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26분 54초,
커피 물이 다시 끓지 않는 시간.
식탁 위로 찻잔을 찾으러 오는 시간.
커피는 아주 조금 식었고향이 깊어지는바로 그때도무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국자를 들고 우아하게 스윙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로 털어 주며
우리 허전한 등 뒤
끝내 이길 가난의 강물 위에
겁도 없이 사라지는
깨끗한 사랑 같은 눈송이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민refugee‘이라는 단어가 영어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7세기말로, 영국 또는 다른 지역으로 도피한 박해받는 프랑스 신교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레피제refugie‘에서 차용되었다. 이 단어는 점차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박해 때문에 고국을 떠나 피난처를 찾는 다른 집단들에도 적용되었다. 난민이라는 단어는 강한 동정심을 연상시켰는데,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때 난민의 발생 요인으로 전쟁이 강조되면서 더욱 그랬다. 예를 들어, 전쟁 중이었던 영국에서는 독일의 잔학행위의 희생자로, 살기 위해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무고한 민간인 같은 이들을 난민이라고 규정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눈부시게 째려보고 있다신호가 바뀌자 횡단보도 위로내 사랑하는 검은 거울, 그림자가 나를 이끈다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내 검은 거울 상판때기에다꽁초를 휙 던진다이게 도대체 누구의 어항 속이냐?
거울 미로에 빠진 사람처럼 오늘 난 눈을 뜰 수가 없다눈길 가는 데마다 전부 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또한 초기 시온주의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이미 팔레스타인에살고 있거나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시온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완전히 불모지에 사람이 없는 ‘땅 없는 민족을 위한 민족 없는 땅‘이라는 신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래서 폴리는 1919년 12월 자파 항구에 도착해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