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족에 속한 붙잡을 수 없는 남자들은 실은 여러 번 돌아왔었다. 할아버지는 새 가족을 꾸린 뒤 낳은 딸들을 사랑했다. 때로는 브라질로 도망치거나 지하실 프로젝트로 도망치기도 했지만, 체서피크베이 근처의 오래된 목조주택에서 30년간 삶을 꾸렸다. 아빠는 자주 떠났지만 내 옆에 있던 순간도 많았다. 엄마가 없을 때 내게 라면과 팝콘으로 저녁을 차려주거나, 세월이 흐른 뒤내가 심장수술을 받는 동안에는 병원 구내식당에서 기다려주었다. 머무를 줄 모르는 아빠, 그리고 머무를 줄 몰랐던 아빠의 아버지가 나오는 이야기에 내가 애착을 가진다면, 아마 할아버지가돌아가신 뒤 당신이 신화 이상의 존재로, 신격화된 것 이상의 존재로 살게 해주리라. 또 아빠 역시도 한층 복잡하고 모순적인 사람, 즉 헌신적이고 불완전하며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살게 해주리라. 내가 아빠를 그리워하는 내내 아빠 역시 나를 그리워했음을 알아갈 수도 있으리라.

루샤의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북쪽에서 남쪽까지 총 6.5킬로미터에 달하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거닐며 모든 걸 기록하고싶어졌다. 그러면 집단적 환상의 청사진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프로젝트에는 윤리적 압류라는 동기가 대두되었다. 나는 남들이 황폐하다고 부르는 곳에서 의미를 건져낼 것이다. 하지만 둘러대서 뭣 하겠는가? 나한테는 베이거스 조를 만나러 갈 핑계도필요했다.

아침 6시 30분, 커피를 마시려 로비의 카지노에서 줄을 선 내주변은 전부 밤을 꼴딱 샌 사람들이었다. 로비 전체에서 코코넛향 자외선차단제와 담배 냄새가 풍겼다. 같은 줄에 서 있던, 지독하게 피곤해 보이는 남자가 동정 어린 눈길로 나를 쳐다보더니
"행운을 빕니다." 하고 낮게 말하며 내 팔꿈치를 살짝 건드렸다.
나는 커피를 받아 플라밍고 가든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나갔다.
새 냄새와 새똥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한 여자가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이렇게 더운 곳에서, 플라밍고에게 둘러싸인 채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다가 서글퍼진 나머지 담배를 피우던 과거를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삶이란 트라우마와 플라스틱 얼음 성이 공존하는 것임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내가 빈 가방을 챙겨 갈 테니 보름달을마련하라고 했다. 다음번, 커피머신 앞 작은 테이블에서 만났을때 그는 자신이 릴리와 함께 만들었다는 그림을 꺼내 벽에 붙였다. 갈색 공작용 종이를 잘라 만든 세 개의 울퉁불퉁한 산, 그리고 그 위에 동그란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다음 해 우리는 숲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기뻐 날뛰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위한 보물찾기도 마련하게 된다. 그날 하루는 그림엽서 같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반짝이는 물속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들. 그러나 그날 밤 우리에게 있던 건 둘만의 작고 흰 교회에서 아무개 신부의 축성을 받으며 사랑의 열병이 현실이 된다는 부조리가 전부였다. 그날 밤은 우리 둘뿐이었다. 둘뿐인 밤이었다.

삶이란 줄거리의 끊임없는 전환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우리는스스로를 위해 쓴 각본을 내주고 그 대가로 진짜 삶을 받는다. 라스베이거스가 나에게 해준 일, 나를 위해 해준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곳은 내가 어느 날 밤 벨라지오 분수에서 사랑에 빠지는일에 관해 쓴 각본을 삼켜버리고 그 대신 내가 살게 될 다른 이야기를 주었다. 아내를 잃은 남자와 결혼해 함께 딸을 키우는 이야기, 라스베이거스를 찾는다는 것이 남편의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것, 잠에서 깨어나 평범한 일상을 시작한다는 뜻인 이야기다.
이제 라스베이거스로 간다는 건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이 아니라시내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나는 끝난 관계는 끝보다 더 큰 무엇이라는 감각을 지니고자랐다. 끝이 났다고 해서 끝나기 전 일어난 모든 일이 무효가 되지 않는다. 그 관계에서 남은 기억들, 그 관계에 담겼던 특별한 기쁨과 마찰, 그 관계가 허용한 특별한 자아의 구현은 사라지지 않지만, 세상이 언제나 이 기억을 위한 공간을 남겨주는 것은 아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병리적 징후로 취급된다. 1 대 1의 관계를 연속으로 여러 번 맺다 보면 모든연애는 불완전한 테스트 동작이며 오로지 마지막 연애를 위한준비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모형에서 보면이혼으로 가득한 가족은 실패로 가득한 가족이다. 그러나 나는자라면서 이 가족을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보았고, 모든 자아는마치 그 안에 모든 연애들을 담은 러시아 인형 같은 사랑의 누적이라 여겼다.

첫 이별을 겪은 뒤 최근의 이별을 하기까지 15년 동안, 나는슬픔이란 감정의 희석이라는 믿음과는 거의 정반대인 믿음을 고수했다. 슬픔이란 가장 강렬하고 순수한 버전의 나를 불러내는정서적인 증류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그 주, 결혼한 지 2년 반이 된 임신 2개월의 몸으로 자그레브를 걸을 때 나는 필터 없는유럽 담배를 물고 내 속내를 긁어내듯 토해내며 외로워할 자리를 찾지 않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압도적인 열망을 충족시킬 신선한 과일을 찾았다. 노천시장에서 종이봉투에 담아 파는 체리,
무르익디 무르익어서 이가 껍질에 파고들자마자 옷에 즙이 뚝뚝 떨어지는 납작복숭아.

네가 코코넛만 했을 때, 난 지하철역 계단을 오를 때마다 헉헉 소리를 냈어. 내 배는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녀야 하는 9킬로그램무게의 짐이었지. 인대가 늘어나고 끊어지는 아픔에 순간적으로비명이 나오곤 했어. 밤이면 두 다리가 가만히 있지 못해 미칠 것같았는데 의사 말로는 "하지불안증후군"이었어. 어느 날 밤 영화를 보는데, 도저히 다리를 가만히 둘 수 없어 꼬았다 다시 풀기를강박적으로 반복하던 나는 결국 영화관을 나와 화장실 칸 안에10분 동안 앉아 있었어. 두 다리는 마치 다른 누군가가 조종하는것처럼, 내 안에 있는 작디작은 존재가 이미 주도권을 가져간 것처럼 들썩거리다가 펴지기를 반복했어.

출산계획을 작성할 때 나는 가장 강력한 언어를 골든아워를위해 남겨놓았어. 출산 후 첫 한 시간, 새로 태어난 네 몸이 내 몸에 기대어 쉴 때를 골든아워라고 한대. 그 표현 자체가 경쾌한 차임벨 같았지. 듣기로는 골든아워를 보내려면 내가 그러겠다고 요구해야 하더라. 출산 직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첫 수유를 끝마칠 때까지 내 아기와 살과 살을 맞대고 싶다고 나는 출산계획에썼어. 주문을 외는 것 같았지. 내가 널 세상으로 데려올 거야. 넌내 살에 기대어 살 거야. 넌 먹을 거야.

고통은 내 몸이 너를 이곳에 데려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의미였어. 그리고 난 내 몸이 그걸 안다는 사실이 감사했어. 내 정신은 아무것도 몰랐거든. 이제 정신은 몸의 겸손한종이 되어 가장 조야하고 진실한 말로 빌고 있었어. 제발 해내줘.
지금까지 살면서 원한 그 무엇보다도 더 간절히 원해.

남편은 푸른 수술모를 쓴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술대 옆스툴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의 얼굴을 거울처럼 바라보며 네 운명을 읽으려고 했어. "안녕, 예쁜 아가야." 하는 의사의 목소리를듣고서야 나는 그들이 내 몸을 열고 태어나려 기다리는 너를 발견했다는 걸 알았어.

굶는 일이 벽장처럼 작고 답답했다면, 출산이라는 일은 하늘처럼 널찍했어. 내 몸이 가능하게 한 어떤 몸에서 펼쳐지게 될 삶의 모든 미지의 가능성으로 활짝 열린 공간이었어.

힘차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내 목소리도 왈칵터져 나왔어. "아, 세상에."
네가 거기 있었어. 도착, 울음, 새로운 세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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