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밤이 지나간 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생각한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날 때 세상에는 지혜가 가장 흔해진다고 그때야말로 우리가 지혜를 모을 때라고. 평범하고 흔한그 지혜로 우리는 세상을 다시 만들 것이라고.

우리의 산책은 늘 그 나무 아래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어. 5단지 초입에 서 있던 마로니에, 그 앞에 이르면 나는 그 나무의 둥치에 붙은 ‘칠엽수과 칠엽수Japanese Horse Chestnut‘라고쓰인 이름표를 찾아 읽었고, 너는 코를 킁킁대며 주위를 맴돌았어. 때로 산책도 버거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든 날도 있었지만, 그 나무 아래에 서면 언제나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었어. 그래, 모두 잊자 잊어버리자. 지금 우리에게 좋은 것들만 생각하자. 아무리 어두워도 마로니에 아래에서의 생각은 환했고, 밤하늘을 가린 잎사귀의 잎맥은 더없이 또렷했지.

지루한 장마가 끝난 뒤, 그간의 습기를 모두 날려버릴 듯 내리쬐던 햇살을 받으며 그 인형이 빨랫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나는 기억하고 있어. 우리가 찾아낸 그 인형을 너는 무척 좋아했지. 나이가 들수록 너는 한 마리의 소도 잃지 않으려던 조상의 본능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 그게 비록 딸랑대는 인형에불과했어도 그 인형을 물고 핥고 던지면서 너는 놀았고, 그럴때마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지. 깊은 밤, 잠에서 깨었다가 네가 내 옆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있었어. 다시 잠들려고눈을 감으면 불이 꺼진 거실에서 이따금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 그러면 모든 게 안심이었어.

그 사람과 살던 집에서 나와 그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나는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어. 그때는 너도 내 곁에 없었으니까 네가 어찌나 걱정되던지. 너의 안부를 물으려면 그 사람에게 연락해야 했는데, 그게 그 사람을 힘들게 했나봐. 때로 연락이 되지 않으면 온갖 생각이 다 들었고, 네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만 했어. 옛집에서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너는 내게냉담했지. 마치 내가 너를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러면서도그 상황이 혼란스러운지 그 사람과 나 사이에서 눈치를 봤어.
못 본 사이에 너는 더 상냥해졌고, 작은 애정에도 고마워하는개가 되어 있었어. 그건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버려질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궁금이와 함께 웃는 나무도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

어느 오후, 수업이 끝난 뒤 각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무척 더웠던 모양이다. 그 친구가 수영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LP를 사서 나눠 듣자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다들 좋아했다. 하굣길이니 당연히 수영복은 없었다. 우리는 빨가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경부선 철교 아래, 수심이 깊은곳이었다.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 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1984년 여름, 내 몸을 감싸던, 다리 아래의 검고 차가운 물.

그날 다리 밑까지 함께 간 친구들은 담배를 나눠 피웠다. 그러려고 어두운 철교 밑으로 간 것이었다. 그 친구는 내게도 담배를 건넸다. 마치 브라이언 아담스의 앨범을 복사한 카세트테이프를 건네듯이.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어둠 속의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친구들이 피우는 담배 불빛이 어둠 속에서빨갛게 타들어갔다.
그 어둠 속에서도 시냇물은 쉬지 않고 흘렀으리라. 눈물이날 것만 같은 밤이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조금씩 변해갔다.

꿈이 없는 사람의 자유이용권은 25개의 보어덤과 23개의 디스어포인트먼트와 16개의 다크니스를 맛보는 티켓에 불과할 테니까. 이 삶은, 오직 꿈의 눈으로 바라볼 때, 다른 불순물 없이 오롯하게 우리의 삶이 된다.

낯선 여름이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쓴 채 여름을 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이상해 기상관측 이래 가장긴 장마가 찾아왔다. 비는 내렸다 하면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올 거라는 예언이 인터넷을 떠돌았고, 거기에 호응하듯 전염병은 더욱 번져갔다.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수도권의 식당과 주점은 저녁 아홉시까지로 영업시간이 제한됐다. 팬데믹 이후 첫번째 여름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의 의상실에서 낯설다고도 낯익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TV에서 보던 연예인들의 얼굴을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엄마는 그들에게 데면데면했다.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던 평소의 태도와는 너무 달랐다. 어딘가 겸연쩍은 듯한 표정이었달까. 반면 그들은 마치어제 다녀간 사람들처럼 살가웠다. 한 여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는 체를 했다. 여자는 뒤에 서 있는 남자들을 돌아보며 "벌써 이렇게나 컸네"라고 말했다. 그녀의 서울말은 마치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혼선이 심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엄마와내가 사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그런 노랫소리 같았다.

그런 하나 마나 한 대화를 조금 더 나누다가 그들은 전화를끊었고, 은주가 "주소지를 찾아가면 뭐가 남아 있으려나"라고혼잣말할 때, 그도 혼자서 생각하던 것을 계속 생각했다. 그러니까 비행기를 타면 삼십삼 년 전, 그가 엄마 뱃속에 있던 시절의 장소로 이동할 수 있듯 시간을 거슬러 삼십삼 년 전으로도되돌려 보내주는, 말하자면 타임머신 같은 기계가 있다면 어떨까 싶은, 소년 같은 몽상을 하지만 이내, 그렇다면 자신은 태어나고 엄마는 아직 죽지 않은 세계로 가겠지. 자신은 없고 엄마만 있는 세계로 가고 싶기야 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기전 엄마가 그에게 만약 당신이 죽고 난 뒤의 세계가 있는 게사실이라면 당신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열어볼 수 없다니까. 그게 규칙이야. 과거는 통조림 속에 들어 있고, 우리에게는 따개가 없어. 그러니 누구도 과거를 바꿀수는 없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스파게티 인생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그건 귀에 들리는 그대로 따라 되뇌면서 외국어를 익하는 학습법 중의 하나였는데, 그녀는 동시통역을 잘하기 위해말하는 사람의 말투뿐만 아니라 몸짓까지도 흉내내야 하는 자신의 일을 섀도잉이라고 일컬었다. 나는 섀도잉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 그녀를 따로 만났다.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말을, 서로의 행동을, 서로의 표정을 따라 하게 됐다. 그녀에게 사귀자고 말했을 때, 나는 섀도잉에 대해 다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습니다. 이게 다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비행기에 올라타 티켓에 인쇄된 자리를 찾아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 문이 닫혔습니다. 그 순간 그때까지의 현실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방송활동을 할 때도 종종공황장애가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황상태가 어떤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발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것은 깊고도 완전한 암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손으로 옷에 묻은 것들을 툭툭 털어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어났습니다. 문득 제 눈앞으로 더없이 생생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깊은 안도감과 함께 완전한평화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승무원에게 고맙다고 말하니 그가환하게 미소를 짓더군요. 저는 그를 안았습니다. 그의 육체뿐아니라 감정과 이성까지도 모두 안을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은놀랄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관계라는 건 실로 양쪽을연결한 종이컵 전화기 같은 것이어서, 한쪽이 놓아버리면 다른쪽이 아무리 실을 당겨도 그전과 같은 팽팽함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한 번 더 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과연 어떨까? 여름 환한 빛 아래, 어떤 사람은 곧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정든 동네를 떠나고, 어떤 사람은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며그녀를 동정한다면, 그 푸른 나무들 사이로 수업을 마친 아이가 돌아온다면, 마치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다시 그아이를 맞이할 수 있다면.

지금 나 역시 그 바다의 한복판에서 표류 중이다. 그 바다 위로 천년 전의 푸른 무덤들이 마치 다도해의 섬들처럼 군데군데 솟아있다.

사랑이란 제 쪽에서 타인을 바라볼 때의 감각이었다. 그것에는 절대적인 크기가 없었다. 멀어지던 그 순간부터 그녀의살갗이 와 닿을 때의 촉감이나 자신을 쓰다듬던 손길은 전혀되살아나지 않았다. 멀어지던 바로 그 순간부터 풍화는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땠는지, 심지어는 그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됐다. 지훈은 그녀의 강의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누구도 스스로존재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이 폐허는 끝이 아니야. 이건 이 집의 가장 어린 영혼, 새로운 시작이야. 알겠니?
그다음은 바람과 빛이 새어드는 소리, 그리고 다시 피셔-디스카우의 노래가 이어졌다.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그그늘 아래에서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그때까지도 지훈의 앞에서는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생의 첫 해트트릭은 그토록 대단한 일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시합을 하던 일요일이었다. 세번째 골이 들어가는 순간 기태는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만지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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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처럼 빳빳하게 얼어 있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금방눈물을 뚝뚝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곤란하고 서러워보였다. 서러워서 곤란하고 곤란해서 서럽고, 바람은 점점더 차가워지고 다시 더 곤란하고 서럽고 서러워서 곤란하고, 이 과정이 반복될 것이 빤한 날씨였다. 에라 모르겠다.

마침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계단도 마침내 끝났다. 다 내려가서 숨을 참으며 살며시 할머니를 내려놓았다. 드디어 얼지 않은 땅에 발을 디딘 할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도 같이 쓸어내렸다.

침대에서 문 사이의 그 좁다란 공간에 침대와 이불처럼 반질반질하고 고운 얼굴을 한신혼부부가 무릎을 웅크린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얼굴들도 하도 이불처럼 새것 티가 나게 반질반질 고와서, 게다가어떤 사람들만이 풍길 수 있는 정결함 때문에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신혼부부구나, 하고 눈치챌 수 있었다. 참 고운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친구들이 데리러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웃는 새댁의 얼굴은 말갛고 곱고 눈부셨다. 그리 덩치가 크지 않은신랑은 어떻게 평소보다 몇 배 무겁기 마련인 술 취한 사람을 업고 예까지 왔는지 장군처럼 늠름해 보였다.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고 앞으로도 기약 없다. 그저,
부디 그들이 그 침대가 떵떵거리며 제 자리 찾아 위용을 자랑할 수 있는 몇 십 평짜리 넓은 집에서 잘 살기를. 레미안이니 브라운스톤이니 이런 데 가서 여봐란 듯이 살라고 세속적으로까지 빌어주고 싶을 만큼 참 정다운 무릎을 가진 부부였다.

으로 출동한 모양이었다. 노래 소리와 마이크에 대고 뭐라고 고래고래 흥을 돋우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커지기만하는 게 아니라 열기가 시시각각 끓어올라 뚝배기처럼 도통 식을 줄을 몰랐다. 마이크에 대고 소리치는 사회자의 신명도 커져만 갔고, 얼쑤 좋다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져만 갔다. 그리고 누군가 단단히 털리고있다는 내 의심도 뭉게뭉게 커져만 갔다.

팔순 때도 이웃들이 깜짝 놀라 홍보관으로 착각할 만큼 시끄러운 잔치를 벌일 수 있기를, 그리고 고성방가로 착각하고 분노하며신고한 나같이 덜 떨어진 이웃이 다시는 없기를 빌었다. 할머니 축하드려요. 내내 건강하세요. 누구나 칠순은 한 번인데 제가 참 그것도 모르고 죄송해서 어쩌나. 팔순 때는절대 고성방가로 신고 안 할 테니 꼭 팔순잔치 하셔요. 네.
부디 오래 사시고 건강하게 구순까지 치르셔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그분을 즉시 찾아가서 옆에 앉혀놓고 간절하게 물어보고싶다. 대민 상담 40년의 경력으로 보셨을 때, 이 남자는 어떤가요? 저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나요? 그 어떤 용하다는점술가나 노련한 정신과 의사보다 훨씬 신뢰가 가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어떤 남자와 헤어지는 것보다도, 그 집과 헤어지는 게더 힘들었다. 참 고마웠다. 그 다정한 침묵. 지겹도록 많은 구질구질한 고독을 내려놓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질질 짜며 눈물을 흘렸던 리놀륨 장판의 무늬 하나까지도, 벽지의 얼룩 하나까지도 그토록 사랑했다. 잘 있거라, 사랑아. 아니, 잘가라 사랑아.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가려고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하도 가파른 경사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앞뒤 브레이크를 꽉잡으며 젠장 이건 뭐 시간을 달리는 처녀도 아니고, 하고투덜대던 언덕. 올라올 때는 이를 악물며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내가 이놈의 동네 뜨고야 만다. 하고 허망한 결심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그 언덕. 없다, 이제는.

도대체 나는 왜 이놈의 회사를 죽어라 다녀야 하나. 여기 다니다가 좋은 날 다 보내는 거 아닌가,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고 좋아했더니 이건 정말 첫 작품이 유작이 될 판이고, 왜 저 책상에 앉아 있는 인간은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그때 나는 확실히, 막힌 하수도 뚫듯 꼭 내려야 할 심화로 가득해 있었다.

나의 입을 것을 해결해준 것은 수년 동안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였고, 그나마 기분 좀 낼 때면 동대문 도매상가에가는 정도였다. 그러니 브랜드 제품이라고는 온 옷장을 들었다 털어도 없고 그나마 옛날 남자친구가 뭐라나 하는 크리스털 브랜드 귀걸이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정말 거지같이 헤어지고 난 다음, 야 이 망할 자식아 평생 그러고 폼 재고 살아라, 하면서 랜디 존슨 같은 기세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어딘가 타지 않는 쓰레기 노릇이나 잘 하고 있겠지. 어쨌거나.

좀스럽기 짝이 없는 마음보를 한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이게투쟁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냐며 죄책감에 빠졌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구두는 내 마지막 보루 같은 거였다. 왜이래 나 미우미우 하이힐 있는 여자야, 하는 이십대 여자로서의 마지막 허영이었다. 내 능력으로 손에 쥘 수 있는 허영의 딱 한계치이기도 했다.

나 때문에 그녀는 참 눈부시게 웃었다. 아, 나는 도넛답게주책스런 눈물이 나려고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 미소 덕분에 텅텅 빈 둥그런 구멍이 아주 조금 작아졌다. 도넛이 신통한 짓 하고 도넛이 도넛 구멍 메우는 그런 희한한 날도 있었다. 용감한 KTX 여승무원의 그 꿋꿋한 미소 덕분에 도리 나는 1센티미터 정도 구원을 받고. 요즘도 이놈의 구멍사이가 유난히 퀭할 때마다 아끼고 아껴서 꺼내보는 녹슨철탑 위 당신의 눈부신 미소, 고맙고 또 고마웠어요.

오천원어치만 포장해달랬는데 터질 듯한 봉지를 할머니는 건네줬다. 그걸 안주 삼아 산꼭대기 내 방에서 마지막으로 술을 마셨다. 순대는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 집에서 내가먹어온 것은 순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차마 감당이 안돼서 펄펄 날뛰다 못해 미친 개 같던 젊음을, 고달프고 외롭고 거친 혼자살이와 돈벌이의 어리광을 그 식탁 위에 조용히 내려놨었다는 것을. 아이고 이쁜이가 왔구나, 아가야많이 먹어라, 하는 그 말에 넘치도록 위로를 얻어왔다는 것을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그 집에서 내 맘대로 정한 내지정석에 앉아 있으면 아무리 가난하고 춥고 외로워도 꼭따사로운 봄날 같았다. 그토록, 따사로운 순대국이었다.

요즘 레드니 마늘이니 갖은 맛을 낸 치킨들이 많지만 만약 당신이 고전적인, 극히 평범하지만 맛있는 치킨을 원한다면 약수역에 있는 이십 년 된 림스치킨을 찾아보실 것,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금호동에 사시는 아줌마, 보고 싶다. 극히 평범하지만 맛있는치킨도 다시 먹고 싶다.

조금씩 줄였다는 항변에 의사선생님은 독을 한 컵마시나 한 병 마시나 뭐가 다르냐고 대꾸했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억울할 것도 없었다. 평생 마실 술을 지난 십 년 동안 죄다 마셔버렸으니까. 내 몫뿐이 아니라 평생술한잔 입에 대지 않고 살아오신 부모님 몫까지 카드빚당겨쓰듯 싹 쓸어 마셨으니 끊어도 억울할 것 없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버틴다. 그 좋아하는 술을 어떻게 끊느냐고, 같이 술 마시고 싶다고 간 크게 말해주는사람들이 있어서 고맙기는 한데 사실은, 너무 사랑해서 차마 가까이 갈 수 없는 마음을 아십니까. 이 애절한 마음을.

향미의 소고기탕면의 칼칼하면서도 독특한 국물은 고수를 듬뿍 넣으면 더욱 술 한 잔을 부르는 맛이 되고, 동파육은 돼지고기 비계를 느끼하지 않게 삶아 젓가락으로 부드럽게 쪼개질 정도로 연한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만두를 살짝 찢어서 그 위에 고기 한 점 없어 먹으면 밀가루 음식이건 비계건 기름기건 평소에 건강이 어쩌고 저쩌고 내가뭐라고 떠들었건 말건 으허허허허 내가 뭐랬건 오해입니다.
하는 식으로 마구 주워먹게 된다. 그게 ‘향미‘의 마력이다.

하는 것이 요즘 기륭전자에 가보지 못하고 알량한 돈만 보내느라 못 가보는데, 미미식당 생각만 해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릴 지경이다. 고지혈증이고 콜레스테롤이고 다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그날 먹은 음식들의 이름도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저 얼른 입에 넣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정말로, ‘미미식당‘이었다. 정말로 아름다울 미에 맛미자를 쓴다. 아름다운 맛이었어요. 사장님.

유난히 추운 날 아침부터 만두가 먹고 싶어서 터덜터덜갔더니 아줌마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만두를 상자에넣어주시곤 갑자기 손 좀 내밀어보라고 했다. 손을 내밀자아줌마는 찜통에서 찐빵 하나 꺼내 쥐어주며 말했다. "날이 추워서 손이 시리니까 잡고 집에 가면서 먹어." 과연 손은 따뜻했다. 찐빵은 손난로처럼 보들보들한 제 몸으로 따스하게 손을 덥혀주었다. 집에 가도 따뜻해서 아버지가 기뻐하며 드셨다. 나는 김치만두를 먹었다. 아버지도 나도,
사소하게 행복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천국에서 만두처럼 포근하게 계실까. 오늘도 혜성분식은 시장이 모두 잠든 새벽 다섯시에 혼자 불을 밝히고 있고 찜통은 따뜻하느라 바쁠 것이다.

다 아는 얘기겠지만, 나는 성격이 나쁘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 만한 내공을 갖춘 인물이 전혀 못 된다. 어리지도 않은 나이에 이젠 좀 죽어도좋을 혈기만 펄펄해서 마음에 안 드는 꼴을 보면 웃으면서 여유 있게 화내기는커녕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있는악 없는 악 다 써서 벼락같이 화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긴다. 화를 내고 내고 또 내도 모자랄 일천지, 그냥 귀를 막고 나는 별일 없이 산다 하기에는 이놈의 혈기가 아직 덜죽어서, 아주 이놈의 혈기가 웬수 중의 웬수다. 한쪽에서는 비정규직 신나게 자르고 잡 쉐어링 하자면서 젊은 애들보고만 콩 한쪽도 나눠 먹으라고 윽박질렀고 저쪽에서는 마음대로 운하 파고 그러거나 말거나 가난한 아버지들은 가난한 죄로 타 죽어버렸고, 예쁘고 돈 없고 빽 없는 여자 연예인은 손 타다 죽어버렸고, 일제고사가 어쩌니 저쩌니 난리통에 선생질하던 친구가 잘려버렸고…………종종 속상해하는 것만으로 하루해가 다 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힘겨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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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 봉헌되어버린 도시에서 나는 가난하고 고독했으나 모두가 가난하고 고독한 동네에서 쌀푸대 속의 쌀알 한톨처럼 눈에 띄지 않아서 그것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때 24시간 편의점 하나 없던 왕심리는 하나둘씩주상복합건물이 올라가고 또 뉴타운 광풍의 중심에 있다.
사람 사는 집이 하나하나 스러져 없어지고 호화로운 높은아파트들이 끝도 없이 들어서는 광경은 그 시절 고독을 건드리고 또 울린다.

친구들이 마카롱이어쩌고 레어치즈케이크가 어쩌고 할 때마다 나는 돼지곱창 생각만 했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하나를 켜면서 칠면조 통구이를 망상하듯 학자금 대출을 거칠게 갚아내면서곱창골목의 보도블록 한 개마다 곱창 한 점을 꿈꾸었다.

그냥 곧 죽어도 아쉬운 소리만은 입 밖으로 안 나오던 쓸데없이 생피만 선지처럼 철철 뜨거운 시절이었다고밖에 말 못하겠다. 그걸 자존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자존심은 아니었다. 그냥, 피가 끓었다.

형제슈퍼라고 해서 몇 사람의 형제가 있는 건 아니고 다리를 저는 아저씨 한 분이 밤이나낮이나 새벽이나 가게를 지키고 있다가 당시 내가 맘먹고사치하는 날 지르던 맥주 페트병과 ‘숏다리‘ 세 개 정도를어느 시간이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팔아주었다. 그 당시 새로 나온 맥주 페트병은 신기로운 사건이었다. 캔은 비싸고 병은 무거운 데다 다 마시고 난 후 처치곤란이라 괴로워하던 나에게 이 무슨 복음 같은 존재냐며 종종 집에 즐겨 모시곤 했다.

그리고 가끔 조용히 혼자 안부를 궁금해 할 따름이다. 복층에서 눈을 붙이다 맥주를 따라주던 들불사장님을, 비디오 고쳐준 다음 시크하게 천원!
이라고 말하던 한옥집 전파사 아저씨를, 기왓장에 나무대문 달려 있던 그 많은 집들에 살던 사람들을.

생각이 깊어서 직관과 이성을 적절히 사용해 그런 거 사들인다고 위안이 되는 게 아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현명한 사람도 있겠지만나는 항상 뭐든 어마 뜨거라, 하고 다쳐봐야 아는 사람이었다. 남자든 술이든 옷이든 구두든, 다 그랬다. 어쨌거나.

자본주의에 대한 그 불타는 욕망이, 사고 싶다는 욕심이, 예쁜 옷을 사서 예쁘게 입고 싶다는 그불타는 속물스러움이 나를 등 떠밀어 어찌어찌 살아서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다. 그 예쁜 블라우스가, 원피스가, 스커트가, 코트가, 그것들이 뿌리는 휘황찬란한 광채가 내등을 떠밀고 또 떠밀어 앞으로 계속 나가게 했다. 그렇게해서 소비자본주의는 나를 전진시켰다.

물론 다 덤벼, 하고 기세등등하게 굴어봤자 늘 얻어맞고 지면서살아왔지만, 그래도 살았으니까. 졌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지다 보면 이기고 이기다 보면 지는 거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뚝배기는 잘도 끓고 내 속도 끓고, 어쨌거나.

냉장고 박스만 한 지하 셋방에 앉아 깻잎과 상추에 양념장을 바른마늘 한쪽을 올려놓고 냠냠 씹으면 아아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하는 희망이 야만적으로 솟구쳐올랐다. 왜 그렇게맛있나 했더니, 돼지곱창은 야만의 맛이었던 거였다.

세상은 참고 참고 또 참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 왕십리가 결국 내게 가르친 것은 입 다물고 버티는 연습이었다. 다들 그렇게 참고 버티고 견디면서 살고 있었다. 버텨라, 살아라, 그렇게. 그래, 계속 가는 거야. 어디가 됐든 닿긴 닿겠지, 가라.

처음부터 그 동네를 좋아해서 간 것은 아니고 고작해야몇 백만원의 보증금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옥수동 첫 집에는 제대로 된 문도 없어서 미닫이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다녀야 했다. 누군가 가택 침입해 어떤 여자를강간 살해라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집이야말로 그 범죄의 가장 적당한 표적일 거였다.

가을이란게 참 그렇다. 원래 불쌍하기 짝이 없는 계절이었다. 소주를안 좋아하는데도 가을에는 꼭 소주였다. 가을 타는 건 남자라는데 아무래도 내 안에 내장되어 계신 아저씨 한 분이가을을 몹시 타는 모양이었다.

그것밖에 희망이 없었다. 언젠가 기운이 빠져서 이 미친 짓도 못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렇게중얼거렸다. 손에 꽉 쥔 소주병의 녹색 빛은 가끔 에메랄드처럼 영롱하게 반짝였다. 아, 내가 취하긴 취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그때 뭐라고 대답했어야 했을까. 전혀 모르겠다. 사람이란 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짓을 당하기도 하고 저지르기도 하고 서로 그런 짓 하는 종자인 것을. 여기서 상처를 주고, 저기서상처를 받고, 그러면서 상처 받은 건 기억하고 내가 준 건잊어버리고, 뭔가 손톱만큼 베푼 건 기억하고 남한테 얻은건 순식간에 까먹고………….

외로워서 미칠 것 같은 밤에 안방에서 창문을 열면한강과 동호대교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던 우리 집.
미칠 것 같은 밤에도 고독을 내려놓을 공간만은 충분했던 우리 집.
그때 나는 젊었고, 피는 지글지글 뜨겁고종종 토할 만큼 외로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늘과 극히 가까운 이 집의 높이와 탁월한 일조랑 덕에 허브는 정글처럼 무서운 속도로 자라났다. 밭이아니라 숲을 이룬 그 무시무시한 생장을 바라보며 허브가 원래 화초가 아니라 잡초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심지도 않은 이상한 싹들이 마구 자라났다. 딸이 어떻게 살고 있나 보러 오신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그건내가 씨를 뿌린 적도 없는 나팔꽃이었다. 내 밭에 무단 주거하는 이 망할 놈들은 뭔가 싶어 약이 올라 처음에는 싹보는 대로 마구 뽑아냈지만 나팔꽃은 저년이 왜 저래,
하는 듯 아무리 뽑아대도 끄떡도 안 하고 여기서 싹을 틔우고 또 저기서 싹을 틔웠고 결국 나는 두 손 들고 말았다.
너희가 이겼어, 내가 졌다. 실컷 자라라.

나는 그때까지 검둥이가 짓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워낙 성격이 소탈한 개라 내가 집에 붙어 있을 때 짖었던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근처에 심심할 때마다 짖어대는게를 키우는 집이 있어서 저 개 참 시끄럽네. 하고 생각하고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이 아저씨가 우리 검둥이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확신했다. 마침 회사에서유독 고달픈 시간을 보냈던 날이라 누구든 덤벼라 싸우자다투자 잘 걸렸다. 싶은 날이었다.

그리고 아저씨는 뒤돌아 나는아저씨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있는 이를 든 제 말하니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은 어떤지 잘 스산했다.
문을 닫고 아무것도 모른 채 꼬리흔드는 검둥이를 끌어안고 깔아놓은 요 위에 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그날따라 사는게 잘 쓸쓸했다.

저 집마다 얼마나 많은 개가 짖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화를 내고, 얼마나많은 사람이 싸우거나 사과하고 사과받고 있을까.

미안하다고 한 아저씨는 산더미 같은 잡지 무더기를 끌어안고 몇 번 왔다갔다했고, 나는 1톤 트럭에 타고 그토록많은 고독을 내려놓았던 내 집을 떠났다. 그뒤로 다시는그 집을 볼 수 없었다. 다시 서울에 그런 집 보기 힘들 것이다. 죄다 지나갔다.

날에눈 오거나 날이 추우면 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죄다 나다니지 않고 집 안에 몇 날이고 틀어박힌다. 혹시나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노인들의 연약한 뼈는 부서지기상이고, 여기서 안 넘어질 수 있는 노인은 없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경로증 있는 사람들만 죄다 데려가버린 것처럼 추운 날이면 그렇게 동네에 어르신 한 명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얼음이 꽁꽁 얼었던 날, 회사에 출근하는데 높은 계단 위에 할머니 한 분이곧 부러질 것 같은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난간을 꽉 쥔 채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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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에는 명절마다, 주말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모였다가 썰물처럼 사라졌다. 사람들은 쉽게 서울을 떠났고 그보다 쉽게 서울로 돌아왔다.

욕은 다 거기서 거기였고, 그녀들의 몸은 종이 인형처럼 흔들렸지만 파리 날개처럼 얇은 홑청은 그걸 입은 사람을 지켜줄 요만큼의 힘도 없었다. 그게 거래의, 혹은 거리의 법칙인 모양이었다.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날이면 베개속에 억지로 얼굴을 묻었다. 어쩐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오랜 시간 동안 미싱을 돌리며 서 있던 그 오빠가 털썩 쓰러졌다. 실려 나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최진실 사진만 내내 붙어 있다가 누가 바꿔 단 왕조현 브로마이드로 바뀌었다. 그 오빠도 없고 지금은, 최진실도 없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어쩐지 끌리게 되는 여자들은 죄다 이상하게 아름답고이상하게 관능적이었다. 직업이 뭐건 나이가 몇 살이건 어떻게 생겼건 온몸에서 풀풀 풍기는 ‘살겠다, 살고야 말겠다‘
하는 에너지야말로 그 아름다움의 정수였던 거다. 그 사람들은 모두 무섭고도 아름다웠다. 원래 아름다운 것들은조금씩 무섭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릴케가 말했던그건지도 몰랐다. 고요히 우리를 멸시하여 파멸로 이끄는그 아름다움.

어쩌면 불쌍하면서 무섭기까지 해서 두 배로 슬펐는지도 몰랐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은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니까. 슬픔과 두려움이란, 사실 그렇게 착 붙어 있는 거였다.

선생님이 틀렸다. 십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아마도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선생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선생님, 하늘이란 게 늘 공평한 게 아니잖아요. 아시잖아요……… 그렇잖아요?

어쨌거나 그때 난 고작 스물 한두 살밖에 안 먹었는데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언덕마다 평지마다 꽉꽉 들어찬 불빛 하나하나가 참 얄밉게도 빛나서 툭하면 풀이 죽었다. 저토록 약 올리듯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하나 둘 중에 고작 내 몸 하나 눕힐 불 켜진 방 하나 없구나,
하고 한숨 쉬느라 땅이 꺼질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 뻔뻔이고 철판이고 예절이고 뭐고 당장 체면 차릴 처지도 안 되었던 나는 무턱대고 언니에게 비비고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들 열심히 일하던 거리, 유령도시처럼 텅텅 비어 있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느라 쓸데없는 참견 않던 터프한 사람들의 터프한 거리였다.

어떤 국가 원수의 행렬을 에스코트하는 고급 사이드카도 그보다 위엄에 넘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좁은2차선 거리는 어쩐지 엄살 부리는 사람을 사정없이 조그맣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늦바람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끝내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아마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나보다.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내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그 아들과 나는 힘을 합해 백색가전에 맞섰고, 그 지난한 이사가 끝나고 엎어져 있는 우리들 앞에는 기본 토핑만 얹은 도미나(도미노의 오타가 아니다) 피자 미디엄 사이즈 한 박스가 배달되었다. 게다가 다 식은 채로, 빵은 또 왜그렇게 타이어처럼 질긴지. 그래도 우리는 죽도록 입에 밀어넣었다. 앞으로도 우리 힘으로 세상을 잘 헤쳐나가려면입에 빵이든 타이어든 속을 잘 채워놔야 될 것 같았다. 앞으로도 언제 냉장고를 번쩍 들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살아보니, 역시 그랬다. 언제 뭘 들게 될지 모르는 거, 그런게 인생인 모양이다.

직장 업무에 곧 죽을 것 같은 날 문을 쾅 닫고 찌그러진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으면 그야말로 <리어왕>의 독백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아나는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용도실 문을 벌컥 여니 맙소사, 문턱까지 혼탁한 오수가 차올라 있었다. 야근이라도 했었다면 온통 방까지 잠겨 있었을 사태였다. 버리려고 챙겨뒀던비닐봉지나 다용도실 슬리퍼 따위가 회색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꼴이라니. 하나님 거짓말쟁이,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아니하겠다 하셨으면서………!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이태리타월에 비누를 듬뿍 묻혀살갗이 벗겨질 만큼 박박 문질렀다. 거의 온몸의 껍질을 한겹 벗겨내고서야 냄새가 좀 가실 것도 같았다. 내 참 더러워서 더러워서, 나는 투덜거리면서 끊임없이 박박 문질러댔다.

물론 우리 개에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개의 귀를 막아주고 싶었다. 그녀는 계속 뭐라고 말했는데, 그 다음 말들은 흐느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큰 소리는안 내고 울기만 했다. 아, 그러게. 사는 게 왜 이렇게 더럽다.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울었다. 아, 정말사는 게 왜 이렇게 더러운가. 그날 왕십리 밤하늘은 엄청나게 칙칙했다.

나도 속상했다. 물은 무겁고 냄새도 심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이미 옷도 다 젖었고 물도 여러 번 퍼내봤고 아직젊고 힘도 좋으니까. 다만 그녀에게 그 물을 더 만지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 물에 내가 풍덩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에게 그 물을 만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40분쯤 열심히 퍼냈더니 서서히 물은 빠졌고, 그녀의 아들은 작은손으로 걸레를 쥐고 마루에 넘친 물을 닦았다.

정말 그녀가 푹 쉬길 바랐다. 그녀는 살짝 웃었다. 그리고 바로 며칠 뒤, 그 집은 비었다. 그녀는 잘 쉬어볼 틈도 없이 이사를 했다. 얼마 뒤에 나도 그 집을 떠났다. 요즘도 가끔 고즈넉한 새벽이면 그녀가 생각난다. 잘살고 있을까, 그집 아들은 아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쯤 되었겠지. 어쩌면군대를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그녀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더 걸었더라도, 그녀의 인생에서 달라지는 거라곤없었겠지. 이곳은, 이웃을 생각하기엔 참 고독하고도 난해한 도시였다.

바보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바보처럼 살 때가 있다.
그때는 그 바보 같은 상태를 그냥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나도 같이 사는 언니도, 옆집 여자도 그 집 아들도 다 견뎌야만 하는 게 이놈의 인생이던가.

전 국민 앞에 털을 뜯기고 그 털을 내보이면서라도 살아내야겠다는 그 무표정한 체념, 그리고 때론 체념 그 자체가 강철 같은 의지가 된다는 것을.
구불구불한 털을 뽑히든 냄새 나는 물을 퍼내든, 무엇을하든 그걸 무심한 얼굴로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용기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무리 깔끔해도 모조리 똑같은 간판이 죄다 ‘앞으로 나란히‘를 한 채 훤하게 펼쳐진 거리보다는, 도시 미관이고 어쩌고 구질구질해 보이고 뭐건 간에 가게 주인의 취향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 이리저리 제멋대로 붙어 있는 간판이 있는 거리가 좀 더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냥 내 취향이 후지기 때문일까.

이명박 때문에 가장 놀란 것은 뭐니뭐니해도 서울 봉헌사건이었다. 훗날 국가의 수장이 될 남자였기 때문에 스케일이 남달랐던 것인지 그는 어느 기도회에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기도했다. 나 역시 개신교인이었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기절할 만큼 놀랐다. 아니, 헌금이나 봉헌은자기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요, 시장님. 게다가 가만있어보자,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서울인 인간은 죄다 같이 도매금으로 봉헌되는 것인가! 서울에 얹어져 같이 바쳐지는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질겁하여 전속력으로 인천으로 도망쳤다.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황량했던 인천공항의 벤치에 누워서 여긴 안전하려나, 하고귀를 긁으며 생각했다. 가만, 인천시장의 종교는 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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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인지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재평가하고 판단을 명확히 하면서 더 정교하고 해상도 높은개념을 축적한다. 하지만 개념과 모델은 가장 정교한 것조차도항상 본질적으로 픽셀화돼 있으며, 우리의 믿음은 항상 불완전하다. 그 때문에 ‘완벽한 진실‘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점점더 진실에 근접하는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숫자나 그래프
‘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각하고 세상이 영웅과 악당, 갈등과결심, 클라이맥스와 해피엔딩으로 가득 찬 이야기처럼 펼쳐지리라고 믿는다.
--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이런 편향의 가장 우려되는 측면은 그것들이 서로 연결돼 부정적 효과가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믿음은 개별적인 상태로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얽혀 있다. 따라서 한 가지 믿음을 바꾸는것은 전체 지도의 많은 부분을 위협할 수 있다. 신념 체계는 본질적으로 복잡한 인지 알고리즘의 연쇄작용이며, 그 알고리즘들이 심하게 편향될 때 엄청나게 왜곡된 세계관을 구성한다. 왜곡된 세계관을 지닌 누군가가 자선을 베푼다는 명분으로 행동할 때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험과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덜 틀리는 것이다.
- 일론 머스크

편향을 바로잡으려면 당신의 삶에서 편향을 유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을 파악하는 습관을길러야 하는데, 이는 주로 메타인지적 인식의 기능이다. 마음챙김은 습관적인 인식 패턴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인지적 편향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신의 직관에 의문을 제기하기 전에 자기 마음의 눈이 바라보는 것이 직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직관은 사물이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감지하는 인지 알고리즘이다.
- 엘리에서 유드카우스키, 「알고리즘이 내부에서 느끼는 방식

무지함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아는 체하는 것은 병이다.
먼저 자신이 아프다는 걸 깨달아야만
"진정한 건강을 얻을 수 있다.
- 노자, 도덕경』

인지적 편향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비판적 사상가나 자유로운 사상가, 합리주의자라고 일컫는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더 명확하게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앞서살펴본 편향을 없애는 방법을 자주 활용한다. 이런 방법들은 적절한 상황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 능력만으로는 심각한 편향을 막지 못한다.

편향된 알고리즘을 수정하려면 더 깊은 기본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은 복잡한 현대적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기억하고 예측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이 목표들은 모두 요점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현대 세계는 사람들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미끼를 구조화함으로써 편향을 강화한다. 검색 엔진, 뉴스 플랫폼, 소셜 미디어 웹사이트들은 클릭과 조회 수를 늘릴수록 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진실을 알리는 것보다 이용자의 욕구에 영합하려고 한다. 정보를 배포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은 우리를 반향실 echo chamber 로 끌어들여 인지 알고리즘을 더욱 왜곡시킨다."

인지 영역에서 더 깊은 두 번째 심리건축 단계는 동기부여다.
동기 기반 편향은 시스템의 작은 버그가 아니라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단순히 음모론자, 종교적 광신자 또는정치적 권모술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믿음을 소중하게 여긴다. 따라서 이런 믿음을 간단히 없앨 수는없다. 그것을 지속시키는 욕망의 플러그를 뽑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정의롭다고 믿고 자신이 이믿음을 강하게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걸 파악했다면, 당연한 정의란 없다는 믿음이 가질 수 있는 이점들을 생각해보자. 자신의취약한 현실을 직면해야 하겠지만, 불행의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대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면모든 것이 매우 바람직한 상태라고 여기는 대신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다.

명확하게 생각하지 않는 위험성은 이전 어느 때보다 지금 훨씬 더 크다. 우리 사고방식에 뭔가 새로운 문제점이 생겨났기때문이 아니라, 그럴듯해 보이는 혼란스러운 생각이 예전에는없었던 방식으로 훨씬 더 치명타를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1996년)

핵무기, 생명공학, 나노기술,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이 빠르게발달함에 따라 잘못된 생각과 독단의 폐해도 급속도로 증가할것이다. 모든 기술이 힘이 더 강해지고 제조 비용이 줄어들고 사용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기술이 인류의 존재 자체에 위협이 될 것이다. 독단을 맹신하고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인간의 성향을 통제할 수 없다면 파괴와 전쟁을 일으키는 오늘의 힘은 내일 인류의 완전한 멸종을 초래할 것이다.

머스크는 사람을 컴퓨터로 여기고 두뇌 소프트웨어를 자기가만드는 가장 중요한 제품으로 여긴다. 두뇌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회사가 없기 때문에 직접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매일 베타 테스트를 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이것이 바로 머스크가 독보적으로 유능한 이유이며, 여러 거대 산업을 한 번에 뒤흔들 수 있는 이유다. 또한 빠르게 학습하고 현명한 전략을 짜고 미래를 명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이유다.

사람의 정신력은 얼마나 많은 진실을 수용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진실을 어느 정도까지 희석하고 가면을 씌우고 달콤하게 만드는지에 달렸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만약 당신의 행복이 잘못된 믿음에 의존하고 있다면, 기반이부실한 대응 방식에 의존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폭풍이 몰아치고 잘못된 믿음이 현실과 충돌하는 순간, 당신은 고통과 혼란에휩싸이게 될 것이다. 당신의 믿음이나 경험과 모순되는 어떤 상황 또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당신의 정체성에 위협을 가하고마음의 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는 종종 결함이 있다. 하지만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지는 분명히 알고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긴다. 앞장에서 살펴본 믿음들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삶을 잘 이끌어간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착각에 빠지기가 놀라울 정도로 쉽다는 걸보여줄 뿐이다.

이 모든 사례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는 데 서툴고,
그결과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 서툴고, 그 결과에 대한 자신의감정적 반응을 예측하는 데 서툴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의 상태는 이제 막 완벽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단지 정말로 서툴뿐이다.

*명상을 할 때 가장 좋은 자세는 똑바로 앉는 것이고, 자기성찰을 할 때 가장 바람직한 행동은 걷는 것이다. 걷기는 조용히성찰할 수 있도록 최적의 자극을 줄 뿐만 아니라 몸에 유익한 운동도 되고 비타민D도 제공한다. 컴퓨터를 켜거나 스마트폰을꺼내지 않고 몇 분 이상 자리에 앉아 성찰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걷기는 집중력을 끊임없이 뭔가로 채우려는 거부할수 없는 유혹을 없애준다."

이제 당신 삶의 특정한 문제나 영역에 관심을 기울여보라. 아마도 당신은 인생에서 다가오는 변화에 불안감을 느끼거나 누군가에게 짜증이 난 상태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받아들여라.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나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노력하고, 직관적으로 그 느낌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단어를 발견할 때까지 이 과정을 계속해라. 당신이 선택한 단어나 이미지를 매우 밀접하게 연상시키는 변화나 사람 또는 생각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봐라. 젠들린은 말한다. "전환, 즉 약간의 ‘느슨함‘ 또는 해방감과 함께 뭔가가 떠오를 때까지 느껴지는 감각을 유지하라." 이 전환은 "아!" 하는 깨달음의순간처럼 느껴져야 하며 자기성찰로 진입한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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