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또한 초기 시온주의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이미 팔레스타인에살고 있거나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시온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완전히 불모지에 사람이 없는 ‘땅 없는 민족을 위한 민족 없는 땅‘이라는 신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래서 폴리는 1919년 12월 자파 항구에 도착해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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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을 가학적으로 대하던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대비하면•확실히 긍정적인 견해지만, 부정확하고 다소 오만한 태도이기도 ㅎ다. 라스 카사스는 어쩌면 ‘백인 구세주‘ 콤플렉스의 초기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그에게 타이노족은 분별력 없고 단순하고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라스 카사스는 타이노족의 특성을 길게 늘어놓은 이후에 "그들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다면 진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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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승리한 것은 악당 버전인데 이는 사실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1794년 프랑스의 그레고아르 신부는 미술품을 훼손하고 파괴한혁명가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비난하기 위해 기물 파괴라는 의미의반달리즘vandalisme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전사일 뿐 파괴자가 아니었던 조상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일부 독일 학자NOT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행하게 되었다. 그레고아르 신부는 자신이 그 단어를 선택해 ‘기물 파괴‘라는 의미를 부여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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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정착지 건설자들은 대부분 유명한 아테네와 스파르타 출신이 아니라 밀레토스Miletos, 에레트리아Eretria, 메가라Megara, 포카이아 Phocaea 등 지금은 잊혀진 도시 국가 출신들이었다."
지금의 튀르키예 해안에 위치한 밀레토스는 다른 어떤 도시 국가보다 더 많은 정착지를 세웠으며, 주로 흑해 주변에 최소한 36개의 도시를 건설했다. 밀레토스 사람들이 2,500년 전에 정착한 해안 일부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리스어가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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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술을 정서나 감수성 따위와 관련짓지만, 그리스인들의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예술은 테크네, 곧 합리적 규칙에 따른 활동이었다. 따라서 당시엔 회화나 조각뿐만 아니라 합리적제작 규칙을 가진 모든 활동, 즉 의자나 침대를 만드는 수공 활동과학문까지도 예술테크네로 간주했다. 한편 시는 음악과 무용, 연극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시는 예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왜? 시는 ‘영감‘ 또는 ‘광기‘의 산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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