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없이 자란 아버지는 사랑하는 이와 혼인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 둘을 길렀다. 정년까지 일했다. 이제 어머니와 따로 잠자리에 들고 밤마다 숨 쉬기가 곤란해 잠을설치고, 명절에는 자식의 두 손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사과할 줄 아는 노인이 되었다. 남이라면 대단하다고 여겼을 텐데.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아버지로 살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고 말해주는 이도 있으나. 아버지가 나오지 않은 꿈 때문에 추석에는고향에 다녀올까 싶어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 검사원이 면봉을 콧속 깊숙이 넣었다 빼자 눈물이 핑 돌았다. 뭘 뚫긴 뚫었구나. 뚫렸구나. 귀가하면서흥얼거렸다. 아버지가 자주 부르던 노래, 「둥지」. 아버지가더 노쇠하기 전에 아버지를 예뻐해야지. 아버지라도 예뻐서 다행이라고 말해주면서,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내가 오래전부터 가족을 이뤄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면아버지는 나를 예뻐해주시겠지. 아무래도 이런 생각은 유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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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하얗게 비어 있는 화폭 한가운데
요나는 아주 작은 글씨로 단어 하나를 써놓았는데
알아볼 수 있었지만 과연 그것을
솔리테르읽어야 할지라고
‘솔리테르solidaine 연대‘라고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알베르 카뮈, 「요나 혹은 작업중의 예술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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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녀는 이국의 카페에서 그와 마주앉은 채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였는데도 자꾸만 그가 낯선 타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때, 그녀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남자의 흔적을 그에게서 찾기 위해 그녀는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그는 그저 나이 많고, 촌스럽고, 피로해 보이는 남자에 불과했다. 그는 햄을 집어다가 접시에 놓고 썰어먹었다. 어디선가 자꾸 벌이 날아와 그들의 잼 그릇 위에 앉았다. 인기 있는 식당이라더니, 테라스는 사람들로 붐볐다. 변덕스러운 베를린 날씨답게 뜨겁던 햇살은 어느새 사라지고 하늘은 잔뜩 흐려졌다.
좀 서늘한 기분이 들어 그녀는 큰 컵에 가득 담긴 라테 마키아토를 마셨다. 커피는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그녀는 학교 도서관 카페에서 파는 뜨겁고 진한 마키아토가 그리웠다. 그녀가 커피를 시키면 언제나 카운터 뒤에서 정갈한 커피잔 가득 우유와 커피를 부어주는..... 이름이 한스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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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동하는 컴퓨터처럼 멈춰 섰던 내 머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것은 한참 후였다. 머릿속에서는 최근에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부터취합한 정보가 빠르게 수집되고 분류되었다. 결국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신념이라고 알고 있는 줄기식물을 사람들은 감자라고 부르고, 내가 감자라고 부르는 동물을 개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다는 당황스러운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사람들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점점 더 당혹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몇몇 단어들을 바꿔 사용하기로 협약을 맺었는데 나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열심히 검색해보았지만 허사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너무도 평화롭게 감자조림이나 감자전 레시피를 공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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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이 말은 한 사람을 저지하려고 들거나
그의 성품과 목적을 바꾸려고 드는 힘들이 있음을 뜻하고,
운명대로 산다 이 말은 그 힘들이 완벽히 성공하지는 못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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