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을 가학적으로 대하던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대비하면•확실히 긍정적인 견해지만, 부정확하고 다소 오만한 태도이기도 ㅎ다. 라스 카사스는 어쩌면 ‘백인 구세주‘ 콤플렉스의 초기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그에게 타이노족은 분별력 없고 단순하고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라스 카사스는 타이노족의 특성을 길게 늘어놓은 이후에 "그들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다면 진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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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승리한 것은 악당 버전인데 이는 사실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1794년 프랑스의 그레고아르 신부는 미술품을 훼손하고 파괴한혁명가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비난하기 위해 기물 파괴라는 의미의반달리즘vandalisme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전사일 뿐 파괴자가 아니었던 조상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일부 독일 학자NOT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행하게 되었다. 그레고아르 신부는 자신이 그 단어를 선택해 ‘기물 파괴‘라는 의미를 부여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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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정착지 건설자들은 대부분 유명한 아테네와 스파르타 출신이 아니라 밀레토스Miletos, 에레트리아Eretria, 메가라Megara, 포카이아 Phocaea 등 지금은 잊혀진 도시 국가 출신들이었다."
지금의 튀르키예 해안에 위치한 밀레토스는 다른 어떤 도시 국가보다 더 많은 정착지를 세웠으며, 주로 흑해 주변에 최소한 36개의 도시를 건설했다. 밀레토스 사람들이 2,500년 전에 정착한 해안 일부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리스어가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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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술을 정서나 감수성 따위와 관련짓지만, 그리스인들의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예술은 테크네, 곧 합리적 규칙에 따른 활동이었다. 따라서 당시엔 회화나 조각뿐만 아니라 합리적제작 규칙을 가진 모든 활동, 즉 의자나 침대를 만드는 수공 활동과학문까지도 예술테크네로 간주했다. 한편 시는 음악과 무용, 연극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시는 예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왜? 시는 ‘영감‘ 또는 ‘광기‘의 산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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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예술도 처음엔 딱딱한 기하학적 양식에서 출발했다. 거기서벗어나 찬란한 고전기에 이르기까지를 보통 아르케익 시대라 부르는데, 이 시기는 확실히 이집트 예술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아나비소스의 쿠로스>를 보자. 인물은 오히려 이집트 조각상보다 더 딱딱해보이는데, 그건 시각적 환영의 효과보다 신체 부분들 사이의 기하학적 대칭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 도형에 의해 인물의 자연성이 억압되어 있고, 단지 입가에 떠오른 신비한 미소아르케익 스마일만이 생기를 느끼게 해줄 뿐이다. 독일의 비평가 빙켈만은 이 시기를 ‘고대양식‘이라 부르며, 그 특징을 ‘엄격함‘과 ‘딱딱함‘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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