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K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나로서는....… 역술인이 영화 <트루먼 쇼>처럼 내 삶에 CCTV를달아놓은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너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가면,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병나서 간다고 하신다! 쉬어! 좀 쉬라고!"
K는 더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영국에서의 첫날 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최저가의 방을 예약한 우리는 무려 30명이 한방을 쓰는 도미토리에서 잤다. 완벽히 불협화음인 오케스트라의 협주를듣는 것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다채로운 코골이를 들으며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잠귀가몹시 밝고 예민한 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쯤 되니 없던 괴물이라도 만들어 호수에 풀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목이 길쭉한 괴물 모양의 기념품을사는데 Y와 나는 꿋꿋이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빈손으로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 다녀온 이후 나의 통증은 씻은 듯이 나았다. 계산해보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닷새 만에 처음으로 큰일을 본 것이었다. 평생 변비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내가 유럽에 와서야 ‘가스가 찬다는 것‘의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생경한 감각을 맹장염으로오인한 거였다. 나는 Y에게 달려가 나의 무사함을 알렸고,
Y는 한숨을 쉬며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밝고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행자보험 안 들길 잘했다!?

나는 거의 졸도할 정도로 놀랐다. Y가 원체 성실하고꾸준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문자그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해왔을 줄이야. 그것은 성실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거의 초인에 다다른 그 경지에 나는 Y를 조금은 존경하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그 후로도 온갖 해프닝으로 점철되었다. 유럽 5개국을 오가는 힘든 여정에, 한 달 동안 200만원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극도로 절약한 고생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다만 많이 웃었다. 후에 생각해보면 초저가의 예산에 맞춰 힘겹게 계획을 짜고 통역을 하며 나를 끌고 다닌 Y가 아무것도 하지않고 졸졸 따라다니는 나를 견뎌준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Y의 말이 진실인지, 정말 열몇 살의 그때부터 내가 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었던 내 삶을, 궤적을 누군가 믿고 지켜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이제는 그 옛날 강남역 맥도날드 때처럼 서로 마주 보고 있지 않으니, 나는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일ㄹ
송지현의 다른 다짐들처럼 공허하게 흩어져버릴 헛소린 줄 알았는데, 지현은 정말 그길로 강원도 동해로 가 살기 시작했다(그리고 그곳에서도 아주 적은 양의 소설을 쓰고 아주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나는 꿔준 돈보다 턱없이싼 아파트를 받아 온 지현의 아버지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과대평가한 송지현 덕분에 여름마다 동해로 휴가를 갈수 있었으며, 때문에 일생의 대부분을 경기도에서 살아온송지현을 강원의 딸로 여기게 되었다(하나 송지현은 약 2년여의 강원도 생활을 뒤로하고 빈손으로 다시 경기도의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ㄷ그러나 우리의 꽃가마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관에부딪혔다. 봉천동, 상가 앞의 골목이 너무 좁아 초보 운전인 내가 운전하기에 몹시 까다로웠다. 나는 개미가 기어가는 속도로 차를 몰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치지 않기 위해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간신히 건물 앞에 당도해비상등을 켜고 차를 주차해놓았는데, 송지현에게서 문자가왔다. 소설 합평이 길어져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정도 수업이 늦게 끝날 것 같다고. 나는 좁은 골목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30분을세 시간처럼 버텼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내비게이션 속 예상 도착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잘 시간이 다가오자 눈이건조해 앞이 점점 흐려졌다. 이윽고 차는 대관령에 도달했고 순간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짙은 안개가 도로를 덮쳐왔다. 가시거리가 5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당황해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안 보여! <디 아더스> 같아!"

그러고 나는 인파를 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 지역 행사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타이밍을잘못 잡았다간 주차장에서 수십 분 동안 대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30년 차 드라이버처럼 능숙하고 잽싸게 차를 뺀 후, 주차장 입구에 있으니얼른 나오라고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은 백은선의차를 타면 되니 먼저 식당에 가 있으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겨울이면 언제나 죽고 싶다고 난리를 치던 송지현이 이제는 목숨 귀중한 것을 알게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30분쯤 차를 달려 도착한 해안은 과연 절경이었고, 사람도 많지 않아 가만히 바다를 구경하기 좋았다. 해안가로내려가 파도를 만끽하던 우리는 놀랍게도 한 무리의 청둥오리가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목격했다. 청둥오리의 정체를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갔다. ‘오리는 원래 호수나 강에서식하는 것 아닌가?‘ ‘옆의 경포대에서 살던 오리가 세력다툼에 밀려 이곳까지 이주한 것이다.‘ ‘아니다, 철새인 청둥오리가 동남아로 떠나기 전 바다에 들러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등등.

해가 져버린 시각, 온수풀 안에는 커플들만이 즐비했다. 나는 저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고한 학처럼 핸드폰을 들어 홀로 셀카를 찍었다.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애정 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의 모습이 잡혔고, 갈수록 자괴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일행에게 얼른 수영장으로 올라오라고 문자를하던 도중, 그만 수영장에 핸드폰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2년 동안 내 삶의 모든 날아이폰SE2는 영면에 들었다

그조차 너무나 유행의 첨단 같은 느낌이라 우리는 강릉이 새로운 마포임이 분명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되었다(심지어 진짜 마포에도 지점이 있었다. 술자리는 갈수록무르익었고 시간은 밤 10시, 직원 한 분이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와 영업이 종료되었다고 말해주셨다. 우리는 쫓기듯 밖으로 나와 허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강릉의 마포 부부는 몹시 초조한 표정이었다. 연신 핸드폰으로 주점을 검색했지만 일요일 밤, 문을 연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번화가 주변을 배회하며 문연 주점을 찾아다녔다. 몇 번이고 영업시간 종료가 임박한가게를 마주하고 난 후, 나는 조용히 중얼댔다.
"강릉은 마포와 같다. 영업시간만 빼고…………"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백은선이 말했다.
"나도 너 우는 거 본 적 있는데?"
내 눈물의 트리거가 되어준 송재랑도 덧붙였다.
"오빠, 나랑 술 마실 때도 운 적 있어."
그렇게 하나씩 퍼즐을 맞춰보니,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심지어 태어나서 두 번째 보는 나디아조차 내가 술자리에서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껏 누군가 주사가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현대 서울말로 차분히 말하곤 했다.
"졸려서 집에 가요. 귀소본능이 남다르거든요. 연어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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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정보요나스 메카스: 영화작가들과의 대화
2023년 5월 25일 초판 발행
저자: 요나스 메카스옮긴이: 이여로
편집: 임경용감수: 유운성디자인: 신신
인쇄 및 제본: 세걸음펴낸곳: 미디어버스
출판등록 2007년 2월 8일(제313-2007-36호)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9길 25 0층mediabus@gmail.com이 책은 모든 저작권을 존중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미지와 인용문을 복제할 때 법적 원칙인 "공정 사용"을준수했습니다. 사용된 텍스트와 이미지의 모든 출처는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발견하거나저작권 침해의 증거를 발견한 경우 출판사에 문의하시기바랍니다.

요나스 그레고리, 당신 심장을 계속 뛰게 하는 게 뭔가요?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 오늘날 예술가는 혁명적이어야 합니다. 예술가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죠. 혁명을 믿고자신의 예술을 믿습니다. 그는 신도 악마도 아니에요. 그는자신의 정령(Daemon)을 믿습니다.
요나스: 그레고리,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나요?
마르코풀로스: 오늘날, 살아가려면 무언가를 팔아야만하죠. 그리고 팔기 위해선, 상업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팔 것이 없어요. 난 뮤즈를 떠나게 만드는 상업주의를고발합니다. 예술에서 상업주의는 악마의 저주예요. 그리고상업주의는 오늘날의 사회를 이루는 불가결한 부분이죠.
요나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마르코풀로스: 혁명이 일어날 정도는 되어야 우리 사회에서 부정당한 신성한 정신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영화작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나는 이러한 이상에 전념합니다. 영화작가로서 난 영화의 유일한 희망이 실험영화에있다고 믿습니다. 링컨 센터에서 레네의 〈뮤리엘〉 같은영화를 보는 슬픈 경험을 하면 매우 우울해집니다. 〈새콤달콤〉은 더 끔찍합니다. 상업적인 영화에서 아방가르드가 계속 왜곡되는 것을 보는 일이요. 둘은 결코 합쳐질수 없습니다. 영원히 혁명적으로 남는 것이 아방가르드의 책무죠.

얼마 전부터 존 존스라는 이름의 영국인 방문객이 미국 예술계를 염탐하고 있다. 미술 갤러리들을 공부하고,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보러 오고, 예술가들을 알아가고 있다. 심지어 올덴버그가 <클래스 올덴버그 그림을 걸다>라는 영화에서 공동작업을 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른 화가, 조각가, 심지어 극작가들(가령 리로이 존스)까지도 조명과 카메라를 갖춘 작업실을 갖추고 영화로 올 준비를 하고 있기에,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갖기시작했다. 다음은 <클래스 올덴버그 그림을 걸다>에 대한이야기를 나누며 얻은 메모들이다.
"이 영화는 나의 해프닝 미학을 영화로 번역하기 위한노력입니다. 대체로 나의 해프닝은 사건들보다 발생한 사물들에 더 관심이 있어요. (사실, 사물 숭배야말로 내가 해프닝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사물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시간은 늘어집니다. 반복, 슬로모션, 관객을 담는 고요한 상자 속에서 해프닝이 이루어지죠."
"해프닝에서 사용하기에는 불완전했던 효과가 클로즈업인데, 이는 사물을 탐구하는 극히 외설적인 기술입니다.
시카고에서 해프닝 작업 <흥겨움>을 선보이는 동안, 불투명한 영사기를 이용해, 실제 사물들의 거대한 클로즈업을 관객들 머리 위 스크린에 던졌어요. 일종의 구체영화인 거죠.
영화는 내게 친밀한 클로즈업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내게는 이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실체예요."

그날 늦은 저녁, 우리는 〈두 목소리>에 출연한 엘렉트라 로벨을 만났다. 그녀는 고작 스무살인데, 2주 전 이오네스코의 연극 〈의자들〉에서는 백십 살의 노인을 연기했다. 그녀는 영화에서 본 것과 매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말했다. "당신 봤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당신 자신으로1
있지 않았군요." 그녀가 웃으면서 답했다. "우리는 모두 천개의 얼굴을 가졌는 걸요. 문제라면 가장 필요로 하는 얼굴을 사람들이 적시에 찾지 못한다는 것이죠."

존 카바노프: 내게 영화적 과정은, 그것에 가치가 있는 경우는,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자성적 에너지, 자성적 흐름에 가까워진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나는 이 미묘한 과정을 상세하게설명해내고 싶습니다. 왜냐면 그게 마음의 본질과 닮았다고 생각하니까요. 달리 말하면, 마음은 상징의 프로그램이아니라 (카바노프는 여기서 스탠 브래키지와 대립한다―JM) 에너지의 구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영화에서관심을 갖는 일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일이에요. 상징을 통해서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요. 나는 마음을 아주 분명하게 형태 잡힌 에너지장의 패턴으로이해합니다. 알겠지만, 나는 카메라로 그것을 직접 표현해내고 싶어요.
질문: 바바라 루빈의 영화가 당신 영화보다 더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카바노프: 하지만 그건… 보다시피, 정도의 문제예요.
마찬가지로 내 영화도 자유롭지만, 총체적으로 자유로워야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제이슨의 초상>에 대하여(제이슨이 아니라 요나스 메카스의 말이다) : 모든 영화제 광고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모든 신문사가 취하고 있는 말에 신경이 거슬린다. <제이슨의 초상>이 "남성 매춘부와의 인터뷰"라는 것이다. 이런 광고문은 42번가에 있는 광고 회사들한테는 괜찮을지모르지만, 영화제 보도자료에서 사용된다면, 아주 복잡하고 심각한 영화-소설을 짜증날 정도로 단순화하는 꼴이 된다. 여기 영화 예술가가 그의 이 사례에서는 그녀의 일을아주 잘 그리고 완벽하게 해낸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영화평론가들, 영화 리뷰어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지않다. 그들의 직업에 눌러앉아 있는 게 전부다. 작품을 파고들고, 작품의 여러 차원과 의미를 파고들기보다, 그들은작품을 멍청한 클리셰로 환원한다. <제이슨의 초상>은 남성 매춘부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제이슨의 초상>은 아주복잡한 인간 존재에 관한 영화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인물만큼이나 복잡하다. 그를 클리셰로, 이것이나 저것으로 바꿔놓을 수 없다. 그는 여느 상황에 처한 사람이다. 그는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고, 비극적인 사람이다. 그는 나쁘다. 그래, 하지만 그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더욱 낫고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는 감히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제이슨의 초상>은 이 시대에, 어느 예술 형식에서 보아도 가장 천재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작품이다.

포드: 맞아요. 어느 쪽이든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비정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사포[1]와 같이요. 그녀는 그녀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녀 자신을 사랑의 신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성애적이었기 때문에요.
요나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은 다른 언더그라운드영화작가들보다 당신 영화를 상업적으로 공개하고, 상업극장에 유통하고, 광범위한 관객들과 만나는 일에 더 열정적이에요. 당신은 홈 무비 개념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바람은 의심할 것 없이, 당신이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 내용에 영향을 미칩니다.
포드: 나 자신을 언더그라운드와 동일시하지 않아요.
내게 영감을 주는 영화작가들은 안토니오니, 펠리니, 브뉴엘, 고다르,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폴 모리세이나 앤디 워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나머지사람들은 나를 자극하지 않아요. 그런데 폴이나 앤디, 또나처럼 전적인 자유를 지닌 채 언더그라운드 영화로부터빠져나온 사람들도 있지요.

요나스: 당신의 초기작들은 어떤가요? 다시 상영할 생각이 있나요?
브라차 있어요. 하지만 과정을 반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토라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그랬으니까요. 우주에 창조주가 있다고 믿는 것과 반대입니다. 우주에는 질서가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 그 질서를 발견하면 그것에 대항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의 질서와 자신을 일치시키고 자신의 모든 행동으로 우주를 돕습니다.
요나스: 당신은 다니엘 콘벤디트와 다음 영화 이야기를계속 나눠왔죠. 주제를 말해줄 수 있을까요?
브라차: 강제 수용소의 경험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려고합니다. 모든 유대인과 모든 사람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직접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완전히 재발할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경험이고요. 난 강제 수용소로 가서 죽은 사람들의 피를, 땅에서 올라오는 선혈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 경험의 필수적인 부분을 가지고 싶어요. 그러면 그경험에서 배울 수 있겠죠. 신의 뜻처럼.

바니오니스: 항상 연극 작업을 해요. "쉬는 시간에만영화 연기를 합니다. 지금은 밀티니스 극장으로 돌아가 스트린드버그의 <죽음의 춤을 연습하고 있어요. 밀티니스 극장의 연극은 레퍼토리 연극이라, 내가 출연하는 보르헤르트, 뒤렌마트 등이 레퍼토리로 공연할 때면 나도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영화 배우 대부분이 연극을 해요. 심지어 영화배우 연극이라 불리는 극도 있습니다. 영1화 스튜디오가 운영하고, 영화 촬영에 들어가지 않은 배우들로만 운영됩니다. 서구에서는 대체로 영화배우가 한가할때 연극을 하는데 우리는 반대예요. 연극일을 쉴 때 영화를 합니다.

그것이 나만의 프레임입니다. 그게 나의 진동이고요.
이렇게 말해보죠. 그건 나만의 상상력이자 나만의 육체라고요. 의식의 제한된 가능성과 관련해서요.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어요.
나요나스: 그리고 이 흔들리는 프레임, 마지막 7부는, 내가 보기에, 일곱 부분을 하나로 통합합니다. 각 부를 독립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는데, 당연히 나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각 부는 각자의 무언가를 해요. 하지만 실제로, 각 부 화가 함께 모여 이뤄내는 것을 보고 나서 7부를 함께 보았을 것때, 〈하팍스 레고메나>는 정말이지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풍성함 속에서, 이 작품이 마음에 남겨있
놓는 것 안에서, 이 작품을 보고나서 말이에요. 설령 당신이 지금까지 묘사한대로 보지 않았대도요ㅅ
a그
할프램프턴: 나는 항상 이런 일에 관심이있어요. 부분들이로 만들어진 거대한 무언가를 볼 때 일어나는 일들에요. 그런데 전체를 부분들 속에서 보면, 이어지는 부분들은 우리가 익히 보았던 것을 변형시킵니다.

버팔로 대학교의 제럴드 오그래디 교수의 초대를 받고(미미국 독립영화작가들의 청각적 역사‘라는 제목이 붙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케네스 앵거가 잠시 미국에 돌아왔다. 그는 버팔로 대학교, 피츠버그의 카네기 연구소,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들렀다. 앵거와 학생들 모두에게 행복한 행사였다. 그는 새 영화 <루시퍼 라이징>의 발췌본을 가져왔고, 환영 행사에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케네스 앵거가 뉴욕에 왔다. 여기서 그는 아주다른 상황을 마주했다. 한 배급사가 자기 영화를 허락 없이대여하고 판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른 배급사들도 불법 프린트 판매에 개입한 것을 발견했다. 케네스는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절망적으로 고투를 벌였고 그러기위해 동전 한 푼까지 다 써왔기 때문에, 자신이 사기를 당하고, 속고, 이 문제로 새 작업의 완성이 쓸데없이 지연된다고 느꼈다. 그는 관련 배급사들에게 법적인 조치를 취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꼈다. 우리는 사실이 드러나길 기다릴 것이다. 한편, 그런데도 나는 예술가의 분노를 신뢰한다.
케네스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다음의 대화를 녹음했다.
1967년 이후 미국 언론에 앵거가 전한 첫 번째 인터뷰이기에, 거의 편집하지 않았다.

요나스: 내가 본 푸티지, 당신이 이 국가에 가지고온것을 보면, 당신은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연의 힘을 통해서 많은 일을 해내는 것 같습니다.
앵커: 맞아요. 완벽히 그렇습니다. 그건 은유예요. 나는남자 배우나 여자 배우를 한 명의 사람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애써왔습니다. 나는 자연을 통해 움직이고 싶어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연의 요소들입니다.

(필름 보존 문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앵거의원본 필름 중 일부는 현상소와 배급사들에 의해 심각하게손상되었다. 지금 사람들이 필름 보존에 점차 관심을 가지면서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케네스에게 말했다.)요나스: 우리가 진실로 존경하는 작품들의 보존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건 그 작품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해요.
앵커: 그건 지붕이 없고 비가 들이치는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죠.
요나스: 내일이면 모든 것이 사라질 거예요.
앵커: 지금 제작되는 필름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사람들도, 몇 년만 지나면 자신들 역시 똑같은 처지에 놓인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필름은 이상한 예술 형식입니다.
사막의 신기루나도깨비불처럼 무언가를 약속해요. 불멸을약속하죠. 무언가를 볼 수 있고,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1896년에 만들어진 뤼미에르의 푸티지도 볼 수 있어요.
거기서 뤼미에르는 왕과 왕비와 마차가 등장하는, 사람들이 실크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라진 세계 전체를 다시불러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바라보면서, 프루스트의 세계로 들어가듯 그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그건 보존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아마도 그건, 보다시피… 만약 영화를 마술사들의 것으로 바라본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말한 건 모두 위선이었다고요.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믿어야 한다고,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념 없이, 그리고 그걸 유지하려는 노력 없이 산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자신이 설정한기준을 가지고 소통이나 공예의 형태로 그걸 추구해나가야합니다. 내 말은, 멋진 삶을 만들고, 살고 싶다는 거예요. 몇년 전이라면 TV에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알다시피, TV에서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불가능했을 겁니다.

여하간, 세상은 파괴와 창조 사이에, 선인과 악한 사이에, 악당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역설인 것이죠. 우리가 몹시도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요. 지금은 로마 시대와 같습니다. 정말옛날 고대 로마 같아요. 심지어 정부도 도둑놈들이에요. 누군가는 이 모든 게 그저 위선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브래키지: 렘브란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세 번째는 좀이상한가요! 차이코프스키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거나 대중적이라거나 뭐라나 그런 이유로 심하게 공격받는 사람 중 한명이죠. 나는 그의 방향성이 오늘날의 예술에서 상당히 옹호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말은, 베토벤을 말할 때, 차이코프스키를 함께 말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니면 결국 학계에서베토벤으로 만들어 온 기념비들에 갇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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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여행은 독자를 직접 만날 소중한 기회다. 시간이 흐르면 그 독자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가족을 이룬다.
그 가족 안에는 국경도 언어의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강하고 순수하며 자유로운 생명체가 나와 시선을 교환한다는 것은 하나의 마법이었다.

조금 뒤에야 돌고래들이 그렇게 가까이 다가온 이유를알 수 있었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은빛 물고기 떼가돌진해 와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정어리 떼는 도망치기위해 우리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늑대 무리의 공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양 떼처럼.

제니퍼가 슬쩍 내 옆에 와 앉더니 연주에 손을 보탰다.
네 개의 손이 연탄곡을 치듯 피아노 위를 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침묵의 대화를 나눴다. 그녀와 내가 공유한 경험이 소리를 통해 다시 하나가 되었다.
피코섬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은 나중에 소설 잠에서돌고래와 만나는 장면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행성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만든 영화의 주인공이며, 그 영화 속에서 자신은 맞고 남들은 틀렸다고 믿는다.
그 푸근한 인상의 노인이 했던 얘기 중에 뭐가 사실이고뭐가 거짓인지는 알 길이 없다.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해하려 애쓸 뿐이다………그렇게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인물을 만났고 그 캐릭터를 핀으로 꽂아 수집함에 소중히 간직해 뒀다.

나는 이 만남에서 영감을 얻어 나중에 자폐증이 있는 천재 소녀가 공공 쓰레기 하치장에서 노숙인들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카산드라의 거울』을 쓰게 된다.
노숙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살지만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가진 집단이라는 사실을

글쓰기는 여러 면에서 무술과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내가 쓰는 소설은 <권법 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글쓰기 무술에서 작가는 모든 형식에 통달해야 한다.
무엇보다 길이가 다른 세 가지 형식을 아무런 제약 없이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이 우스갯소리가 먹히는 건, 현재 인류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빗댄 은유적인 이야기라는 걸 우리의 무의식이감지하기 때문이다. 차이점을 빌미로 서로 전쟁을 벌이다결국 후손들이 살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진 행성에서 마지막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중 내가 각별한 애착을 느끼는 「수의 신비」는 좁은 사고 체계에 갇힌 한 문명을 다룬 이야기다. 그 문명에 속한사람들은 수에 관한 지식으로 평가받고 그것으로 사회적지위가 결정된다. 특정 숫자까지만 셀 줄 알고 그 이상은미지의 세계로 여긴다는 점에서 그들은 어린아이와 크게다르지 않다. 가장 큰 숫자를 셀 줄 아는 사제 겸 정치인들이 백성들을 지배한다.

‘나는 글로 묘사함으로써 그 세계의 존재 가능성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미래가 우리에게 도래하지 않을 것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구습을 버릴 것을 종용하는 고통스러운 위기를이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해피 엔딩>은 우리에게 도래할수 있는 미래라고 나는 믿는다. 그건 실현 가능한 미래다.

나는 기원전 4000년,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모르고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움집에 사는 1천명의 사람을 데리고 게임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기원후 2500년에도달하자 1천 명에 불과하던 작은 부족은 수천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변해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생명체가살 수 있는 대안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 정복 프로그램을추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게임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선사 시대에 무심코 한 사소한 선택이 몇천 년 뒤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일명 나비 효과, 기원전 4000년에 조그만 원시 부족이 내린결정이 현대 사회의 운명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었다.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나무』에 실린 단편 「어린 신들의학교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보고 싶어졌다. 그 단편의 주인공인 신 수습생들은 학교에 가서 인간을 관리하는 법을배운다. 배움이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같은 행성 위에서 각기 문명을 만들어 경쟁을 펼치게 되는데,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최고의 문명을 수립 발전시키는 자가 승자가 된다. 나는 그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확장해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의 연장선에 있는 장편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되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해를 바탕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시계 장치, 다시 말해 현실을 허구의이야기 속에서 재현해 낸다. 그게 내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다.

생식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쾌락의 호르몬들(만약 그런호르몬이 몸에서 분비되지 않았으면 인간은 반대 성을 찾아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지 않았겠지).
인간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 무수하고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셀 수 없이 많은 식물과 동물은 왜 존재하는 걸까? 생물다양성은 왜 필요할까? 이 세상에는 크기와 생김새가 제각각인 개미가 1만 2천 종류나되는데, 과연 그게 다 필요할까?

바로 조절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포식자가 존재하는이유다. 모든 종에게는 그것을 먹이로 삼으려는 종이 있다.
인간은 어떠한가? 대형 포식자를 모조리 정복한 인간은?
인간을 위협할 포식자가 과연 존재할까? 아이러니하게도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미세한 생물이 그 주인공이다.
게다가 인간은 자기 파괴 본능을 지닌 존재다. 인간이라는좋은 동족을 파괴하려는 본능, 그 천성을 통해 자기 조절을달성한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옳지 않지만 이는 지구라는 행성 위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종에 행해진선택의 결과다

독자에게 한발 물러나 세계를 바라볼 기회를 준 것이 그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감히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는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지닌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시공간에서 보다 큰주제들을 고민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가진 행동과 선택의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수학자 쿠르트 괴델의 이런 관점이 참 마음에 든다. 내가 사는 프랑스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나는 밖으로나가 러시아와 한국, 코트디부아르, 미국 등지를 여행했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비인간의 관점을 택했다. 신또한 이런 관점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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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그는 평화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개미들의 전투 장면이 불필요하다고 했다. 개미는 경쟁자인 흰개미와도 전쟁을 벌이지만 동족끼리도 싸운다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자연의 모습이라고 아무리 항변해 봤자 소용없었다. 스타니슬라스는 내 의견을 일축하면서 어차피 서사에 조금도도움이 안 되는 장면들이라고 단정했다.
결국 전투 장면을 모두 빼야 했다. ‘살람보』에서 영감받아 그 장면들을 공들여 쓴 나로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책은 1991년 3월에 공식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독특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언론의 관심이 모두 아버지 조지 부시와 사담 후세인에게 쏠렸던 탓에, 대중은 피에르 살랭제와 에리크 로랑이 공저한 베스트셀러 『걸프전, 그 비밀문서』외 다른 책에는 관심이 없었다. ‘개미』출간을 불과며칠 앞둔 1991년 2월 28일에 1차 걸프전이 끝난 것은 내겐 천운이었다

독자들에게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지금 몸과 마음의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장 글을 써보라고 글을 쓰는 순간 당신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빨리 두 번째 책을 쓰기 시작해.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잊힐 거야. 확 타오르고 꺼져 버리는 건 아무 의미가없어.」친구 렌의 조언을 나는 귀담아들었다.

요가가 탄생한 지혜의 나라, 영성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인도라는 나라가 갑자기 달라 보였다.
타지마할에 도착해서도 가장 <낭만적인 유럽 도시들인베네치아와 프라하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몇 달 후 조나탕이 태어났다. 부모가인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인지 아기는 침착성을 타고났다. 조나탕은 웬만한 일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쿨한 아이로 자랐다. 가끔 아이를 보면 인도 현자의 환생이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든 아니든 엄마의 강한개성과 아빠의 호기심을 물려받은 아이는 세상일에 무한한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삶에의 열정을 지닌 아이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보다 뭘 더 바라겠나.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바티스트 드라마르크는 루이 16세때 모든 식물종의 목록을 만들어 내놓으며 세상에 이름을알렸다. 그는 식물 표본에 대한 관찰을 통해 소위 <생물 변이설〉을 주창했다. 모든 좋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영향을받아 변화하며, 그런 적응 과정에서 획득한 형질은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암잘라그가 토마토 학교를 통해 보여 준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라마르크 이론의 열렬한 옹호자인 제라르의 영향을 받아나 역시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아 온 그 영웅적 이론에 매료되었다. 특히 라마르크 철학이 내포한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발견했다. 우리는 누구나 노력을 통해 변화하고 진화할수 있으며, 후손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반면 다윈의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유전자 조합이라는 우연에 달려 있다. 과학계에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후생 유전>은 라마르크가 주장한 생물 변이설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이 DNA를 변화시킨다.

나중에 나 역시 <신> 3부작을 통해 <라마르크 학과 철학을 설파했다. 그 작품의 밑바탕에는 제라르의 가르침이 깔려 있다.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나 출생 배경과 무관하게 성공할 수 있다. 시련은 우리를 진화시킬 수도 있고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시도한다면 얼마든지 제라르의 토마토처럼 더 많은 염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최면 상태에서도 사고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최면이라는 경험을 관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최면사가 내 <정신의 하드 디스크> 속 파일들에는 살짝 손을 대게 놔뒀지만 핵심 프로그램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가령 어릴 때 엄마가 벌레에 물리면 긁지 말라고 했던 말 같은 것. 따라서 최면사는 내 의지에 반해 어떤 행동도 강제할 수가 없었다. 나는 최면 상태에서도자유 의지를 상실하지 않았다

소설은 독자에게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감독이 되라고 한다. 이 때문에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위력적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영화 속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역할을 맡긴다면, 소설은 독자에게 스스로 장면을 만들어낼 것을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한다. 소설 독자는스스로 주인공을 캐스팅하고 카메라 숏의 스케일을 결정하고, 음악과 음향 효과를 만들고, 조명을 선택한다.
<설명하기보다 보여 주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다. 이를 위해 설명적인 대화는 최소화하고 상황만 독자에게 제시해 스스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사인받을 책을 내밀며 많은 독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아이가 책이라면 질색인데, 이걸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한마디 적어 주시겠어요?」 나는 고심하다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절대 읽지 말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타나토노트』를 쓴 가장 큰 이유는내 존재의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좋아, 지금 내가 죽는 건 비극이 아니야, 이건 다른 세계로의 이행에 불과해〉, 이런 생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죽음을 끝이 아니라 <테라 인코그니타(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봐야했다. 콜럼버스가 수평선 너머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듯이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새로운 개척지로 바라보게 만들어야 했다.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모르지만 마침 그 일본인 편집자의 가정부가 한국 여성이었다. 그녀는 개미』 출간이무산된 이유를 듣고 집주인에게 자신이 한국어 번역본을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얘기해 줬다. 일본인 출판사 대표는 그제야 번역이 뭔가 미심쩍다고 판단해 진상 파악에 나섰고, 결국 도카타는 자신이 랭보 시로 덧칠하는 바람에 줄거리가 뒤죽박죽된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르루 교수한테 들었던 말을 수시로머리에 떠올렸다. <판단하지 말고 이해하기 위해 애쓸 것일본에서는 내 책이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일본을 다녀온 뒤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가 돼지고기 맛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상들의 식인풍습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콩키스타도르들을 따라 멕시코에 다녀온 한 스페인 수도사가 인육을 먹어 보니 돼지고기와 맛이 비슷하더라는 말을 했다는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부침을 거듭하면서 작가라는 직업이 단거리 경주가 아닌마라톤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 방> 터뜨리는 게 중요한 게아니라, 규칙적인 리듬을 유지하면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내게는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할 의무가 있다.
그때부터 매년 10월 첫 번째 수요일에 새 책을 선보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글쓰기 규칙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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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요가를 통한 수행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때 여름 캠프에서 헤어진 후 다시 자크를 만나진 못했지만, 그의 가르침은 훗날 주인공들이 의식적인 유체이탈상태에서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 우주를 항해하는 내용인소설 타나토노트」의 바탕이 되었다.

신문 창간을 통해 나는 열다섯 살에 무에서유를창조하는 경험을 했다. 오래된 낡은 체계에서 벗어나려면 자신만의 새로운 체계를 세워야 하며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진취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문을 함께 만들던 파브리스가 그즈음 소개해 준 책 한권은 문학의 신세계를 열어 줬다.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의『파운데이션』 작가는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인류의 진화에 대한 논리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래가 그것을 일관성 있게 상상하는 이들의 것이라고확신하게 되었다. 아시모프 덕분에 현실의 뉴스를 나만의시각으로 읽어 내고 그에 따른 후속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있게 되었다. 체스에서 말의 움직임과 위치에 따라 게임의시나리오가 달라지듯이, 현실에 미래의 여러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이 <지혜를 향한 사랑>이라는 어원적 뜻을지닌 철학을 하는 게 아니라, 암기해 놓은 문구로 이뤄진지식을 과시해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저 놀라웠다. 다비드가 얘기하는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느라 근심 걱정을 싹 잊고 있었다. 노란 테니스공 하나를 갖고 싶어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그 궁금증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날씨가 화창했다. 아래쪽 대피소가 시야에 들어올 만큼 맑은 날씨에 하산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허기진 상태에서 첫 번째 대피소 일행과 합류해먹은 아침은 꿀맛이었다. 좌절감과 기다림이 충족감을 배가해 준다는 증거겠지

「앞으로 보조 교사 일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저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말씀 감사히 들었습니다. 방금 정치의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얼핏 깨달은 것 같아요.」그 일은 내가 힘의 관계가 지배하거나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그 긴장감 넘치던 경험은 나중에 소설에서 비슷한 장면을 묘사할 때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소설가가 되는 비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같은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열일곱 살에 읽은 인터뷰 기사에서 (고등학교 과학 계열진학에 실패한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준 소설들을 쓴 작가프레데리크 다르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철저한 시간 관리가 필수인데, 그 자신은 매일 아침 네 시간씩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다시 버전 C를 완성했다.
심장 수술이야 한 번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소설은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 그게 글쓰기의 최대 장점이다.
당시 틈틈이 읽던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살람보』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해 가을에 수강한 형법과 민법, 혼인법 강의에서 교수들은 입양, 이혼, 상속, 가정폭력, 이웃과의 재산권 분쟁 등등 다양한 분야를 다뤘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법이라는 것은 결국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쩨쩨한 상대방보다 내가 더 이익을 취할 방법을 찾아내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듄』은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물리적 경험이다.
그 책에는 말을 하는 등장인물의 머릿속 생각이 글로 적혀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아주 긴 대화를 읽게 되는 셈인데,
이를 통해 말 뒤에 감춰진 인물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과학자 출신인 저자 프랭크 허버트는 장기간 사막에서 사구()의 움직임을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물이 전혀 없는 생태계를 상상해 낸다. 전권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나는 궁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말과 생각 사이에는얼마만큼의 간극이 존재하는 걸까?

나는 이야기 전체에 불안감을 깔고 긴장감을 높일 목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섬세하게 다듬었다.
소설을 여러 번 고쳐 쓰는 습관은 그때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그런 작업을 상대가 가진 구슬의색깔과 배치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 여러 조합을 시도해야하는 <마스터마인드> 보드게임처럼 생각하며 한다.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선 이렇게 해야 한다.
1) 독자에게 이야기의 대략적인 밑그림을 보여 준다.
2) 중요한 뭔가를 계속 숨긴 채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3)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게 자잘한 요소를 조금씩 드러내 보여 준다.
4) 마지막에 가서 한 방에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놀라움을 선사한다.

5) 놀라움 속에 마술이 끝나는 것으로 등장인물들의 여정이 마무리되면, 이야기 전체의 극적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터치를 추가한다. 일명 〈체리장식 효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리는 내 사촌 누나 애비의 집에 머물렀다. 애비는 할리우드에서 소품 담당자로 일했고 매형은 SF 드라마 「V」의 시나리오 작가였다. 한번은 외출했다열쇠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창문을 넘어 누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다섯명의 노인이 나타나 우리를 제지하는 게 아닌가. 그 민간순찰대가 목줄로 붙잡고 있던 맹견들이 우리를 향해 사납게 짖어 댔다. 순찰대원들은 자초지종을 듣고 누나한테 전화를 걸어 확인한 뒤에야 우리를 놓아줬다.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안전 문제를 절대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는 걸 그때알게 되었다.

파리 10구의 스트라스부르 대로 16번지,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7층의 15제곱미터짜리 지붕밑 하녀 방을 얻었다.
체가 얇아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그 집에는 욕조가 딸린 작은 욕실이 하나 있는 대신 화장실은 복도의 공용화장실을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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