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추구하기로 선택한 큰 목표들은 이타적인 행복이 주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줄 것이다. 오랜 등산 끝에 마침내 산의 정상에 도달한 것만큼 신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얻는 이익은 부산물일 뿐이다. 목표 자체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중점을 둔다.

카드를 너무 빨리 뒤섞으면 그것이 어떤 카드인지 구분할 수없는 것처럼 인생의 방해물은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우리를 정신없이 바쁘고 산만하게 만든다. 놀랍게도 목적이있는 삶은 더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더 평화롭다. 지금 해야 하는일을 하면서도 휴식 역시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의 삶에서 이 새로운 목적을 활용해 인간관계를 극대화하고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며 당신의 경험이 불러일으킬 기쁨과 슬픔등 여러 감정들을 온전히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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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이 낭비되는 것을 두려워하라.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시도하는 두려움보다 커질 때 두려움은 더 이상 당신의 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저 사람들은참 쉽게 이루네.‘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이 되1 위해 다양한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믿는다. 당신의 삶에 롤모델이나 멘토가 있다면 그들에게 물어보자. 그러면 그 사람도 자기만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고, 아마 지금도 이겨내는 중이라는 걸알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두려움과 자기에 대한 의심, 걱정,
불안을 갖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두려움을 마주한다. 그리고 두려움이 감당할 만한 것임을 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무모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안전망을 준비해두자.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안전망을 준비하되, 이를 자각하고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준비되지 않았거나 시기가 맞지 않아 망설이는 것과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것은 다르다. 안정에 대한 욕구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일수 있고, 신중함은 일을 미루는 구실이 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현명함을 잃지 말자.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거나 중대한 삶의 변화를 이루기 전에 행동의 결과를 먼저 생각해보자. 하지만 시도할 때가 되었을 때 불안감 때문에 망설이지는말자. 세상은 당신만이 줄 수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 당신에게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회복탄력성. 결의. 굴복하지 않는 사람. 이것이 어린 시절의 고난을 이겨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점이다.
어쩌면 이제 이런 단어들을 듣는 것이 너무 식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더 이상 굴복하지 않고 싸우는 것에 지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꼭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세상은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과거에 어떤 상처를 갖고 있든지당신의 삶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당신 내면에 숨겨진 잠재력이 더이상 그 안에만 머물러 있길 바라지 않는다.
회복탄력성을 배우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어린 시절의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투쟁이다. 그것은 용감하고감동적이며 위험하고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가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내려놓을 수 있다. 과거로 인한 고통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때보다당신이 의미 있는 일을 더 잘 해내게 만들 것이다.

나는 자신의 미래를 바꾸지 못하거나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큰 잘못을 하거나 상처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파괴적이었던 것이 회복되었을 때 건설적인 것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일은아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과거의 실수가 당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생각을 바꿔보길 바란다. 바로 그 상황 때문에 당신이 특정한 목표나 일을 성취할 수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당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방법으로 당신은 과거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정말 의미 있는 좋은 일을 함으로써 과거를 당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실수가 사명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방해물이 항상목적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아름다운 구원이 될 것이다.

지속적인 행복과 성취감을 얻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즉각적으로 더 큰가치를 갖는다. 더 이상 한 사람이나 소수의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하지만 돈은 그 자체로 악하지 않다는 걸 잊지 말자. 본질적으로 돈은 도덕성과 관계없으며 중립적인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돈은 상품과 서비스를 쉽게 교환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만약우리가 잘못된 마음을 먹는다면 돈은 우리를 온갖 종류의 악‘으로 이끌 수 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때 돈은 좋은 일을 위해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끊임없이 돈만 좇는 삶을 사는 것과는 다르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장 자크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은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내 경험을 비춰볼 때 욕망을 억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적은 물건으로 사는 기쁨을 경험하고 그 진가를인정하는 것이다.

한참 지난 후,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명성이 나에게 미친영향을 털어내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여정의 시작이었다. 나의 행복한 결말은 진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고 명성이라는 방해물 없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우리를 방해하는 요소들과의 싸움이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펴본 것처럼 죽기 전까지 이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적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면 이 투쟁의 결과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당신의 목적의식과 싸우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들을 뿌리 뽑아 옆으로 밀쳐두고 음소거로 설정해둘 준비가 되었다면 승산 있는 싸움이 될 것이다.

‘무리에서 분리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다른 사람들과 행동을 같이하도록 강요받는 문화에 살고 있다. 다양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를 하나의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한다. 사회가 규정하는 일들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완벽히 만족시키지못하더라도 우리는 사회가 말하는 의견이나 기대, 열망을 믿고 갈구하도록 스스로에게 압박을 가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렇게 사회에 순응하며 우리는 개인의 고유성을 잃는다. 우리의 열정을 잃는다. 우리의 에너지를 잃는다. 우리는 다른 미래를선택할 기회를 잃는다. 엉뚱한 것을 좇느라 너무 바빠서 우리는이번 생에 더 성취감을 주는 일이 무엇인지 찾을 기회를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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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엄마가 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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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나는 충실한 배우자가 되기로 다짐한다.
오늘 나는 건강한 식사를 하기로 다짐한다.
오늘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다.
ㆍ 오늘 나는 불안함이 올라올 때마다 기도하기로 다짐한다.
· 오늘 나는 업무 목표에 전념하기로 다짐한다.
ㆍ 오늘 나는 빚을 갚기로 다짐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인생의 중요한 목표에 다가간다. 우선 오늘하루 목표를 실천해보고 어떤지 살펴보자. 필요에 따라 내일은 다른 목표를세워도 좋다.

그가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에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녁노을을 감상하거나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는 등 그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전혀 잘못된 일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작은 삶을 장려하는 이유 중에는 사람들이 인생의 사소한 순간이 주는 기쁨이나 아름다움을 누리고 감상할 여유를 갖게하기 위함도 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 활동이 타인 중심적 활동을배제할 필요도 없고, 배제해서도 안 된다. 결국 다른 사람들을 돕는일들이 가장 영향력 있고, 영원하며, 가장 큰 보람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대단한 일들을 성취하도록 계획된 사람이다. 당신의 존재, 성격, 능력, 관계들은 유일무이하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살면서 당신이 해낼 훌륭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

당신이 성취할 일과 내가 성취할 일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몫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각자의 몫을 성취할 만큼 인생은 충분히 길다. 후회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기술과 미디어로 인한 새로운 방해물들은 뒤섞인 우선순위나우리 자신과 타인을 향한 삐딱한 시선처럼 오랜 세월 인류를 괴롭혀온 수많은 방해 요인들에 추가된 것일 뿐이다. 이런 방해 요인들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간과하기 쉽지만 이는 우리가 중요한 일을 위해 살지 못하게 가로막는 더 심각한 방해물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내면의 방해물에 더 중점을두려 한다. 우리의 영혼이 간절히 바라는 욕망을 따르려면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이 책은 외부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내면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을통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은 오늘날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며 이에 저항하는 것은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가 생활방식이 될 때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된다. 의도성을 잃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임무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결코 쉽게 성취할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당신이 지금까지 한 일중 가장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사려 깊은 부모, 다정한 배우자, 충실한직원, 훌륭한 상사, 영감을 주는 예술가, 이타적인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여정은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다른 어떤 곳보다 그 길의 끝에 더 큰 기쁨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방해 요인들이 당신을 정의하게 내버려두지 말자. 당신이 당신자신을 정의해야 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은 더 중요한목표들을 향해 한 가지 생활방식에서 진로를 수정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에 최대한 몰입하고 성취감을 찾는 것임을 기억하자. 신경을 분산시키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희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노력이다. 당신에게 중요한 일과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결정하는 바로 그날부터 당신의 삶이 더 만족스럽고 후회할 일이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딱 한 번의 삶을 낭비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문제는 우리가 목적과 가치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이아니라 이를 성취하기 위한 집중력이 너무 자주 분산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틀을 꼽으라면, 태어난 날과 자신이태어난 이유를 깨달은 날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여기에 하루를 덧붙이고 싶다. 바로 신경을 분산시키는 요소를 제거한 날이다. 당신은 삶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처리할 준비가 되었는가?

살다 보면 그 의미를 말로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 상황도 적절하고 감정도 완벽하며 의지도 있다. 그때가 나에게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그냥 뛰어내려야 했다. 기회를 놓치고나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 당신이 집중할 대상을 바꾸고 당신에게 중요한것들을 위해 더 의식적인 삶을 살아야 할 그런 때인지도 모른다.
지금이 바로 할 수 있을 때 뛰어내려야 할 순간이다.

"장기적으로 실패의 두려움은 사람의 신체·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실패의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자주 피로를 느끼고 기력이 떨어지며 감정적으로 지치고, 자기 삶에 불만족하며 만성적 근심이나 절망을 경험하고,
객관적으로 관련 분야에서의 성과가 떨어진다.""

치료 전문가들이 두려움 문제들을 치료할 때 ‘습관화‘라고 부르는 방법을 많이 권한다. 이것은 두려워하는 것을 서서히 반복해서 접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그것에 익숙해지고 결국 두려움을 다룰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도 작용할 수 있다. 두려움을 유발하는 일들을 계속 회피한다면, 두려움은 더 악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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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족에 속한 붙잡을 수 없는 남자들은 실은 여러 번 돌아왔었다. 할아버지는 새 가족을 꾸린 뒤 낳은 딸들을 사랑했다. 때로는 브라질로 도망치거나 지하실 프로젝트로 도망치기도 했지만, 체서피크베이 근처의 오래된 목조주택에서 30년간 삶을 꾸렸다. 아빠는 자주 떠났지만 내 옆에 있던 순간도 많았다. 엄마가 없을 때 내게 라면과 팝콘으로 저녁을 차려주거나, 세월이 흐른 뒤내가 심장수술을 받는 동안에는 병원 구내식당에서 기다려주었다. 머무를 줄 모르는 아빠, 그리고 머무를 줄 몰랐던 아빠의 아버지가 나오는 이야기에 내가 애착을 가진다면, 아마 할아버지가돌아가신 뒤 당신이 신화 이상의 존재로, 신격화된 것 이상의 존재로 살게 해주리라. 또 아빠 역시도 한층 복잡하고 모순적인 사람, 즉 헌신적이고 불완전하며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살게 해주리라. 내가 아빠를 그리워하는 내내 아빠 역시 나를 그리워했음을 알아갈 수도 있으리라.

루샤의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북쪽에서 남쪽까지 총 6.5킬로미터에 달하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거닐며 모든 걸 기록하고싶어졌다. 그러면 집단적 환상의 청사진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프로젝트에는 윤리적 압류라는 동기가 대두되었다. 나는 남들이 황폐하다고 부르는 곳에서 의미를 건져낼 것이다. 하지만 둘러대서 뭣 하겠는가? 나한테는 베이거스 조를 만나러 갈 핑계도필요했다.

아침 6시 30분, 커피를 마시려 로비의 카지노에서 줄을 선 내주변은 전부 밤을 꼴딱 샌 사람들이었다. 로비 전체에서 코코넛향 자외선차단제와 담배 냄새가 풍겼다. 같은 줄에 서 있던, 지독하게 피곤해 보이는 남자가 동정 어린 눈길로 나를 쳐다보더니
"행운을 빕니다." 하고 낮게 말하며 내 팔꿈치를 살짝 건드렸다.
나는 커피를 받아 플라밍고 가든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나갔다.
새 냄새와 새똥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한 여자가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이렇게 더운 곳에서, 플라밍고에게 둘러싸인 채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다가 서글퍼진 나머지 담배를 피우던 과거를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삶이란 트라우마와 플라스틱 얼음 성이 공존하는 것임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내가 빈 가방을 챙겨 갈 테니 보름달을마련하라고 했다. 다음번, 커피머신 앞 작은 테이블에서 만났을때 그는 자신이 릴리와 함께 만들었다는 그림을 꺼내 벽에 붙였다. 갈색 공작용 종이를 잘라 만든 세 개의 울퉁불퉁한 산, 그리고 그 위에 동그란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다음 해 우리는 숲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기뻐 날뛰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위한 보물찾기도 마련하게 된다. 그날 하루는 그림엽서 같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반짝이는 물속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들. 그러나 그날 밤 우리에게 있던 건 둘만의 작고 흰 교회에서 아무개 신부의 축성을 받으며 사랑의 열병이 현실이 된다는 부조리가 전부였다. 그날 밤은 우리 둘뿐이었다. 둘뿐인 밤이었다.

삶이란 줄거리의 끊임없는 전환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우리는스스로를 위해 쓴 각본을 내주고 그 대가로 진짜 삶을 받는다. 라스베이거스가 나에게 해준 일, 나를 위해 해준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곳은 내가 어느 날 밤 벨라지오 분수에서 사랑에 빠지는일에 관해 쓴 각본을 삼켜버리고 그 대신 내가 살게 될 다른 이야기를 주었다. 아내를 잃은 남자와 결혼해 함께 딸을 키우는 이야기, 라스베이거스를 찾는다는 것이 남편의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것, 잠에서 깨어나 평범한 일상을 시작한다는 뜻인 이야기다.
이제 라스베이거스로 간다는 건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이 아니라시내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나는 끝난 관계는 끝보다 더 큰 무엇이라는 감각을 지니고자랐다. 끝이 났다고 해서 끝나기 전 일어난 모든 일이 무효가 되지 않는다. 그 관계에서 남은 기억들, 그 관계에 담겼던 특별한 기쁨과 마찰, 그 관계가 허용한 특별한 자아의 구현은 사라지지 않지만, 세상이 언제나 이 기억을 위한 공간을 남겨주는 것은 아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병리적 징후로 취급된다. 1 대 1의 관계를 연속으로 여러 번 맺다 보면 모든연애는 불완전한 테스트 동작이며 오로지 마지막 연애를 위한준비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모형에서 보면이혼으로 가득한 가족은 실패로 가득한 가족이다. 그러나 나는자라면서 이 가족을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보았고, 모든 자아는마치 그 안에 모든 연애들을 담은 러시아 인형 같은 사랑의 누적이라 여겼다.

첫 이별을 겪은 뒤 최근의 이별을 하기까지 15년 동안, 나는슬픔이란 감정의 희석이라는 믿음과는 거의 정반대인 믿음을 고수했다. 슬픔이란 가장 강렬하고 순수한 버전의 나를 불러내는정서적인 증류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그 주, 결혼한 지 2년 반이 된 임신 2개월의 몸으로 자그레브를 걸을 때 나는 필터 없는유럽 담배를 물고 내 속내를 긁어내듯 토해내며 외로워할 자리를 찾지 않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압도적인 열망을 충족시킬 신선한 과일을 찾았다. 노천시장에서 종이봉투에 담아 파는 체리,
무르익디 무르익어서 이가 껍질에 파고들자마자 옷에 즙이 뚝뚝 떨어지는 납작복숭아.

네가 코코넛만 했을 때, 난 지하철역 계단을 오를 때마다 헉헉 소리를 냈어. 내 배는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녀야 하는 9킬로그램무게의 짐이었지. 인대가 늘어나고 끊어지는 아픔에 순간적으로비명이 나오곤 했어. 밤이면 두 다리가 가만히 있지 못해 미칠 것같았는데 의사 말로는 "하지불안증후군"이었어. 어느 날 밤 영화를 보는데, 도저히 다리를 가만히 둘 수 없어 꼬았다 다시 풀기를강박적으로 반복하던 나는 결국 영화관을 나와 화장실 칸 안에10분 동안 앉아 있었어. 두 다리는 마치 다른 누군가가 조종하는것처럼, 내 안에 있는 작디작은 존재가 이미 주도권을 가져간 것처럼 들썩거리다가 펴지기를 반복했어.

출산계획을 작성할 때 나는 가장 강력한 언어를 골든아워를위해 남겨놓았어. 출산 후 첫 한 시간, 새로 태어난 네 몸이 내 몸에 기대어 쉴 때를 골든아워라고 한대. 그 표현 자체가 경쾌한 차임벨 같았지. 듣기로는 골든아워를 보내려면 내가 그러겠다고 요구해야 하더라. 출산 직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첫 수유를 끝마칠 때까지 내 아기와 살과 살을 맞대고 싶다고 나는 출산계획에썼어. 주문을 외는 것 같았지. 내가 널 세상으로 데려올 거야. 넌내 살에 기대어 살 거야. 넌 먹을 거야.

고통은 내 몸이 너를 이곳에 데려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의미였어. 그리고 난 내 몸이 그걸 안다는 사실이 감사했어. 내 정신은 아무것도 몰랐거든. 이제 정신은 몸의 겸손한종이 되어 가장 조야하고 진실한 말로 빌고 있었어. 제발 해내줘.
지금까지 살면서 원한 그 무엇보다도 더 간절히 원해.

남편은 푸른 수술모를 쓴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술대 옆스툴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의 얼굴을 거울처럼 바라보며 네 운명을 읽으려고 했어. "안녕, 예쁜 아가야." 하는 의사의 목소리를듣고서야 나는 그들이 내 몸을 열고 태어나려 기다리는 너를 발견했다는 걸 알았어.

굶는 일이 벽장처럼 작고 답답했다면, 출산이라는 일은 하늘처럼 널찍했어. 내 몸이 가능하게 한 어떤 몸에서 펼쳐지게 될 삶의 모든 미지의 가능성으로 활짝 열린 공간이었어.

힘차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내 목소리도 왈칵터져 나왔어. "아, 세상에."
네가 거기 있었어. 도착, 울음, 새로운 세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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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에서 보낸 첫날 밤 나는 한 스리랑카인 기자와 저녁을먹었다. 내가 묵던, 티크목 앵글과 베란다 너머로 출렁이는 청회색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풍스러운 갈페이스 호텔로 나를 데리러 왔다. 잡지사에서 첫날 일정을 위해 예약해준 방이었다. 부식된 영국 식민지의 권력이 희미하게 감도는 그곳에 묵는다는 것이스스로도 신경 쓰였다. 기자에게 내가 북부로 간다고 말하면서내전 이후 새로운 정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보다 간단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제대로 한 일이하나도 없다고. 내전 중 실종된 민간인들에 관한 정부의 조사는대체로 보여주기식에 지나지 않았다. 타밀인은 여전히 군대의 감시,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수많은 아내들과 같은 투쟁이 남긴 짐을 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북부 민간인들을 오로지,
또는 1차적으로 피해자로만 보는 관점은 위험하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과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재건하는생존자이기도 했다.

내가 투올슬렝에 갔을 때는 많은 이들이 야자수와 철조망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다들 땀범벅이었다. 뜨거운 날씨여서 탄산음료 노점이 성황을 이뤘다. 나도 목이 말랐지만 다이어트 콜라를 들고 죽음의 전당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탄산음료를 샀든사지 않았든 당연한 모독을 피할 길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이런것들을 바라볼 테고, 그러다가 바라보기를 그만둘 것이며, 그 뒤에는 살던 대로 살아갈 것이다. 집단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

여기서 몇 킬로미터 더 북쪽에 있는 전쟁기념물 앞에는 나와전사 그리고 우리에게 이 조각상의 의미를 설명해준 군인 한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안쪽에서 연꽃이 피어나면서 폭발하는 껍질, 그 아래 평화로이 악수하는 두 개의 손. 그 의미는 서푸른 번역에 실려 조각조각 전달되었는데 나에게는 공허하게만들렸다. 전쟁의 종식을 어떤 식으로 말하건(전쟁범죄가 벌어졌는가? 얼마나 많이? 어떤 종류의? 누구에 의해?) 평화로운 악수는분명 아니었다. 조금도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전에 관한 자료를 읽기 시작했고, 콜롬보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읽었다. 호텔 침대에서 잠들 때, 쌀을 발효해 만든 얄팍한 팬케이크 한가운데서 반숙 노른자가 파르르 떠는 에그호퍼‘로 아침식사를 했을 때, 내가 나의 노트에 이 음식을 "지역 명물"이라 묘사한 뒤, 다시금 전쟁 중 야전병원에서 수행된 절단 수술에 관한 묘사로 돌아왔을 때, 내가 마을을 걸어 다니는 대신 책을 읽는 것이 이 장소를 가리는 일일까?
아니면 내가 책을 읽지 않은 채 마을을 걸어 다니는 것이 이 장소를 가리는 일일까? 나는 여태껏 전자라고 믿도록 훈련되어왔으나, 이제는 후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 세기하고도 반이 흐른 2013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남북전쟁을 다룬 대규모 사진전이 열렸을 때, 이 전시를 괄호처럼묶어준 것이 이 두 가지 감정이었다. 하나는 브래디의 사진들이
"전쟁의 참담한 현실과 심각성을 일깨워냈다는 《뉴욕 타임스》의 주장, 그리고 그 어떤 정신으로도 이를 상상할 수 없다는 태거트의 부정이다. 전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이 두 가지의 감정은개념적 북엔드 같은 역할을 하여 붉은 뺨을 지닌 군인들 초상과피가 낭자한 전쟁터 풍경 이면에 도사린 질문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다른 형태의 표현으로는 불가능한 무언가를 해낼수 있는가? 사진은 정신이 완전히 담아낼 수 없는 그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을 또 다른 종류의 참상이 존재하는가?

한순간 나를 휩싼 공감을 이렇게 낱낱이 해부해보면 모두 정확한 것이겠으나, 더 솔직해지자면 간단히 이렇게 말하는 편이낫겠다. 무언가가 일어났다. 내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무언가가일어났다. 시체가 도착했다. 눈이 없다. 그것은 연합군 군인 윌리엄 M. 머지의 시체다. 전쟁 전의 매사추세츠에서 그는 사진가로일했다.

나는 밀 농사를 지으며 올 여름을 보낼 거고, 그 시작은6월의 오클라호마가 될 거야. 이 일의 모든 면이 좋아 보이거든. 나는 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일은 아주마음에 들어. 술을 진탕 마시고 싶고 그렇게 할 거야. 저속한 노래와 뜨내기 노동요를 죄다 배워 부르고 싶고 그렇게 할 거야. 난 혼자 있고 싶고(집에서 멀수록 좋지.) 그렇게 할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아예 글을 쓰지 않고 싶다. 책에는 사진이담길 것이고, 나머지는 옷감 조각, 솜 조각, 흙덩어리, 녹음한 말, 나뭇조각과 쇳조각, 냄새가 담긴 약병, 접시에 담긴 음식과 분뇨····…… 산산이 부서져 나무뿌리 옆에 널브러진 시체 파편이 이들보다는 핵심에 가깝다.

손택이 "예술적 기교라는 오점 없이 목격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놀라워했다면, 에이지는 "목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잰다. 그는 객관성이라는 환상에 반기를 든다. 스스로 자신이 한 재현에 역겨움과 배신감을 느낀 작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예술적 기교라는 오점"을 드러내는것이다. 그는 내러티브 픽션의 전략(플롯, 인물, 속도)은 물론, 일반적인 저널리즘의 전략(객관성이라는 환상, 또는 비가시성 속으로 침잠한 "나") 모두를 거부한다. 에이지는 가난이 우리가 이해하는 바대로의 의식을 "불가피하게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을 미화된 원형으로 대치하는 데 저항한다. 또 무수히 많은 은유를 활용하면서도 은유 자체가 지닌 불충분성을 암시한다.

.....… 꾸준하게 기어가는 길 잃은, 성실한 찌푸린 개미 한마리가 서쪽을 향하는 붉은 길 위, 발열하는 새하얀 태양빛 속에, 그 어떠한 지지도 없이 바깥으로 자라나고자 하는 제 힘으로만 매달리고, 의지하여, 마치 길고 흐늘흐늘하고 부조화스러우며 늘씬한 경주마가 대지의 텅 빈 광활한 벽을 잽싸게 넘어가는 것처럼, 뱀의 머리와 가느다란 물길이 자기의 길을 더듬어가는 것처럼, 강인하게 버티고 선 줄기에서 아주 멀리, 아주 넓게, 뿌리박고 뿌리내린다. 그것이 에마다.

역시 "가난한 자들의 역경에 집착한다."라고 공언했던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는 카메라로하는 설교라는 비평에서 에번스의 작품은 절대적이고 건조한진실을 담아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날것의 재료로부터 웅변과절망을 끌어옴으로써 보편성을 소환했기에 뛰어나다고 상찬한다. 윌리엄스는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 편협한 배경으로부더 끌어올려진 우리 자신.....… 익명성 속에서 가치를 부여받은우리 자신"이라고 쓴다. "예술가가 하는 일은 모든 일, 모든 날, 모든 곳에서 적용되어 제 삶을 재촉하고, 해명하고, 강화하고, 확대하며 이를 유려하게 만든다. 에번스가 하는 것처럼, 비명 지르게 한다.

바하를 찾아오기 시작한 초기에, 훔쳐 쓰던 전기를 이웃집에서 끊어버린 바람에 촛불에 의지해 숙제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애니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출력해 이웃에게 건네며 전기를다시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다른 방문에서는 하이메의 도움을 받아 붉은 당나귀라는 의미의 부로 로호(burro rojo)라는이름으로 불리던 올즈모빌의 시동을 걸때 경찰이 와서 하이메의 몸수색을 한 뒤 경찰차에 태워 간 일이 있었다. 애니는 그가 자신을 도와주던 것뿐이라고 항의했으나, 경찰은 하이메가 누군지잘 안다고 했다. 하이메를 체포하는 경찰에게 항의할 방법은 사진을 찍는 것뿐이었고, 끌고 가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 사진은 찍지 말아요, 작은 새 아가씨." 사진 프레임을벗어나는 경찰차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 말이었다. 그럼에도 애니는 사진을 찍었다. 25년 동안

그의 작업은 중요하다. 그의 사진 속에 인간 삶이 난삽하고복잡한 모습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에, 겹겹으로 쌓인 공포와 거리와 갈망으로 타오르는 비료 더미와 같이 친밀감을 발산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의 작업이 중요한 건, 일상적인 삶은 따분한 동시에 놀라우며, 단조로운 한편으로 문득 경이가 세차게 밀려오기도 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신성한 것이자 술잔치, 드레스 속에 배는 땀, 입안에 감도는 설탕옷의 단맛이다. 햇살과 소금이 배어든 오후, 고래잡이의 교회는 술에 취한 광채를 내뿜는 헛간이 되고, 섬 전체가 별안간 당신의 것, 당신의 것이자 모두의 것이 된다. 당신 안에서 와인이 들뜬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모두에게서 그런 들뜬 기분을 느끼며,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된다. 사랑을 믿자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 하자는 마음. 낯선 이와 춤을 추며 당신은 생각한다. 이게 우리 공통점이지, 믿고 싶어 한다는거. 무엇을 믿는다고 했더라? 두 사람이, 오늘뿐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1만 일 내내 서로를 정말 행복하게 해줄 가능성을.

머무를 줄 모르고, 언제나 부재하며, 수없이 부정을 저지른아빠에게 나는 긴 시간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즈음 나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공통점을 인정하기 시작한 뒤였다. 아빠도, 나도, 각자가 하는 일을 좋아했다.
둘 다 와인을 좋아했다. 내가 세상에서 찾고자 했던 것들, 즉 내가 얻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들, 그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들에 있어 나는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족을 짓밟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오래전 다짐했음에도, 나는 내가 남자친구를 얼마든지 기만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알게 됐다. 처음으로 입안에는 담배와 오렌지맛 탄산음료와술맛이 감도는 채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갓 도착한 아일랜드 남자 옆에서 눈을 떴을 때였다. 이제는 이런짓을 수도 없이 해온 아빠를 더는 재단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에해방감마저 느꼈다. 부모를 닮았다는 사실을 자각한다고 해서,
꼭 그들에게 더는 화를 낼 수 없는 건 아니다. 사실은 그래서 더화가 날 수도 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야! 그러나 그사실은 부모를 재단하려 들 때마다 혀 밑에 걸린 머리카락 한 오라기처럼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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