 단서를 찾는다. 재해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F1에서 F7까지나누고, 등급이 높을수록 풍속이 강한 것이다. 토네이도가 지나간길목을 따라가면서 나무가 쓰러진 방향이나 나뭇가지가 찢겨나간 방향을 보고 당시 사건의 주범을 추정해낸다. 나무들이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바깥 방향으로 쓰러져 있으면 마이크로버스트가 지나간 것이다. 그게 아니라 나선형으로 쓸려나가 있으면 토네이도가 터치다운하여 회오리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상감정사들이 유사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재판, 보험금 심사, 각종 교통사고에서 불가항력적인 날씨의 책임을 가리는 것 외에도 범죄 현장에서 기상 조건에 따른 물증의해석 등 역할도 다양하다. 기상감정사들은 날씨 현장의 조사관이되어 조각조각 드러난 날씨의 파편을 분석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종합하여 대기가 남몰래 한 일을 밝혀낸다.
시냇물을 거슬러 가면 물이 종아리에 닿을 만큼 얕은 곳에이르게 된다. 좀 더 상류로 다가가면 이제 물은 겨우 발목 아래에서 찰랑댄다. 머리 위에는 한여름 햇볕이 따갑지만, 조약돌 위로미끄러지듯 시원한 물살을 맞으며 맨발로 걷는 동안 기운이 솟고마냥 즐거운 기분이 든다. 크고 작은 조약돌 사이로 물이 빠르게지나가며 잔잔한 수면이 심하게 일렁인다. 여기저기 돌멩이에 물살이 부서지며 복잡한 난류가 일어난다. 난류가 심한 곳은 하얀거품이 일기도 한다. 포말이 햇살에 반사되면서 이제 시내는 물과 조약돌과 난류가 섞여 은빛으로 빛난다. 땅에 강물이 흐르듯이 대기에는 수증기의 물길이 흐른다. 시냇물을 거슬러 가면 언젠가 시원에 이르듯이 대기의 물줄기도 거슬러 가면 수증기가 태어난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북태평양고기압은 장마철 비구름의 탄약 구실을 하는 수증기의 원천이다. 열대에서 상승한 공기는 북태평양고기압에서 하강하며 마른 공기를 뿜어댄다. 한반도에 먹구름이 끼고 장맛비가내리는 시간에도 이곳은 맑은 하늘 아래 햇빛을 받아 쉬지 않고해수가 증발한다. 매년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량의 60배에 이르는수증기가 북태평양에서 만들어진다. 또 다른 대기의 물길은 인도양의 아열대 고압대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저 멀리 아라비아반도에서 인도를 거치고 남중국해와 이어진 바닷길을 따라 올라와한반도에 머무는 비구름에 연료를 제공한다.
아열대 해상에서 증발하는 수증기를 물로 따지면 하루 동안몇 밀리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거에 100밀리미터 이상의 많은 비가 한반도에 내린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가 조금만 내려도 하천에 물이 넘치는 것은 주변에서 빗물이 모여 수로에 한꺼번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람을 타고 대기 중의 작은 물길이 한데 모여 한반도에 결집하고 빠른 급류를 만들어내야 좁은 지역에 많은 수증기가 모여들고 구름이 발달하며 큰비가 내린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 쪽으로 확장해 올 때면 남서 해상을 따라 강한 수증기의 급류가 형성된다. 게다가 지형과 지세에 따라 강이나 협곡을 만나면 물길의 통로가좁아진 만큼 급류는 더욱 거세진다. 우리나라 산맥이 주로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만큼, 남서풍이 들어올 때면 한강·금강·영산강 수계를 따라 수증기가 대거 들어와 주변 지역에 많은비를 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구온난화도 변수다. 기온이 상승하면 해상에서 더 많은 수증기가 증발할 것이고, 수증기가 모이는 지역의 강수량이 증가할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평가보고서도아시아 지역 전체의 장마철 강수량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강수량이 많이 증가할 곳을 콕 집어내지 못하는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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