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는 신이 절대로와 기필코를 동시에 구유한 존재임을 믿었고 전능한 동시에 무능함을 믿었다. 신은 그런 존재였고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서는 안 되었다. 그를이해하려 들면 안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신의 군사들은 존재한들 자연에 별다른 이득이 없거나 오히려 사라지는 쪽이 자연에 도움될 것 같은 인간들의 죽음보다, 신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태도에 분노했던 듯싶었다.

시작은 진저리 나는 영원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훗날의 인간은 이것을 보고 신의 위대함과 접촉 불가능성에 대해 인식하게 될 터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것의 정체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궁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ㅡ대지를 캔버스 삼아 거대한 그림을 그려 넣은 존재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그 끝에 신을 알아보는 방법을 하나라도 더 발명해내는 한편, 신을 향해 한발 걸어갈 수 있을 터였다. 신에게 무언가를 질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고 때론 원망하는 것은 천상에서는 모독이자 불온함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그렇다고 하여 적절하고 무게 있는 예의를 갖추지 않음이 곧 신에 대한 경애가 없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민망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매일같이 꿈을 쥐어짜다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는지 더는 움직일 수도 밥을 먹을수도 없었다. 그저 꿈을 꾸어야 해, 꾸어야 한다고다짐하면서 퀴퀴한 이불에 얼굴을 묻고 까무룩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꾸었는지, 꾸었다고 착각하는지 모를 꿈속에서는 전날 본 청년 국제 봉사 프로그램 모집 공고의 한 구절이 고장 난 전광판처럼 깜박였다. 이 아이들이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내일의 꿈을 나누어주세요. 이 꿈은 그 꿈이 아니고그 꿈은...……….

글을 쓰면쓸수록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 아무거나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졌으며,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그는 비로소 그 무엇도 쓰지 않음 세상에 어떤 글도 존재하지 않음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던 궁극의글쓰기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정적보다 완벽한음악이 없듯이, 점 하나 찍지 않은 흰 도화지가 화려한 그림을 압도하듯이, 태어나지 않음이야말로가장 안전한 삶이듯이.

일부 프로그램 오류로 인한불발탄이 있다 해도, 그중 하나라도 적중하면 맞붙어 있던 다른 탄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지. 너의 고통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내 약속하마. 나를 믿어주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이 업을 달성해주렴. 앞서 간 다른 모든 아이와 마찬가지로, 1년에 하루 우리 부대에서 정한 기념일에 잊지않고 묵념하며 너의 영면을 빌겠다.

아무리 유기된 아이들이 많고 조직적 계획적으로 교배하여 개체 수를 늘리더라도, 사방이 지옥인특수 상황에서는 그 어떤 동물들도 모자라 허덕인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실험실의 동물들도 가능한한 아껴서 최소한의 대조군을 두어야만 하지. 열 마리를 해칠 것을 여덟 마리, 네 마리, 마침내 두 마리로 줄여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출된 개체들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어서, 마침내 민간 가정에서도 그들이 키우던 가족을………… 내놓아야만 하게 되었지.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입회인의 존재였단다. 싸움을 중재하는 자, 양측의 입장 전달자,
서로의 무기 점검자, 때론 당사자들이 크게 부상을입어 결투 불능 상태가 됐을 때 대리인이 되어 싸우는 자.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고 누군가와 시비를다툴 일이 있다면, 신성한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 양측의 변호사들이 자신의 의뢰인들을 대리하여 변론 내지 수사라는 이름의 칼과 총을 쥐는 모습을 보게 될 거다.

그 모든 과정에서 세상은 너를 무너뜨리거나 해코지하기에 여념이 없을 테지만, 무엇보다 용기를 잃지 말기를.

일어나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녀는 15분 내로 도착한다는 사장의 말을믿기로 하고 그에게 문을 열어준다.
어 춥다, 안녕하세요. 하며 등에 백팩을 멘 모습으로 들어서는 남자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암만 봐도 부모 용돈을 타서 생활하는 아이같고, 이 청년이 아무리 집 곳곳을 사진 찍어 가서부모에게 컨펌을 받는다 해도 역시 부모가 한번더오든지 아니면 이번에도 간만 보고 말리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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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부에서는
나뭇가지로 쳐놓은 전통적인 울타리들이
천 년 전에 만들어진
이랑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로니에 나무는 영국의 가을을 대표하지만 그림 속의 나무는 꽃으로 불밝힌 5월의 마로니에다. 5월은 나뭇잎이 아직 신선하고 튼튼하기 때문에폭풍우가 맥을 못 추는 시기다. 과감하게 아래를 잘라낸 높은 시선은 멀리 비구름이 내려치는 장면을 강조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기다란 번개를 맞아 바스락거리는 나무들이다. 칠엽수는 거대한 크기로자라는 나무인데 본래 공원이나 전원 지역의 사유지 길가에 심겼다.
데이비드 인쇼가 묘사하는 잉글랜드는 주로 윌트셔고 특히 좁은 반경의 데비제 지역 주변이다. 신비한 기원을 지닌 실버리힐에서 내려다보이는 에이브버리 고대 기념물들이 이 지역에 포함된다. 인쇼의 낭만적인 풍경은 보편적이고 오래된 것 위에 던져진 개인의 갈망과 연상의 그물망을묘사한다. <배드민턴 게임The Badminton Game》(1972~1973)에는 거만하고 남성적인 나무들이 깔끔하게 고정된 집에 너무나 가까이 서 있다. 또 다른정원에는 술래잡기를 하는 이들 옆에 잘 손질된 칠엽수가 서 있는데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남근 형태의 꽃이 만발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무르익은 인쇼의 나무들은 자연으로 하여금 스스로 이야기하게 한다.

알렉스 카츠의 유난히 긴 활동기에, 반짝이는 그의 모델들만큼이나 나무라는 주제는 이 뉴욕에 사는 예술가를 매혹했다. 그의 작품의 거대한 크기(《아메리카 꽃단풍〉은 높이가 3.6미터에 이른다)에도 불구하고 초기 아이디어부터 실현에 이르기까지 연속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카츠가 실물을 그리기때문이다. 빛과 그 빛이 계속 변화하는 효과에 매료된 그는 하나의 소재에반복적으로 다가가 충분한 재료를 얻게 될 때까지 유화물감으로 스케치한다. 이 그림의 경우 매일 오후 4시 30분에 그린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캔버스로 옮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표현 방식을 선택한다.
풍경은 카츠에게 여가활동인 적이 없었다. 풍경은 일평생 그의 작품활동에 자극이 되었다. 그는 70여 년 전 미술 장학금을 받아 메인주를 방문했는데 그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뉴욕과 메인주에서 구상화가이자 풍경화가로 활동하며 현대미술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메리카 꽃단풍의 빛과 에너지는 확실히 미국적이며, 일본식 구도에서 영향을 받았다. 미국 북동부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번식력 강한 이단풍나무는 여름의 색을 띠고 있어 탁트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며, 모든 잎의 해부학적 구조를 상세히 묘사하는 빠른 붓놀림은단순화된 배경의 정적을 깨뜨린다.

여기서 홍수는 재난의 징후가 아니라 오랫동안 얼어붙었던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아 생긴 결과다. 가느다랗고 긴 자작나무들이 붐비는 가운데가문비나무와 참나무의 무리 어디에도 주목할 만한 것은 없다. 비록 자작나무는 주변 환경에 편승하지만, 한편으로 러시아의 부적이기도 하다. 자작나무의 알록달록하며 지붕처럼 펼쳐진 상단은 낙관적인 삶을 증명하고, 자작나무의 살균 기능은 생명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물에 잠겨 윤이나는 이 하얀 나무들은 이사크 레비탄의 고요하고 서정적인 풍경만큼이나 러시아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레비탄과 동시대인이자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시골에서 보낸 어느 여름에 "자연에는 너무 많은 공기와 에너지가 있어서 그것을 묘사할 힘이 없다"고 썼다. "모든 작은 나뭇가지들이 소리를 지르며 레비탄의 그림에 등장하고 싶어한다." 체호프는 풍경과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레비탄풍(Levitanesqu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잘생기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성향의 레비탄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1894년에 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의 연극은 모두 코미디라고 주장했던 체호프는 1년 후 희곡 <갈매기The Seagull>에 레비탄을 등장시켰다.
제1막에서 무대 밖의 총소리가 난 후, ‘레비탄 풍‘의 콘스탄틴은 제2막에서 머리를 붕대로 감고 등장한다.

스타니슬라바 데 카를로프스카의 초기 활동은 20세기 초 런던 미술계의일반적인 이력서처럼 보이지만 그녀보다 더 유명했던 그녀의 남편, 로버트 베번Robert Bevan이 죽은 후 그녀는 화가로서 자기만의 길을 갔다. 스타시아Stasia(그녀의 잘 알려진 이름)는 여성 화가였기 때문에 친구 월터 시커트의 캠든 타운 그룹Camden Town Group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1913년에 여성뿐만 아니라 이민자 예술가들도 참여하는 런던 그룹London Group과 함께 단체를 설립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스타시아는 크라쿠프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는데, 이후 남편 베번이 서섹스에 있는 자기 가족의 영지와 스타시아의 영지를 교환하자고 설득했다. 그들이 런던으로 이주한 후, 우편번호 NW3에있는 그들의 집은 주류 밖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스타시아는 베번이 장기간 그림 여행을 떠나는 동안에도 아이들과 함께집에 머물기로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지키며 계속해서 그림을 소개했다.
경작지 풍경은 아마도 브르타뉴 지방으로 보이며, 이곳은 베번이 죽은 후 스타시아가 딸의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낸 곳이다. 한그루의 나무가 우리의 눈을 풍경으로 이끄는데 둥그런 경작지와 들쭉날쭉한 미개척지가 모두 보인다. 화가의 울림 있는 색감과 확신에 찬 단순함은 양식적이든아니든 영국의 진흙과 달리 신선하고 자유롭다. 유럽의 민속예술을 통해 모더니즘을 정제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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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어 결정자의 의미를 밝히려고 할 때 문제는 그 모양이 너무간단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사의 결정자는 명사의 결정자에 비해대개 해독하기가 더 어렵다. 행동은 그림으로 포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걷는 두 다리 모습의 결정자는 ‘사냥‘과 ‘가다‘와 ‘서두르다‘
를 의미한다(‘머무르다‘와 심지어 ‘멈추다‘도 의미한다). 관념은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림으로 나타낸 결정자도 있었다. 둘둘 만 파피루스 두루마리 그림은 ‘쓰기‘ 같은 추상적인 것을 나타냈다.
이것은 독특하고 복잡한 체계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일부 쐐기문자는 비슷한 전략을 이용했고, 영어는 직접 비교할것이 없지만 개략적으로는 유사한 것들이 있다.

고 있다.
이집트의 필사공들은 비웃을 마음조차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엉성하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나나데시칸은 이렇게 이어갔다.
이집트의 필사공들에게 무엇이든 몇 개의 부호를 필요로 하는 어떤 단어를 쓰는 것은 우습게 보였음에 틀림없다.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글자들은 상자 안에 무리를 지을 필요 없이 그저 한 줄에 흩어져 있을수 있었다. 얼마나 추가!
그리고 어떤 단어를 적는 데 그 단어의 의미를 직접 가리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그림문자의 단서가 없었고 결정자가 없었다) 단어를 힘들여 발음한 뒤에야 그것이 이해가 됐다. 얼마나 성가신가!

기이한 성체자 체계는 여러 해 동안 이를 해독하려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1824년 무렵에 샹폴리옹은 거의 모든 혼란을 헤치고나아갔다. 그해 6월에 그는 사르데냐 왕이 새로 구입한 방대한 이집트 유물 수집품들을 검토하기 위해 이탈리아 토리노로 떠났다. 그 비장의 보물들에 쓰인 성체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딱한 명, 샹폴리옹뿐이었다.
왕의 수집품은 조각상 . 미라·관 수백 점, 그리고 파피루스에 쓰인수많은 문서들이었다.14 샹폴리옹이 왕궁의 한 작은 방에 들어가자 파피루스 잔편이 높이 쌓인 책상이 보였다. 숨이 턱 막혔다. 그는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냉정한 상상력마저 흔들릴것 같아." 일부 잔편은 너무 작아서 누군가가 방문을 열자 공중으로 떠올랐다.

분명 샹폴리옹과 영 사이의 반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모든분야의 거인은 부러움과 시샘에 따른 분노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지만(천재성과 엄청난 자존심이 폭발하기 쉬운 혼합물을 만든다) 과학과 문자해독에서의 경쟁은 다른 어느 분야에서보다 더 격렬한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크리스토퍼 말로라는 경쟁자가 있었지만, 적어도 두천재는 누가 먼저 <햄릿>을 쓰느냐 하는 경쟁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 측면에서 샹폴리옹과 영의 경쟁은 뉴턴과라이프니츠 같은 다른 지적 맞수들의 경쟁과는 달랐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뉴턴이 없었다면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고안했을 것이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샹폴리옹과 영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과학의 한 징표는 위대한 혁신가가 자신의 성과를 전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턴의 법칙은 공유 재산이다. 그 지식들은 뉴턴의 통제를받지 않는다. 달이 해를 언제 가릴지, 포탄을 성벽 어디에 맞힐지 누구나 뉴턴이 찾아낸 지식을 바탕으로 계산할 수 있다.
샹폴리옹은 딱히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수학은 무미건조하고영혼이 없는 것이라고 여겨 아주 싫어했다. 그러나 그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채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을 경멸하고, 자신이 정확히어떻게 해서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열심히 설명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히 과학 진영의 일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근거 없는추측(그는 이 두려운 단어를 강조했다)을 하지 않고, 확실하고 어렵게 모은 많은 관찰에 의존했음을 자랑스럽게 천명했다."

1829년 6월, 샹폴리옹은 고고학의 역사에서 가장 이례적인 축에 속하는 발견을 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거의 만들었다. 그는 와디알물루크(‘왕들의 계곡‘) 부근의 데이르엘바하리라는 유적지에서 비문을 읽다가(그가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사람이었음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놀랍게도 자신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왕이 언급된 것을 발견했다고 자신의 일기에 썼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비문을 읽으면서 그들이 통상적인 파라오의 옷을입은 이 수염 난 왕을 언급할 때마다 명사와 동사가 여성형이었다는것이다. 여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나는 그같이 기이한 것을 곳곳에서 발견했다."

최고의 조각상은 세계 미술의 보물이다. 아마도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핫셉수트의 얼굴(왕관을 쓰고 수염이 나 있다)에 사자의 몸을 하고 있는 길이 3.4미터, 무게 7톤의 화강암 스핑크스일 것이다. 수많은 조각들을 다시 짜맞추어 이루어진 그것은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방문객들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이 숨이 멎을 듯한 조각상은 3500여 년 전에, 현재의 위치에서 거의 1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졌다. 그 사정의 상당 부분은알 수 없는 영역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작은 글자 하나(‘T‘에 해당하는)가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 있음을 샹폴리옹이 우연히 보게 된 덕분이다.

예를 들어 랠프 월도 에머슨은 샹폴리옹이 성체자의 본질을 놓쳤다고 확신했다. 그는 샹폴리옹의 성과에 박수를 보냈지만(실제로 그는샹폴리옹이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괴테와 동급이라고 선언했다) 샹폴리옹의 위업을 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틀림없이 샹폴리옹은 고대 이집트의 "모든 일꾼들의 이름과 모든 기와의 가격을발견" 했지만, 이집트인들의 진정한 지혜는 포착하지 못했다고 에머슨은 꾸짖었다.

말하자면 샹폴리옹은 최초로 산술이론을 발표한 일부 초기 천재와 같은 위치였다. 이 명석한 학자에게 숫자를 주어 더하고 곱하고나누게 하면 그는 어떻게 계산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그는 매번 자신이 맞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알 수 있지? 이런 상황에서 발견된 카노포스석은 뒤에 해답의 열쇠를 붙인 산술 교과서와 같은 것이었다.
이제 샹폴리옹을 직접 검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성체자로 된 <카노포스 칙령> 내용을 샹폴리옹의 방식대로 번역하고, 그 결과를 카노포스 그리스어 번역본과 비교했다. 일치도는 거의 완벽했다.
당시 한 학자는 이렇게 찬탄했다.
마치 고대 이집트인 하나가 갑자기 붕대를 벗고 일어나 우리와 이야기하고, 우리가 자기네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듯했다.

사제들은 길고 형식적인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영원으로 가는 암호를 발견한 그들의 어떤 지식에 따른 것이었다. 파라오들은 자기네무덤을 체스판과 사냥용 창으로 가득 채웠다. 내세에서의 오락을 위해서였다. 고깃덩어리와 술병도 넣었다. 천국에서 잔치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샹폴리옹 같은 불신자에게 그런 의례는 오래된 미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집트에 열렬하게 몰두했지만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진정한 아들로 남았다. 사후의 삶이라는 생각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샹폴리옹은 이집트인의 믿음을 영광스럽게 했다. 그의 작업은 깊숙하면서도 얽히고설킨 진실을 입증해냈다. 불멸해야만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너무도 짧은 생애 동안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은 죽은 언어와 파묻힌 문화를 되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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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의 책이 나온 지 20년 뒤인 1906년에 헤르미네 하르틀레벤이라는 독일 작가가 본격적인 첫 샹폴리옹 전기를 썼다. 이 새 저작은방대했다. 두꺼운 책 두 권에 총 1300쪽이었다. 하르틀레벤의 이야기에서 샹폴리옹은 거의 신화적인 존재가 됐으며, 기절 이야기 역시조금 키워졌다. 하르틀레벤의 서술에 따르면 샹폴리옹의 형은 아우가 쓰러진 앞에서 "공포로 사지가 마비돼" 서 있었다. 죽었다고 확신한 것이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닫고 샹폴리옹을 침대로 옮겼다. 샹폴리옹은 그곳에서 "꼬박 닷새 동안" 무력하고 아무 반응도 없이 누워 있었다

샹폴리옹의 초점은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라 이름에 맞춰져 있었지만, 그가 제시하려는 것은 이름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추은 자모를 제시한 뒤 "왜 이집트인들이 특정한 음을 나타내는 데 특정한 성체자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는지"를 이어 설명했다.
열쇠는 콥트어였다. ‘사자‘ 성체자는 문자 L 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콥트어의 ‘사자‘에 해당하는 단어의 첫 음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입‘ 성체자는 문자 R을 나타냈다. 콥트어가 그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는 ‘손‘과 ‘물‘과 ‘매‘와 ‘깃털‘ 성체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샹폴리옹은 이어 성체자 자모가 이집트에서서아시아로, 그리고 그리스와 나머지 유럽으로 옮겨가고 변신했다고주장했다. 유럽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의 자모를 자세히들여다보면 그것이 이집트 성체자에서 곧바로 내려왔음을 알 것이라고 샹폴리옹은 주장했다. 유럽 문자와 성체자의 관계는 현대 생물과 고대 화석의 관계와 같은 것이었다.

영은 샹폴리옹의 강연 이튿날 아침,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두 사람은 이후 며칠 동안 번갈아 서로를 방문했다. 두 사람 모두의 친구인 아라가 다리 역할을 했다. 이 첫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아마도이 초기에 두 경쟁자는 자신이 영예를 누릴 기회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과 샹폴리옹은 만나서는 함께 파피루스 문서들을 들여다보고 이후 몇 달 동안 계속 시시콜콜한 편지를 나누었다. 음샹폴리옹은 영에게 그의 《다시에 씨에게 보내는 편지》 강연록 두부를 보 냈다. 출판사에서 방금 온 것이었다. 영은 한 친구에게 자신이 "샹폴리옹에게 보여주고 싶은 여러 가지를 영국에 가지고 있다"

품이제 이 분야는 샹폴리옹의 독무대였다. 이 무렵 그가 영을 대하는태도는 예의를 갖춘 경계에서 거의 감출 것 없는 무시로 옮겨갔다.
다시에 씨에게 보내는 편지‘ 강연은 그들 관계의 전환점을 이루었다. 영은 강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예의 바르게 들었지만, 그것을 다듬어 출간하자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샹폴리옹의 글을 자세히 검토할 기회를 갖게 되자 영은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문을 열어 폴리옹이 산책할 수 있도록 했는데 고맙단 말은 어디 있는 거야? 영으로서는 경쟁자의 행위에서 드러나는 "존중이 결핍된 태도"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말장난은 해당 언어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동음이의어는 번역할수 없다. 영어 사용자라면 누구나 pan (냄비)과 tree(나무)가 그려진그림수수께끼를 보고 곧바로 pantry (식품 저장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인이나 에스파냐인이라면 추측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샹폴리옹이 오리 - 아들‘을 비롯한 여러 그림수수께끼로 성공한 것은 그의 큰 도박이 대박을 터뜨렸다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했다. 그가 계속 연구해왔던 콥트어는 정말로 고대 이집트어의 열쇠였던 것이다.

고대 언어의 소리는 결코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학자들이 아무리 많은 성체자를 해독하더라도 파라오가 자신의 장엄함을 선포하거나 이집트 어머니가 아기를 재우는 소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것이다. 물론 우리가 결코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은 고대 이집트의 소리만은 아니다.18 1850년에서 한참 지난 뒤에도 모든 인간 목소리의음은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 최초의 녹음은 1877년토머스 에디슨이 스스로 동요 부르는 것을 녹음한 때인 것으로 오랫동안 생각되어왔다.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품이 어떻게 사용될지 알수 없었다. 다만 몇 가지 제안은 했다. "시계가 저녁 먹을 시간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소리를 영원히 보존하는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흥분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당신의 어조를혀도 없고 이도 없는 이 기구는 후두나 인두도 없이흉내 내고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며 당신의 말을 이야기한다. 수백 년뒤 당신이 먼지로 돌아간 뒤에도 당신을 전혀 모르는 세대들에게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다. 이 쇠로 만든 진동판 앞에서 속삭이기 위해 당신이 선택한 모든 시답잖은 생각, 모든 공상, 모든 헛된 말을 말이다. "

현대 이집트학자들의 연구는 결정자가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분명히 밝혔다. 대략 성체자 다섯 중 하나는 결정자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결정자는 그 단어가 어떤 범주에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외에또 다른 선물도 제공했다.
샹폴리옹은 우선 결정자를 찾아낸 뒤에 이제 그것이 어디서 나타나는지를 살폈다. 그는 그것이 단어 끝에 나온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것은 큰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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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어느 여름의 기억처럼 <눈부신 햇빛>은 빛의 유희를 통해 표현한분위기와 감성에 관한 것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하얀 나무집은 인기척이느껴지지만, 그 환영을 깨뜨릴 사람은 작품 속 어디에도 없다. 밝은 해안가는 깊고 탁한 전경 사이로 투과되고 햇살은 오솔길 위로 반복하며 액체처럼 흐른다. 극도로 패턴화된 침엽수의 윤곽선도 마찬가지로 물기를 먹은듯하다. 세선세공(금, 은 등의 연성을 이용해 가는 실 모양으로 만드는 귀금속 공예기술)으로 만든 칸막이처럼 반짝이는 경치를 가로지르는 나무들은 아마추어 사진가가 포착하기엔 어려울 수 있는 뚜렷하게 다른 두 개의 장면을 구분한다. 대신에 우리는 완벽하게 균형 잡힌 깊이를 보게 된다.
하랄 솔베르그의 서정적인 그림은 노르웨이 내에서는 높이 평가되지만 이외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능한 자연이 관찰자와 모든 인류를 압축된 원근법 안에 담는 작품 <산속의 겨울밤Winter Night inthe Mountains〉(1914)은 우주적 사유를 보여주는데 노르웨이 사람들이 매우사랑하는 그림으로 뽑힌다.
현재 오슬로에 있는 솔베르그의 집 근처, 오슬로피오르의 거대한 만을 보여주는 그림 〈눈부신 햇빛>은 신비로운 민간 설화와 신낭만주의의연출 방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 화가는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을 가진 노르웨이를 묘사하며 거의 대부분 짙은 색의 나무로 표현되는 극단적인 명암법을 보여준다.

마로니에 나무는 영국의 가을을 대표하지만 그림 속의 나무는 꽃으로 불밝힌 5월의 마로니에다. 5월은 나뭇잎이 아직 신선하고 튼튼하기 때문에폭풍우가 맥을 못 추는 시기다. 과감하게 아래를 잘라낸 높은 시선은 멀리 비구름이 내려치는 장면을 강조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기다란 번개를 맞아 바스락거리는 나무들이다. 칠엽수는 거대한 크기로자라는 나무인데 본래 공원이나 전원 지역의 사유지 길가에 심겼다.
데이비드 인쇼가 묘사하는 잉글랜드는 주로 윌트셔고 특히 좁은 반경의 데비제 지역 주변이다. 신비한 기원을 지닌 실버리힐에서 내려다보이는 에이브버리 고대 기념물들이 이 지역에 포함된다. 인쇼의 낭만적인 풍경은 보편적이고 오래된 것 위에 던져진 개인의 갈망과 연상의 그물망을묘사한다. <배드민턴 게임The Badminton Game〉(1972~1973)에는 거만하고 남성적인 나무들이 깔끔하게 고정된 집에 너무나 가까이 서 있다. 또 다른정원에는 술래잡기를 하는 이들 옆에 잘 손질된 칠엽수가 서 있는데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남근 형태의 꽃이 만발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무르익은 인쇼의 나무들은 자연으로 하여금 스스로 이야기하게 한다.

알렉스 카츠의 유난히 긴 활동기에, 반짝이는 그의 모델들만큼이나 나무라는 주제는 이 뉴욕에 사는 예술가를 매혹했다. 그의 작품의 거대한 크기《아메리카 꽃단풍〉은 높이가 3.6미터에 이른다)에도 불구하고 초기 아이디어부터 실현에 이르기까지 연속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카츠가 실물을 그리기때문이다. 빛과 그 빛이 계속 변화하는 효과에 매료된 그는 하나의 소재에반복적으로 다가가 충분한 재료를 얻게 될 때까지 유화 물감으로 스케치한다. 이 그림의 경우 매일 오후 4시 30분에 그린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캔버스로 옮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표현 방식을 선택한다.
풍경은 카츠에게 여가활동인 적이 없었다. 풍경은 일평생 그의 작품활동에 자극이 되었다. 그는 70여 년 전 미술 장학금을 받아 메인주를 방문했는데 그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뉴욕과 메인주에서 구상화가이자 풍경화가로 활동하며 현대미술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메리카 꽃단풍>의 빛과 에너지는 확실히 미국적이며, 일본식 구도에서 영향을 받았다. 미국 북동부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번식력 강한 이단풍나무는 여름의 색을 띠고 있어 탁트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며, 모든 잎의 해부학적 구조를 상세히 묘사하는 빠른 붓놀림은 단순화된 배경의 정적을 깨뜨린다.

여기서 홍수는 재난의 징후가 아니라 오랫동안 얼어붙었던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아 생긴 결과다. 가느다랗고 긴 자작나무들이 비는 가운데가문비나무와 참나무의 무리 어디에도 주목할 만한 것은 없다. 비록 자작나무는 주변 환경에 편승하지만, 한편으로 러시아의 부적이기도 하다. 자작나무의 알록달록하며 지붕처럼 펼쳐진 상단은 낙관적인 삶을 증명하고, 자작나무의 살균 기능은 생명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물에 잠겨 윤이나는 이 하얀 나무들은 이사크레비탄의 고요하고 서정적인 풍경만큼이나 러시아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레비탄과 동시대인이자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시골에서 보낸 어느 여름에 "자연에는 너무 많은 공기와 에너지가 있어서 그것을 묘사할 힘이 없다"고 썼다. "모든 작은 나뭇가지들이 소리를 지르며 레비탄의 그림에 등장하고 싶어한다." 체호프는 풍경과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레비탄 풍(Levitanesqu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잘생기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성향의 레비탄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1894년에 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의 연극은 모두 코미디라고 주장했던 체호프는 1년 후 희곡 <갈매기The Seagull>에 레비탄을 등장시켰다.
제1막에서 무대 밖의 총소리가 난 후, ‘레비탄풍‘의 콘스탄틴은 제2막에서 머리를 붕대로 감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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