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털어 주며
우리 허전한 등 뒤
끝내 이길 가난의 강물 위에
겁도 없이 사라지는
깨끗한 사랑 같은 눈송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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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refugee‘이라는 단어가 영어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7세기말로, 영국 또는 다른 지역으로 도피한 박해받는 프랑스 신교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레피제refugie‘에서 차용되었다. 이 단어는 점차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박해 때문에 고국을 떠나 피난처를 찾는 다른 집단들에도 적용되었다. 난민이라는 단어는 강한 동정심을 연상시켰는데,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때 난민의 발생 요인으로 전쟁이 강조되면서 더욱 그랬다. 예를 들어, 전쟁 중이었던 영국에서는 독일의 잔학행위의 희생자로, 살기 위해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무고한 민간인 같은 이들을 난민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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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눈부시게 째려보고 있다신호가 바뀌자 횡단보도 위로내 사랑하는 검은 거울, 그림자가 나를 이끈다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내 검은 거울 상판때기에다꽁초를 휙 던진다이게 도대체 누구의 어항 속이냐?
거울 미로에 빠진 사람처럼 오늘 난 눈을 뜰 수가 없다눈길 가는 데마다 전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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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또한 초기 시온주의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이미 팔레스타인에살고 있거나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시온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완전히 불모지에 사람이 없는 ‘땅 없는 민족을 위한 민족 없는 땅‘이라는 신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래서 폴리는 1919년 12월 자파 항구에 도착해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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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을 가학적으로 대하던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대비하면•확실히 긍정적인 견해지만, 부정확하고 다소 오만한 태도이기도 ㅎ다. 라스 카사스는 어쩌면 ‘백인 구세주‘ 콤플렉스의 초기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그에게 타이노족은 분별력 없고 단순하고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라스 카사스는 타이노족의 특성을 길게 늘어놓은 이후에 "그들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다면 진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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