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의 책이 나온 지 20년 뒤인 1906년에 헤르미네 하르틀레벤이라는 독일 작가가 본격적인 첫 샹폴리옹 전기를 썼다. 이 새 저작은방대했다. 두꺼운 책 두 권에 총 1300쪽이었다. 하르틀레벤의 이야기에서 샹폴리옹은 거의 신화적인 존재가 됐으며, 기절 이야기 역시조금 키워졌다. 하르틀레벤의 서술에 따르면 샹폴리옹의 형은 아우가 쓰러진 앞에서 "공포로 사지가 마비돼" 서 있었다. 죽었다고 확신한 것이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닫고 샹폴리옹을 침대로 옮겼다. 샹폴리옹은 그곳에서 "꼬박 닷새 동안" 무력하고 아무 반응도 없이 누워 있었다
샹폴리옹의 초점은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라 이름에 맞춰져 있었지만, 그가 제시하려는 것은 이름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추은 자모를 제시한 뒤 "왜 이집트인들이 특정한 음을 나타내는 데 특정한 성체자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는지"를 이어 설명했다. 열쇠는 콥트어였다. ‘사자‘ 성체자는 문자 L 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콥트어의 ‘사자‘에 해당하는 단어의 첫 음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입‘ 성체자는 문자 R을 나타냈다. 콥트어가 그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는 ‘손‘과 ‘물‘과 ‘매‘와 ‘깃털‘ 성체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샹폴리옹은 이어 성체자 자모가 이집트에서서아시아로, 그리고 그리스와 나머지 유럽으로 옮겨가고 변신했다고주장했다. 유럽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의 자모를 자세히들여다보면 그것이 이집트 성체자에서 곧바로 내려왔음을 알 것이라고 샹폴리옹은 주장했다. 유럽 문자와 성체자의 관계는 현대 생물과 고대 화석의 관계와 같은 것이었다.
영은 샹폴리옹의 강연 이튿날 아침,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두 사람은 이후 며칠 동안 번갈아 서로를 방문했다. 두 사람 모두의 친구인 아라가 다리 역할을 했다. 이 첫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아마도이 초기에 두 경쟁자는 자신이 영예를 누릴 기회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과 샹폴리옹은 만나서는 함께 파피루스 문서들을 들여다보고 이후 몇 달 동안 계속 시시콜콜한 편지를 나누었다. 음샹폴리옹은 영에게 그의 《다시에 씨에게 보내는 편지》 강연록 두부를 보 냈다. 출판사에서 방금 온 것이었다. 영은 한 친구에게 자신이 "샹폴리옹에게 보여주고 싶은 여러 가지를 영국에 가지고 있다"
품이제 이 분야는 샹폴리옹의 독무대였다. 이 무렵 그가 영을 대하는태도는 예의를 갖춘 경계에서 거의 감출 것 없는 무시로 옮겨갔다. 다시에 씨에게 보내는 편지‘ 강연은 그들 관계의 전환점을 이루었다. 영은 강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예의 바르게 들었지만, 그것을 다듬어 출간하자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샹폴리옹의 글을 자세히 검토할 기회를 갖게 되자 영은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문을 열어 폴리옹이 산책할 수 있도록 했는데 고맙단 말은 어디 있는 거야? 영으로서는 경쟁자의 행위에서 드러나는 "존중이 결핍된 태도"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말장난은 해당 언어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동음이의어는 번역할수 없다. 영어 사용자라면 누구나 pan (냄비)과 tree(나무)가 그려진그림수수께끼를 보고 곧바로 pantry (식품 저장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인이나 에스파냐인이라면 추측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샹폴리옹이 오리 - 아들‘을 비롯한 여러 그림수수께끼로 성공한 것은 그의 큰 도박이 대박을 터뜨렸다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했다. 그가 계속 연구해왔던 콥트어는 정말로 고대 이집트어의 열쇠였던 것이다.
고대 언어의 소리는 결코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학자들이 아무리 많은 성체자를 해독하더라도 파라오가 자신의 장엄함을 선포하거나 이집트 어머니가 아기를 재우는 소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것이다. 물론 우리가 결코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은 고대 이집트의 소리만은 아니다.18 1850년에서 한참 지난 뒤에도 모든 인간 목소리의음은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 최초의 녹음은 1877년토머스 에디슨이 스스로 동요 부르는 것을 녹음한 때인 것으로 오랫동안 생각되어왔다.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품이 어떻게 사용될지 알수 없었다. 다만 몇 가지 제안은 했다. "시계가 저녁 먹을 시간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소리를 영원히 보존하는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흥분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당신의 어조를혀도 없고 이도 없는 이 기구는 후두나 인두도 없이흉내 내고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며 당신의 말을 이야기한다. 수백 년뒤 당신이 먼지로 돌아간 뒤에도 당신을 전혀 모르는 세대들에게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다. 이 쇠로 만든 진동판 앞에서 속삭이기 위해 당신이 선택한 모든 시답잖은 생각, 모든 공상, 모든 헛된 말을 말이다. "
현대 이집트학자들의 연구는 결정자가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분명히 밝혔다. 대략 성체자 다섯 중 하나는 결정자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결정자는 그 단어가 어떤 범주에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외에또 다른 선물도 제공했다. 샹폴리옹은 우선 결정자를 찾아낸 뒤에 이제 그것이 어디서 나타나는지를 살폈다. 그는 그것이 단어 끝에 나온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것은 큰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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