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보에서 보낸 첫날 밤 나는 한 스리랑카인 기자와 저녁을먹었다. 내가 묵던, 티크목 앵글과 베란다 너머로 출렁이는 청회색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풍스러운 갈페이스 호텔로 나를 데리러 왔다. 잡지사에서 첫날 일정을 위해 예약해준 방이었다. 부식된 영국 식민지의 권력이 희미하게 감도는 그곳에 묵는다는 것이스스로도 신경 쓰였다. 기자에게 내가 북부로 간다고 말하면서내전 이후 새로운 정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보다 간단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제대로 한 일이하나도 없다고. 내전 중 실종된 민간인들에 관한 정부의 조사는대체로 보여주기식에 지나지 않았다. 타밀인은 여전히 군대의 감시,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수많은 아내들과 같은 투쟁이 남긴 짐을 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북부 민간인들을 오로지,
또는 1차적으로 피해자로만 보는 관점은 위험하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과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재건하는생존자이기도 했다.

내가 투올슬렝에 갔을 때는 많은 이들이 야자수와 철조망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다들 땀범벅이었다. 뜨거운 날씨여서 탄산음료 노점이 성황을 이뤘다. 나도 목이 말랐지만 다이어트 콜라를 들고 죽음의 전당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탄산음료를 샀든사지 않았든 당연한 모독을 피할 길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이런것들을 바라볼 테고, 그러다가 바라보기를 그만둘 것이며, 그 뒤에는 살던 대로 살아갈 것이다. 집단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

여기서 몇 킬로미터 더 북쪽에 있는 전쟁기념물 앞에는 나와전사 그리고 우리에게 이 조각상의 의미를 설명해준 군인 한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안쪽에서 연꽃이 피어나면서 폭발하는 껍질, 그 아래 평화로이 악수하는 두 개의 손. 그 의미는 서푸른 번역에 실려 조각조각 전달되었는데 나에게는 공허하게만들렸다. 전쟁의 종식을 어떤 식으로 말하건(전쟁범죄가 벌어졌는가? 얼마나 많이? 어떤 종류의? 누구에 의해?) 평화로운 악수는분명 아니었다. 조금도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전에 관한 자료를 읽기 시작했고, 콜롬보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읽었다. 호텔 침대에서 잠들 때, 쌀을 발효해 만든 얄팍한 팬케이크 한가운데서 반숙 노른자가 파르르 떠는 에그호퍼‘로 아침식사를 했을 때, 내가 나의 노트에 이 음식을 "지역 명물"이라 묘사한 뒤, 다시금 전쟁 중 야전병원에서 수행된 절단 수술에 관한 묘사로 돌아왔을 때, 내가 마을을 걸어 다니는 대신 책을 읽는 것이 이 장소를 가리는 일일까?
아니면 내가 책을 읽지 않은 채 마을을 걸어 다니는 것이 이 장소를 가리는 일일까? 나는 여태껏 전자라고 믿도록 훈련되어왔으나, 이제는 후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 세기하고도 반이 흐른 2013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남북전쟁을 다룬 대규모 사진전이 열렸을 때, 이 전시를 괄호처럼묶어준 것이 이 두 가지 감정이었다. 하나는 브래디의 사진들이
"전쟁의 참담한 현실과 심각성을 일깨워냈다는 《뉴욕 타임스》의 주장, 그리고 그 어떤 정신으로도 이를 상상할 수 없다는 태거트의 부정이다. 전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이 두 가지의 감정은개념적 북엔드 같은 역할을 하여 붉은 뺨을 지닌 군인들 초상과피가 낭자한 전쟁터 풍경 이면에 도사린 질문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다른 형태의 표현으로는 불가능한 무언가를 해낼수 있는가? 사진은 정신이 완전히 담아낼 수 없는 그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을 또 다른 종류의 참상이 존재하는가?

한순간 나를 휩싼 공감을 이렇게 낱낱이 해부해보면 모두 정확한 것이겠으나, 더 솔직해지자면 간단히 이렇게 말하는 편이낫겠다. 무언가가 일어났다. 내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무언가가일어났다. 시체가 도착했다. 눈이 없다. 그것은 연합군 군인 윌리엄 M. 머지의 시체다. 전쟁 전의 매사추세츠에서 그는 사진가로일했다.

나는 밀 농사를 지으며 올 여름을 보낼 거고, 그 시작은6월의 오클라호마가 될 거야. 이 일의 모든 면이 좋아 보이거든. 나는 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일은 아주마음에 들어. 술을 진탕 마시고 싶고 그렇게 할 거야. 저속한 노래와 뜨내기 노동요를 죄다 배워 부르고 싶고 그렇게 할 거야. 난 혼자 있고 싶고(집에서 멀수록 좋지.) 그렇게 할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아예 글을 쓰지 않고 싶다. 책에는 사진이담길 것이고, 나머지는 옷감 조각, 솜 조각, 흙덩어리, 녹음한 말, 나뭇조각과 쇳조각, 냄새가 담긴 약병, 접시에 담긴 음식과 분뇨····…… 산산이 부서져 나무뿌리 옆에 널브러진 시체 파편이 이들보다는 핵심에 가깝다.

손택이 "예술적 기교라는 오점 없이 목격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놀라워했다면, 에이지는 "목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잰다. 그는 객관성이라는 환상에 반기를 든다. 스스로 자신이 한 재현에 역겨움과 배신감을 느낀 작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예술적 기교라는 오점"을 드러내는것이다. 그는 내러티브 픽션의 전략(플롯, 인물, 속도)은 물론, 일반적인 저널리즘의 전략(객관성이라는 환상, 또는 비가시성 속으로 침잠한 "나") 모두를 거부한다. 에이지는 가난이 우리가 이해하는 바대로의 의식을 "불가피하게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을 미화된 원형으로 대치하는 데 저항한다. 또 무수히 많은 은유를 활용하면서도 은유 자체가 지닌 불충분성을 암시한다.

.....… 꾸준하게 기어가는 길 잃은, 성실한 찌푸린 개미 한마리가 서쪽을 향하는 붉은 길 위, 발열하는 새하얀 태양빛 속에, 그 어떠한 지지도 없이 바깥으로 자라나고자 하는 제 힘으로만 매달리고, 의지하여, 마치 길고 흐늘흐늘하고 부조화스러우며 늘씬한 경주마가 대지의 텅 빈 광활한 벽을 잽싸게 넘어가는 것처럼, 뱀의 머리와 가느다란 물길이 자기의 길을 더듬어가는 것처럼, 강인하게 버티고 선 줄기에서 아주 멀리, 아주 넓게, 뿌리박고 뿌리내린다. 그것이 에마다.

역시 "가난한 자들의 역경에 집착한다."라고 공언했던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는 카메라로하는 설교라는 비평에서 에번스의 작품은 절대적이고 건조한진실을 담아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날것의 재료로부터 웅변과절망을 끌어옴으로써 보편성을 소환했기에 뛰어나다고 상찬한다. 윌리엄스는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 편협한 배경으로부더 끌어올려진 우리 자신.....… 익명성 속에서 가치를 부여받은우리 자신"이라고 쓴다. "예술가가 하는 일은 모든 일, 모든 날, 모든 곳에서 적용되어 제 삶을 재촉하고, 해명하고, 강화하고, 확대하며 이를 유려하게 만든다. 에번스가 하는 것처럼, 비명 지르게 한다.

바하를 찾아오기 시작한 초기에, 훔쳐 쓰던 전기를 이웃집에서 끊어버린 바람에 촛불에 의지해 숙제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애니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출력해 이웃에게 건네며 전기를다시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다른 방문에서는 하이메의 도움을 받아 붉은 당나귀라는 의미의 부로 로호(burro rojo)라는이름으로 불리던 올즈모빌의 시동을 걸때 경찰이 와서 하이메의 몸수색을 한 뒤 경찰차에 태워 간 일이 있었다. 애니는 그가 자신을 도와주던 것뿐이라고 항의했으나, 경찰은 하이메가 누군지잘 안다고 했다. 하이메를 체포하는 경찰에게 항의할 방법은 사진을 찍는 것뿐이었고, 끌고 가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 사진은 찍지 말아요, 작은 새 아가씨." 사진 프레임을벗어나는 경찰차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 말이었다. 그럼에도 애니는 사진을 찍었다. 25년 동안

그의 작업은 중요하다. 그의 사진 속에 인간 삶이 난삽하고복잡한 모습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에, 겹겹으로 쌓인 공포와 거리와 갈망으로 타오르는 비료 더미와 같이 친밀감을 발산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의 작업이 중요한 건, 일상적인 삶은 따분한 동시에 놀라우며, 단조로운 한편으로 문득 경이가 세차게 밀려오기도 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신성한 것이자 술잔치, 드레스 속에 배는 땀, 입안에 감도는 설탕옷의 단맛이다. 햇살과 소금이 배어든 오후, 고래잡이의 교회는 술에 취한 광채를 내뿜는 헛간이 되고, 섬 전체가 별안간 당신의 것, 당신의 것이자 모두의 것이 된다. 당신 안에서 와인이 들뜬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모두에게서 그런 들뜬 기분을 느끼며,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된다. 사랑을 믿자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 하자는 마음. 낯선 이와 춤을 추며 당신은 생각한다. 이게 우리 공통점이지, 믿고 싶어 한다는거. 무엇을 믿는다고 했더라? 두 사람이, 오늘뿐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1만 일 내내 서로를 정말 행복하게 해줄 가능성을.

머무를 줄 모르고, 언제나 부재하며, 수없이 부정을 저지른아빠에게 나는 긴 시간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즈음 나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공통점을 인정하기 시작한 뒤였다. 아빠도, 나도, 각자가 하는 일을 좋아했다.
둘 다 와인을 좋아했다. 내가 세상에서 찾고자 했던 것들, 즉 내가 얻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들, 그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들에 있어 나는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족을 짓밟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오래전 다짐했음에도, 나는 내가 남자친구를 얼마든지 기만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알게 됐다. 처음으로 입안에는 담배와 오렌지맛 탄산음료와술맛이 감도는 채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갓 도착한 아일랜드 남자 옆에서 눈을 떴을 때였다. 이제는 이런짓을 수도 없이 해온 아빠를 더는 재단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에해방감마저 느꼈다. 부모를 닮았다는 사실을 자각한다고 해서,
꼭 그들에게 더는 화를 낼 수 없는 건 아니다. 사실은 그래서 더화가 날 수도 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야! 그러나 그사실은 부모를 재단하려 들 때마다 혀 밑에 걸린 머리카락 한 오라기처럼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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