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부에서는 나뭇가지로 쳐놓은 전통적인 울타리들이 천 년 전에 만들어진 이랑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로니에 나무는 영국의 가을을 대표하지만 그림 속의 나무는 꽃으로 불밝힌 5월의 마로니에다. 5월은 나뭇잎이 아직 신선하고 튼튼하기 때문에폭풍우가 맥을 못 추는 시기다. 과감하게 아래를 잘라낸 높은 시선은 멀리 비구름이 내려치는 장면을 강조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기다란 번개를 맞아 바스락거리는 나무들이다. 칠엽수는 거대한 크기로자라는 나무인데 본래 공원이나 전원 지역의 사유지 길가에 심겼다. 데이비드 인쇼가 묘사하는 잉글랜드는 주로 윌트셔고 특히 좁은 반경의 데비제 지역 주변이다. 신비한 기원을 지닌 실버리힐에서 내려다보이는 에이브버리 고대 기념물들이 이 지역에 포함된다. 인쇼의 낭만적인 풍경은 보편적이고 오래된 것 위에 던져진 개인의 갈망과 연상의 그물망을묘사한다. <배드민턴 게임The Badminton Game》(1972~1973)에는 거만하고 남성적인 나무들이 깔끔하게 고정된 집에 너무나 가까이 서 있다. 또 다른정원에는 술래잡기를 하는 이들 옆에 잘 손질된 칠엽수가 서 있는데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남근 형태의 꽃이 만발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무르익은 인쇼의 나무들은 자연으로 하여금 스스로 이야기하게 한다.
알렉스 카츠의 유난히 긴 활동기에, 반짝이는 그의 모델들만큼이나 나무라는 주제는 이 뉴욕에 사는 예술가를 매혹했다. 그의 작품의 거대한 크기(《아메리카 꽃단풍〉은 높이가 3.6미터에 이른다)에도 불구하고 초기 아이디어부터 실현에 이르기까지 연속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카츠가 실물을 그리기때문이다. 빛과 그 빛이 계속 변화하는 효과에 매료된 그는 하나의 소재에반복적으로 다가가 충분한 재료를 얻게 될 때까지 유화물감으로 스케치한다. 이 그림의 경우 매일 오후 4시 30분에 그린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캔버스로 옮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표현 방식을 선택한다. 풍경은 카츠에게 여가활동인 적이 없었다. 풍경은 일평생 그의 작품활동에 자극이 되었다. 그는 70여 년 전 미술 장학금을 받아 메인주를 방문했는데 그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뉴욕과 메인주에서 구상화가이자 풍경화가로 활동하며 현대미술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메리카 꽃단풍의 빛과 에너지는 확실히 미국적이며, 일본식 구도에서 영향을 받았다. 미국 북동부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번식력 강한 이단풍나무는 여름의 색을 띠고 있어 탁트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며, 모든 잎의 해부학적 구조를 상세히 묘사하는 빠른 붓놀림은단순화된 배경의 정적을 깨뜨린다.
여기서 홍수는 재난의 징후가 아니라 오랫동안 얼어붙었던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아 생긴 결과다. 가느다랗고 긴 자작나무들이 붐비는 가운데가문비나무와 참나무의 무리 어디에도 주목할 만한 것은 없다. 비록 자작나무는 주변 환경에 편승하지만, 한편으로 러시아의 부적이기도 하다. 자작나무의 알록달록하며 지붕처럼 펼쳐진 상단은 낙관적인 삶을 증명하고, 자작나무의 살균 기능은 생명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물에 잠겨 윤이나는 이 하얀 나무들은 이사크 레비탄의 고요하고 서정적인 풍경만큼이나 러시아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레비탄과 동시대인이자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시골에서 보낸 어느 여름에 "자연에는 너무 많은 공기와 에너지가 있어서 그것을 묘사할 힘이 없다"고 썼다. "모든 작은 나뭇가지들이 소리를 지르며 레비탄의 그림에 등장하고 싶어한다." 체호프는 풍경과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레비탄풍(Levitanesqu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잘생기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성향의 레비탄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1894년에 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의 연극은 모두 코미디라고 주장했던 체호프는 1년 후 희곡 <갈매기The Seagull>에 레비탄을 등장시켰다. 제1막에서 무대 밖의 총소리가 난 후, ‘레비탄 풍‘의 콘스탄틴은 제2막에서 머리를 붕대로 감고 등장한다.
스타니슬라바 데 카를로프스카의 초기 활동은 20세기 초 런던 미술계의일반적인 이력서처럼 보이지만 그녀보다 더 유명했던 그녀의 남편, 로버트 베번Robert Bevan이 죽은 후 그녀는 화가로서 자기만의 길을 갔다. 스타시아Stasia(그녀의 잘 알려진 이름)는 여성 화가였기 때문에 친구 월터 시커트의 캠든 타운 그룹Camden Town Group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1913년에 여성뿐만 아니라 이민자 예술가들도 참여하는 런던 그룹London Group과 함께 단체를 설립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스타시아는 크라쿠프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는데, 이후 남편 베번이 서섹스에 있는 자기 가족의 영지와 스타시아의 영지를 교환하자고 설득했다. 그들이 런던으로 이주한 후, 우편번호 NW3에있는 그들의 집은 주류 밖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스타시아는 베번이 장기간 그림 여행을 떠나는 동안에도 아이들과 함께집에 머물기로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지키며 계속해서 그림을 소개했다. 경작지 풍경은 아마도 브르타뉴 지방으로 보이며, 이곳은 베번이 죽은 후 스타시아가 딸의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낸 곳이다. 한그루의 나무가 우리의 눈을 풍경으로 이끄는데 둥그런 경작지와 들쭉날쭉한 미개척지가 모두 보인다. 화가의 울림 있는 색감과 확신에 찬 단순함은 양식적이든아니든 영국의 진흙과 달리 신선하고 자유롭다. 유럽의 민속예술을 통해 모더니즘을 정제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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